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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55화 (55/145)

55화.

타란티나의 시선을 느낀 리마는 기겁해선 발작하듯 몸부림쳤다.

“우, 우리가?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런 적 없어! 누가 나 좀 살려 줘!”

리마의 모습이 가여워서 정말 구해 주고 싶었지만, 타란티나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나 나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더욱 멀리 떨어져 있던 참이었다.

“내가 좋아해요. 그러니 사귀는 거예요.”

“그런 게 어딨어! 나는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싫어! 싫다고!”

타란티나는 리마를 정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괴팍해지면 또 무서워지겠지. 무엇이 본성일지는 잘 모르겠다.

쪽!

타란티나가 리마의 볼에 침을 한가득 묻혔다.

“좋아해요. 리마. 이제 내 거예요.”

리마는 기절하기 직전인 듯했는데, 혼이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볼이 쏙 들어갔다.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급기야 눈물까지 주르륵 흘리자 조용히 있던 노엘이 입을 열었다.

“타란티나, 리마는 이만 놓아줘. 오늘도 일하러 가야 하거든.”

“그럼 저도 거들면 안 될까요? 리마랑 같이 일할래요.”

리마는 노엘을 간절히 올려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된다고 말해 달라는 신호였다.

“좋아, 대신 일할 때 연애는 금지야.”

노엘의 말에 다시 땅으로 꺼져 버릴 듯, 리마는 더듬이와 함께 몸을 축 늘어뜨렸다.

“신나요. 신나.”

이전에 타란티나 때문에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나는 왠지 억울해져선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나 많은 괴물이 노엘의 편이었다.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도망쳤었는데…….

대체 노엘의 손이 어디까지 뻗쳐 있는 건지.

베키는 놀라운 표정 하나 없는 걸 보니, 다 알고 있는 모양이다.

‘뭐야. 나만 몰랐던 거야?’

저절로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노엘을 은근히 노려봤지만, 그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복도에서 이쪽으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또렷한 발걸음이 여유롭고도 묵직했다.

다들 일제히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주인공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토드였다.

설마 토드가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어제 둘이 유혈 사태 없이 헤어진 게 맞긴 하는가 보다.

“내가 불렀어.”

노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는 허공에 시선을 놓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홍차를 들이켰다.

그렇게 싫어하더니 도대체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둘 관계가 회복되기라도 한 걸까?

“어서 와요. 토드.”

베키가 그를 맞이했고, 신속히 자리를 만들어 앉혔다.

베키 역시 행동은 태연해 보였지만,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인가 본데.

“베키, 리사. 좀 늦었지만 좋은 아침이야.”

토드는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오늘도 성스러운 느낌이 충만하다.

“토드…….”

털썩.

토드를 보자마자, 타란티나는 리마를 떨구었다. 그녀는 다리 한 쌍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의 모습이었다.

풀려난 리마는 순식간에 도망쳐 벽에 붙었다.

자기가 좋다 할 땐 언제고, 토드를 보고 침 흘리는 타란티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괴물 집합소가 된 티타임 현장을 훑으며 이마를 짚었다.

거대 생명체 여럿이 함께 있으니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옹기종기 모이는 게 가능하다니…….

노엘이 문을 지킬 인원을 보충한다던 게 실현된 건지.

마침 그가 일어서서 헛기침을 몇 번 하니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이제부터 할 일이 많으니, 모두 잘 부탁하고. 각자 배치될 곳을 막 정한 참이야.”

인원이 많아지니 나조차도 눈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알프레드. 오늘은 네가 리사와 동행하도록 해.”

……?

뭣이라?

나… 오늘 알프레드랑 같이 다니게 된 거야?

윽,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거 같은데……. 어색할 거 같기도 하고…….

“우워!”

알프레드가 나를 보며 굵직한 미소를 보냈다. 아주 듬직한 표정인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으로라도 화답했다.

“토드는 나랑 같이 가.”

노엘은 웬일인지 토드를 곁에 두려는 모양이다.

이번 기회에 둘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면 좋겠는데.

노엘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 토드를 부른 거겠지? 어쨌든 잘된 것 같다.

***

회의를 마치고, 나와 노엘은 일단 방으로 돌아왔다.

노엘은 조금 쉬었다 나간다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이래저래 신경 쓸 것이 많아진 모양인지 조금 지쳐 보였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대체 얼마나 더 있는 거야? 네가 아는 괴물… 아니, 친구들.”

올 게 왔다는 듯 노엘이 내게서 등을 돌리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어… 없어. 이제…….”

“정말이야? 설마 그 정원사도 같은 편은 아니겠지.”

순간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노엘이 다시 내 쪽으로 펄쩍 돌아누웠다.

“정원사는 절대 아니야. 그건 여전히 위험해.”

잘못된 정보로 인해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는 걸, 노엘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 주방장은? 보진 못했지만, 분명 주방에 무언가 있었어.”

“아… 주방장은… 괜찮아…….”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주방에서 그렇게 열심히 기어 다녔구나…….

아아.

나는 목덜미를 짚으며 고개를 천천히 뒤로 넘겼다.

그가 숨기는 게 더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내가 숨기는 일도 있었으니, 차마 나쁘게 몰아갈 수도 없었다.

이렇게 사람이 관대해지나 보다.

뭐. 사정이 있었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그는 조금씩 꼼지락거리더니 내 무릎 위에 누웠다.

“나 버리면 안 돼.”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버리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토드가 절대 너한테 접근하지 못하게 할 거야.”

결국 그런 의미였던 건가. 토드를 자신의 옆에 두려 한 것이.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듯 노엘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러니 조금은 기운이 빠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혹시 아쉬워? 토드와 더 이야기하고 싶으면 말해 줘. 괜찮으니까.”

그가 내 표정 변화를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다른 의미로 아쉬워했던 나는 그 모습에 눈을 크게 키웠다.

“아, 아쉽기는! 더 할 얘기도 없어.”

어쩐지 소름이 돋아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네.”

미소 짓는 노엘의 얼굴이 오늘따라 부쩍 무섭게 느껴졌다.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보니, 토드 때문에 날이 서 있는 게 분명했다.

***

방을 나오니 알프레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음…….”

어색해서 뭐라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주춤거렸는데.

알프레드가 가슴을 퉁퉁 치며 콧바람을 세차게 뿜어냈다.

“오늘은 나만 믿으라고! 우궈어!”

“……그, 그래. 알프레드. 나도 잘 부탁해.”

저 괴상한 소리만 빼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녀석이었다.

거기다 그의 과거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되었는데.

노엘을 구해 주려다 실험실로 끌려가기까지 했으니…. 그러니 사람이. 아니, 괴물이 달라 보일 수밖에.

그렇게 나와 알프레드는 4층으로 가는 중이었다.

“알프레드. 근데 전에 막 뛰어 들어오고 그랬었잖아. 내가 노엘이랑 데이트할 때…. 그땐 왜 그런 거야?”

나는 일단 가장 최근의 일부터 꼬치꼬치 캐물을 작정이었다.

마침 기회도 찾아왔겠다. 노엘의 보이지 않는 모습을 낱낱이 파헤쳐 볼 생각이었는데.

“둘의 데이트를 좀 더 응원해 주고 싶었달까? 하하. 결국 노엘한테 혼날 뻔했지만 말이야.”

최근 일은 들어 보니 노엘이 시켰다거나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 훨씬 이전에 말이야. 날 유리장에 가두었을 때. 그때도 스스로 그런 거야?”

“아아! 그랬지. 맞아. 네가 위험할까 봐 보호해 주려고 거기에 넣었던 거야.”

덕분에 갇혀서 베키한테 괴롭힘당한 게 떠올랐지만, 가까스로 분을 삭였다.

그때도 노엘이 사주를 한 건 아닌가 본데.

“그러면 그 이전에 노엘을 가둔 건? 그건 갑자기 왜 그런 거였어?”

“…….”

두꺼운 입술을 꾹 닫은 알프레드가 침을 삼키며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그 힐끔거림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반응을 보니, 이번엔 뭔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응? 왜 말이 없어?”

“……이건 비밀인데. 지켜 줄 수 있겠어? 절대 노엘한테 말하면 안 돼.”

어느새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덩치는 커다래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뭔가 친근하기도 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물론이야. 절대 말하지 않을게!”

“사실 그때 널 몰라보고 공격하려 했던 건 맞아. 근데 널 밀치고 노엘이 바로 속삭이더라고.”

“…뭐라고 속삭였는데?”

“잠깐 연기 좀 해 달라고…. 자길 가두어 버리라며……. 그래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아하?

이제야 궁금증이 모두 풀렸다. 그래야 말이 되었다.

“어쩐지…… 대체 왜 그랬대. 정말! 그럼 그때 내가 유리장을 안 열어 줬어도 나올 수 있었던 거였네.”

정말이지 엉큼한 남자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내게 동정표라도 사려고 했던 건가.

“다 너와 친해지려고 그런 거지. 지금도 봐 봐. 너만 보면 눈빛이 확 달라지잖아.”

그 말을 들으니, 괘씸해야 하는데…, 역시 노엘이 밉지 않았다.

완전히 속아서 비명 지르고 다녔던 내가 우스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미 이 몸과는 친해져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가? 굳이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 같은데. 그러면서도 그는 날 이미 아는 사람처럼 대했다.

그저 나한테 장난치느라 바빴던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지금 당장은 알 방법이 없었다.

생각에 잡혀 있다 뿌듯해서 흥분한 알프레드를 보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노엘은 좋겠다. 알프레드같이 도와주는 좋은 친구가 많아서.”

묘하게 주종 관계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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