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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49화 (49/145)

49화.

양손에 촛대를 쥐고 찌를 듯 앞으로 뻗으니, 베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속삭였다.

“설마… 지금 그걸로 싸울 생각은 아닌 거지?”

나는 진지하게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지금 이걸로 싸울 생각 맞는데.”

베키가 움찔하는 사이, 가장 앞에 있던 괴물이 내 쪽으로 뛰어들었다.

키에엑! 쿠걱 쿠걱!

다행히 내가 내민 촛대 앞으로 괴물이 딱 멈추어 섰다.

나는 가까워진 괴물이 너무 징그러워서 뒤늦게 열렬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그러자 눈이 다섯 달린 얼굴이 대각선으로 갈라지더니 날카로운 이빨과 긴 혀가 튀어나왔다.

“저, 저게 뭐야악!”

질퍽하고 투명한 타액이 벌린 입에서 길게 늘어졌다.

그렇게 제 얼굴보다도 입을 크게 벌리고는 이리저리 틈을 노렸다.

나는 괴물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촛대를 휘둘러 정면으로 마주 보게 했다.

자꾸 보고 있으니 조금은 적응되었는지, 겉모습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든 것 같았는데.

옆에 있는 베키에게도 한 마리가 들러붙었다.

베키는 머리카락으로 채찍질하며 거리를 확보하는 중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거지?’

정신 똑바로 차리자.

약점이 될 만한 곳이 있을 텐데.

어떻게든 달려들려는 괴물의 쩍 벌어진 입 안이 아무래도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저 안에 촛대를 꽂아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와. 내가 이런 잔인한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상대는 나를 잡아먹으려는 괴물이었으니, 마음껏 잔인해져 보기로 했다.

“이, 이리 와 보시지!”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말하니 목소리도 달달 떨리는데.

창 같은 촛대를 이리저리 휘두르기도 지쳤으니 이젠 낚시를 해 봐야겠다.

내가 촛대를 잠시 다른 방향으로 치우는 척하자 그제야 괴물이 그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쿠걱쿠걱!

“으이야아아악!”

타이밍에 맞춰 촛대를 앞으로 불쑥 내밀었고, 차마 볼 수는 없을 것 같아 고개는 옆으로 돌려 버렸다.

곧 괴물의 살점이 촛대 끝의 뾰족한 부분을 통과했다.

촛대 끝부터 중간까지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더니 마치 거대한 고깃덩이 꼬치를 들고 있는 듯했다.

쿠… 쿠거… 거걱.

고개를 돌려 힐끔 살펴보니, 촛대가 괴물의 목구멍 안으로 정확히 들어가 있었다.

나는 손 아래까지 올라온 괴물의 이빨을 보고는 급히 촛대를 놓아 버렸다.

털썩!

촛대를 다시 뽑아서 사용하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사실 다시 뽑는 감촉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게 더 컸다.

문 쪽에서 이 상황을 바라본 나머지 괴물들이 우렁차게 포효했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에에엑!

동료의 죽음에 몹시 흥분한 듯했다.

이제 내 손엔 어떤 무기도 없었고, 베키는 아예 머리카락으로 괴물 한 마리를 묶어 잡아 두고 있었다.

나머지 괴물들이 달려들려고 기회를 엿보는 것 같아, 나도 다시 발밑에 떨어진 괴물의 입 근처로 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촛대를 빼내려 안간힘을 써 봤는데.

‘이런… 빠지질 않아.’

헛수고였다.

꼼짝도 하지 않는 촛대 때문에 점점 울상이 되어 가던 찰나.

쿵쿵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방으로 힘껏 쳐들어왔다.

우우어어어어! 우궈어!

거대한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문 쪽을 어슬렁거리던 괴물들이 안쪽으로 튕겨 들어왔다.

벽에 세게 부딪힌 괴물들은 충격으로 꿀렁꿀렁 몸을 움츠렸다.

나는 모습을 드러낸 거인 괴물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알프레드?!”

우궈!

괴물들을 단방에 날려 버린 알프레드는 멋있어 보이는 자세로 나와 베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다른 손은 팔의 근육을 과시하며 허리에 올려놓았다.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왜 저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프레드가 나와 베키를 공격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는 항상 나와 노엘을 괴롭혔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껏 노엘도 못 알아본 걸까? 뭔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데.

“리사!”

무슨 일인지 노엘이 알프레드 뒤로 따라 들어왔다.

“노엘?”

“다친 덴 없고?!”

노엘은 여전히 무게를 잡는 알프레드를 지나쳐 내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어쩐지 그가 화가 나서 돌진하는 것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막상 다가온 그는 그저 나를 꽉 껴안았다.

“하, 미치겠네. 걱정돼 죽는 줄 알았어. 다행이야…. 정말 다행…….”

맞붙은 그의 심장이 펄펄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다.

그러다 꿈틀거리는 괴물 하나에 시선이 닿아 소리 질렀다.

“노엘! 아직 괴물이 살아 있어!”

나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만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나를 껴안고는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뭐 해? 알프레드. 찢어. 하나도 남김없이.”

우궈 우워!

알프레드는 팽팽한 가슴을 한 번 퉁! 치고는, 무서운 속도로 바닥에 있는 괴물들의 멱살을 차례차례 잡아 버렸다.

그리고 곧장 그들의 긴 혀를 맨손으로 잡고 뽑…, 뜯…, … 여기서부터는 나도 눈을 돌렸다.

기괴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노엘의 품에 포옥 안긴 탓인지, 금방 두려움은 사그라지고 안정감이라는 녀석이 느껴졌다.

잠시 둘이 이러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오르고 말았다.

‘다 죽여 버리라니……. 노엘이랑 알프레드. 이건 무슨 주종 관계 같은 느낌인데?’

분명 이전에 알프레드는 노엘을 공격했었던 괴물인데 말이다.

뭐지?

무언가를 뽑고 찢어내고 던져 버리는 소리가 아직도 활발했다.

그래서 계속 눈을 내리깐 채, 노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 거인 괴물… 그러니까, 알프레드랑 아는 사이야?”

내 말에 나를 감싼 노엘의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응, 조금.”

“조금…?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언제부터야?”

“……그런 게 있어.”

어쩐지 말을 자꾸 한 발짝씩 느리게 하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말해 주기 싫은 게 분명해 보인다.

차라리 저 알프레드에게 따로 물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베키와 씨름하던 괴물마저 처리한 알프레드는 마무리를 알리는 포효를 했다.

궈어어어억!

그 뒤로는 기괴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제 나가자. 리사는… 방을 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많이 지저분하거든.”

노엘이 큰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가려 주었고, 그의 부축을 받으며 함께 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드디어 방을 나와서 눈을 뜨자 알프레드가 눈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베키도 상처 하나 없이 나온 걸 보니 정말 다행스러웠다.

“저… 알프레드?”

모두 모여 있으니 알프레드에 대한 겁도 없어진 참이었다.

알프레드는 검은 액체를 아주 뒤집어썼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깨끗하고 멀쩡했다.

“리사. 만나서 반갑다! 다치지 않아 다행이군!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둘 다 큰일이었을 텐데 말이야.”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는데, 어쩐지 손뼉이라도 쳐 주어야 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저렇게 말을 잘할 줄 아는데 우걱거리는 소리만 왜 그렇게 냈던 건지…….

“알프레드는 저번엔 우릴 공격했었잖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물음표를 터뜨렸다.

“다 널 지키기 위해서였지. 모두 노엘의 큰 뜻이었음을….”

“알프레드! 거기까지 해.”

노엘이 다급하게 알프레드의 말을 잘랐다.

‘노엘의 큰 뜻이라니……. 노엘이 사주라도 했다는 건가? 뭔가 이상한데. 아니, 수상하다고 해야 하나.’

근데 그렇게 해서 뭘 얻으려 했던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뒤통수는 얼얼하고 생각의 고리는 끊겨 버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이제 거인 괴물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알프레드 역시 과거엔 끔찍하게 죽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노엘과 잘 지내고 있었다.

“문이 또 뚫린 거야?”

베키가 노엘에게 물었고, 노엘도 그제야 머금고 있던 미소를 싹 거두었다.

상황이 한층 더 심각해지기라도 한 걸까?

“바로 여기, 4층의 문이 부서져 있었어. 우린 막 올라온 참이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소란이 생겨 와 봤던 거야.”

“이렇게 네 마리나 들어올 줄이야….”

“리마랑 데릭이 지금 조처하고 있을 거야. 그나저나 큰일이야. 저것들이 문을 부수려고 아주 열심인 거 같거든.”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있는 거야?”

“녀석들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여러 층에 문이 있으니… 우리로선 그럴수록 더 불리할 수밖에.”

“우리… 괜찮을까…?”

어두운 표정을 짓는 베키였지만, 노엘은 침착하고도 강인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우리도 이전보다 더 강력한 소재로 문을 막고 있어. 효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

노엘이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베키의 얼굴 그늘이 금세 거두어졌다.

그와 함께 알프레드도 다시 기운을 차린 모습이었다.

이들이 얼마나 노엘을 잘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노엘이 대단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끈끈한 연결 고리가 그들 사이를 단단히 이어 주고 있는 형태.

그 형태가 어쩐지 오늘따라 몹시 부럽다.

‘노엘과 나의 연결 고리는… 늘 위태롭게 붙어 있겠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게 달랑달랑하고 있을 것 같다.

얼떨결에 그와는 깊은 사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불안정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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