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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52화 (52/145)

52화.

“뭐야. 난 또. 그럼 어서 타!”

단번에 리마의 더듬이가 기쁘게 휘었다. 사백안이 되려던 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에 혼자 조용히 안심했다.

“어… 음… 그런데 말이야. 누나는 요새 운동량이 줄어서 많이 걸어야 해.”

어떻게든 내 발로 걸어갈 셈이었다.

내 속도에 맞춰 주는 리마의 수고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도저히 저 등에 올라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츠스스스. 츠스스.

“……알았어.”

리마는 더듬이를 아래로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내가 걸음을 조금 더 빨리 내 볼게!”

“엇, 그,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야. 원래 빨리 걸어야 운동도 되는 거거든.”

“그래?”

나는 경보를 하듯 발을 빠르게 굴렸다. 리마에게는 여전히 답답한 속도일 것이었지만.

평소보다 아주 빨리 1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리마의 발걸음이 거미 소녀의 방 쪽으로 향한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서 다리를 흘렸던 거 같은데…….”

“기억이 나는 거야?”

“정확히 언제 어떻게 빠진 건진 모르겠는데, 이 근처였던 것 같아. 1층 문을 지키느라 근래에 자주 지나다녔었거든.”

이러다 또 거미 소녀라도 만나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

리마랑 거미 소녀가 싸우면 누가 이기려나?

몸집은 둘 다 비슷한 것 같은데….

성격만 봐서는 괴팍한 거미 소녀가 이길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럼 안 되는데……!

“누나. 저깄어! 내 다리!”

“어, 어디! 벌써 찾은 거야?”

깊이 근심하느라 리마가 저만치 훌쩍 앞섰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딱 거미 소녀의 방 안을 가리키고 있을 건 뭐람.

“그런데 거미줄에 걸려 있네? 그냥 떼어내면 되겠지?”

“뭐? 안 돼! 그 거미줄은 만지면 안 돼.”

리마가 방으로 들어간 걸 보니, 일단 방 안에 거미 소녀는 없나 보다.

그래서 나도 얼른 따라 들어갔는데…….

방구석에 거미 소녀가 앉아 있었다.

밖에서 보이지 않았는지, 리마도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간 모양인데.

그렇게 딱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리마의 뒤로 최대한 몸을 숨겼다.

거미 소녀는 나를 보다가 리마를 쳐다보았다. 리마도 거미 소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둘은 처음 만나는 듯해 보였는데,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서로를 탐색했다.

“군침이 돌아.”

먼저 입을 연 건 거미 소녀였다. 어째선지 리마를 뚫어지게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나는 거미와 그리마의 먹이 사슬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평소 관심이 없으니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미가 그리마를 잡아먹기도 하던가? 아니면 그리마가 거미를…?

으…. 뭐든 알고 싶지 않다.

“누나. 나 쟤 무서워. 정상이 아닌 거 같아.”

거미 소녀와의 눈싸움에서 진 리마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회피했다.

다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도 무서워.”

“어떡하지? 저 거미줄은 왜 만지면 안 되는데?”

“네 몸도 저 거미줄에 붙어 버리고 말 거야. 접착력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거미 소녀는 우리가 소곤거리는 걸 가만히 보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가 일어나니 품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는데, 거미줄로 만든 공인 것 같았다.

일반적인 공치고는 크기가 매우 컸지만.

“그럼 내 다리를 찾을 수 없는 거야?”

“액체! 액체를 저 거미줄에 뿌리면 녹아내려.”

“아… 그래?”

리마는 그제야 희망을 찾은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기를 모으듯 볼을 잔뜩 부풀렸는데…….

설마 침이라도 뱉으려는 건가 싶어서 뜯어말렸다.

“고작 침 갖고는 안 되지!”

하지만 고작 침이 아니었다.

뿌에에에에에엑.

리마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녹색의 타액이 뿜어져 나왔고, 다리가 붙은 거미줄에 명중했다.

거미줄이 단번에 녹아내렸고, 리마가 찾던 다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쩍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세상에나…….’

리마는 다리를 주워 빠르게 제 몸에 갖다 붙였다.

여전히 리마를 탐스럽게 노려보던 거미 소녀도 그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키웠다.

가지고 놀던 공도 이제 관심 없는지 방치해 놓고는 리마를 향해 돌진했다.

“이리 와요!”

펄쩍 뛰어오르는 거미 소녀를 보고 기겁한 리마는 천장으로 빠르게 기어올랐고, 거미 소녀는 더 높이 뛰어올랐다.

거의 천장에 닿을 즘엔 리마가 다른 곳으로 피신했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거미줄을 천장으로 발사하고 있었다.

천장 여기저기에 거미줄이 다닥다닥 붙었고, 전부를 다 뒤덮기 전에 리마는 다시 벽으로 내려왔다.

나는 문밖 근처에서 숨죽이고 기다렸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내 다리를 찾으러 왔을 뿐이라고.”

요리조리 회피하던 리마는 눈물의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구미가 당겨요.”

거미 소녀와 제대로 된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리마는 결국 더 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자 방을 나가 버렸고, 거미 소녀도 진득하니 따라나섰다.

그렇게 둘은 나를 잊은 채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리마야…. 부디 무사하길 바라.”

어차피 내 느린 발로 그들을 쫓아가 봤자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으니.

그런 좋은 핑계를 대며 놀란 가슴을 다독이고 있을 때였다.

“거기… 누구지?”

거미 소녀의 방 안 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형체가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대답해도 되는 건가? 귀신이면 어떡하지?

“거기 계신다면 저 좀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란 말에 급히 눈알을 굴렸지만, 여전히 어딘지 모르겠고…….

나는 목소리와 가까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분명히 이 근처인데….’

주변에는 거미 소녀가 가지고 놀던 거미줄 공밖에 없었다.

혹시 몰라 공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폈는데, 은색의 머리털 같은 것이 뒤로 넘어가 있었다.

몹시 기괴한 형태였다.

‘뭐, 뭐지…?’

“거기, 누구 있는 거 맞지? 일단 이것 좀 굴려 봐. 그럼 내가 제대로 보일 테니까.”

내 발소리라도 들은 건지 그 기괴한 형태가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말대로 해 보기로 했다.

거미줄에 붙으면 곤란하니 손수건을 꺼내 쥐고 공을 살살 밀어 보았다.

생각보다는 가벼워서 수월했는데, 손수건은 그대로 붙어 버려서 이제 떼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공 밖으로 툭 튀어나온 건 토드의 얼굴이었다.

“토, 토드?”

이제야 그의 목소리가 왜 낯이 익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토드를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이렇게 붙잡혀 있어서 그동안 못 만났던 건가?

“리사…? 리사!”

토드 역시 나를 알아보자마자 눈을 곱게 휘었다.

갑자기 그를 만나 당황스러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얼어붙고 말았다.

성기사 같은 미모가 눈이 부셨는데, 환영으로 봤을 때처럼 어딘가 자꾸만 성스러운 느낌이었다.

“토드….”

“리사! 아쉽지만 인사는 나중에 하자. 일단 저쪽으로 날 좀 굴려 줄래?”

거미 소녀가 다시 올까 봐 서두르는 모양이었다.

토드가 턱짓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까 리마가 뱉었던 침이 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저 웅덩이에 여러 번 굴리다 보면, 토드의 거미줄도 금방 녹아내릴 것 같긴 한데….

‘그런데 토드를 풀어 줘도 되는 건가?’

나는 베키의 말을 떠올렸다.

토드를 조심하란 말. 그를 만나선 안 된다는 말.

어디까지나 토드가 내 정체를 알게 될까 봐 그런 것이었지만.

지금으로 봐선 일단은 내가 과거의 리사라고 찰떡같이 믿는 것 같은데.

애초에 제가 알던 사람 속에 다른 영혼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할 확률이 낮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리사. 괜찮아?”

내가 망설이자, 토드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살폈다.

나 역시 그런 토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부시도록 빛나는 환한 인상. 저런 얼굴로 나를 위협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토드를 이런 위험한 곳에 둘 수도 없는 법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노엘의 친구였다. 노엘이 먼저 손을 놓았다고는 하나, 과거 환영인 토드를 보았을 때도 그는 노엘을 계속해서 소중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구하지 않는 건… 노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수 없지…….’

나는 그를 옆으로 굴려 침 웅덩이 속으로 인도했다. 최대한 손수건 쪽에만 손을 대면서 굴렸다.

여러 번 굴린 끝에 그를 품던 거미줄이 전부 녹아내렸다. 겨우 빠져나온 그는 기지개를 켜며 몸 곳곳을 풀기 시작했다.

“후…. 이게 얼마 만인지…… 웅크려 있기만 해서 뻐근해 죽는 줄 알았지 뭐야. 덕분에 살았어.”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그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되는 것 같았다.

“일단 빨리 이 방을 나가자.”

토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았다.

얼떨결에 손이 붙잡힌 나는 일단 방을 빠져나와 계단 근처까지 오고 말았다.

이 모습을 노엘이 보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자, 바로 힘을 딱 주고 멈추어 설 수 있었다.

“토드! 어, 어디 가는 건데?”

그리고 그가 잡은 손을 자연스럽게 푸는 데도 성공했다.

“우리 둘… 이제야 만났잖아.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안전한 곳도 알아 놓았어!”

그는 여전히 나를 자기 연인인 줄 알겠지. 하지만 나는 그와 추억할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지금의 태도 역시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돼 버린 건 내 탓도 아닌걸.

“미안해. 토드. 나 노엘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어. 그러니 함께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차라리 토드를 체념시킨다면, 다시 노엘과도 친구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환영 토드를 보았을 때, 그는 환영 리사가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까.

“정말이야? 네가 노엘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결코 믿을 수 없다는 눈동자.

“응, 그러니까…. 노엘과는 다시 이전처럼 친구로 잘 지내 주면 안 될까?”

“……말도 안 돼. 네가 그 녀석을 좋아할 리 없어. 역시 협박이라도 받는 거지?”

이런. 생각보다 이 녀석, 설득하기가 쉬울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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