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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85화 (85/145)

85화.

우리는 신속히 노엘의 방으로 향했다.

어둠에 가려 또렷이 보이진 않았지만 괴물들은 한 마리도 없었다.

“방까지 몰려들던 녀석들이 어딜 간 거지…?”

상황을 모르는 나와 토드는 노엘의 좁아지는 미간에 시선을 두었다.

“그렇게까지 몰렸었다고?”

이제야 토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노엘을 따라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은 둘째 치고 당장은 괴물 걱정 없이 방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는 사실에 다행이라 여겼다.

“지금은 차라리 없는 게 좋은 거 아니야? 이대로 방까지 빨리 들어가면 되는 거잖아.”

쿵!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래층에서 진동과 함께 굉음이 발생했다.

지진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 강한 땅울림이었다. 벽과 바닥이 쪼개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게 무슨…?”

“다시 올라오는 건가. 어서 가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던 우리는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문 앞에 도착했을 때쯤 노엘이 크게 소리쳤다.

“알프레드! 문 열어!”

벌컥!

그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알프레드가 육중한 팔로 문을 확 열어젖혔다.

나부터 차례대로 들어가 다시 문을 닫고 보니 예상대로 모두 안에 있었다.

이 방에 이렇게 다 모인 적이 없었는데, 막상 보니 다양한 몸집 때문인지 꽉꽉 들어차 좁아진 느낌이었다.

“리사 언니! 기다렸어요. 역시 노엘이 잘 데려올 줄 알았어요.”

“타란티나….”

넓은 침대는 타란티나 혼자만으로도 꽉 차 있었고, 그 침대 아래 공간에서 데릭의 발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누나! 노엘!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걱정 끼쳐서 미안해. 다들….”

리마는 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괴기스럽게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리 때문인지 잠에서 깬 데릭이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며 한마디 했다.

“리사, 걱정했다.”

문을 닫은 알프레드는 그 앞에 장식장을 놓아 방어를 강화하는 모양이었다.

“언제 오나 했어. 이렇게 보니 다들 멀쩡한 것 같군.”

모두의 시선이 내게 한 번에 꽂히는 순간, 미안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죄인처럼 눈을 피했다.

하지만 베키가 달려와 나를 품어 주자 불편한 마음은 이내 사르르 녹아 버리고 말았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그럼 된 거야.”

웅성웅성.

아침의 차 마시는 시간 때보다도 활기차고 시끌벅적했다.

나는 베키에게 노엘이 이미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며 간략하게 털어놓았다. 많은 궁금증이 인 얼굴이었지만 상황상 나중에 물어보겠다는 그녀였다.

어쨌든 토드도 노엘도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모두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토드는 소파에 몸을 맡기곤 잠자코 있었는데 여전히 내게 시선은 주지 않았다. 무언가 심경이 복잡해 보여서 말을 먼저 걸기도 힘들었다.

“녀석들이 왜 다 내려간 거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노엘은 토드 옆에 가슴을 쭉 펴고 앉았다. 이어서 팔짱을 끼고 고고하게 다리를 꼬는 모습이 아주 침착하고 냉정해 보였다.

벽을 타고 조금 내려온 리마는 평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잘 모르겠어. 한동안 요란하게 방문을 부수려 들던 걸 멈추기에 포기하고 내려간 줄 알았는데, 시차를 두고 또 올라오고 그러더라고.”

“그래? 그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반복되었지?”

곰곰이 듣고 있던 알프레드가 소파 곁으로 다가와 바닥에 털썩 앉았다.

“음… 지금까지 한 네 번은 그랬던 것 같은데…….”

“다시 찾아올 때마다 달라진 점이라든가 그런 건 없었나?”

다들 허공에 시선을 두고 멍한 눈으로 없는 기억을 짜내던 중이었다.

데릭이 오래간만에 입을 열었다. 졸린 기색이 역력해 보였지만 반쯤 감은 눈과 달리 목소리는 또렷했다.

“침대 밑바닥에 있으니 조용해서 잘 들을 수 있었다. 분명 오면 올수록 점점 강도가 강해졌다.”

“강도가 강해졌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

눈썹을 움찔한 노엘이 허리를 굽혀 턱을 괴었다. 아까보다도 안색이 그늘졌다.

“올 때마다 전혀 다른 소리가 하나씩 더해진 듯했다. 발소리, 목소리, 그 외 움직이는 소리가.”

데릭이 말을 마친 뒤로는 한동안 긴 침묵이 이어졌다.

다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여 나도 열심히 그들의 생각을 좇았다.

그들의 생각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점점 더 위협적인 상황이 펼쳐지리란 예감이 들었다.

녀석들이 계속 쳐들어올 것이고, 끊임없이 이 방의 결계를 깨뜨리려 시도하겠지.

그럼 우리는 이대로 여기 갇혀서 무얼 어찌해야 하는지. 결계는 언제까지 버텨 줄지. 당장만 해도 걱정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 결계의 상태를… 너희들도 알고 있긴 해야겠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노엘은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다가갔다. 장식장이 문을 막고 있었지만, 그가 손을 뻗자 문밖의 결계가 안쪽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빛의 투명한 막이 문 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방 전체를 빙 두르고 있었다.

다들 휘둥그레진 눈으로 신기하게 두리번거렸는데, 리마는 결계가 제 몸에 닿나 안 닿나 엉덩이를 들썩이기까지 했다. 결계가 환영처럼 몸을 통과해 버리자 바로 흥미가 팍 식은 듯했지만.

“이 결계가 이렇게 방 안에서도 보인다는 건 그만큼 두껍다는 걸 의미해. 지금은 상태가 아주 좋아. 너희들이 봤을 때도 깨끗해 보이지?”

“응! 무슨 물방울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감탄해 대답했다. 그러다 노엘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흠칫하는 날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괜히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조용히 가라앉혔다.

“이 결계는 큰 충격을 받지 않는 이상 계속 지속돼. 다만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아야 깨질지는 나도 잘 몰라.”

그새 집중력이 무너졌는지 리마는 더듬이를 축 늘어뜨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콰과과광!

그때였다. 커다란 진동과 함께 무언가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묵직하면서도 요란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건물 내부가 뜯기는 듯한 흔들림에 가슴이 요동쳤다. 데굴데굴 굴러오는 소리와 함께 여러 종류의 굉음 또한 심상치 않았다.

“그들이 또 왔나 봐요.”

예상했던 대로 문밖에 도달한 녀석들이 공격을 마구 퍼부었다. 그나마 이렇게 숨을 쉴 수 있는 건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쿠쾅! 쿠쾅. 쿠과과광.

무슨 공격을 하는 건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거대한 몸통으로 부딪쳐 오는 것 같았다. 그들의 공격이 닿을 때마다 결계가 신음하듯 번쩍였다.

“이 결계는 안에서 문을 열면 해제돼. 그러니 절대 우리 쪽에서 먼저 문을 열어선 안 돼.”

당장이라도 모든 걸 파괴할 듯한 진동 앞에서도 노엘은 차분하고 침착했다.

어쩌면 그런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들 몹시 불안해하는 표정이니 말이다. 나조차도 긴장해서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쿠과과과광!

드르륵거리는 소리까지 합세하자 방 밖에서 괴물들이 시끌벅적한 축제라도 여는 듯했다.

타란티나는 다리를 들어 귀를 막고 있었다. 무서운지 벌벌 떠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애초에 괴물이 아니었으니 몸이 변했다고 해서 사람이었던 때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닐 것이었다.

내 시선을 느낀 타란티나는 자연스레 눈을 맞추었고, 나는 그 눈빛을 통해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눈을 피하지 않고 타란티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옆을 겨우 타고 올라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리사 언니…?”

타란티나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만나면 꼭 해 주어야겠다고 다짐도 했었지.

그리고 정말 이렇게 쓰다듬어 주게 되어 기쁘고 마음이 놓였다. 내 손이 좀 더 컸더라면 좋았을 텐데.

“타란티나, 괜찮을 거야.”

“…….”

웬일로 말을 잇지 못하고 얌전해진 타란티나였다. 하지만 나를 제지하지 않는 걸 보니 좋긴 좋은가 보다.

둘이 이러고 있으니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는데 이것도 아주 잠시였다.

콱!

한순간이었지만 아주 강력한 땅울림이 발생했다.

날카롭고 묵직한 소리가 내 바로 옆을 찍어 버리는 듯 크게 울려 소름까지 돋았다. 당장이라도 그 소리에 찍혀 죽을 것만 같았다.

강한 울림이 지나가고 결계가 멀쩡한지 살펴볼 시간도 없었다.

콱!

다시 한번 날아든 짧은 진동에 다들 떠밀리듯 가운데로 뭉쳐 섰다. 나 역시 타란티나와 함께 있다가 뛰어오르듯 방의 가운데로 착지했는데, 진동이 한 차례 울릴 때마다 온몸이 펄쩍 들썩일 정도였다.

콱!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 엄청난 흔들림이 발생했다. 결계가 아니었더라면 별장이 당장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콱!

일정한 간격으로 퍼붓던 공격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불꽃놀이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직. 콱!

찢어지는 듯한 낯선 소음이 맹렬히 고막을 뚫고 파고들었다.

우린 순간,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위치에서 고개를 들어 결계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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