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토드를 제외한 모두가 6층에 도달했다.
결국 토드를 내버려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1층의 문이 뚫렸다 하니 곧 그곳에서부터 나온 침입자들이 활보하고 다닐 것이었다.
6층까지 올라올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한꺼번에 올라오진 않겠지.
그러니 조금씩 올라오는 것들을 처리할 계획인 듯한데, 모두 평소 연습했던 대로 6층 계단 주위를 빙 둘러막았다.
곳곳엔 단단한 소재로 만든 방책을 설치하기도 했다.
“베키, 토드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나를 기다린다는 토드의 그 얄궂은 눈빛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거기 있다 시드 일행에 당하든지…. 어디론가 도망가든지 알아서 하겠지….”
무심하게 말하는 베키도 표정은 속일 수 없이 어두웠다.
“실은… 토드가 기다리던 건 바로 나야. 지금 날 기다린다고 그러고 있는 거야.”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겨우 알아들은 베키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아니! 대체 무슨 고집이래? 이렇게 위급하고 중대한 시점에.”
“내 말이. 하지만 나 때문에 그가 다친다면…. 죽기라도 한다면…?”
“리사…. 일단 진정해.”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그건 네 탓이 아니야.”
“그는 네 친구기도 하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토드 생각에 발만 동동 굴러질 뿐이었다.
그가 있는 곳이 4층이라고는 하나, 혼자서 여러 괴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베키! 여기 좀 도와줘!”
베키에게 그를 구할 힘을 모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를 부르는 알프레드의 말에 베키는 급하게 가 버리고 말았다.
토드를 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곳을 지키는 게 우선인 건 사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침입에 대비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손과 발이 자유롭고 편한 건 나 뿐이었다.
토드가 그러고 있는 건 나 때문인데. 그럼 내가 가서 그를 데리고 와야 했다. 그게 옳았다.
‘그저 베키한테 도움을 요청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
[잘 생각했어. 토드를 버리면 안 돼. 그가 무사할 수 있게 도와줘.]
그래도 한 번 더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지금 나랑 대화할 시간은 없을 텐데?]
‘아 진짜! 미치겠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런 나를 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위험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렇게 금세 4층으로 내려왔고 여전히 그 자리엔 토드가 있었다.
“토드!”
땅만 바라보던 토드가 내 목소리에 고개를 훅 들어 올렸다.
나는 그에게 바짝 다가가 다급히 팔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근육으로 들어찬 단단한 팔은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올라가자. 응? 여기 있으면 안 돼. 곧 녀석들이 올라올 거야.”
“너…. 내가 기다린다고 해서 온 거야? 그것도 이렇게 혼자……?”
그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자기 팔을 붙든 내 손을 풀어 자기 손안에 꽉 붙들었다.
정신 차리고 보았을 땐 이미 그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보면 알잖아. 이렇게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고!”
“그렇구나…. 내가 위험해서….”
상당히 의아하다는 눈빛.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
어쩐지 싸늘한 공기가 감돌더니 바로 아래층에서 무언가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더욱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토드, 빨리! 어서 가자!”
“그러게…. 진작 왔으면 좋았잖아.”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저들 소리 못 들었어? 이제 이 위로 올라올 거란 말이야.”
갑자기 토드가 내 손을 꼭 잡더니 밝게 웃었다.
“그래! 어서 도망가자.”
그의 미소에 안심할 새도 없이 계단 아래에서 기괴한 목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그그극… 그극. 크그그극.
붉은 피부 괴물의 목이 하나, 둘, 셋…… 보이더니, 앞선 녀석들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악.”
토드는 곧장 나를 잡아당겼고, 이후부터 나는 힘에 휩쓸려 속절없이 그에게 끌려갔다.
“토, 토드! 어디 가는 거야!”
우린 계단을 올라 6층에 있는 모두와 합류했어야 했다.
토드도 그걸 모르고 있진 않을 텐데. 어째서 지금 4층 복도를 내달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괴물들은 우릴 착실하게 쫓아오고 있었다.
이젠 토드가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길 바라야 했다.
끼익.
육중한 무게의 문을 통과해 들어오자마자 토드가 빠르게 잠가 버렸다.
문밖에서 곧장 몸통을 부딪쳐 오는 게 느껴졌지만, 아주 두꺼운 금속 문이라 쉽게 뚫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계속해서 몸통을 박아 대는 소리를 들은 괴물들이 점점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단단한 문이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문을 한 번 파괴하고 들어온 녀석들이었으니까.
“토드…?”
나는 헉헉대면서 그에게 대체 무슨 생각이냐는 표정을 전달했다.
“흠…. 여긴 뭐 하는 데지?”
그러다 턱을 매만지며 두리번거리는 그를 보곤 소름이 오스스 돋아나고 말았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그저 우연히 들어온 것뿐이었다.
“…….”
나는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억눌렀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냐며 쏘아보고 있는데, 그가 구석으로 들어가더니 내게 손짓했다.
“이리 와 봐. 여기로 가면 뭐가 나오려나? 뭐 알고 있는 거 없어?”
튼튼한 문만큼이나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방이었는데, 방 안쪽에 허름해 보이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알 리 없잖아.”
“그래…? 다들 문을 지킬 때 너는 이 별장을 탐험하고 다녔잖아. 그래서 다 알고 있을 줄 알았지.”
악의 없는 표정이었지만, 어쩐지 가시가 달린 것만 같았다.
아니면 그저 나 혼자 찔려서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그래도 묘하게 드는 이 불쾌한 감정은 그가 의도한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이곳은 곧 뚫릴 거야. 그럼 우린 여기로 피할 수밖에 없겠네. 어차피 가 보면 알게 되지 않겠어?”
나는 그가 만들어낸 감정에 사로잡히기보단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했다.
노엘과 친구들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사라진 나를 알아채고도 남을 시간이었으니.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토드와 무사히 함께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허름한 문의 문고리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끼이익.
또 다른 방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모든 걸 빨아들일 것 같은 블랙홀을 마주한 듯했다.
평범하게 생긴 사각형의 문과 달리 너머에서 나타난 것은 좁은 원형의 통로로 그 안에선 극심한 한기가 흘러나왔고, 억지로 파낸 건지 거칠고 조악했다.
성인인 사람 하나가 겨우 엎드려 들어가면 기어갈 수는 있겠는데, 꼬마 노엘의 방에 있던 비밀 통로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아무것도 안 보여……. 꽤 깊은 것 같군.”
그 검은 구멍을 들여다보던 토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통로 벽을 만져 보고는 묻어 나오는 먼지를 불쾌하다며 손으로 탁탁 털어냈다.
절대로 자기는 이런 곳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둥!
그때 방의 문 가운데가 움푹 솟으며 구겨지듯 기울었다.
나와 토드는 그 광경을 보며 조용히 침을 삼켰다.
무언가. 더 큰 무언가가.
이 방의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둥!
그 무언가의 주먹 크기가 가늠되었다.
저 주먹에 맞는다면 나는 곧장 죽을 것이 분명하다. 토드도 예외는 아니겠지.
둥!
이제 한 번만 더 치면 저 구겨진 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저 문 바로 뒤에 있다 떨어져 나온 문과 함께 처박혀 즉사하는 그림이 생생히 그려졌다.
나는 당장 동그란 입구로 올라 기어들어 갔다.
워낙 비좁아서 어느 정도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통로는 무척이나 습했고, 곰팡냄새 같은 것이 콧구멍을 자극했다.
“리사….”
통로로 막 들어온 나는 뒤로 목을 꺾을 공간조차 없어서 그저 앞을 보고 말해야 했다.
“안 올 거야? 거기서 가만히 있다가 죽을 거냐고!”
급박한 마음에 그를 재촉했다.
물론 조금은 화난 탓도 있었다.
그가 이상한 고집을 부려 나까지 위험에 처했고, 노엘과 친구들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말았다는 것.
그 사실은 나를 필사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도 되었다.
‘일단 가 보자고.’
나는 토드가 뒤로 들어오도록 어두컴컴한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그가 마지못해 쫓아 들어오는 것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느껴졌다.
이윽고 들어온 그가 뒷발질로 문을 닫았을 땐, 마지막 둥! 소리와 함께 쇠문이 터졌다.
나는 괴물들이 이 작은 동굴을 찾을 가능성에 대비해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기었다.
‘처음도 아니잖아. 이렇게 비밀스러운 통로를 기어가는 일은.’
물론 전보다도 훨씬 좁은 통로였고, 바닥을 짚는 손바닥은 거친 질감에 쓸려 쓰라리고 아팠다.
무릎은 그나마 치마가 보호해 주는 듯했으나 울퉁불퉁한 감각이 점점 선명해지며 찔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서러워져선 금세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무너져 내림으로 내 행동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그저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눈물이 눈 앞을 가린다 한들 보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마음 같아선 대성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리사.”
뒤에서 토드가 나를 불렀다. 다급하지도 않은지 차분한 음성이었다.
“왜.”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떨려 당황스러웠다.
“……울어?”
“…….”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무시해 버렸다.
내가 우는지 안 우는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 정녕 무엇이 중한지를 모르고 있는 걸까.
이런 상황을 만든 그가 너무 미웠다.
‘진짜 한 대 때려 주고 싶다. 아니 한 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