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가만 보니 검은 털북숭이 거미 수십 마리가 같은 유리관 안에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움직임이 빠른 건 아니었지만 거미의 몸집이 워낙 컸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위압감이 상당했다.
거미 하나가 티나의 머리 위로 툭 떨어졌고, 티나의 모자라도 되는 듯 얌전히 그 자리에 멈추어 있었다.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워서 비명을 지를까 봐 내 입을 막아 버렸지만, 역시 티나는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거미를 쓰다듬다니.’
그녀는 거미 하나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로, 가까이 다가온 또 다른 거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아서.’
아마 나였다면 이미 실험당하기도 전에 심장이 멈추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곧 연구원 세 명이 들어와 유리관을 둘러싼 버튼을 조작하기 시작했고, 공포에 질린 티나는 거미들을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
거미들도 그런 티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곁을 지키려는 것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언니.]
화들짝 놀란 나는 티나의 눈과 마주쳤다. 우글거리는 거미들의 복슬복슬한 털과 다리 사이로,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 빛을 냈다.
[어서 도망가세요…. 여긴 위험하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곁에 있어 주고 싶어.”
[언니도 위협받고 있잖아요.]
“토드를 말하는 거야…?”
[뭐든요. 언니가 나처럼 괴롭힘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긴장했던 마음과 달리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과거의 환영이 날 걱정해 주다니. 자신의 상황이 훨씬 더 절망적일 텐데 말이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연구원들이 가장 큰 레버를 당기니,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미들의 다리가 서로 엉키며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엉겨 붙은 몸들이 점점 커지며 커다란 거미의 다리가 되었고, 티나 역시 거미들과 몸이 붙으며 커지고 있었다.
아…….
티나의 고통스러운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그 눈동자에 붙들린 나는 괴로움에 발작할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움츠렸다.
[언니……, 언니는 어서 도망가요.]
그녀의 작았던 입술도 점점 불어났다. 그러면서도 내게 꾸역꾸역 힘겹게 말을 전하고 있었다.
[어서 가요. 언니.]
그녀는 더 이상 눈동자를 깜박이지 못했지만, 작은 줄기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실은… 도와 달라고 하고 싶었어…….]
그 말에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컥하고 말았다. 어느새 입을 틀어막은 손에 뜨거운 액체가 내려와 닿았다.
[구해 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구해 줘… 제발 누가 나 좀… 구해 주세요. 라고…….]
누구의 마음에라도 깊게 닿을 간절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곧 타란티나의 몸체가 완성되었고 연구원들은 성공이라며 좋아했지만, 서로 엉키며 붙었던 조직들이 퍼즐 조각처럼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서부터 눈물이 가득 담긴 눈을 꽉 닫고 말았다.
“타란… 티나…….”
목소리가 잠기고 입술이 떨려 와 발음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구해 주지 못해 미안해.”
비록 내가 저지른 짓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말해 주고 싶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굴의 열감이 식을 줄 모르고 타올랐다. 흘러내린 눈물마저 뜨겁게 달구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붉은 보석의 환영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간신히 눈을 떠 어둠 속을 확인했을 땐, 더는 이곳에서 붉은 보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이제 가야 할 곳은 원래의 목적지겠지. 실험실 아이들의 숙소로 곧장 가야 할 텐데….
아직 토드가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날려 버리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실험실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내게 곧장 다가오는 또렷한 발걸음에 다시 뒤돌아 숨어 버렸다.
‘토드가 돌아온 건가?’
갑자기 급하게 숨다 보니, 약통이 빼곡하게 놓인 작업대 아래로 쭈그려 앉은 상태였다.
들어온 발소리는 망설임 없이 아까 살피던 침대 쪽으로 향했다.
“그새 다른 데로 숨어 버린 건가.”
역시 예상대로 토드였다.
“혹시 여기 아직 있다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마음의 준비…?’
“널 찾아내는 즉시 이 쇠망치를 쓸 거거든. 아프진 않을 거야. 아마도.”
‘뭐야, 아마도라니. 망치에 맞는데 아프지 않을 거란 게 말이 돼?’
이번엔 커튼 안쪽을 살펴보는지 커튼 고리 움직이는 소리가 사납게도 들려왔다.
토드가 커튼 속을 뒤지는 동안 몰래 문 쪽으로 나가려 했는데. 문 열린 실험실 밖에서는 또 다른 이의 발소리가 오고 있었다.
‘이, 이런!’
그 바람에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터벅. 터벅.
저 느긋한 발소리는 분명 노엘이었다.
이제 그의 발걸음 소리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혹시나 괴물일 수도 있었으니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는 없었다.
나는 노엘이란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일어서서 그에게 달려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걸 알아챘는지 토드가 낮게 중얼거렸다.
“노엘한테로 도망갈 생각 하지 마. 거기서 나오는 순간 나는 다 불어 버릴 거야. 그냥 그대로 숨어 있어. 우리가 싸우길 원치 않는다면서.”
토드는 내가 숨은 곳은 정확히 모르지만, 이 방 안에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대로는 여기서 나가 봤자 내게 득 될 게 없었다. 잘못하면 둘한테 동시에 쫓기는 수가 있다. 그러니 이대로 들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아…….
머리를 쥐어뜯을 것처럼 싸매는 중이었다.
“너…,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실험실로 들어온 노엘이 처음 뱉은 말이었다. 역시 다가오는 발소리는 노엘이 맞았다.
“네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하지. 내가 여기 있는 게 이상한가? 애들은 어쩌고 너만 온 거지?”
“애들은 무사해. 안전한 곳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
알게 모르게 토드도 친구들 걱정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그래…….”
노엘이 생각보다 유하게 답하자, 토드도 특별히 크게 뭐라 하진 않는 눈치였다.
그러니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리사… 네가 데려갔어?”
나는 혼자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노엘이 날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 내가 왜? 굳이 위험하게….”
나는 토드의 능청스러운 거짓말에 입을 쩍 벌려 감탄했다. 두 눈알이 머리뼈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와. 진짜 토드…….’
저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한다고?
진짜 때려 주고 싶게 얄밉다. 차라리 얍삽하게 생겼으면 몰라, 하필 천사의 얼굴을 하고선.
제발 노엘이 곧이곧대로 듣지 않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좀… 지금 보기보다 무척 열받았거든.”
툭.
떨어지는 저 소리는 노엘의 철퇴 소리인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보니 대각선으로 노엘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노엘은 정말 까만 철퇴를 쥐고 있었다.
손잡이에서부터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고, 그의 흰 셔츠도 검은 액체로 온통 물들었다. 오면서 괴물과 맞닥뜨린 것이라 여겨졌다.
‘일단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런데 웬일로 철퇴를 든 거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검도 잘만 사용해 왔는데. 설마…, 노엘이 나에 대해서 뭔가 알아내기라도 한 건가?
나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쥔 손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워졌다.
“진짜라니까. 난 리사를 본 적이 없어.”
“그럼 그 망치는 왜 들고 있는 건데.”
“봐. 검은 피가 흐르잖아. 괴물을 좀 팼거든. 근데 넌? 너야말로 그 철퇴는 왜 들고 있어?”
노엘은 철퇴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오다가 이물질을 좀 만났거든.”
나는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들의 긴장감 속에 녹아들었다.
‘진짜 저 철퇴랑 쇠망치 좀 어떻게 없애 버릴 순 없나.’
저것들만 없으면 내가 퇴마당할 위협은 조금 사라질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건 지금 노엘과 같은 공간에 있어서일까.
이젠 그와 같은 곳에서 숨만 쉬어도 좋은가 보다. 그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느새 진정되어선 안정감마저 들었다.
‘이거 봐, 정이 들어도 아주 팍 들어 버렸어.’
“리사, 지금 거기 있다면 당장 나와.”
노엘이 철퇴의 사슬을 움직이며 말했고, 그에 토드도 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아니, 거기서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할 거야.”
나는 점점 험악해지는 둘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움츠러들었다.
‘아니… 거기가 어딘 줄 알고 말하는 건데. 내가 어딨는 줄 알지도 못하면서. 진짜!’
“너, 리사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지금?”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내 위치 추적 마력석이 이곳을 가리키고 있어. 너는 그 마력석 망치로 그녈 위협하고 있던 거겠지.”
자연스럽게 상황을 들킨 토드가 작은 한숨을 터뜨렸다. 특별히 부정하진 않는다.
“그냥 지나가지…?”
“너라면 그냥 지나가겠어?”
여기서 이러다 한바탕 싸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차라리 조무래기 괴물이라도 하나 들어와서 둘을 좀 떼어 놓았으면 좋겠다.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다시 고개를 슬쩍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고개를 내밀자마자 노엘이 먼저 토드에게 달려드는 걸 보고야 말았다.
우당탕!
자세한 장면은 더 이상 내 쪽에서 보이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상황을 짐작만 할 뿐이었다.
‘후……. 하트 목걸이를 잊고 있었어. 그걸로 날 찾아온 거구나.’
나는 노엘이 주었던 위치 추적 겸 하트 목걸이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버리긴 싫었지만, 또 위치를 들키면 곤란했다.
하트 목걸이를 아쉬워하며 바라보던 나는 간신히 눈을 떼어냈고, 이제 조심조심 문 쪽으로 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