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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77화 (77/145)

77화.

“그게 연인 사이란 거 아니겠어?”

“그냥 붉은 보석이고 뭐고 당장 둘 다 없애 버리고 싶다.”

살벌한 말과 달리 목소리는 더없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어딘가 이질적인 어색한 어투.

“……지금 속마음 튀어나온 거 맞지?”

“…….”

토드를 따라 쭉 걷다 보니 어느새 복도로 나오게 되었다. 중앙 계단을 이용해 4층으로 내려가려니 좀 긴장이 되는데.

괴물들이 6층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긴 했지만, 가끔 딴짓하는 괴물들이 다른 층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그러던 중 하필 토드가 쇠망치를 꺼내 드는 걸 보고 말았다.

‘쇠망치는 용도가 다른 거 아니었나? 노엘도 괴물을 처치할 때는 철퇴가 아닌 검을 들었었는데.’

내가 지레 의심하고 한 발짝 떨어지며 박자를 늦추자, 경계하는 기색을 알아차린 토드가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겁먹지 마. 붉은 보석이 거짓이 아니기 전까진 널 믿어.”

“그, 그러면 망치는 왜 꺼내는 건데?”

“내 검은 얇고 짧아서 말이야. 이 튼튼한 게 좀 더 잘 먹힐 것 같거든.”

“……그래.”

그렇다고 해도 토드와 붙어서 가는 건 무척 꺼려졌다. 실수로라도 저 망치에 맞게 된다면,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새에 영혼이 저세상으로 가 버리는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졸아든 가슴이 불안하게 쿵쿵 뛰었다.

다행히 5층 복도엔 괴물이 없었는데, 중앙 계단 근처로 오니 드문드문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멈추어 서서 괴물들의 동태를 파악한 결과. 아직도 6층으로 올라가는 괴물들이 종종 있었고 우리가 내려갈 만하다 싶으면 하나둘씩 올라왔다.

‘이래선 4층으로 언제 내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토드는 둥근 기둥에 딱 붙어 계단 쪽을 주시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숨기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토드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슬슬 지루해질 때쯤이었다.

토드가 오른팔을 크게 들었다 내렸고, 그 다급한 움직임은 계단을 내려갈 수 있다는 신호였다.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나와 토드는 달려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내려가는 내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렇게 무사히 4층에 도달했고 이제 토드를 따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면 돼?”

“이쪽이야.”

나는 일부러 붉은 보석이 있는 장소의 반대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를 아주 멀리멀리 떼어 놓고 올 생각이었다.

성공한다면 그가 한 곳 한 곳 샅샅이 뒤지고 오더라도 시간은 넉넉할 것이다.

그렇게 반대 방향으로 쭉 가자니, 이쪽은 나도 처음이었다. 유독 문들이 붉은색을 띠고 있었는데, 좀 더 위험해 보이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해?”

“아, 거의 끝으로 가야 해.”

“…….”

아직도 한참은 남았나 싶은 정도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앞서가던 토드가 갑자기 멈추어 서선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와 은근슬쩍 점점 거리를 벌리던 나는 깜짝 놀라선 두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보니 훨씬 더 멀어져 있었다.

“토드, 왜 그래…?”

“이 끝엔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없을 텐데?”

“……그래? 와 본 적이 있었어?”

“……응.”

잠시 그와 나의 사이에 서늘한 정적이 흘렀다.

이내 나는 토드의 손에 들린 새까만 쇠망치에 시선을 빼앗겼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그것이 당장 내게 날아올 것 같았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심장 박동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토드가 내 쪽으로 서서히 거리를 좁혀 왔다.

그러면서 쇠망치를 다시 고쳐잡는 것이 보였는데, 그게 꼭 내려쳐야 할 무언가를 보았을 때 하는 행동 같았다.

‘도망… 쳐야 해. 지금이 바로 도망칠 때야!’

위기감을 느낀 나는 결국 그대로 뒤를 돌아 냅다 달려 버렸다.

***

노엘의 방에서 숨죽이던 모두는 괴물들의 행동이 달라졌다는 걸 슬슬 알아챘다.

방어 결계로 공격을 퍼붓다 지쳐 나가떨어진 괴물들은 6층의 다른 곳들을 배회하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집중도 모두 분산된 모양이었다.

“이 근처는 거의 다 지나간 것 같은데…. 멀리서 아직 몇몇이 있는 소리가 들려.”

문에 귀를 바싹 붙인 베키가 말했고, 다들 노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다들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노엘이 곧 나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리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한참 동안을 문만 노려보고 있던 노엘이었다.

베키의 말에 그는 곧장 검을 뽑아 들었다. 검날이 살벌한 기운을 은은하게도 내뿜고 있었다.

그때 리마가 그를 붙잡았다.

“노엘! 그것보단 이게 더 튼튼하고 좋지 않을까? 아니면 둘 다 가져가도 되고…….”

리마가 노엘 앞에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노엘의 철퇴였는데, 그게 무슨 용도인지 리마가 알고 줄 리는 없었다.

“……다녀올게. 모두 내가 돌아올 때까지 반드시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노엘은 군말 없이 철퇴를 받아 손에 쥐었다. 검은 아예 방에 놓고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스르륵. 끼익.

철퇴의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고 닫혔다.

베키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녀도 리사가 어떻게 된 건지 무척 걱정스러웠다.

알프레드는 곁에 다가와선 노엘이 던지고 나간 검을 들어 검집에 넣었다.

“그럼 말하지, 그랬나.”

“보았을 텐데? 누가 봐도 혼자 가겠다는 표정. 언제나 과잉보호가 문제야.”

베키는 리사가 또 토드와 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제 손으로 쇠사슬을 끊고 도망갈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것도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리사는 자신이 도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러니 그녀를 이곳에서 데리고 나간 건 역시 토드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방어 결계가 토드를 막진 못한 건가.’

이곳의 방어 결계는 노엘에게 강렬한 악의를 가진 자에게만 발동한다. 어찌 보면 토드는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하나 증명해 보인 셈이긴 했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

있는 힘껏 복도를 달려 도망치던 나는 근처의 문을 통해 실험실로 들어왔다. 이대로 쭉 달려 봤자 토드와 내 목적지가 가까워질 뿐이었다.

문을 여니 대단히 큰 공간이 나왔는데, 붉은 문의 실험실들은 다 이렇게 넓은 걸까? 아무튼 다행인지 숨을 만한 곳이 꽤 눈에 들어왔다.

실험실은 침대만 다섯 개가 놓여 있는 공간과 약을 제조하는 곳인지 수많은 약통이 진열된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곳곳엔 가림막이 크게 설치되기도 했는데, 검은색 커튼이 쳐진 공간으로 가 보니 상자 모양의 거대한 유리관이 있었다.

놀랍게도 붉은 보석은 그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역시 거짓말이었나 봐? 이렇게 도망을 치고.”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저 붉은 보석을 주워 들 수는 없었다.

뒤이어 들어온 토드의 나긋한 음성에 나는 근처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가 바짝 엎드렸다.

지저분한 먼지는 질색이었지만, 당장 쇠망치에 얻어맞는 것보단 나았다.

‘근데 거짓말 아닌데…. 진짜 아닌데.’

토드는 한 걸음씩 꾹꾹 정성스레 바닥을 지르밟으며 내가 숨은 침대 옆을 지나갔다.

저벅. 저벅.

그의 검정 가죽 구두가 갑작스레 내 얼굴 앞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는 양손으로 황급히 내 입과 코를 막아 새어 나가려는 숨소리를 차단했다. 굳이 막지 않아도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여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폐가 뜨겁게 타들어 가는 느낌만 가득했다.

이윽고 토드의 구두가 내 앞에 멈추더니 제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그저 주위를 둘러보는 모양인지, 이내 내 옆구리 쪽으로 다시 걸어왔다. 그러고는 하필 그대로 내가 숨은 이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살짝 붕 뜬 그의 두 발이 눈에 들어왔다. 토드의 무게에 짓눌린 침대 매트리스가 깊이 가라앉아 그랬다.

‘뭐야…. 왜 하필 많고 많은 침대 중 여기 앉는 건데.’

나는 주르륵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옆 침대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이 침대들의 너머 문이 있다.

토드가 앉아 있는 방향은 반대 방향이었으니, 그에게 들킬 확률도 낮다. 그래서 옆 침대 밑으로 옮겨 가기 위해 조용조용 기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속도는 느리게.

‘천천히 하자. 나는 거북이다. 나는 거북이야.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는 거북이!’

머리부터 밖으로 나오니 허전한 느낌에 몸서리칠 것 같았다.

그렇게 옆 침대 밑으로 머리를 다시 집어넣으려던 순간이었다.

“힘들지 않아?”

……?!

차분한 목소리는 정확히 내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휙 드니, 토드가 무섭게 웃으며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악!”

나는 이번 생의 무릎 관절은 다 사용한다는 기세로 거세게 기어 나갔다.

다음 그리고 그다음 침대로까지 들어가니, 토드가 따라오는 여유로운 발소리가 저벅저벅 울렸다.

그럼 나는 그다음 침대 밑으로 또 넘어갔고, 그러던 중 밖에서 내 짧은 비명 소릴 들었는지 괴물 하나가 들어오고 말았다.

크허어으어. 크허으어.

오자마자 울컥울컥 검은 액체를 토해내는데 덩치가 매우 컸다.

6층에 난입해 방책을 모두 부숴 버렸던 그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은 우뚝 서 있던 토드를 발견하곤 곧바로 돌진했다.

콰과광!

괴물이 번쩍 뛰어올라 엉덩방아를 찧자, 내 옆의 침대 하나가 반으로 쩌억 갈라지며 장난감처럼 찌그러졌다. 토드가 내 근처에 있었다면 나 역시 함께 찌그러졌을 것이었다.

공격을 간신히 피해낸 토드는 괴물을 따돌리려 했는지 방 밖으로 급히 이동했고, 괴물도 울컥거리며 그를 따라 공처럼 굴러갔다.

잠깐 놀란 가슴을 가라앉힌 나는 침대 밑에서 나와 곧장 붉은 보석이 있던 커튼 속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놓여 있는 붉은 보석을 주워 들자, 주위가 하얗게 밝아지며 환영이 스르르 펼쳐졌다.

커튼은 원형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일단 나는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고 몸을 낮추었다. 환영을 보다가 토드가 들어오면 커튼 사이로 어떻게든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저건… 티나잖아?’

커튼 속 유리관 안에 티나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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