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얼굴 피부를 꼼꼼히 부착한 아이가 고개를 쓱 들어 올리며 나를 보았다.
“나는 에디라고 해. 누난?”
충격적인 장면에 놀라서 정신이 나가 있던 난 눈을 깜박이다 이내 그에게 주목했다. 누나라고 하는 걸 들으니 리마가 생각나 가슴이 뭉클했는데 잡혀서 고생하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난 리사….”
조금 전까지 내가 본 게 무엇인지 도통 믿기지 않아 얼떨떨했다. 에디가 얼굴에 쓰고 있는 것은 분명 인공 피부였다. 그래서 더욱 창백해 보이는 걸까.
“리사 누나, 우선 이리 와서 앉아.”
에디는 동그란 테이블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나도 에디를 따라 일단은 마주 보고 앉았는데 엉덩이에 가시가 수천 개는 박힌 느낌이었다.
에디는 쥐고 있는 과도로 나무 테이블의 결을 따라 습관처럼 긁어댔다.
그르륵. 그르르륵.
‘왜 하필 날 바라보면서 그러는 거야.’
잔뜩 긴장한 나는 열쇠 목걸이에 한 손을 살며시 올렸다. 여차하면 돌아가 버릴 생각이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깝긴 했다.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가기엔 마력을 주입하는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손을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안정적인 기분이 되는 것 같았으니 그걸로 족했다.
“나랑 숨바꼭질할래?”
“응…?”
싫다. 죽어도 싫다. 숨바꼭질이라면 노엘과 질리도록 했다.
“왜… 싫어?”
에디는 눈썹을 찌푸리며 매서운 눈이 되어선 날 올려다보았다.
지금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냐며 당장이라도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 주고 싶었지만, 아이가 뿜어내는 살기에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수, 숨바꼭질 말고 다른 건 안 될까?”
그르르륵, 콱!
에디는 테이블을 길게 긁던 과도를 확 내리꽂았다. 그와 함께 나는 화들짝 놀라 눈을 깜박였다.
“나랑 숨바꼭질할래. 아니면 내 과일이 될래.”
“과… 과일이라니?”
에디는 테이블에 꽂아 넣었던 과도를 힘차게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제 혀로 과도를 길게 핥았다. 나는 경악해선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간신히 닫았다.
“과일을 깎고 싶어. 과일이 좋아. 하지만 과일이 없어.”
“……?”
설마 지금 나더러 인간 과일이라도 되라는 건…….
“나랑 숨바꼭질할래, 과일이 될래? 얼른 대답하란 말이야!”
쾅쾅쾅!
에디는 답답하다며 양손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저러다 제 손에 든 과도에 다칠까 봐 아찔해져선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위, 위험해! 대답할 테니까. 과도는 좀 내려놓는 게 어떨까?”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니란 건 알지만 말이다. 그래도 에디보단 내가 한참은 더 어른이었다. 게다가 녀석이 피 흘리는 참사를 보고 싶지도 않았다.
“대답해!”
쾅쾅쾅!
재촉하는 요란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좋아! 숨바꼭질해. 하자고.”
일단 인간 과일이 돼서 썰릴 순 없으니까 선택한 것이다. 내가 대답하자 에디도 다시 차분해져선 과도를 테이블에 꽂고는 양손에 턱을 괴었다.
“술래는 내가 할래. 누나니까 양보할 수 있지?”
어떡하지. 너무 얄미운데. 어린애가 저렇게 얄미워도 되는 건가.
가슴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저 날카로운 과도를 보니 다시 스르르 식으며 가라앉는다.
“……그래.”
“내가 누나를 시간 내로 찾으면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해. 반대로 내가 못 찾으면 누나가 원하는 걸 들어줄게.”
“음…. 원하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는 건가?”
이거,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는데.
“응! 대신 허무맹랑한 건 안 되겠지? 내 여자 친구가 되고 싶다든가. 그런 건 안 돼.”
참 나.
“혹시 너 엄청나게 큰 그리마를 본 적 있어? 아니면 거대한 거미라든가…. 내 친구들이 끌려갔는데 어디 있는지 통 알 수 없어서 말이야.”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에디는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 알고 있어! 그 정보를 원하는 거지? 누나가 이기면 알려 줄게.”
정말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 나도 급작스럽게 의욕이 샘솟았다. 이번 게임에서 절대 들키지만 않으면 친구들이 잡혀간 곳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좋아. 당장 해! 아니지, 잠깐. 넌 나한테 뭘 원하는데?”
“난… 음…….”
녀석은 뜸을 들이며 눈알을 굴렸다. 딱히 원하는 것도 없으면서 지금 막 쥐어짜 내는 느낌이 강력하게 들었는데, 허공에 시선을 두던 에디는 이내 떠오른 건지 입을 열었다.
“그 열쇠 목걸이! 그거 나 줘. 아까부터 손에 쥐고 있는 게 아주 소중한 물건 같단 말이야. 난 누군가 소중히 여기는 걸 가지고 싶어.”
“뭐…?”
열쇠 목걸이에 대고 있던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무척 곤란했다.
이게 없으면 난 돌아갈 수 없는데. 어쩌지?
하지만 예상컨대 싫다고 한들 또 징징거릴 게 눈에 선했다. 어차피 협상이란 게 통하지 않는 녀석이었으니까. 내게 선택권은 여전히 없었다.
하는 수 없지. 그동안의 내 숨바꼭질 경력을 되살려 상대해 주마. 꼬마라고 봐주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2층이라면 아무 데나 숨어도 돼. 숨는 시간은 5분 줄게. 그리고 10분 동안 누나를 찾으러 다닐 거야.”
“음, 알았어. 시간은 뭐로 재는 건데?”
“거실에 괘종시계가 있어. 그 시계의 소리는 2층 전체에 울려 퍼지거든. 그걸로 시간을 맞춰 놓을 거야.”
“막 그 소리를 들으면 고막 터지고 그런 건 아니지…?”
그 정도로 소리가 큰 건가 싶어 놀라 물은 거였다. 에디는 내 물음에 웃긴다며 잠시 배를 잡았다. 크게 웃고 싶은데 피부가 또 떨어져 나갈까 봐 간신히 자제하는 모양이었다.
“크흑. 프흐흐.”
웃음을 겨우 참아내다 보니 기이한 웃음소리가 나 괜히 내 다리가 덜덜 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렇게까지 웃을 이야기는 아닌데.
“…….”
“하, 너무 웃겨서 얼굴이 찢어질 뻔했어.”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에디는 피부가 혹시라도 붕 떴을까 봐 자기 뺨을 꾹꾹 누르며 문질렀다. 저러는 모습을 보니 무섭기도 했지만 안쓰러움이 더 크게 들었다.
“그, 그럼. 난 이제 숨으러 가도 될까?”
“기다려. 내가 괘종시계에 갈 때까지. 신호는 괘종시계를 한 번 울릴 테니까. 그때부터 숨는 걸로 해.”
“알았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 에디는 곧장 거실로 달려갔다.
댕-.
괘종시계가 한 번 울렸고, 나는 벌떡 일어나 아까 열어젖히려던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제법 넓은 방을 건너 그다음 문을 또 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뭔지 모를 방이 이어졌다.
워낙 다급해서 주위를 꼼꼼히 둘러볼 정신도 없었다. 문을 열어도 열어도 끝없이 공간이 나왔다. 그러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끝이 있긴 한 건가.
나는 최대한 많은 문을 열고 나아갔다. 전체 공간을 파악할수록 숨기엔 더욱 유리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없어. 이제 곧 5분이 될 거야….’
이제 문을 여는 건 멈추어야 했다. 지금까지 봐 온 방들은 숨을 만한 곳이 없었으므로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떤 공간인지 차분히 살폈다. 개인 서재 같았다.
아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개인이 쓰기엔 쾌적했다. 열 개 정도 되는 커다란 책장이 가운데 기준 좌우로 띄엄띄엄 다섯 개씩 정렬되어 있었다.
댕- 댕- 댕-.
내가 숨는 시간이 끝났다. 에디가 찾으러 올 시간이다. 나는 서둘러 구석진 어느 책장 뒤로 몸을 숨겼다.
그래도 아까 그 테이블 방으로부터 멀리 왔다. 전력 질주를 하다시피 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에디가 그 지나친 방들을 다 탐색하고 오기까진 시간이 꽤 걸리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녀석이 올 때까지 주머니 속 마력석의 능력을 좀 알아보기로 했다. 이 서늘한 고요함 속에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린다는 건 더욱더 고역이었으니 말이다.
주섬주섬 손에 걸리는 걸 꺼내 들어 조심스럽게 마력을 주입했다. 에메랄드색의 마력석 구슬이었다.
마력을 50퍼센트 정도 주입하니 눈앞에 마력석의 정보가 담긴 문구가 떴다.
<귀환의 마력석. 자신이 속했던 곳 중 이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립니다. 단, 빙의된 영혼만 사용이 가능.>
‘헉. 뭐지?’
순간 소리 지를 뻔했다. 이 외에 다른 정보가 뜨진 않는 걸 보니 특별히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와……. 이거 안 가져왔으면 어쩔 뻔했지?’
대박이었다. 꼭 열쇠 목걸이가 아니어도 돌아갈 수 있는 장치를 하나 더 가지게 된 셈이었다.
두근두근.
기분 좋게 뛰는 심장 소리와 함께 기뻐선 두 손으로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틀어막았다.
만약 노엘이 내게 열쇠 목걸이를 주지 않았더라면, 과거 리사가 이걸 보상으로 언급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이 마력석에 대해선 별말 없었던 것이었을까? 아무튼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다. 당장 이 숨바꼭질에서 진다고 해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숨어야지.’
이번 게임에서 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은 사라졌지만, 내가 지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 없으니 반드시 이겨야 했다.
끼익.
마침 에디가 이곳까지 온 모양이다. 나는 여기 있다가 에디가 움직이는 쪽 반대편으로 책장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숨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조용한데 옷자락 사부작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여전히 이곳에도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뭐야……. 어디 있는 거지? 살금살금 걷고 있는 건가?’
책장에 등을 대고 기대 있는 중이었다. 양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에디의 위치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잘못했다간 지나가는 눈과 딱 마주칠 수도 있었다.
‘침착하자…. 침착.’
나는 귀에 들리는 어떤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분명… 내 쪽으로 가까이 온다면 무슨 소리라도 들릴 것이었다. 녀석이 아무리 살금살금 다가온다고 해도 말이다.
……!
그리고 정말, 녀석이 가까워져 오자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들리기 시작했다.
에디는 정말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카펫이 내리눌려 밟히는 소리가 가볍게 나며 점점 가까워졌다.
곧장 내 왼쪽에서 접근해 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려는 걸 겨우 억눌렀다.
‘그럼 나도 슬슬 이동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