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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47화 (47/145)

47화.

밖에서 기다리던 베키와 함께 다시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이참에 4층으로 내려가서 다음 퀘스트도 해 버릴까?’

사실 붉은 보석을 찾으러 나가는 게 더 힘들었지, 아주 날로 먹는 퀘스트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꿀 빨다 뒤통수라도 세게 맞을까 봐 겁이 날 뿐이지.

나는 결국 계단 근처에서 베키의 손을 잡아당겼다.

“4층에 다녀오자!”

베키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일찍 들어갈 리 없지.”

“정답이야.”

“볼 때마다 신기하기도 해.”

“뭐가?”

“그 몸의 원래 주인은 건강이 나빴으니까.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했거든.”

“응…. 그래 보였어.”

“너는 건강해서 다행이야.”

어쩐지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

“베키, 네 친구 부럽더라. 나는 너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

“…….”

조금 놀랐는지 그녀의 시선이 강하게 느껴졌다.

“……너는 그 녀석과 비슷한 점이 은근히 많은 거 같아.”

“그래?”

“그래서 가끔은 겹쳐 보여서 착각하게 되기도 해.”

“착각까지? 에이… 그럴 리가.”

“그래도 확실하게 너는 너니까…. 뭐, 나도 너 같은 애가 친구로 나쁘진 않은 것 같아.”

나 같은 애는 대체 어떤 앤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훈훈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삼켜 버렸다.

“아, 맞다. 네게 알려 줄 것이 있어.”

“뭔데?”

그녀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긴장되었다.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나 본데.

“절대 토드를 만나선 안 돼.”

“토드…? 토드가 나타났어? 너는 만나 본 거야? 지금 어디 있는데?”

한 번에 여러 가질 묻고 말았다.

“그 녀석이 네 정체를 알게 되면 틀림없이 죽이려 들 거야.”

“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는 이 몸의 진짜 연인이었으니까.

그들이 어떻게 사랑을 속삭였을지, 나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노엘에게도 결코 쉽게 지려 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한마디로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토드를 마주치더라도 너는 무조건 도망쳐야 해.”

“그래 봤자 이 별장에선 나갈 수도 없는걸…. 결국 언젠가 마주치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걱정이다. 정말.”

“그러게. 베키! 나… 지금이라도 기억 잃은 설정으로 가 볼까? 방금 생각났는데 괜찮은 거 같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진짜 괜찮은 거 같은데….”

차라리 정말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다.

“토드는 네가 기억이 있든 말든 제 곁에 두려 할 거야. 그럼 노엘도 가만히 있지 않겠지. 이건 단순히 너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무서운 녀석이 하나 더 늘었다니.’

그런데 토드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대체 노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속였던 거야? 그는 너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음……. 그러고 보니 노엘은 나와 과거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아.”

그러면서도 친하게 지낸 사이인 것처럼 스스럼없이 대해 준다.

그러니 내가 그를 속이려는 노력을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정체에 대한 사실을 알고부턴 가슴 졸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 뒤로도 특별히 그가 나에 대해 의심을 제기한 일이 없다.

“그래? 다행이지만 희한하네.”

어느새 나와 베키는 4층 실험실 숙소로 도달해 있었다.

베키는 숙소 밖 간이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았다.

끝나고 나왔는데 저 자리에 또 노엘이 앉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괜히 식은땀이 흐른다.

“난 여기 있을 테니 다녀와. 혹시라도 뭔가 있으면 소리 질러.”

“응! 다녀올게.”

이 실험실 숙소는 하도 들락거려서 이젠 익숙했다.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아도, 대략적인 위치를 아니까 마음도 조금은 놓였다.

이번 붉은 보석은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반짝여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어지간하면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곧 환영이 나타났고, 알프레드가 노엘에게 비밀 통로를 알려 준 지 며칠 정도 지난 시점인 듯했다.

개인실들이 달린 넓은 공간의 구석에서 알프레드와 노엘이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알프레드가 급히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였다.

-내가 알려 준 그 비밀 통로가… 발각되었어. 그러니 절대 가면 안 돼.-

-……이런, 어쩌다 발각된 거야?-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다 보니… 내가 통로의 재료를 야금야금 가져갔다는 사실이 들통났지 뭐야….-

-어쩔 수 없지, 뭐…. 그런데. 그럼 넌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더 자세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지금은 내게 시간이 없어. 꼬맹이, 반드시 너만은 꼭. 이곳을 무사히 탈출해라.-

환영 알프레드에겐 훌쩍 커 버린 노엘이라도 여전히 꼬맹이로 보이나 보다.

그는 환영 노엘의 단단해진 팔뚝을 붙잡으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프레드…….-

-……혹시라도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갑자기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 다섯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그들은 급히 달려와 알프레드의 양팔을 붙잡았다.

-알프레드, 여기 있었군. 얌전히 붙들려 가는 게 좋을 거야.-

알프레드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순순히 따랐고, 끌려 나가면서도 노엘과 마주 본 눈을 놓치지 않았다.

-살아남아라. 노엘.-

그 한마디를 끝으로 알프레드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던 노엘은 그제야 중간 문으로 달려 나갔다.

나도 같이 따라나섰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환영 노엘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알프레드도 실험에 투입될 거야.]

“그럴… 수가.”

[그들에게 배신은 곧 죽음이니까. 전엔 연구원조차 배신했다는 이유로 실험에 쓰였었거든.]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렇게 또 내 소중한 사람이 떠나가게 되었어.]

내 곁의 사람이 하나씩 고통스럽게 떠나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분명 틀림없이 상상 이상의 고통이 뒤따르지 않을까……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이 숙소엔 어린아이들도 거의 없었는데. 남아 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시간이 흐른 만큼 다 실험실로 끌려갔던 거겠지.

실험에 쓰일 론 제국의 포로들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었다.

[알프레드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했네…….]

“그렇지 않아, 노엘. 둘이 눈빛을 교환하는 걸 내가 똑똑히 봤는걸?”

[그건 인사가 아니었는데?]

“인사를 꼭 말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눈빛만 봐도 전해지는 마음이란 게 있잖아.”

[……그렇구나.]

“네 마음이 잘 전해졌을 거야.”

[고마워. 넌 참… 따듯한 말을 잘해.]

그렇게 말하는 슬픈 눈빛을 보니 가슴이 또 저릿해진다.

환영 노엘과 나는 다시 숙소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는 환영 리사를 만나려 했는데, 누군가가 붙잡는 바람에 개인실 근처에서 발을 멈추어야 했다.

그 누군가는 어떤 여자아이였다. 환영 노엘도 그녀를 잘 아는 모양이었다.

-노엘! 나 저기서 연구원들이 쑥덕거리는 소릴 들었어.-

목소리를 조심스레 낮추는 걸 보니 비밀스러운 이야긴가 본데.

-티나. 무슨 일인데 그래? 천천히 얘기해 봐.-

티나라는 여자아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눈가까지 촉촉해져선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노엘이 쪼그려 앉아 귀를 대자 그녀가 손을 모아 귓속말했다.

물론, 나도 같이 귀를 대고 엿들었다.

-이번에 노엘과 토드 중 한 명이 중요한 실험에 들어가게 된대…. 아직 둘 중 누구인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랬구나.-

-전시회는 이제 열지 않는다고 했어. 노엘은 이제 전시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실험실에 들어가게 될 거야.-

환영 노엘은 티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 웃어 보였다.

-티나, 나는 전시회가 닫힌다니 너무 기쁜걸? 거기서 하는 전시품 노릇이 가장 싫었거든.-

-…슬퍼. 그들이 노엘을 데려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노엘은 그녀를 한참이나 토닥여서 겨우 진정시켰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난 그의 낯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도 두려운 것일까. 자신이 실험체가 된다는 사실이.

“노엘…?”

차마 괜찮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랬는데, 어두운 그림자 속 노엘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리는 걸 보고야 말았다.

[잘됐어. 이참에 토드가 선택받으면 좋겠네. 그럼 드디어 나와 리사만 남게 되는 거잖아.]

“하.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지금! 토드도 네 친구잖아! 언제나 그런 식으로 회피하지 좀 말라고.”

분명 슬픈 거 맞잖아.

사이가 틀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마음 놓고 좋아할 녀석은 아니라 믿고 있었다.

[친구 아니라니까.]

“게다가 누구인지 아직 딱 정해진 게 아니라면서. 네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결국 언젠가 노엘도 실험실로 끌려가는 걸까?

노엘이 실험당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절대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것이었다.

상상만 해도 이렇게 심장이 옥죄여 오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렇게 된다면, 이 영원한 고통에서 해방되겠지?]

“…….”

[나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길 한번 받지 못했어. 그녀는 이런 내가 정말 싫을 거야. 그러니까 나도 내가 자꾸만 싫어져.]

“노엘…….”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거지? 너는 알아? 알고 있으면 말 좀 해 봐.]

“…….”

남녀의 마음이 하나로 통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구나.

어찌 보면 한 커플이 결혼까지 간다는 건 굉장히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구걸하면, 조금은 마음을 나눠 줄까? 응? 말해 봐. 구걸하면… 사랑, 그거 받을 수 있어?]

이 녀석의 사랑은 너무 힘들다. 그냥 포기하면 좋겠는데… 그놈의 집착이 그를 갉아먹고 있었다.

“노엘, 집착은 그만 버려. 그건 사랑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그러자 주변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물씬 드는데.

[너와는 얘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해 버리고… 나더러 신경 쓰지 말라고?]

“아니, 그러니까 미안…. 내가 주제넘었어.”

[그럼 네가 줄래?]

“응? 무얼….”

[그거. 사랑이란 거. 나한테 줄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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