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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17화 (117/145)

117화.

리사의 손가락에 머물던 노엘의 입술이 쪽쪽 소리를 내며 팔을 따라 서서히 올라갔다.

당황스러움에 축축한 눈빛이 돼서는 부끄럽다는 듯 지그시 눈을 맞춰 오는 리사를 본 순간, 그는 전부를 빼앗기고 말았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볼 수 없다면 두 눈을 내어 줄 수도 있었고, 피가 없다면 제 몸의 모든 피를 다 짜내서 줄 수도 있었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음은 물론이었다.

이제 더는 멈출 수 없었다.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방해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리사, 네 생각보다도 나는 훨씬 더 강인하고, 지독하고, 미친놈이야. 그러니 네 걱정을 더 해야 할 텐데…. 내 생각까지 그리 깊게 해 주다니 하마터면 마음 약해질 뻔했잖아.’

끼익.

노엘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를 잡아 빼 자신의 앞으로 고정했다.

‘그런 말로 날 방심시키려 하다니. 네 진심이 정말 기뻐. 설레서 죽을 것 같아. 죽어도 돼.’

“윽! 노엘.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움직인 의자에 놀란 리사가 중심을 잃으며 앞에 있던 노엘의 어깨를 잡았다. 노엘은 겁먹지 말라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뒤로 다정하게 넘겨 주고는 귓불을 매만졌다.

“약속할게. 대신 너도 약속해 줘.”

“무얼….”

“내가 무서워지거나 싫어지거나… 끔찍해져도 말이야.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무조건 내 옆에 있어 줘. 슬픔도 분노도 전부 내 곁에서 표출해.”

“……그게 무슨….”

아직도 모르겠어? 내 밑바닥이 전부 드러나 들키더라도 너 아니면 안 된다고 고백하는 건데.

“약속할 거야, 말 거야. 네가 그러지 않겠다면… 나도 네 약속 지킬 생각 없어.”

“그러니까… 네 말은 싸우더라도 무조건 한 이불 덮고 자야 한다. 뭐 그런 뜻이지? 부부는 아니지만, 알았어. 알았다고. 약속해.”

알아들었다는 표정이지만 진짜 잘 알아들은 게 맞는지 궁금해진 그였다. 반면 리사는 간단한 말을 뭐 그리 무섭고 비장하게 하냐면서 언제 눈물을 쏟았냐는 듯 투덜거렸다.

노엘은 고개를 숙여 홀로 깊숙한 미소를 집어삼켰다. 그러고는 금세 싹 미소를 거두어 다부진 입술을 살며시 벌렸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치켜든 노엘은 꿇었던 무릎을 펴며 그대로 그녀의 입술로 직진했다.

여느 때처럼 부드럽게 파고들자 자연스레 벌어졌다.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가녀린 몸짓이 사랑스럽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수줍어선지 아니면 겁먹어선지 자꾸만 뒤로 고개를 뺀다.

그럴 때면 노엘은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어째서 키스할 때마저 달아나려는 그녀를 쫓고 있는 건지.

잠시 입술을 뗀 그가 길게 늘어진 타액을 혀로 돌려 끊어내며 제 입술을 훑었다. 그녀의 투명하게 반짝이는 입술이 옅게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보이지 않는 솜털조차 한 올 한 올 전부를 혀로 핥고 손으로 쓰다듬고 싶었다. 제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단 한 곳도 없도록.

그러니 이렇게 하면 어떨까. 리사, 너한테 조금 더 깊게 다가가도 될까.

***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것 같다. 노엘한테 깊은 속마음을 내비친 걸 몹시 후회하는 중이었다.

어째선지 가슴이 북받쳐 올라선 다 털어놓고 말았는데, 그러고 나니 노엘이 조금 흥분해 버린 것 같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뭐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갑자기 왜 이런 분위기가 된 건진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정신 놓고 하던 키스가 끊기니 나로선 이성이 뇌를 지배하고자 다시 돌아왔는데, 노엘은 여기서 그만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층 더 그윽해진 눈빛이, 그의 날렵하게 솟은 눈매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핥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긴 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금방 키스를 끝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길게 침묵한 것도 처음인지라 갑자기 긴장되어선 어떻게 나올지 몰라 심장이 울렁거렸다.

“왜… 그래?”

성질 급한 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연 순간이었다.

“흡!”

그가 다시 혀를 밀고 들어왔다. 한 번 가볍게 훑고는 잠시 떼었다가 다시 깊숙이 파고들어 밀어 넣는다. 아까와는 무언가 달랐다.

혀가 빈틈없이 맞닿을 때마다 그가 나를 의자 깊숙이 밀어 넣었다. 마치 가두어 두려는 것처럼.

의도한 것 같았다. 내가 꼼짝 못 하도록. 알아차렸지만 노엘의 도전적인 몸짓에 호기심이 생겨 버렸다.

등받이에 등이 닿고 내 머리조차 빈틈없이 닿아 더는 뒤로 내뺄 공간도 없었다. 그러자 내 목덜미를 고정하던 그의 손이 안심하고 둥근 어깨를 더듬으며 타고 내려갔다.

그의 다른 한 손은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다리에 정신이 쏠린 새에, 그의 다른 손이 순식간에 내 허리로 내려와 지분거렸다.

허리에 머무르던 단단한 손은 곧장 갈비뼈를 가로질러 올라왔다. 멈추지 않는다면 곧 가슴 위로 도달하게 될 것이었다.

‘아… 안 돼!’

큰일이었다. 가슴 사이에 마력석 하나를 숨겨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노엘이 내가 가진 다른 마력석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또다시 날 의심하고 마력석을 빼앗기 위해 방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공들인 속임수를 여기서 이렇게 들킬 수는 없지.

“노엘!”

나는 가슴 바로 아래까지 접근한 노엘의 손을 강하게 잡아 멈추게 했다. 다행히 노엘은 채근하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그러니까. 우리 진도가…!”

얼굴이 급격히 달아오르며 하려던 말이 솟구친 침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입 안에 홍수처럼 몰려든 타액을 간신히 삼켜 내리려는데 노엘이 천사처럼 눈을 곱게 휘며 말했다.

“우리 진도가 너무 느리긴 했지? 미안…. 이제라도 진도 같은 건 다 빼 버릴까 봐.”

나는 다시 올라오려는 노엘의 손을 양손으로 더욱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다리에 머물던 그의 다른 손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헉! 거기도 안 돼!’

아래에서 느릿하게 올라오는 손은 곧 내 골반에 도달할 터였다. 골반에는 귀환 마력석을 숨겨 놓았다. 절대 만지게 두어서는 안 된다. 가슴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곳이었다.

“노엘. 잠깐!”

나는 결국 노엘의 양손을 죄수처럼 붙잡아 내 무릎으로 내려 꽉 움켜쥐었다. 덕분에 그의 양손이 포박되어 다소곳해졌다.

“응…?”

“진도가 너무 빠, 빨라!”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고 아쉬운 건지 모르겠다. 침을 몇 번이나 삼켰는지. 후…….

하필 마력석을 왜 그런 데에 숨겨 놨을까. 속으로 한탄했다. 그렇지만 달리 숨길 데가 마땅치도 않았다.

덕분에 노엘과 더는 진도를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 지금 아쉬워하나 봐.’

얼굴이 시뻘게져선 시무룩해하고 있는데 노엘의 듬직한 손이 내 손에서 벗어나 되려 따듯하게 꼬옥 잡아 주었다.

“너무 빨랐구나. 미안…. 널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괜찮아?”

“어? 응….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금세 죄지은 얼굴이 돼선 저렇게 자상하게 날 배려하고 살피는 그였다.

노엘은 날 안심시키려는 듯 계속해서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내 뺨을 어루만졌다. 너무 따듯해서 뇌가 양초처럼 녹아내릴 것만 같다.

“리사, 그럼 네가 가르쳐 줘.”

안심시키는 줄 알았더니 다시 내 심장을 콱 쥐어 잡는 그였다.

“가르쳐 달라니?”

“네가 생각하는 알맞은 진도를 얘기해 줘. 지금, 우리의 진도가 어디까지 가는 게 맞는 건지.”

노엘은 진득하게 내 눈을 좇았다. 눈을 먼저 피하면 완패하는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다.

진심을 들여다보고야 말겠다는 매서운 눈빛과 내게 푹 빠져 사랑스럽다는 눈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

“가르쳐 줘. 나는 지금 네게 무얼 어떻게 해 주면 돼?”

숨이 멎을 것 같은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이렇게 유혹하는 듯한 정중한 요청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걸까. 나는 이미 한계인 것 같은데.

“지금은….”

토네이도가 들이닥친 기분이다. 목소리를 꾹꾹 눌러 내보내는 와중에도 머리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지 적절한 말을 찾는 중이었다.

“지금은?”

“네가….”

분명 말하고 나면 또 후회하지 않을까.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이 상태로 영원히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이내 나는 결심하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여전히 한쪽 무릎을 굽혀 앉은 노엘의 바로 앞에 주저앉았다.

영문을 몰라 치솟은 노엘의 눈썹은 내려갈 줄 몰랐다. 놀라 고양이처럼 굳은 채 내 갑작스러운 행동을 읽어내려 노력했다.

“리사? 바닥이 찬데….”

“네가 아니라 내가…! 내가 널 만져. 그러니까 넌 아무것도 하면 안 돼. 그게 오늘의 우리 진도야.”

이것 봐. 역시 말하자마자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알고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오늘의 나를 암살해 버리고 싶다.

그래도 잠깐 자책하고, 창피해하고, 비웃음 좀 받고… 그러고 나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내 오산이었다.

“……그, 그럴래? 그럼…….”

예상외로 노엘은 아주 진지하게 응했다. 갑자기 주섬주섬 제 셔츠의 끈을 풀어 헤치려 하는 손을, 나는 입을 크게 벌리며 만류하듯 확 잡아챘다.

“아니! 아니…!”

“아… 이게 아니야? 미안…. 내가 눈치 없게 굴었네.”

노엘은 그제야 내 뜻을 잘 알겠다는 듯 엉큼하게 눈웃음쳤다.

그러고는 제 양손을 차분히 내려놓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이 가진 총을 내려놓을 테니 쏘지 말아 달라며 항복하는 자세 같았다.

“네가 벗겨 주고 싶었던 거지? 자, 네가 해 줘. 얼마든지.”

한층 더 요염해진 얼굴로 턱을 들어 기울이는데 분명 날 유혹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저런 각도로 올려다보는 건 그가 안달 났을 때 하는 행동이었으니까.

“…….”

일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커져 버렸다.

나는 나를 포기한 뒤 그의 셔츠 끈을 떨리는 손으로 잡아 풀기 시작했다. 소심하게 살살 풀어 헤치니 그의 반듯하고도 매끄러운 빗장뼈가 진주 같은 살갗과 함께 드러났다.

“팔… 들어 올릴까?”

이제 셔츠를 완전히 벗겨내려면 머리 위로 올려야 했는데, 말하지 않아도 양팔을 벌서는 것처럼 번쩍 들어 올린 그였다.

‘미치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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