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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98화 (98/145)

98화.

내 입술에 닿은 노엘의 시선이 간지럽다. 이렇게 누군가가 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입술을 맞출 최적의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또 나 혼자 멀리 온 모양이다. 노엘은 그대로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간 품고 있던 의문을 풀고 싶었는데, 막상 얘기하려 하니 그새 다 잊어버렸는지 까마득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두근대는 심장과 하얗게 물든 머리가 실컷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노엘이 한 줄기 빛 같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이후로 이렇게 제대로 대화할 시간이 없었잖아. 우리.”

“……그랬지. 맞아.”

내 정체를 노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 이후 시드가 모두를 데려가 버리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노엘과 오붓하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괜히 열쇠 목걸이 위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노엘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이렇게 둘만 있으니 다른 건 어떻게 돼도 상관없을 것 같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우리 둘만 생각할 수 있어.”

“그런 말 하지 마. 친구들을 구해야지.”

“……나도 같이 잡혀갈 걸 그랬나 봐. 뭔가 내가 저 멀리 뒷전으로 밀려난 기분이야.”

내려가는 그의 눈꼬리가 진심으로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붉은빛이 묘하게 비추니 어쩐지 자꾸 몽롱한 기분이 들어 큰일이다. 분명 이 옷장 바깥에선 비상사태 같은 무서운 분위기였는데.

“노엘…. 근데 날 좋아하게 된 건 대체 언제부터였어?”

“음……. 딱 언제부터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처음엔 그저… 네 안에 뭐가 들었든 상관하지 않고 몸만이라도 영원히 내 곁에 붙여 놓을 생각이었으니까.”

“…….”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쩔 땐 네가 과거 리사의 대체물이라도 되는 듯 행동했던 것 같아. 나는 나를 속이고 너조차 속이려 했어.”

“뭐, 그럴 만도 해.”

그렇게 오래 집착했었으니까. 지독하더라도 그 끝을 보고 나서야 끊어낼 수 있었겠지.

“그런데 말이야. 처음 네가 옷장에서 쓰러져 나와 눈이 딱 마주쳤을 때. 그땐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줄 알았어.”

“갑자기?”

첫인상 몇 초만으로도 호감을 느끼는 데 모자라지 않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때, 네 눈빛이 나를 굉장히 반가워하는 것으로 보였어.”

사실이었다. 나는 그때 무섭기도 했지만, 반갑다고 말하려고 했을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무서운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이 취향의 남자였으니까.

“뭐야…. 근데 왜 날 죽이려 했던 거야? 철퇴에 손을 가져다 댔잖아.”

“네 눈동자가 철퇴에 닿길래… 호기심에 만지려고 할까 봐 경계했던 거였어. 그걸 만지면 넌 소멸해 버리거든.”

환영 노엘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물어본 것뿐이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던 거였는데 흐트러짐 없이 변명하는 모습에 기대가 폭삭 식어 버렸다.

“그럴 거면 진작에 철퇴를 가져오지 말지.”

“그땐 나도 확신이 안 섰으니까…. 혹시 모를 만약에 대비해야 했어.”

“대비…?”

“사실은 무서웠어. 너도 날 싫어할까 봐. 네가 날 끔찍하게 생각할까 봐….”

불안했던 거였구나. 자기를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봐.

“아무튼 살면서 그런 눈빛은 처음 봤어. 솔직히 그때 충격이 꽤 컸던 것 같아. 정말 따듯했는데 더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 지금도 여전하고.”

얘… 알고 보니 나한테 첫눈에 반한 걸까? 아닌가. 내가 김칫국 마시는 건가.

듣다 보니 든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마구 요동쳤다. 그가 이리저리 헤집어 놓기라도 한 듯 흔들렸다. 이러다간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다.

얼굴로 다시 피가 몰려들었다. 이렇게 갇혀 있는데도 혈액 순환이 원활하다 못해 활발했다. 멋쩍어진 나는 그의 자세가 좀 힘겨울 것 같아 괜히 제안했다.

“노엘, 너 지금 팔로 견디고 있잖아. 그냥 나한테 편히 푹 기대도 돼.”

노엘은 나와 그의 가슴 사이로 주먹 하나 들어갈 거리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팔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고 싶지만…. 내 무게에 짓눌려서 네가 힘들게 될 거야. 게다가 바닥은 차갑고 딱딱하잖아. 눌리면 등도 아플 거야.”

“하지만 계속 이렇게 있으면 네가 힘들 텐데…. 아! 그럼 내가 위로 올라갈까? 내가 더 작고 가벼울 테니까.”

노엘의 반쯤 접혀 있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마 수긍하는 눈치였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볼까.”

“그, 그럼 일단 옆으로 누운 다음 내가 위로 갈게!”

“응.”

몇 번 엎치락뒤치락하고 나니 드디어 내가 그의 위에 올라타게 되었다.

노엘은 등이 굽혀지며 상체가 조금은 앉은 형태가 되었지만,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무겁지 않아?”

“응, 괜찮아. 나한테 편히 기대도 좋아.”

“응…!”

그래서 정말 그 말대로 편히 엎드려 기대려 했는데, 그를 내려다보는 걸 인지한 순간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겁도 없이 노엘 위에 올라타 있다니. 게다가 이 몸…… 굉장히 단단하고 탄탄하다. 이렇게 온몸으로 누르고 있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매우 안정적이었다.

갑자기 어색해져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노엘이 먼저 팔을 뻗어 왔다.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살며시 감싸 안아 자기 가슴에 기대게 했다.

포근하고 따듯했다. 정말로 이렇게 둘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노엘이 했던 말대로.

“리사, 그 열쇠 목걸이 말고 다른 방법으로 돌아갈 길은 없는 거야?”

“응…? 어, 어……. 갑자기 왜?”

노엘의 물음으로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되었다. 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직감이 불길하다 외친다.

“그냥. 다른 방법이라도 혹시나 아는 게 있나 해서.”

“그게 왜 궁금한 건데?”

왠지 싸했다. 흥분에 가리어졌던 이성이 돌아오자 이제야 그에게 궁금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긴. 그냥 물어본 거야.”

“노엘, 그런데 말이야.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 왜 그렇게 날 돌려보내려고 한 건지……. 아무리 내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그가 날 돌려보내려 할 리가 없는데 말이다. 가두면 가두었지 절대 보내려 할 녀석이 아닐 텐데.

그의 집착의 대상은 이제 과거 그녀가 아닌 나라는 걸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니 더욱더 이상했다.

“그냥 말 그대로야. 근데 리사, 그러는 너는… 날 좋아하고 사귀고 있으면서도 계속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네?”

노엘을 몰아붙이려다 도리어 내가 당하고 말았다.

그는 베키를 통해 내가 붉은 보석을 쫓던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그동안 해 왔던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 어차피 너도 지금은 내가 돌아가길 바라고 있잖아!”

다소 격정적으로 말했지만, 안겨 있는 바람에 그렇게 목소리가 크게 나오진 않았다.

“날 좋아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겐 약혼 준비까지 성대하게 하라며 시켜 놓고서…….”

결코 흥분해서 따지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정말 애절하고도 슬픔이 절절한 음성.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음성에 대고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날 자꾸 보내려 하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한다니.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현 상황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돌아가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 돌아가려 했냐고 서글퍼하다니.

미지의 세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녀석 자체가 미지의 세계였다.

“그건 미안해. 하지만 그땐 나도 널 속일 수밖에 없었는걸.”

“애들을 전부 구하고 나면 돌아갈 거라고 했지?”

“응! 너희가 시드에게서 벗어나 행복해진 모습을 꼭 보고 싶어.”

“그래……?”

나를 안은 그의 다부진 팔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는 듯했다.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실린 힘. 그러면서도 다정한 그 힘에 나는 편히 기대고 있었다.

“그럼 리사. 그 열쇠 목걸이는 내가 맡아 둘까?”

나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선 꽃밭으로 흩어지던 정신을 긁어모았다.

“응? 왜!”

“잃어버릴 수도 있을까 해서…. 그게 없으면 넌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거잖아.”

아까부터 설렘과 싸늘함이 반복되니 미칠 지경인데, 이번엔 당연히 싸늘하게 심장이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아, 아니! 괜찮아. 내가 가지고 있어도 돼.”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고.”

다행히 고집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철렁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역시 뭔가 이상한데. 대체 이게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니 답답했다.

“이제 우리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어차피 우린 헤어질 텐데…. 이렇게 계속 사귀고 있는 건 의미가 없지 않을까?”

굳이 꺼내려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꾸만 내게 의심이 들게 하는 그가 얄미워서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도 날 보내려 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크게 문제 될 발언은 아니라는 견해였다.

노엘의 품 안에 있는 탓에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지금 내게 헤어지자…. 이런 소리를 하려는 거야?”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나니 조금은 뱉어 버린 말이 후회되었다. 동시에 내 속도 숯처럼 타들어 갔다.

줄곧 노엘과의 이별을 상상하고 생각만 해 봤지. 이렇게 입 밖으로 꺼낸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슴 깊숙이까지 뚫린 듯한 느낌이라니. 이렇게 아파도 되는 건가. 이미 시작된 대화는 멈출 줄 모르고 끝을 향해 달려갔다.

“노엘, 너도 결심하고 말한 거 아니었어? 나한테 돌아가라 했잖아. 그러니 우리 둘 다… 천천히 준비해야지.”

이별을.

웃는 얼굴로 잘 헤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서로 행복을 빌어 줄 수 있도록 말이다.

한동안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힘들겠지만, 우리 둘 다 해내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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