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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16화 (116/145)

116화.

힘차게 뛰며 뒤를 간간이 돌아봤지만 역시 날 따라오는 건 없었다.

그러던 중, 앞에서 또 열리는 연구실 문을 보고 당장 제자리에 멈추었다.

‘또 뭐지…?!’

곧장 돌아가려 했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어쩜 이렇게 알맞은 타이밍에 열려 불안감을 키우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분노의 질주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나온 뜻밖의 주인공에 놀라고 말았다.

“리사?”

“노엘…?”

정말 노엘이 서 있었다. 노엘은 날 보자마자 십년감수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했어. 네가 보이지 않아서. 후…….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게 다가온 그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그 따듯한 온기에 나 역시 긴장했던 몸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이제야 제대로 숨이 쉬어짐과 동시에 이대로 끊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력석이 보여 주었던 은밀한 영상이 또 떠올라서 얼굴이 홧홧해진 건 덤이다.

“노엘, 보고 싶었어.”

“나도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어떻게 된 거야? 그동안 어디 있었어.”

“좀 멀리 오긴 했는데…. 저쪽 어딘가의 연구실에 붙잡혀 있었어. 토드 덕분에 간신히 탈출한 거야.”

“토드?”

토드와 만나게 된 이야기를 간단히 말해 주었다. 노엘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면서도 조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구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미안하긴! 방음이 잘 돼 있어서 내 비명도 못 들었을 거야.”

그래도 노엘이 날 찾아 여기저기를 열심히 다닌 모양이다. 반대쪽 복도를 살피고 있어야 할 노엘이 여기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연구실들을 전부 뒤지던 중이었어.”

“혹시 올라가는 계단이라든가 다른 길은 찾지 못한 거야?”

“응. 나도 이쪽으로는 방금 막 들어섰거든.”

“그랬구나…. 그럼 같이 찾아보자. 토드도 길을 찾아온다고 했어.”

갑자기 노엘이 나를 살살 끌어당기더니 조금 전 나왔던 연구실로 들어갔다.

덜컥.

두꺼운 문이 닫히고 노엘이 곧장 잠금을 걸어 잠갔다.

“노엘…?”

“쉿.”

잠시 문에 귀를 바짝 대고 경계하던 노엘은 이내 다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쫓기고 있었어?”

“아… 응! 매드와 깁스라는 미치광이 돌팔이 콤비가 나한테 뭔지 모를 주사를 놓았다니까?!”

생각할수록 끔찍하다며 혀를 내둘렀는데, 노엘이 내 턱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고개를 들게 했다.

“뭐지? 그새 피부가 도자기 같아진 것 같아….”

……?!

나는 순간 경직돼선 절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 설마 도자기가 되는 주사를 맞은 거야?”

“뭐?”

“나 이렇게 도자기가 돼 버리는 거냐고! 역시 이상했어. 그 주사기랑 링거도 그렇고…. 아무튼 나한테 계속 주사를 놓았단 말이야!”

나는 울상을 지으며 노엘의 옷깃을 꼭 잡아 쥐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도자기가 돼 버리기 전에 귀환의 마력석을 반드시 써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노엘은 갑자기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더니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다.

“뭐야.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리사, 푸흡……. 그런 의미로 얘기한 게 아닌데…. 후흑…….”

“그럼 뭔데…. 뭔데 그러는데!”

“피부가 도자기처럼 좋다고 하는 얘기잖아. 하아흑….”

아무래도 내가 주사를 맞았다는 사실이 계속 꺼림칙해선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 있던 것 같았다. 평소라면 금방 알아들었을 농담일 텐데.

“아… 진짜.”

급속히 부끄러워져선 내 뺨이 말랑말랑한지 은근슬쩍 눌러 보았다.

노엘은 그런 내가 웃겨 죽겠다는 얼굴이었다가 금세 사랑에 푹 빠진 소년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니 겨우 진정된 가슴이 다시 사뿐사뿐 뛰기 시작했다.

“이리 와. 그동안 널 찾아다니느라 좀 지쳤어…. 여기서 조금만 쉬었다 가도 될까?”

함께 들어온 연구실 내부를 이제야 둘러봤다. 내가 있던 곳에 비하면 훨씬 깔끔하고 깨끗했는데, 연구실이라기보단 연구원들이 쉴 만한 휴게실 같은 곳이었다.

작은 조리대도 있었고 커튼에 둘러싸인 커다란 침대도 여럿 있었다. 다른 커튼을 열어젖히니 씻을 수 있는 공간도 나왔다.

“혹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나 그동안 주사 때문에 잠들어 있었거든.”

“음… 한 이틀 되었나.”

“그렇게 오래?!”

어쩐지 아주 푹 잔 것이 개운하다 싶었다. 대체 무슨 주사였을까.

“무슨 주사를 놓은 건진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몸에 이상이 생긴다면 곧장 귀환 마력석를 쓰자. 내가 아직 잘 가지고 있으니까 필요하게 되면 꼭 말해야 해. 알았지?”

“응. 꼭 말할게.”

노엘도 내 생각과 같은 모양이다. 여전히 그가 무슨 꿍꿍이인지 의심스러우면서도 이럴 땐 그 누구보다 든든한 게 참 아이러니하다.

친구들을 하루빨리 구하고 싶어 얼른 가자고 하려 했지만, 노엘이 지쳤다고 하니 나도 여기서 잠시 정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었다. 노엘이 수상한 짓을 하는지 잘 눈여겨봐야 했다.

“이거 먹어 봐. 네가 좋아하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야.”

혼자 분주히 움직이던 노엘은 케이크 조각과 홍차를 테이블에 뚝딱 준비하고는 나를 불러 앉혔다. 그 탐스러운 자태에 몸도 마음도 녹아내린 나는 걸신들린 것처럼 고인 침을 삼켰다.

포크를 쥐고 한입 크게 베어 문 나는 행복감에 젖어 달콤한 맛을 음미했다. 향긋한 생크림의 향기가 매드와 깁스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주었다.

노엘은 맛있게 먹는 나를 뚫어져라 보며 흐뭇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내 심장이 울렁거리며 다시 한번 사르르 녹고 말았다.

“근데 케이크랑 홍차는… 대체 어디 있던 거야?”

“여기 뒤져 보니까 있더라고. 네가 말한 녀석들이 이곳에서 지내는 게 아닐까 싶어.”

“억! 그럼 우리… 지금이라도 빨리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불안함에 가슴이 떨려 와 먹던 케이크도 역류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노엘은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일단 저런 두꺼운 문을 뚫고 올 리는 없어. 여기 연구실들의 문은 특수 소재로 만들어진 거라.”

“하지만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아채고 밖에서 몰래 기다릴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면 오히려 고맙지. 내가 다 잡아 줄게. 리사. 널 괴롭혔던 것들은… 존재가치가 없어. 다 죽어 버려야 해.”

나른하고 차분한 음성이었지만 갑자기 살벌한 눈빛이 된 바람에 나는 급속히 서늘해진 가슴을 움켜쥐었다.

놀라는 바람에 포크가 바닥에 툭 떨어지고 말았다. 날카롭고 요란한 소음과 함께.

“…….”

“아… 미안. 무서웠어?”

그는 다정하면서도 무서운 말을 곧잘 하곤 했다. 특히 나와 연관된 일이면 더욱 그랬다.

혹시나 내 존재가 그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이 드는 순간이 종종 생겼는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니야. 난… 아니….”

노엘은 떨어진 포크를 주워 놓고 다른 새 포크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케이크에 눈길을 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자 노엘이 내 뒤로 오더니 자상하게 껴안았다. 그리고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는 저를 잔뜩 묻히려는 것처럼 비비적거렸다.

“겁먹지 마. 넌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

귀에 피가 나도록 듣던 말이었다. 마치 세뇌라도 시키려는 것처럼 들려온다. 그래도 무서운 순간이 올 때면 저 말이 가끔은 생각나서 이상한 용기를 얻곤 했다.

나는 나를 부드럽게 감싼 그의 팔을 소중히 쓰다듬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그의 존재가 더 두렵고 크게 다가왔다.

그가 이렇게 크게 두려워진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의 크기도 더 커져서 그런 게 아닐까.

안개처럼 다가오는 불투명한 미래가 또다시 불안해졌다. 게임의 끝에서 과연 단 한 명이라도 웃을 수 있을까.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대체 얼마나 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 탈출을 앞으로 어떻게 막을 속셈인지 캐내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이렇게 만나기만 하면 달콤하게 녹아내리고 만다. 모든 의심과 잡념이 잊어버린 것처럼 잠시 사라지고 만다.

“노엘, 하나만 약속해 줄래?”

“말해 봐.”

“무슨 일이 생겨도 살아남아서 잘 참고 견디기로 해. 무조건 네가 행복해지는 쪽으로.”

“무슨 일이라면… 네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경우를 말하는 건가.”

“……그 어떤 경우에도 말이야.”

“네가 잘못되면 내가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는걸. 아! 혹시 네가 떠났을 때 내가 어찌 될지 걱정되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

지금 노엘이 내 뒤에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갑작스럽게 확 와닿는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지며 무릎을 촉촉이 적셨다.

주체할 수 없어져 작은 떨림이 일자 노엘도 그제야 알아차렸는지 손을 올려 내 눈가를 매만졌다. 내 눈물에 닿은 그의 손가락이 놀라서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리사……?”

놀란 노엘이 내 옆으로 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 숙인 내 얼굴을 마주 보려 했다. 내 등을 쓸고 있는 그의 커다란 손조차 옅은 떨림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쩔 줄 모르는 붉은 눈빛을 마주 보고는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쏟아냈다.

“네가 너무 소중해서…. 네가 자꾸만 커져서 그래.”

어느샌가 내 안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였다.

나를 구원의 빛이라도 되는 양 황홀하게 보고 있었지만, 나는 결국 그를 구할 수 없겠지. 친구들은 반드시 구해내겠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남자에게서 떠날 것이었다.

“리사…. 그런 행복한 말을 왜 슬프게 얘기하는 건데.”

노엘은 정말 행복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처절하게 그 행복감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까 봐, 날아가 버릴까 봐 불안해하면서 행복해했다.

“노엘. 그러니까 약속할 거지?”

그가 순순히 약속할 리 없다는 직감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답 대신 야무지게 입술을 짓씹다가, 반항적인 눈빛으로 돌변하더니 촉촉한 입술을 벌려 가져간 내 손가락을 핥으며 부드럽게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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