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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61화 (61/145)

61화.

역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밤새 노엘 얼굴이나 감상할까.’

……!

그래서 좀 더 보다 자려고 했는데, 보석 같은 눈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방금 막 깨어났다고 하기엔 눈동자가 또렷했다. 이미 깨어 있었다면 모를까.

그가 눈을 부릅뜨더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붉은 눈빛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타올랐다.

“노, 노엘… 깨어 있었어?”

숨 막힐 정도로 내게 박혀 오는 시선에 간신히 말을 건넸다.

“정말이야?”

“정말이냐니? 뭐가?”

“내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어 달라는 소릴 들었던 녀석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에게 저 한마디가 크게 와닿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듣고 있던 거야?”

“응…. 사실 깨어 있었어. 네가 악몽을 꾸는 거 같아서….”

그 끔찍한 꿈속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게 노엘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그 순간 그렇게 저절로 깨어날 리가 없었다.

“고마워. 덕분에 깨어날 수 있었어. 정말 무서운 꿈이었거든.”

“정말… 내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트라우마라도 겪는 사람처럼 그는 조심스럽고도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러면 나는 더 확실하게 말해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휩싸이고 만다.

“그냥 다행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야. 네가 살아 있는 게!”

“…….”

그는 한동안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가만히 기대어 내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라도 듣는 건지. 굳이 입을 열어 이 평온한 침묵을 깨고 싶지 않았다.

곱게 감은 까만 속눈썹이 곧 촉촉해졌고, 나는 그의 작게 떨리는 등을 어루만졌다.

***

언제나처럼 늦은 아침.

평소처럼 문을 열고 나가니 향긋한 홍차의 향기가 쏟아지며 평화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모두 여느 때처럼 내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풍경에 갑자기 어제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고 말았다.

분명 그 끔찍한 일이 있기 전에도 이렇게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자 더는 입술이 열리지 않았고 무언가를 하기가 두려워졌다.

“리사. 이리 와. 거기서 언제까지 그러고 있으려고?”

노엘이 자신의 비워 둔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어제는 결국 서로를 안은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덕분에 그의 체취가 내게 묻어나 지금도 맡을 수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웃어도 어딘가 께름칙한 느낌을 주었는데, 지금은 그늘 없이 마냥 화사했다.

나는 악몽으로 보았던 잔인한 이벤트가 진짜로 일어날까 무서워, 불안한 마음을 겨우 붙잡았다.

“누나, 얼굴이 좋지 않네. 잠을 못 잔 사람 같아. 노엘이 괴롭히기라도 한 거야?”

겨우 노엘 옆에 앉자 리마가 단둘이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노엘의 무언가를 보기라도 했는지 흠칫해선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리마, 너는 오후에 나와 단둘이 면담을 좀 하는 게 좋겠어.”

아니나 다를까 노엘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리마의 더듬이가 30개의 다리와 함께 바닥을 향해 축 처지니, 그의 옆을 지키던 타란티나가 입을 열었다.

“저를 봐서라도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리마를 혼내지 말아 주세요.”

노엘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또 무슨 조합인가 귀찮아하는 모양이었다.

“타란티나. 넌 언제부터 알았다고 리마 편을 드는 거야.”

“우린 사랑하는 사이니까요.”

타란티나의 단호한 발언에 리마는 화들짝 놀라 더듬이를 치켜들었다.

“우,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적 없어. 나는!”

리마는 또박또박 말하면서도 타란티나가 무서운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그게 너무 귀여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런 적이 없어요…?”

저러다 타란티나가 리마한테도 윽박지르는 건 아닌지 순간 나도 겁이 났지만.

“어… 이, 있었나 보다. 있었나 봐. 응….”

공포에 질린 리마가 고분고분 응하자, 그녀가 버럭 상태로 전환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리마가 보게 된다면…, 아마 울음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또 웃음이 나왔다.

‘리마야…. 부디 잘 살아남기를 바라….’

“그러고 보니 토드는 오늘 빠지는 건가? 영 보이질 않네.”

토드를 찾은 건 오늘도 어깨 근육이 빵빵한 알프레드였다.

“도움 안 되는 녀석은 빼고 간다.”

홍차 향을 들이켜던 데릭의 말에, 노엘도 굳이 한 번 더 언급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노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해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문제는 인원이 하나 빠진 만큼 내 호위 기사를 충당하기엔 부담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내 쪽으로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기, 노엘…. 오늘은 내 호위 기사 같은 건 없어도 돼.”

“그건 안 돼.”

그의 칼같은 대답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문이 우선이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게 너보다 우선인 건 없어. 마음 같아선…….”

으악!

나는 손바닥으로 노엘의 입을 황급히 막아 버렸다.

누가 들었을까 싶어 괜히 어깨를 움츠렸다.

적어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그래도! 짐이 되긴 싫단 말이야.”

노엘의 눈빛이 돌연 서늘하게 바뀌었다.

“짐이 된다니….”

“어, 어…?”

“이런 내 마음이 불편해?”

생각 이상으로 진지한 반응과 직면하고 말았다.

“아니….”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우리 사이가 멀게 느껴져.”

그의 속상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이 녀석들과 나를 분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언젠가 떠날 것이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생각이 내 행동에 묻어 나오고 말았다.

“리사, 너라면 나한테 해악을 끼쳐도 돼. 그러니 부담스러워하지 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주춤하는 사이 눈치 빠른 베키가 나를 구해 주었다.

“나라도 부담스럽겠어. 그렇게 매섭게 노려보면 말이야. 안 그래도 리사는 새가슴이라고.”

그제야 노엘도 인상을 펴려 노력했지만, 사실 그리 무서운 표정도 아니었다.

“그렇게… 무서웠어?”

그는 내 기분을 세심히 살폈고,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미안…. 무섭게 만들고 말았네.”

베키 덕분에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다. 위기라고 할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한테 해악을 끼쳐도 된다니……. 살다 살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노엘의 포용력은 대체 어디까지가 한계인 걸까. 그 끝이 있긴 한 건가. 궁금했다.

***

어쩐지 꿈도 뒤숭숭한 것이, 오늘은 붉은 보석을 찾는 대신 노엘 일행과 함께 문으로 가는 걸 택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노엘, 데릭과 2층으로 가는 길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중 4층 계단 근처 벽에 기대어 서 있는 토드와 마주쳤다.

‘설마… 어제부터 날 계속 기다린 건 아니겠지?’

토드는 꽤 지친 모습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노엘은 토드를 보곤 놀란 기색도 없이 미간을 좁혔다.

“너, 뭐 하자는 거냐.”

토드는 노엘 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길만으로 정말 내 얼굴에 구멍이라도 날 것 같아 소름이 다 돋아났다.

“미안, 오늘은 같이 못 갈 거 같아. 누굴 좀 기다리고 있거든.”

고개를 비스듬히 들며 여전히 어두운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였다.

노엘이 그의 노골적인 시선을 몰라볼 리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누굴 기다리는 줄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나를 채근하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그의 옆에 이렇게 딱 붙어 있는 한은.

‘그런데 그 설마가 맞을 줄이야…. 진짜 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니…….’

정신이 가출할 것만 같았다.

이를 어쩐다. 이대로 그냥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럼 알아서 지쳐 포기할까?

그런데 이미 하루를 꼬박 기다렸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선 토드에겐 말도 걸 수 없는 상태다. 노엘이 바로 옆에 있으니 말이다.

“누굴 그리 기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안 올 것 같은데…. 적당히 해.”

노엘은 가볍게 무시하며 말을 건네곤 내 손을 꽉 쥐었다.

토드는 그 손과 내 얼굴을 보는 걸 반복할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 그를 지나쳐 내려온 게 전부였다.

그렇게 2층 문에 도달했고, 나는 노엘과 데릭보다는 좀 더 뒤로 떨어져서 지켜보던 중이었다.

2층의 문은 별다른 훼손 없이 그대로였는데, 잠시 뒤 어딘가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쿵- 콰쾅!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이 잠시 흔들렸다.

크게 울린 소리는 2층에서 난 건 아니었고 다른 층이 발원지였다.

동시에 노엘 옆으로 커다란 입술이 생성되더니 불쑥 튀어나왔는데 노엘의 얼굴보다도 조금 더 컸다. 입술의 괴상한 등장에 놀랄 틈도 없이, 자글자글한 주름의 앞뒤 뚫린 입술이 벌어지며 우리에게 말을 했다.

“긴급! 긴급! 1층이에요! 1층이 뚫렸어요! 1층 뚫렸어요!”

혀와 치아가 없는 기괴한 형상과는 달리 놀랍게도 1층에 있던 타란티나의 목소리였다.

“원거리 소통의 힘을 가진 마력석이야.”

어느샌가 빠르게 다가온 노엘이 괜찮다는 표정으로 내 등을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아마 이런 식으로 소통하자고 약속이라도 한 모양이다. 할 말을 전한 거대 입술은 검게 변하더니 즉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쯤 되니 마력석이 탐나는데 아직 아는 게 별로 없어 호기심만 더욱 자극될 뿐이었다.

타란티나의 급박한 경고를 들은 우리는 일제히 계단 쪽으로 달렸다.

얼마 안 가 1층에서 올라온 타란티나와 리마를 마주쳤다.

“당장 올라가야 해! 문이 뚫린 수준이 아니야. 아주 그냥 터졌어!”

리마가 다급히 소리쳤다.

타란티나조차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올라가자.”

노엘의 지시로 우린 3층으로 올랐고, 3층에 있던 베키와 알프레드도 합류했다.

그렇게 4층으로 올라가니 여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토드가 보였다.

“6층으로 대피할 거야. 오려면 오고 말라면 말아.”

함께 계단을 오르던 노엘이 토드에게 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토드는 그 말을 듣고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빤히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먼저들 올라가.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거든.”

그를 지나쳐 올라가는 길이었다. 어쩐지 신경 쓰여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는데.

‘너를.’

이라는 입 모양으로 눈을 마주친 토드가 씩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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