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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19화 (119/145)

119화.

“몸에 따로 감춰 두고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만지지 못하게 했던 거… 아닌가.”

어쩜 이렇게 눈치가 빠를까.

노엘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뇌가 톡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무너져 내리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당겨 올린 나는 미간을 펴며 말했다.

“그럼 벗을까. 확인해 볼래? 내가 몸에 다른 마력석을 정말 지니고 있는지.”

“…….”

내 말에 노엘은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에겐 매력적인 제안이겠지. 하지만 그는 내 제안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마력석은 여전히 내 몸 안에 숨겨 둔 상태였으니까.

“찾아보겠냐고 물었어.”

“정말 그래도 괜찮아?”

“대신 조건이 있어. 만약 내 몸을 확인했는데 마력석이 단 하나라도 나오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넌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해.”

“네가 하자는 대로…?”

“응. 너와 난 지금 이 자리에서 헤어지게 돼. 그리고 당장 나와 친구들을 구하러 가는 데 집중할 거야. 그다음엔 내가 원래 살던 곳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거고. 그렇게 더는 내 발목을 잡아 지연시키지 않기로 맹세해.”

내 입으로 말을 하고도 새삼스레 놀라고 말았다. 내가 현재 원하는 것들이 노엘에겐 협박이 될 수 있다니.

나는 노엘의 대답을 예상하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

“어떡할래? 나는 네 선택에 따를게.”

“안 해. 네 말을 믿어.”

휴…. 다행이었다. 그가 안 할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말이다.

“알았어. 분명 네 입으로 확인하지 않겠다고 한 거야. 그러니 의심하지도 말아야 할 거고.”

노엘이 한발 물러나긴 했지만, 정말 믿는 건지 몰라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분명 자기만의 계략이 있을 터였다. 혹은 새로운 계략을 세우고 있거나. 아무래도 그와 계속 함께하기는 버겁지 않을까.

“응. 절대 의심 안 할게. 그러니까…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마.”

“이 일은 그럼 이렇게 마무리된 걸로 할게. 난 바로 올라가는 길을 찾으러 갈 거야.”

“벌써…?”

“‘벌써’라니. 노엘, 넌 친구들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거 같아. 아무리 안전할 거라고는 하지만 너무한 거 아니야?”

도통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다음엔 또 어떤 방법으로 날 옭아매려 할지.

“걱정 안 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좀 더 쉬다 나랑 같이 구하러 가자. 응?”

노엘의 애원에 나는 다시 한번 차갑고 매몰차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냥 나 먼저 갈게. 넌 알아서 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그래, 날 또 방해하려면 어디 한번 해 보든가.”

매섭게 쏘아붙이고는 냉정하게 뒤돌아 가려는데 노엘의 양손이 내 허리를 붙들었다.

“리사, 왜 이렇게 화가 난 거야. 매드와 깁스를 속인 건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용서해 줘. 제발.”

그가 잔뜩 놀라선 애달프게 달라붙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보는 순간 마음이 약해져 다시 그가 원하는 대로 들어줄 게 눈에 선했다.

마음 굳게 먹고 끊어내야 한다. 그 생각뿐이었다.

“내 화가 풀릴 때까진 서로 좀 떨어져 있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협조해 줄 거 아니면 당장은 나 따라오지 마.”

마치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도 그랬었지. 자꾸 방해하는 게 거슬려서 그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었다.

“싸워도… 속상해도… 전부 내 곁에서 하기로 약속했잖아. 벌써 잊은 거야?”

허리를 감싸 배를 매만지는 노엘의 손을 차분하게 뿌리쳤다. 그의 갈 곳을 잃은 손이 허공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헤매다 떨어졌다.

“……먼저 신뢰를 저버린 건 너잖아. 그러니 이번만큼은 나도 예외로 굴게 내버려 둬.”

“혼자 어떻게 올라가려는 건데…. 그렇게 겁도 많으면서.”

“토드를 만나기로 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이대로 가 버리면 나 정말… 힘들 것 같은데…. 힘들어서 죽을지 모르는데도?”

“…네가 어떻게 되든 이제 상관 안 할 거야.”

나는 그대로 그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말을 너무 심하게 했나….’

일부러 떼어내려고 그런 거였지만, 그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됐다.

되려 상처받은 건 나인가 보다. 심장에서 출혈이 난 것 같은 괴로움이 흘러내렸다.

어떻게든 그가 자리 잡은 머릿속의 뿌리를 뽑아내려 버둥거렸다. 힘껏 달려 그에게서 최대한 멀어졌다.

또 금방 따라잡히기 전에.

***

리사가 도망치듯 달아나는 걸 보며 망연히 서 있는 노엘에게 매드와 깁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크흠. 기운 내라고.”

노엘의 어깨에 가벼운 손을 툭 올린 매드는 그의 얼굴을 보곤 예상외였는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애절하게 눈물이라도 줄줄 흘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의 뒷모습이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정말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치겠다는 소름 돋는 입꼬리를 보고야 만 것이었다.

“……놀랐잖아. 위로할 필요가 없었네. 역시 넌 내가 본 이들 중 제일로 미친놈이야.”

노엘의 섬뜩한 눈빛에 매드는 혀를 내두르며 팔에 돋은 닭살을 문질렀다. 눈에서 붉은 하트를 촘촘하게 내보내던 노엘은 그런 매드를 하찮게 노려보았다.

“미친놈 눈엔 미친놈만 보이나 보지.”

“아니야. 난 너 같은 미친놈은 본 적이 없어. 시드도 너 같진 않았다고. 그래도 다행이야. 위로하는 건 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많이 성가셨거든.”

“그럼 알아 두면 좋을 걸 가르쳐 줄게. 앞으로 날 위로하려거든 리사를 데려다줘. 난 리사만 있으면 뭐든 다 될 테니까.”

“그것도 성가신데…. 그래도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 좀 낫네. 근데 저 애는 네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데? 왜 그렇게 질척거리는 거야. 나라도 아주 질려 버리겠어.”

“질척…? 질려 버려…?”

내가?

눈을 크게 치켜뜬 노엘은 매드의 눈을 뚫어져라 무섭게도 응시했다. 충격적이라는 눈동자를 마주 본 매드는 그새 신이 나선 흥분했다.

“몰랐어? 내가 너보다 어른이니 알려 주는 건데 말이야. 이럴 땐 슬퍼서 엉엉 우는 게 올바른 행동이라고.”

“리사가 나한테 질리면 안 되는데…….”

고개를 푹 숙이며 불안해하는 어두운 얼굴에, 매드는 경쾌하게 웃었다. 아주 손뼉이라도 칠 기세로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지금 그 표정이 정상이라고. 그렇게 절망하고 불안해하란 말이야!”

노엘은 다시 고개를 느릿하게 들며 서늘한 웃음을 머금었다. 잠시 매드의 장단에 그럴싸하게 시늉한 것뿐이었다.

“매드, 상황이 힘든 건 알지만 네 욕구 불만을 내게 풀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어.”

“흐어어어. 어흐. 어흐.”

멍하니 있던 깁스는 웃겨 죽겠다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노엘의 말을 부정할 수 없어 심술이 난 매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꽉 끼었다.

“리사한테 확 실연이나 당해라.”

그 말에 노엘이 살기를 담은 눈빛을 날리자 흠칫한 매드는 빠르게 화제를 넘겼다.

“앞으론 리사를 속이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계속 그랬다간 너 진짜 후회하게 될 수도 있어. 진짜 질려 버리면 어쩌려고.”

노엘은 그런 것쯤은 이미 생각해 봤다는 듯 태연히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질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사랑해 줄 거야. 그래도 질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든 다시 날 보게 만들어야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후회는 그녀를 놓쳤을 때나 하는 일이지.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해 리사를 붙잡을 뿐이었다.

그에게 한가한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게, 날 떠나려 하지 말았어야지.’

***

“이 정도면 멀리 떨어졌겠지.”

겨우 달리기를 멈추고 여유롭게 걷게 되었다. 아직도 주변은 수많은 연구실로 빼곡했다.

계속해서 직진하고 있는데, 뒤에서 또 나를 쫓는 간질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도 들어서 이젠 무서움보다도 지겨움이 더 들던 참이었다.

나는 대뜸 멈추어 서선 뒤를 홱 돌아봤다. 역시나 빠르게 몸을 숨기는 모양이었지만, 여기서 또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몰래 미행하는 건 그만하지, 좀? 내가 지금 기분이 안 좋아서 말이야. 완전 저기압이라고.”

노엘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려 스스로 짜증이 났던 탓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아….

“나랑 같이 다니고 싶으면 당당하게 이리로 나와. 그럼 받아 줄게.”

머리를 짚고 한숨만 푹푹 내쉬는데 미행자는 여전히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 됐어! 따라오든지 말든지.”

“리사?”

다시 돌아서서 가던 길을 가려는 찰나, 반대편에서 토드가 코너를 돌아 나를 발견하곤 활짝 웃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솟구치는 반가움에 그에게로 달려가 거리를 좁혔다.

“토드! 무사해서 다행이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이 얼마나 다행인가. 드디어 진정한 동료를 만났다. 토드의 저 찬란하고도 성스러운 미소가 날 치유하는 듯했다.

“나야말로. 네가 오지 않아서 걱정했어. 그러다 네 목소리가 들려서 와 본 거야. 드디어 5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어.”

“그게 정말이야? 어서 가 보자.”

“바로 이 근처야.”

이제야 구출 작전에 조금이나마 진전이 생긴 기분이었다. 앞으로 쭉쭉 나아가면 될 것 같은 희망으로 가득 넘쳐 났다.

그렇게 나와 토드는 달팽이 모양의 계단을 타고 5층에 도착했다.

올라오자마자 우릴 기다리고 있는 건 직진으로 된 길 하나뿐이었다. 둘이 나란히 가기에 충분한 넓이였다.

길의 양옆에서 베이지색의 마력석 불빛이 은은하게 공간을 비추고 있어 어두컴컴하지는 않았다.

“토드, 미리 말해 둘 게 있는데. 내 뒤를 몰래 밟는 녀석이 있어.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 기회 봐서 내가 잡아 줄게. 그러니 넌 신경 쓰지 말고 안심해.”

토드가 이렇게 든든한 아군이 될 줄이야.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고마워. 널 다시 만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그런 말 하면 나 되게 설레는데.”

뺨을 붉게 물들인 그는 곁눈질하며 짓궂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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