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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46화 (46/145)

46화.

내가 당황해서 멍하니 있으니 노엘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무척이나 기대하는 모습.

“리사. 나도.”

“어, 어……?”

닦아 달라는 건가?

“리마만 해 주는 거야?”

“아…! 잠시만.”

해 주지 않았다간 드러누워 떼라도 쓸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냅킨으로 노엘의 입가를 톡톡 닦아 주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시체를 닦는 것도 아닌데 손은 왜 이렇게 떨리는 건지.

“다 됐어.”

눈까지 꼭 감고 손길을 느끼던 노엘은 그제야 촘촘한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고마워.”

그 뒤로 노엘은 생크림이 벗겨진 불쌍한 케이크엔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참기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등 뒤에서 베키가 나를 불렀다.

“리사.”

“응?”

그녀는 생크림을 잔뜩 묻힌 얼굴로 짓궂게 웃고 있었다.

“나도.”

“…….”

분명 저것도 일부러 묻힌 게 틀림없었다.

***

노엘과 리마, 데릭은 오늘도 문을 지키러 갔다.

요즘 들어 부쩍 문에 쏟는 시간이 많아진 걸 보니 상태가 좋지 않은가 보다.

“리사, 준비됐어?”

“응! 가자.”

나는 베키와 함께 붉은 보석을 찾으러 가게 되었다.

혹시라도 노엘의 마음이 바뀔까 봐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저녁 전에는 돌아가야 하니까 부지런히 발을 굴려야겠다.

“오늘은 계단 안 내려가?”

“응, 이번엔 꼬맹이 시절의 노엘 방으로 가야 해.”

그러고 보니 거기 비밀 통로도 있었는데….

그땐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었지.

“가까워서 귀찮지 않아 좋네.”

“도착했어. 바로 여기야.”

“난 이전처럼 밖에서 기다릴게. 끝나고 나와.”

“응! 정말 고마워. 무슨 일 있으면 꼭 불러!”

끼익.

어디 보자……. 붉은 보석이 어디에 있나.

쉽게 보이지 않아 당황하려던 찰나, 내 발바닥에 방금 막 밟힌 보석을 발견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보석을 집어 들었는데.

환영이 오후의 햇빛처럼 펼쳐졌고, 꼬마 노엘의 방이 꽤 아늑한 곳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 이제 말해 봐. 무슨 얘길 하려고 날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쉿.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전시품 관리자인 알프레드와 환영 노엘이 방으로 들어왔다.

알프레드는 밖에서 누가 엿듣는 건 아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문에 귀를 대어 인기척을 확인하더니, 한참 뒤에야 몸을 떨어뜨렸다.

-아무도 없어. 뒤를 밟는 녀석도 없었고.-

-좋아, 이제 알려 주지.-

알프레드는 커다란 손으로 옷장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안쪽 벽의 문을 들춰 비밀 통로가 있는 걸 보였다.

-이건……?-

이때까지만 해도 노엘은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럼 저번에 나를 도와준 꼬마 노엘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뭐야. 진짜 귀신 뭐 그런 거였나?

-비밀 통로야. 노엘, 이 비밀 통로가 연결된 방으로 가면 이곳을 탈출할 수 있어.-

-……?-

-잘 들어. 연결된 그 방은 온통 검은 돌벽으로 되어 있어. 그냥 보기엔 평범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방의 카펫을 들추어 보면 비밀 문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 비밀 문까지 통과하면, 별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단 소리야?-

-그래. 바로 그거야.-

예상치 못한 비밀 정보에, 나도 가슴이 다 콩닥거렸다.

그 방바닥에 그런 문이 있었을 줄이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도 지금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별장 밖은 어떤 세상인 거지.’

어차피 원래 살던 곳이 아니면 내겐 의미가 없다.

-이 비밀 통로는 네가 만든 건가?-

그런데 노엘은 그런 좋은 정보를 듣고도 특별히 안색이 밝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내가 틈틈이 만들었지. 절대 쉽진 않았다고.-

알프레드는 멋쩍은지 손가락으로 코 밑을 쓸었다.

-나를 위해서…?-

-뭐. 그렇다니까.-

-어째서지? 너와 난 그저 조금 친밀해진 전시품 관리자와 전시품 아니었나….-

알프레드는 고개를 뒤로 젖혀 생각에 잠겼다.

-이곳으로 일하러 오기 전엔… 나도 아내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어. 오래전 일이지만 말이야.-

-네게 가정이 있었다니. 의외로군. 그런데 왜 하필 이런 데로 일하러 온 거지?-

그는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빈곤으로 세상을 떠났어. 길 제국의 평민 중에서도 우린 가장 낮은 계급이었거든. 그래서 늘 빈곤을 달고 살았지.-

-……유감이야.-

-하지 않은 일이 없었어. 하지만 일을 아무리 해도, 우리 같은 계급에 떨어지는 건 국물도 없었고…. 그렇게 가족을 떠나보낸 나는 반쯤 미쳐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거야. 그저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혹해서.-

-…….-

-참 한심하지? 가족이 내 전부였고, 그 전부를 잃었는데도 배가 고픈 거야. 그런데 또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들어온 곳이 고작 이런 데라니.-

환영인 알프레드와 노엘은 서로를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나는 알프레드가 나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미쳐 있던 내게 주어진 첫 임무가 너를 관리하는 일이었지.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깨닫게 된 거야.-

-내가 네 아들과 비슷한 나이였나 보군.-

-하하! 그랬어. 네게 험하게 굴면서도… 아들놈이 자꾸만 겹쳐서 생각나더군. 그러다 문득 정신 차렸을 땐, 이 비밀 통로를 만들고 있었지.-

노엘이 지금도 여기 남아 있는 걸 보니, 탈출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너무 궁금했다.

생각해 보면 노엘이 자기만 혼자 탈출할 리 없었다. 한다면 분명, 적어도 과거 리사와 함께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넌 말만 험하게 굴었지 내게 진짜 위해를 가한 적은 없잖아. 그러니 죄책감은 덜어도 좋아.-

-마음씨가 넓은 어른이 되었구나. 그 황태자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알프레드는 노엘의 머리에 털이 듬성듬성 난 손을 얹고 마구 쓰다듬었다.

노엘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은 모양이다.

-네 수고는 고맙지만… 이렇게 나 혼자만 나갈 순 없어.-

-예상은 했어. 네 친구 때문이지?-

-친구는 무슨, 난 리사 하나만 있으면 돼.-

-대단한 녀석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아주 사랑꾼이 따로 없어…. 하지만 그 친구는 건강이 좋지 않다 들었는데.-

-응…. 이 좁은 비밀 통로로 그 몸을 이끌고 가긴 불가능할 거야. 이어진 방으로 가는 다른 길은 없는 건가?-

-훨씬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긴 하지만…,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나아. 그 길은 언제나 연구원들로 쫙 깔려 있으니까.-

환영 노엘은 턱을 괴고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다.

-가능한 한 리사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밖에 없겠어.-

-그사이 실험일이라도 잡히면 어쩌려고?-

-그런 급박한 상황이면, 리사를 강제로 들고라도 와야지…….-

-아무튼… 행운을 빈다. 이제 이 통로는 네 것이야. 내 손을 떠났다고.-

-고마워. 설령 이 통로가 쓸모없어진다 해도, 이 은혜는 잊지 못할 거야.-

알프레드가 밖으로 먼저 나가고, 환영 노엘은 비밀 통로의 문 주변을 정리했다.

나는 혹시나 내게 말을 걸어 주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옷장 문을 닫은 그가 드디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다정한 그 눈빛이 꼭 지금의 노엘과 똑같았다.

[비밀 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여차하면 그곳으로 도망갈 생각이지?]

깜짝이야!

맞는 말이었다. 지금 그럴 생각으로 머릿속이 온통 꽉 차 있었다.

정말 위급할 때 도망갈 구석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문은 지금 열어 봤자 막혀 있을 거야.]

“뭐? 정말이야?”

아니, 아니! 왜! 도대체 왜…….

정말이지 이곳에선 기대란 걸 하기가 무섭다.

희망이 생기기만 하면 곧바로 절망이 뒤따른다.

[지금 그곳엔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어. 그러니까… 절대 열면 안 돼. 그 괴물들은 너희 모두를 위협할 거야.]

“그럴… 수가…….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데!”

[밖으로 이어진 통로에 괴물들이 많다는 건 밖에도 괴물이 있다는 소리 아니겠어?]

“……그러니까 이 별장 밖에도 괴물이 있다는 거야?”

노엘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대체 어떻게 돼먹은 세상인 거지?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는 건데.’

차라리 거짓말이면 좋겠다.

설령 환영 노엘의 말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살펴보기엔 위험이 너무 컸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내가 모두의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다.

그럼 역시… 그 문을 열어 보는 일은 빠르게 포기할 수밖에.

[착하네.]

“…….”

좌절된 얼굴에 대고 할 소린 아닐 텐데.

내 속마음을 엿보기라도 한 건지, 다 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리사, 두려워하지 마. 지금 네 곁에 있는 녀석들은 모두 진심으로 널 대하고 있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탈출인걸. 나는 새가슴에 심장도 작고 간도 작다고.

[너와 헤어지게 된다면, 그 녀석들도 무척 슬퍼할 거야.]

노엘과 리마, 베키, 데릭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천천히 스쳐 갔다.

[다 두고 혼자 돌아갈 자신 있어?]

나는 그 말에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정이란 것이 들어 버렸나.

어차피 이 별장 밖까지 지옥이라면, 모두를 데리고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탈출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녀석들이 내 세상으로 온다고 해도, 그 세상은 이 기괴한 녀석들을 절대 받아 주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저 도망치거나 물리쳐야 할 괴물과 동일시되겠지.

그렇다고 노엘만 데려가는 건…, 그들에게 가족 또는 친구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이 될 테고.

그럼 역시 탈출은 나 혼자 할 수밖에 없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와 그 녀석들은 공생할 수 없는 걸까.

[절대 너 안 보낼 거야.]

또 내 생각을 줄줄 읽기라도 한 건지, 환영 노엘이 잡아먹을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

어쩐지 가슴속 깊은 곳이 불편하고 콕콕 쑤신다.

갑자기 모두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의 시간이 모두 거짓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그들이 내 세상에서 살 수 없듯이, 나도 여기서 살아갈 순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이 이런 고민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아니었다. 탈출 직전까지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

[그럼 다음엔 실험실 아이들의 숙소에서 보자.]

환영 노엘의 따듯한 눈웃음과 함께 환하게 비추던 빛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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