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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10화 (110/145)

110화.

“노엘.”

바닥의 통로 뚜껑을 닫은 노엘은 나와 눈을 맞추며 짓궂은 미소를 머금었다.

“키스하러 왔어.”

뜬금없는 그 말에 왜 이렇게 안심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고향에라도 돌아온 것 같은 포근한 느낌.

“지, 지금 농담이 나와? 나 방금 죽을 뻔했다고!”

“그럴 리가. 네 손톱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내가 무조건 막았을 거야.”

“그럼 좀 더 빨리 오란 말이야. 아슬아슬하게 정말….”

놀란 심장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아 벌렁거렸다. 어쩐지 노엘의 등장으로 더 열심히 뛰는 듯했지만 이 심장 박동이 싫지만은 않았다.

노엘은 나를 일으켜 세우며 허리를 끌어당겨 제 몸에 붙였다. 꽉 마주 닿은 느낌에 갑자기 부끄러워져선 크림처럼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리고 키스하러 왔다고 한 건 농담 아니야.”

“…….”

“넌 왜 날 갖고도 써먹질 못해.”

“널 갖긴 뭘 가져. 난 돌아가는데…. 우린 장거리 연애 수준도 못 되는걸.”

이렇게 말하는 건 노엘이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도 마음의 준비를 천천히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결국엔 포기하게 될 것이다.

“넌 사랑에 관해선 참 현실적이고 부정적이야.”

“……사, 상황이 이러니 그렇지. 아니면 정말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특별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만큼은 사랑에 대해선 지극히 현실적으로 대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널 불안하게 한 걸까?”

노엘은 금세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눈빛을 했다. 내리깐 까만 속눈썹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아마 불안하게 만든 건 노엘이 아니라 내 쪽일 것이다. 그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 적이 없다. 적어도 그런 종류의 불안은 아니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을 뿐이야.”

“……그래.”

“너도 내가 돌아가고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 점점 잊을 거니까.”

영원이란 말에 집착하는 노엘이 무척 순진하고 순수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를 얕보거나 방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항상 내재해 있었다. 그는 날 놀래는 데에 재능이 아주 탁월했으니 말이다.

“왜 그런 무서운 말을 하고 그래. 물론 나도 영원한 사랑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응? 정말? 하지만 넌 그동안….”

“그저 내가 만들어 갈 뿐이야. 조금씩… 천천히.”

“만들어 간다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걸 기적이라고 하잖아. 기적이란 말이 왜 있겠어?”

그러니까 그는 여전히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생각 따윈 전혀 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도 더는 그를 떼어낼 노력에 공들일 필요가 없었다. 시간 낭비일 뿐 지금 집중해야 할 곳은 따로 있었다.

노엘이 분명 내가 귀환할 새로운 수단에 대해 알아내려 할 테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노엘, 이제 놔줘. 어서 친구들을 구하러 가야지.”

“그러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응?”

생각보다 쉽게 놓아준다 했더니 이내 내 손을 이끌고 어딘가로 들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관리자의 휴게실이라도 되는 듯한 작은 방이었다.

정사각형의 티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위에 토스트와 밀크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밀크티의 향긋한 냄새까지 더해지니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아니, 그보다 왜 상황이 갑자기 또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지?

뭔가 오붓하게 데이트하는 풍경이지 않은가. 퉁퉁한 애벌레들을 마주했던 일이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앉아. 그동안 너무 먹지 못했잖아. 널 생각하며 준비한 내 성의를 봐서라도 먹어 줄 거지?”

성큼성큼 걸어가선 의자를 잡아당겨 앉으라는 눈짓을 보내는 그였다. 다정한 눈길에 거절할 수가 없어서 결국 그의 의도대로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럼 먹기만 하고 바로 갈 거야.”

“응.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가면 돼. 아! 참고로 저 문으로 나가면 4층이야. 4층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지?”

“어, 응….”

이렇게나 친절하다니. 이러면 또 방심하기가 쉬워지는데 말이다.

차라리 강제로 날 잡아 두기라도 한다면 더 알기 쉬울 텐데. 그냥 본색을 드러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간 내가 뼈도 못 추리게 되겠지.

“어서 먹어 봐. 네가 좋아하는 베이컨도 가득 넣었어.”

어쩐지 토스트가 도톰하다 했다. 반면 노엘의 토스트엔 베이컨이 한 조각도 들어 있지 않았고 풀떼기만 가득했다.

“왜 내 거에만 베이컨을 넣은 거야? 너는….”

“아…. 베이컨이 똑 떨어져서 어쩔 수 없었어.”

내 거에 들어 있는 양을 보니 충분히 둘이 나누어 넣었어도 되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다 나한테 주다니…….

감동하면 안 되는데 가슴속이 간지럽게 술렁였다.

“그래도 그렇지… 다 줄 필요는 없었는데.”

“그렇지. 난 너한테 다 준 거야. 나도 주고 베이컨도 주고.”

“…….”

“아. 줄 게 더 있긴 한데. 그건 나중에 줄게.”

“뭐, 뭔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아, 정말…… 미쳐 버리겠다.

제정신을 잡고 있기가 힘들었다. 노엘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토스트를 마구 베어 물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울렁거려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너무 맛있어서 또 한 번 감동하고 말았다.

그렇게 토스트를 간신히 해치우고 나니 이번엔 밀크티 공격이 들어왔다. 그의 요망한 눈웃음과 함께.

“네가 제일 좋아하는 비율과 당도로 맞춰 놨어. 어서 마셔 봐.”

“……고마워. 잘 마실게.”

밀크티를 한 모금 홀짝인 순간 척추를 타고 올라온 소름에 곧장 죽을 것 같았다. 온몸이 달콤함과 부드러움의 완벽한 조화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래, 이 맛이야. 이 맛이라고. 완벽한 비율이야.’

자취를 감추었던 나의 밀크티에 대한 열망이 새롭게 다시 샘솟고 있었다. 이 밀크티를 맛볼 수만 있다면 세계의 그 어느 나라라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정신 차리자. 이건 다 노엘의 계략임이 분명하다. 먹을 것으로 꾀다니.

얼른 마시고 나가자!

“리사, 네게 궁금한 게 있는데.”

“응? 궁금한 것?”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역시 탁월한 계략가가 틀림없었다. 나를 실컷 만족시킨 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할 셈이었다.

“네 머리 위의 빛을 내는 마력석을 보니 궁금해서 그래. 열쇠 목걸이 말고도 돌아갈 방법 말인데, 혹시 여분의 귀환 마력석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야?”

어… 예리한데? 역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한 건데?”

“열쇠 목걸이를 돌려받은 것 같지는 않아 보여서….”

그의 노골적인 시선이 내 목에 내려앉았다. 목을 살피던 눈은 이내 길게 뻗은 빗장뼈로 향했다가 가슴의 라인을 훑어 내리고는 살짝 발그레해진 뺨과 함께 황급히 흩어졌다.

나는 그와 같이 부끄러워져서 괜히 테이블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는 은근슬쩍 상체를 가렸다.

노엘의 본능적인 눈길을 감지하니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에 나 역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아니! 정신 차려야 한다니까.’

급히 마른세수하고는 뒤로 넘어가려는 눈알을 바로 잡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지금 노엘을 잘 속여 넘겨야 했다.

이건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응! 처음엔 몰랐는데… 귀환의 마력석이란 걸 찾아냈어.”

“역시 그랬구나.”

“이 주머니에 귀환 마력석을 포함해서 몇 개 정도가 들어 있었어. 다 써 버려서 이젠 귀환 마력석만 남긴 했지만.”

“그래.”

사실 귀환의 마력석은 이 주머니 안에 없었다. 이미 따로 빼놓아 몸에 지니고 있었다.

노엘이 알면 이 주머니를 통째로 들고 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허접하게 빼앗아 갈 그가 아니라는 것쯤은 예상하긴 했다.

“이제 궁금증은 다 해소되었어? 더 물어볼 건 없고?”

침착하게 잘 말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몰려들어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엘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라 웃었다.

그러고는 테이블 밑에서 검붉은 장미를 또 한 송이 꺼내 들었다.

“오늘도 네게 주고 싶어서 가져왔어.”

***

노엘은 흑장미를 건네며 리사의 반응을 살폈다.

이번에야말로 말하고 싶었던 의미를 전하며 장미를 주고 싶었던 그였다.

살짝 좁아진 미간, 꼬리 내린 눈썹, 곤란하다며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입술.

이번에도 그녀를 부담스럽게 하고 말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도 틀렸다.

“오늘도 나한테 원망스럽다고 하려는 거야? 다른 의미도 있다며. 이왕이면 새로운 걸 좀 알려 줘.”

장미를 어쩔 수 없이 받아 든 리사는 그러면서도 향기는 놓칠 수 없다는 듯 코를 파묻었다.

“그럴까? 그럼 오늘은… 이게 좋겠다. 흑장미의 꽃말 중엔 저주의 의미도 있어.”

“익…! 저주라니! 지금 나보고 저주나 받아라! 이거야?”

리사는 화들짝 놀라선 뛸 듯이 벌떡 일어났다 앉았다. 그 모습조차 너무나 사랑스러워 미치겠다.

“응. 내가 없는 곳이라면 네가 다시는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저주. 내가 아니면 네 곁에 그 어떤 놈도 남아 있지 못하게 되는 저주.”

결국 또 원하는 바와 다른 의미를 전달하게 되었지만, 한 번쯤은 그녀에게 전하고 싶었던 삐뚤어진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엘은 환하게 웃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가 아니면 영원히 너 혼자여야 하는 저주에 걸린 거야.”

어때, 이래도 내 곁을 떠날 거야?

“……그런 저주라면… 난 이미 걸렸는지도 몰라. 처음 널 만났을 때부터.”

돌아온 대답은 그녀의 슬픈 목소리와 방긋하는 미소였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그 경계조차 모호한 미소. 곧 그 경계가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슬프게 하려고…, 울리려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소중한 그녀의 눈에서 서글픈 눈물이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기 전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되돌려 놓으려 했다.

그래야 했는데 그녀가 먼저 일어나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키스하러 왔다더니 그래서 키스는 언제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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