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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96화 (96/145)

96화.

“뭐… 뭔데.”

그렇게 무섭게 달려와 놓고 막상 마주치면 자꾸만 멈추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오리발 너, 거기서 딱 기다려!”

마력석을 꺼내 저것을 어떻게든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마력석을 꺼내려 눈을 내리깐 순간.

철벅 철벅 철벅.

그것이 그사이에 몇 걸음 더 달려오길래 다시 쳐다보았더니 거리가 확 좁혀 들어 당장 세 걸음이면 딱 잡혀 버릴 것 같았다.

마력석이고 뭐고 꺼내기도 전에 죽게 생겼다.

‘뭔가 패턴이라도 있는 건가…?’

자꾸 멈추는 것이 이상했다. 나를 잡을지 말지 망설이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이곳은 길이 막혀 있으니 다시 반대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되돌아가는 김에 실험을 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녀석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천천히 왔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정하자. 천천히… 천천히 하는 거야.’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그렇게 가다 보니 문 없는 출입구 쪽으로 나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고, 녀석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길래 가슴을 쓸어내리려 했을 때였다.

철벅 철벅 철벅 철벅 철벅.

“끄아악!”

무시무시하게 땅을 치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녀석이 또 나를 따라 나와선 멈추어 섰다.

나는 벌렁벌렁해진 심장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가슴을 꽉 부여잡았다. 무서운 건지 놀란 건지도 모르겠다. 둘 다인가?

두근두근 두근두근.

녀석의 피부가 아주 매끈매끈해 보이니 더 소름이 돋았다. 얼굴 없는 귀신이 오리발에 커다란 손까지 달려 있다니. 더는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 않았다.

간신히 심호흡해서 원래의 호흡으로 돌려놓은 나는 녀석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내가 보고 있을 때만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분명 내가 시선을 떼었을 때만 달려왔던 것 같다.

무슨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아니고…….

왠지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했던 추억의 게임이 생각났다. 지금은 술래가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술래는 나인 것 같은데, 술래 하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게임이었던가…?

아무튼… 내가 알아챈 사실이 맞는다면, 절대 저 녀석한테 눈을 떼어선 안 되었다. 잠시만 눈을 떼도 질주해 오니 그것 또한 굉장한 압박감이 들었다.

“미치겠네…. 저걸 떼어낼 방법은 없는 건가?”

관자놀이의 식은땀이 없다고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룩 흘러내렸다.

이렇게 계속 저걸 달고 다녀야 한다고? 집에 가고 싶다.

달리기 싸움에선 월등히 내가 질 게 뻔했다. 저 녀석의 보폭이 내 보폭의 네 배는 되어 보였으니까.

진짜 집에 가 버릴까….

눈물이 시야를 가릴까 봐 울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붙잡혀서 고통당할 베키와 녀석들을 떠올리니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일단 지금은 마력석을 쓸 수도 없는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후…. 해 보자…….”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저 해괴한 생물에게 여전히 시선을 둔 채로.

가능한 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이용해 점점 녀석과 멀어졌다. 그러니 꽤 거리가 벌어졌는데, 그렇다 보니 잘 안 보이게 될 때쯤엔 녀석이 삐끗거리며 조금씩 다가왔다.

일정 거리 이상으로 멀어지면 알아서 좁혀 오는 모양이다.

‘세상에…….’

이 정도 거리라면 공격할 힘이 담긴 마력석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자꾸 눈만 떼면 좁혀 오는 모양새에 곧장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이상한 기척에 주위를 둘러봤는데, 저 녀석이랑 똑같이 생긴 두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양측의 방에서 나를 발견한 것들이 천천히 일어섰다. 분명 아깐 텅 비어 있었는데!

‘신이시여…….’

황당과 당황 그 중간의 어디쯤엔가에서 몸부림치며 머리털이 바짝 곤두섰다. 철렁 내려앉는 심장이 오늘따라 더욱 깊이 곤두박질치는 듯하다.

차분하게 뒷걸음질을 계속 치고 있었지만, 그 후로도 발견하게 된 것들은 가관이었다.

방마다 하나씩 누워 있거나 앉아 있던 오리발 녀석들이 나를 보고 일어나 나왔다. 분명 왔던 길을 되돌아온 것뿐인데, 왜 이렇게 불어나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철벅 철벅 철벅.

계속해서 뒤로 이동하고 있으니, 방에서 내 시야를 벗어난 것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러니 내가 봐야 할 것도 늘어나고 말았다. 벌써 내 앞에서 멈춘 것들이 수십은 되어 보인다. 이렇게나 관심받고 싶진 않은데.

“뭐, 뭐야. 어쩌라는 건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마치 오리발 군단이라도 이끌게 된 것 같았다. 지휘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여차하면 강력한 주방장 찬스를 쓸 수도 있었지만, 어지간히 급하지 않고서야 최대한 아낄 생각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온 건지, 내 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게 집중하며 뒤로 걷던 중이었다.

“리사!”

오른쪽 방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로 노엘이었다. 하지만 그 안을 깊이 들여다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선 여전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가득 찬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이건 뭐 눈알을 파내서 양쪽으로 하나씩 둘 수도 없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대신 나는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며 노엘의 목소리가 들린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완전히 들어갔다기보단 출입구 쪽에 살짝 발을 걸쳤다.

그러니 양쪽을 모두 볼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뇌도 반으로 갈라진 기분이었다.

후…….

노엘이 웬 어린이 옷장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반갑기도 했지만, 왜 노엘이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리사! 도와줄게. 이리로 들어와.”

나는 얇은 벽을 가운데 두고 양측에 적절히 시선을 주며 간신히 입을 뗐다.

“거기 들어가면 안전할까? 더 숨기 좋은 곳이 있지 않겠어?”

하지만 노엘은 어째선지 그 어린이 옷장을 강력히 고집하는 모양이었다.

“이 근처에 숨을 데는 여기뿐인걸.”

그러고 보면 그렇긴 했다. 이쪽 주변엔 가구 하나 없는 곳들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저 어린이 옷장은 원래 저기 있었던 건가? 방 안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게 몹시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내가 왔던 길이니,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되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

“흠…….”

뭐, 하나 정도는 놓쳤을 수도 있긴 했다. 워낙 넓은 곳이었고, 내가 구석구석을 섬세하게 살펴본 건 아니었으니까.

“근데 얘네들이 옷장마저 부수고 쳐들어오려 하면 어떡해?”

“전에도 저 녀석들을 본 적이 있어. 무생물에게는 공격을 가하지 않는 녀석들이야.”

“저, 정말?”

“응. 그러니 저 녀석들이 널 포기할 때까지 여기 같이 숨어서 기다리자.”

그렇게 말하는 노엘의 눈빛이 아주 선했다. 주변은 여전히 붉은빛으로 가득해 음산했지만, 그의 주변만은 따듯한 구원의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문제가 하나 있어. 노엘.”

그래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했다. 나를 향한 노엘의 함정일지도 몰랐다.

“……?”

“나를 강제로 돌려보내려 했잖아. 그 말 취소해. 그전까진 널 믿고 함께 그 안에 있는 건 불가능해.”

나는 팔짱까지 끼고 협상이라도 하는 듯한 자세로 당당하게 말했다.

노엘은 잠시 얼어붙은 듯 멈추어 있더니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내 친구들을 그렇게 구하고 싶어 하다니……. 정말 넌 보면 볼수록 매번 신기하기만 해.”

“이젠 내 친구들이기도 해.”

그리 말하는 순간 마음이 정말 훈훈하게 녹아내렸다.

“고마워. 리사… 내 친구들을 그렇게 받아들여 줘서…….”

“…….”

보통 사람이라면 고맙다고 말할 때 저런 속상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는 옷장 안에 쪼그려 앉아 가늘어진 눈으로 잠시 날 감상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여유롭다.

희귀한 예술 작품이라도 구경하는 듯한 눈빛. 그렇다면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지금 무슨 눈빛을 하고 있을까.

무슨 눈빛이긴! 저 환장하게 만드는 오리발 녀석들에다가 꿍꿍이가 있는 노엘까지 더해져서 뒤집히기 직전인 동태 같은 눈깔일 것이다.

“알았어. 이 안에서 숨죽이는 동안만큼은 강제로 널 보내려 하지 않을게. 네가 싫어하는 짓은 절대 안 해. 무엇보다도 난 너와 화해하고 싶어.”

일단 저 안에 있을 때만큼은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왜 하필 조건이 걸렸나 하는 실망감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나로선 오히려 더 믿을 만한 발언이었다.

정말 날 속이려 했다면 굳이 저런 조건까지 걸 필요는 없었다.

“나도 화해는 하고 싶었어. 그럼 나 지금 들어간다?”

“응! 어서 들어와. 내가 무섭지 않게 꽉 안아 줄게.”

노엘이 나를 향해 단단한 두 팔을 확 열어 보였다. 그러니 꼭 활짝 핀 매혹적인 꽃 같았다.

가만히 있던 주방장이 여전히 숨어선 허망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참 내. 싸운 지 얼마나 됐다고. 아주 애절하다. 애절해.”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저 품에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그러면 정말 꽃향기가 풀풀 날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치유될 것 같은 넓은 품속.

이미 알고 있는 그의 품속의 온화한 느낌이 생경하게 되살아났다.

보아하니, 거리가 짧아 시선을 떼고 달려가도 저 녀석들에게 따라잡히진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마지막으로 냅다 달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그 품으로.

작고 어두운 어린이 옷장 속으로.

***

리사를 뒤쫓던 노엘은 그녀가 막힌 길로 들어서는 걸 보고는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테니까.

대신 그는 가구가 많은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흠……. 이건 너무 커.’

그는 커다란 옷장 안을 살피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가구 판매장에 가구를 고르러 온 손님이라도 된 듯했다.

“이것도 쓸데없이 크군. 쓸 만한 게 없나.”

투덜거리며 하나씩 차례차례 진열된 가구의 후보를 소거해 나가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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