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철벅거리며 계속 투입되던 오리발들은 내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족족 멈추어 섰다.
저 군단을 이끌고 2층으로 갈 수는 당연히 없었다. 주머니 속의 마력석들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마력석들의 기능은 일일이 하나하나 꺼내서 마력을 조금 주입해야 알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휴. 안 되겠다. 그럼 주방장! 처리를 부탁할게요. 대신 느려도 좋으니 일이 끝나면 나를 찾아와 줄래요?”
다시 또 움직이려면 주꾸미처럼 작아져야겠지만, 친구들을 구하고 시드 공작을 무찌를 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터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와 합류해야 했다.
“장담은 못 하지만 일단은 그렇다 해 두지.”
말을 마친 주방장은 내 어깨 위에서 머뭇거림 없이 곧장 뛰어내렸다. 폴짝! 앙증맞던 몸체는 점점 커지더니 곧 내 시야를 완벽하게 가렸다.
그가 1층 계단을 꽉 틀어막음과 동시에 내 시야를 벗어난 오리발 녀석들이 철퍼덕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발소리에 경악했지만, 주방장은 아주 거뜬하다는 듯 수많은 다리로 녀석들을 신나게 쳐냈다.
“어서 올라가라고! 난 여기서 오래간만에 몸 좀 풀어야겠어.”
튕겨내는 건지 깔아뭉개 버리는 건지 정확히 보이지 않아 모르겠지만, 어쩐지 흥이 난 목소리였다. 그에 안심한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럼 나중에 봐요!”
주방장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정말 난처할 뻔했다.
‘빨리 녀석들을 구해내고 돌아가자.’
계단은 특이하게도 쭉 이어지다 급속히 빙글빙글 도는 모양으로 돌입했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2층에 다다를 수 있었다.
온통 빨간 카펫으로 도배라도 된 듯 부드러운 질감의 바닥이 마음에 들었는데, 사부작거리는 발소리는 조금 거슬렸다.
계단에서 올라오자마자 바로 출입구와 마주쳤는데, 1층과 달리 문은 저것 하나밖에 없었다.
끼익.
다소 평범해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낯익은 환경이 시야에 잡혔다. 가정집 하나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했다.
벽에 걸린 사진과 그림을 보고,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은 점은 더 이상 붉은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층마다 밝히는 빛의 색이 다른 건가. 아닐 수도 있지만 2층은 부드러운 상아색이었다.
곳곳에 설치된 마력석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러니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지만 분위기만으로 안심하기는 일렀다.
끼익.
거실을 지나 바로 보이는 문을 열었다. 특이하게도 문을 여니 작은 방이 나왔고, 작은 방에도 문은 딱 하나만 있었다.
‘계속해서 방과 방이 이어진 곳일까? 그래도 길이 하나니, 고민할 필요는 없어서 좋네.’
작은 방의 아이보리색 벽지엔 아이가 그린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선으로 찍찍 쉽게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딱 그랬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을까? 이렇게 방 벽지를 채운 건 처음 본다.
그림을 보다 보니 아이의 키가 가늠되었다. 딱 내 허리에서 조금 아래 정도 오려나? 벽지도 그 위로는 깨끗했으니 말이다.
웬만하면 애들 그림은 귀엽게 봐 주곤 했는데, 양쪽으로 쫙 찢어진 빨간 입이 조금 오싹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애써 눈을 돌렸다.
끼익.
작은 방의 문을 열자 또 다른 방이 나왔는데 조금은 더 큰 방이었다.
가운데에 동그란 탁자가 있고 구석에 찻잔으로 장식된 장식장이 있었다. 다양한 찻잎이 담긴 유리병과 주전자가 놓인 공간이었는데, 가볍게 티타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인가 보다.
‘정말 구조가 특이해.’
콰당!
……?!
갑자기 뒤에서 문이 세게 닫혔다. 혹시 몰라 일부러 열어 두었던 터였다.
그런데 문이 닫히다니, 깜짝 놀라선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지나온 방엔 아무도 없었는데.
“노엘? 베… 베키니? 아님 리마?”
겁이 나 말도 안 되는 물음을 남발했다. 은은하다고 생각했던 빛조차 스산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 문을 다시 열어 봐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
집에 가고 싶다. 편안해지고 싶어. 이제 그만 무섭고 싶다.
어느샌가 열쇠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이내 양 볼을 손바닥으로 찰싹 치며 용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 진짜! 난 왜 이렇게 약해 빠진 거야.”
실험실 안에서 구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던 티나의 그렁한 눈동자가 아직도 가슴에 콱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을 떠올린 순간 말도 안 되게 용기가 샘솟았다.
끼익.
당당하게 닫힌 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뭐, 뭐지……?’
주위를 다시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그러니 새롭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는데, 벽장이었다.
벽지와 같은 색이었고, 거기에도 아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보니 아까는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었나 보다.
‘설마……. 나, 저 옷장을 열어 봐야 하는 건가.’
무언가가 여기에 있었다면, 문을 닫은 후 저 옷장으로 숨어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내가 숨은 적은 있었어도 숨은 걸 찾아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찾는 처지인데도 무서운 거냐고….’
확인도 전 난 벌써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냥 가던 길이나 갈까? 굳이 숨은 걸 찾아낼 필요가 있을까.’
누가 좀 어떻게 하라고 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적이 없었는데, 분명 귀신이리라 생각하니 선뜻 행동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일단 옷장 앞에 서는 건 성공했다. 옷장의 손잡이에 손을 쥐는 것까지도 성공!
두근두근두근.
그러나 결국 손을 떼었다. 역시 귀신을 굳이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친구들 찾기가 더 우선이니까!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가던 길이나 쭉쭉 가면 될 것을.’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하며 안심했다. 공포 영화에서도 제일 이해가 안 갔던 게 이런 행동 아니었나 하면서 말이다.
굳이 왜 열어 보나. 그렇게 꼭 귀신을 맞닥뜨린단 말이지.
‘휴, 내가 그런 짓을 벌일 뻔했잖아.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다행이야.’
대단한 깨우침이라도 얻은 듯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쓱 닦았다. 그러고는 작은 방을 도망치듯 달려 나왔다.
이번엔 문도 꼭 닫아 놓았다. 저기 숨은 것이 또 문을 닫으러 나올까 봐.
‘그래도 고맙네. 굳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 줘서….’
이어서 동그란 테이블을 지나 다음 방의 문손잡이를 쥐던 순간이었다.
끼이익.
‘응…?’
문이 이번엔 활짝 열렸다.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차마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하지만 이렇게 무슨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외면하고 있기는 더욱 무서웠다.
아무것도 모르면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게 되는 거니 말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 뒤를 돌아보았다. 부러 아주 힘차게 고개를 꺾으면서.
“흐악……!”
동그란 테이블 너머로 문을 열고 서 있는 인영에 놀란 나머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뻔했다.
작은 방의 주인인 걸까? 금발의 작은 남자아이였다. 내 허리 정도 오는 키에 창백한 안색은 마치 시체 같았다.
그 아이의 오른손엔 날카로운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과일 깎는 과도로 보이는 건 제발 내 착각이길 바랐지만, 아무리 봐도 칼이 틀림없었다.
잠시 둘 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을 침묵 속에서 나와 녀석이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생기 없는 까만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는데, 압도적인 위압감에 온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녀석은 나를 바라보다 제가 가진 과도를 내려다보았다. 이어서 천천히 손을 움직여 과도의 끝이 뒤로 향하게 고쳐 잡았다.
나는 내가 잡은 문손잡이에 시선을 돌렸다. 내가 당장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달려드는 녀석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려 보던 중이었다.
“왜 나를 안 찾아 줬어? 다 찾아 놓고선….”
아이가 무척 실망한 얼굴로 다시 내게 시선을 두었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어쩐지 나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단 용기가 생겼다.
“어…. 그, 그러니까 넌 내가 찾아 주길 바랐던 거구나?”
“숨바꼭질을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할 것 아냐.”
어쩐지 사악한 어둠의 기운이 저 아이에게 몰려드는 듯했다. 생각보다도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어투였다.
“난 너와 숨바꼭질을 시작한 적이 없는걸. 네가 여기 있는지도 몰랐어.”
“내 방으로 들어오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야.”
아……?
“그… 그렇구나. 그래. 몰랐지만 이젠 그렇게 알아 둘게.”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는 아이는 입꼬리를 위로 쭉 당기며 크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의 얼굴 피부가 당겨지더니 갑자기 떨어져 나갔다.
툭.
얼굴 피부가 바닥에 떨어지자 아이의 안면 해골에 다닥다닥 붙은 혈관과 근육이 드러났다.
“아이, 참!”
아이는 또 떨어졌다며 대수롭지 않게 얼굴 피부를 주워 다시 제 얼굴에 가져다 꾹꾹 눌러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