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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09화 (109/145)

109화.

필요에 따라 알아서 나와 주는 마력석들이 참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쯤 되면 마력석이 내 마음이라도 읽는 듯하다.

갑자기 손안의 연둣빛 마력석이 저절로 떠오르더니 내 머리 위에서 따라다녔다. 빛을 내는 마력석도 특징이 아주 다양한가 보다.

3층의 철창 사이로 들어가려니 그새 또 주저하는 마음이 들어 괜히 마력석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사파이어 같은 파란빛을 머금은 마력석이었다.

<초승달의 검. 5번 휘두르면 사용이 종료됩니다.>

‘초승달의 검? 검이라니 일단은 무기 같은 느낌이네….’

결국 사용해 보기로 했다. 마력을 모두 주입하자 마력석이 중간 길이의 검으로 변했다.

칼날 모양이 정말 초승달처럼 휘어 있었는데, 달빛처럼 은은한 빛을 내뿜는 것이 마치 장식용 검처럼 아름다웠다.

‘다섯 번 휘두르면 사라진다니 신중히 사용해야겠어.’

그러고 보면 노엘의 세력인지 시드의 세력인지 살피는 것도 중요했는데, 일단 상대가 지능이 있으면 노엘의 세력일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들었다.

노엘의 세력이라면 겁은 줄지언정 날 완전히 죽이려 하진 않겠지. 그래서 세운 나만의 규칙이 있었으니, 무조건 덤벼드는 녀석들을 조심하자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용감해지다니.’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입구로 들어섰다. 양옆으로 나열된 감옥 탓에 무척 삭막하고 스산했다.

막상 들어오자 빛을 내는 마력석의 가시거리가 생각보다 짧아 궁금한 감옥들의 내부는 가까이 다가가야 보였다.

가까이 붙었던 나는 거대한 무언가가 우글우글 모여 꿈틀거리는 걸 보고는 까무러칠뻔했다.

‘뭐, 뭐지…. 털이 많은데…?’

그냥 애벌레였으면 무시할 수 있었는데, 성인 몸통만 한 하얀 애벌레들이 바닥을 꽉 채웠다.

“흐… 으아아…….”

감옥의 문이 꼭 닫혀 있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도 황급히 눈알을 앞으로 고정하고 나아갔다.

그러면서 다른 감옥엔 뭐가 있나 궁금해서 가끔 또 비춰 보기도 했는데 역시 복슬복슬한 애벌레 괴물들만 보였다. 급작스럽게 냉탕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소름이 쫙 돋으며 추워졌다.

‘더는 들여다보지 말자….’

코너를 돌아 직진하자 점점 감옥의 규모가 커졌다. 끝도 없이 이어진 감옥들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언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바닥엔 종종 질겨 보이는 진녹색의 액체들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닿기만 해도 죽을 것 같아 최대한 피해 다녔다.

‘어디가 나가는 길인지 전혀 모르겠어.’

막막함에 미칠 것 같았지만 그저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있던 지도가 오래간만에 떠올랐지만 저쪽 동에서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그마저도 이쪽 동에 대한 정보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철컥! 끼익.

그때였다. 양옆의 감옥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무슨 센서라도 달린 걸까?

문이 열리며 들려온 무시무시한 소리에 뒤를 돌아본 나는 꿀렁거리며 나오는 거대 애벌레들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몇 마리나 되는지 모르겠다. 쏟아지듯 미끄러져 나온 괴물들은 어림잡아 열 마리도 넘어 보였다.

“너, 너흰… 말 못 하는 괴물이겠지? 노엘 친구면 얼른 말하라고!”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질문이었지만, 녀석들은 예상대로 내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고로 지능이 없는 게 분명했다.

나는 이내 초승달 검을 쥔 손에 더욱 꽉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액션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낮은 자세를 취해 보았다.

무릎과 허리를 살짝 굽혔다. 이대로 바짝 접근해 오는 녀석을 먼저 베어 버릴 작정이었다. 좁은 길목이라 맨 앞에 있는 녀석들부터 기어 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것들이 떼거리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게다가 기어 오는 속도가 정말 빨랐다. 뒤에 있는 녀석들이 앞에 있는 녀석들을 추월하려 펄쩍 뛰어서 넘어오기도 했다.

“으악!”

식겁한 나는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에게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을 그리며 검을 휘둘렀다.

휘이이이익-!

사실 반사적으로 나도 모르게 휘두른 것이지만, 생각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검을 휘두르자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부메랑처럼 앞으로 나간 것이다. 그 검기는 천천히 뻗어 나감과 동시에 점점 커졌다.

어느새 멀리까지 나간 검기는 녀석들을 모조리 통과하고 난 뒤에야 사라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검기에 맞은 괴물들은 갈라지고 터지며 전멸했다.

녀석들의 체액인 초록색 액체가 뽀록뽀록 터져 나와 나는 서둘러 뒷걸음질 쳤다.

“어휴…!”

얼떨떨하면서도 초승달 검의 대단한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네 번 휘두르면 끝이었지만 괴물들을 몰아 사용할 수 있다면 충분하겠다.

가벼워진 발걸음과 함께 가슴이 들떠 두근거렸다. 이런 종류의 즐거움은 여기 와서 처음 느껴 본 듯했다.

철컥! 철컥!

어째선지 내가 지나가는 곳마다 감옥의 문이 무자비하게 열렸다. 하얀 털이 풍성한 몸통들이 또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철컥! 철컥!

최대한 한 번에 많이 해치울 생각이었다.

“하아압!”

훨씬 더 힘차게 휘두른 초승달의 검기가 녀석들의 몸통을 깔끔하게 베어 나갔다. 나는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아 입꼬리가 자꾸만 들썩였다.

‘하. 이거… 정말 물건이네, 물건이야. 무제한이면 좋겠다. 어떡하면 좋아.’

계속해서 같은 방법으로 녀석들을 터뜨리고 다니니 벌써 다 써 버리고 말았다. 이때쯤이면 출구도 찾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었는데 출구는커녕 저 앞의 길은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더욱 광활해졌다.

“흐아악!”

그러다 보니 지금 난 애벌레들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하도 비명을 질러서 목구멍이 아팠다.

철컥! 철컥철컥 철컥철컥!

“문은 왜 자꾸 열리는 거야!”

얼마나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볼 생각도 못 했다. 분명 쌓이고 쌓여서 천장까지 닿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대로 가다간 저 애벌레들에게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이미 열려 있는 감옥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머리 위에 떠 있던 빛의 마력석을 잡아채 그 감옥 안으로 던졌다.

운이 좋았던 걸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가 철창문을 닫아 버렸다. 문을 닫자 저절로 잠겼다.

연둣빛의 마력석은 다시 내 머리 위로 올라와 둥둥 떴다.

나를 따라온 녀석들은 내가 있는 감옥의 삼면을 둘러싸며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어느새 밖이 조금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살았다. 일단 살았어….”

후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잠시 호흡을 골랐다.

‘이제 어쩌지? 여기서 나가긴 글렀는데.’

꿈틀대던 녀석 중 몇몇이 입을 마치 조리개처럼 쩍 벌려 충격을 선사했다. 자글자글한 뾰족 이빨들을 그만 보고 싶어 유일한 벽으로 눈을 돌렸다.

마력석을 또 꺼내 볼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천장의 환풍구가 눈에 띄었다.

‘저건… 어쩌면!’

나는 당장 침대를 끌어와 그 위에 의자까지 올렸다. 그렇게 올라서서 뚜껑을 뽑아내니 안쪽에 정말 환풍구 같은 공간이 길처럼 이어져 있었다.

허리를 숙여야 다닐 수 있는 높이였지만 전에 토드와 기어 다녔던 동굴보단 훨씬 나았다.

간신히 하체를 끌어 올려 진입한 나는 쭉 나아갔다. 만져지는 철제 통로의 냉한 온도에 가끔 놀랐지만, 정신없이 전진했다.

‘또 출구가 기약 없는 길이로구나.’

가다 보니 이곳도 미로처럼 길의 갈래가 여러 방향으로 나뉘었다. 어느새 사거리 같은 곳에 와 있었다.

직진 본능이 강했던 탓인지 계속해서 직진만 하는 중이었다. 또 나타난 사거리를 앞두고 낯익은 무언가가 보였다.

하얀 털이 뽀송뽀송 나 있고 울퉁불퉁 통통한 그것. 그 하나가 스으윽- 스으윽- 배를 끌며 기어 오고 있었다.

‘저, 저게 왜 여기까지 올라와 있는 거야!’

나는 곧장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냅다 달렸다. 나를 발견한 그것은 조리개 같은 입을 쭈아악 벌리며 끈덕지게 쫓아왔다. 무서운 속도는 여전했다.

스으윽- 스으윽-.

달리던 나는 이번엔 삼거리를 맞이했고 나뉜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신중하게 고를 시간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대충 왼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갔는데…….

들어갔는데….

막혔다.

“악!”

완전히 막다른 길이었다. 그리고 날 끈질기게 따라온 녀석이 이 앞의 코너를 돌며 들이닥쳤다.

삼각형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기괴한 춤을 추며 내게 달려드는 중이었다.

스으윽- 스으윽-.

두툼한 몸통이 좌우 위아래로 푸덕푸덕 부딪히며 열정적으로 물결쳤다.

‘세상에….’

마력석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말고 할 틈도 없었다. 당장 저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순간이었다.

머리 위에서 손이 내려와 내 겨드랑이로 들어오더니 상체를 엄청난 힘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발이 뜨더니 그곳에서 벗어났다. 아래에서는 녀석이 그대로 돌진하다 입인지 머리인지를 꽝! 하고 박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끌어 올려진 나는 그제야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살 떨려서 꼼짝을 못 하고 있었다.

죽을 뻔했다는 충격에 사로잡혀 누가 날 살린 건지 정체를 파악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막혔던 숨을 터뜨리고 내쉬는 행위도 벅찼다. 하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았다.

흑장미의 서늘하고도 달콤한 향이 내 곁을 은은하게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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