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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45화 (45/145)

45화.

“그런데 토드는 어쩌다 여기 붙잡힌 거죠?”

베키의 물음에 토드는 노엘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밖에 더 있겠어?”

“…….”

베키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건지 의문이 들었다.

“사이가 틀어진 거예요? 제가 죽은 뒤…, 둘 사이에 뭔가 큰일이 있었던 건가요?”

토드는 눈을 내리깔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 모습을 봐서 알겠지만… 우린 계속 변해 왔어. 이렇게 나이 먹을 때까지 우리가 한결같을 리는 없을 거 아니야.”

“그런… 가요?”

확실히 어릴 때와는 달리, 분명 다른 느낌이 혼합된 듯했다.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순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지 않은가.

그렇게 간단히 깨어질 사이는 아니라는 견해다.

“그 뒤로 나와 리사는 서로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확인했지.”

“예…?”

베키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 얼얼했다.

자신의 진짜 친구인 과거 리사가 노엘이 아닌 토드를 좋아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토드는 계속해서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말해 주었다.

가장 최근의 일까지 세세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충 어떤 상황이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나머진 이따 또 얘기해 줄게. 갑자기 한 번에 쭉 말하자니 정리가 잘 안 되네.”

“……그러세요.”

“오랜만에 널 보니 정말 너무 좋다. 베키.”

베키도 물론 토드가 반가웠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근심이 생기고 말았다.

그도 노엘처럼 지금의 리사가 과거의 그녀인 줄 알고 있을 텐데.

게다가 그녀와 마음을 확인한 채로… 거의 연인인 채로 헤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리사에게 있어 위협적인 인물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었다.

노엘이나 토드나 모두에게 그녀의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되었다.

‘어쩌면 토드가 더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토드 역시 자신의 진짜 연인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 눈에 선했다.

당장 그녀의 몸에 깃든 가짜를 쫓아내겠다며 잡아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몸에 다른 존재가 깃들면, 그것을 죽여야 다시 원래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믿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도 가끔 그런 일을 행해 영혼을 되찾은 사례도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그저 평범하게 죽여서는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평범하게 죽였다간 원래의 몸도 잃을 것이었다. 아마 특별한 도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해?”

“……저, 토드.”

“괜찮으니 얘기해 봐.”

“토드의 말처럼 리사도 변했어요. 리사는 노엘과 곧 결혼할지도 몰라요. 지금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거든요.”

베키는 가능한 한 토드가 리사에게 접근하는 걸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엘이나 토드나 둘 다 그녀를 바로 알아챌 정도로 재빠른 눈썰미는 아니었지만, 그녀와 연인이었던 토드라면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결혼이라니. 그거… 그건 거짓이야. 분명… 지금 강제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걸 거야. 예전처럼…….”

“리사에게 가 봤자 토드만 거절당하고 상처 입을 거예요. 그러니… 여기서 깔끔하게 포기하세요.”

거기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으니.

노엘과 토드가 살벌한 신경전을 펼칠 걸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의 적인 시드 공작을 두고, 우리끼리 싸우다 공멸하는 꼴은 차마 볼 수 없지 않은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설령 그게 리사의 진심이라 하더라도…. 내가 직접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을 거야. 그러니 지금 당장 내 포기를 강요하진 말아 줘.”

“정말이지……. 말 안 듣는 건 여전하시네요.”

분명 저렇게 말해도 막상 리사에게 직접 들으면, 또 말도 안 된다며 집착할 게 뻔했다.

어쩜 노엘이나 토드나 집착이 이리도 심한 건지…….

전생에 둘이 한 몸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베키는 혀를 내두르며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그 자식한테 이젠 미련 없는 거야?”

“없어요. 절대.”

그래도 한때 좋아했다고 생각한 노엘을 떠올린 베키는 더욱 죽을상이 되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깊은 암흑의 역사였다.

노엘의 그 흑집착을 가까이서 지켜본 베키였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의 매력이 그런 점을 가릴 정도로 매우 높긴 했지만, 그래도 베키는 집착하는 남잔 이젠 질색이었다.

‘나라면 감당할 수 없을 거야. 숨이 막혀 죽어 버릴지도.’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다니, 진짜 그런가 보네.”

“진짜니까요.”

“근데 베키는 그 녀석한테 어떻게 밉보였길래 이런 데 버려진 거야?”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요.”

“흠…. 혹시 여기서 나갈 방법을 알아?”

“물이요. 아니면 액체로 된 아무거나…. 그걸 거미줄에 뿌리면 녹아서 없어져요.”

어차피 거미줄에 걸려 있는 한, 이 방 안에 물이 있다고 해도 스스로 뿌릴 수는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인 못 나가겠네….”

“그렇죠….”

토드가 머리를 바쁘게 굴리는 모양이다. 굴러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베키와 토드는 드문드문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 버려 벌써 아침이 되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조금 지칠 무렵, 타란티나가 돌아왔다.

톡톡 토도독. 톡톡 토도독.

“해치지 않아요. 내가 돌아왔어요.”

젠장.

베키는 소리 없는 욕을 터뜨렸지만, 타란티나의 뒤로 들어오는 노엘을 보곤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함께 들어온 노엘은 베키와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건넸고, 어딘가 기분 좋은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타란티나, 이제 베키를 풀어 줘.”

“물론이에요! 잠시 맡아 두었던 거니까요.”

타란티나는 그의 말이라면 뭐든 아주 순종적으로 따르는 모양이었다.

곧 그녀의 다리가 거대 거미줄의 일부분을 찢었고, 베키는 드디어 바닥에 발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베키, 저 녀석과 인사는 잘했어? 정말 오랜만이지.”

노엘은 토드를 쳐다보지도 않고, 턱을 살짝 들추는 걸로 그를 가리켰다.

그러자 토드는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풀어 준다는 건. 날 용서해 준다는 뜻이야?”

쓸데없는 기 싸움에 끼어들기 싫었던 베키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좀 더 빨리 풀어 주려 하긴 했어. 어제 일찍 잠드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지만. 아무튼 고생했어.”

베키는 그 뒤로 리사가 노엘에게 어떤 곤욕을 치렀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이렇게 금방 풀어 주는 걸 보니 뭔가 잘 풀린 모양이라 짐작했다.

“베키, 앞으로도 리사를 잘 부탁해.”

“응?”

저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녀와의 만남이 자유로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가지. 준비한 차가 식겠어.”

노엘은 여전히 토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토드는 언제까지 저렇게 두려는 거야?”

“글쎄. 정신 차릴 기미가 보여야 말이지.”

노엘의 저 아름다운 얼굴에 드리운 지독한 그림자가 앞머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베키는 더는 말하지 않고 그냥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는데, 타란티나가 신난 얼굴로 거미줄을 뽑으며 토드를 굴리고 있었다.

저 거미줄 덩어리가 얼마나 더 커질지 궁금하다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베키였다.

‘당분간은 도와주지 못할 것 같네요. 미안해요. 토드.’

***

오늘도 내가 노엘보다 늦게 일어났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와 보니, 역시 다들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좋은 아침!”

동그란 테이블에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이젠 저 풍경이 귀엽기도 하다.

무엇보다 다시 베키의 얼굴을 보게 되니 무척 반갑기도 했다.

나와 베키는 눈을 마주치며 무언의 인사를 했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야.’

나는 자연스레 리마 옆으로 착석했다.

오늘은 홍차뿐만 아니라 먹음직스러운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놓여 있었는데, 입에 넣으면 녹아내릴 게 분명해 보인다.

“누나, 이거 진짜 맛있어.”

케이크 접시에 정신없이 코를 박고 있던 리마가 고개를 들었고, 입 주위에 하얀 생크림이 산타할아버지 수염처럼 푸짐하게도 묻어 있었다.

“와. 얼굴에 다 묻었잖아.”

나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냅킨으로 리마의 입가를 구석구석 닦아 주었다.

그의 몸체에 묻은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물론 그랬다면 닦아 주지도 않았겠지만.

기분 좋아선 눈빛을 반짝이는 리마의 얼굴을 보니 진짜 누나라도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곧 리마 옆에서 이상한 짓을 하는 노엘에게 눈길이 가고 말았다.

‘……뭐 하는 거지?’

차마 물음표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지켜보는 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케이크에 손 하나 대지 않고 있던 그가 한 조각을 덜어 가던 모습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가 케이크 위의 생크림만 떠서 먹고 있었다는 것.

그래, 여기까지만 봐도 그냥 취향이겠거니 하며 지나칠 수 있겠지만, 그다음 행위를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겠다.

‘……뭐야. 왜 그러는 건데?’

나는 그와 식사를 겨우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었다. 그래서 잘 알았다.

그의 식사 예절은 최상급이었고, 그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입가에 뭐가 묻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명백히! 그가 일부러 생크림을 자기 얼굴에 묻히고 있었다. 무척 즐거운 모습으로.

나는 그 상태로 노엘의 눈과 마주칠까 봐, 그를 보지 않은 척 시선을 내 찻잔에 고정했다.

‘지금 내가 뭘 본 거야. 잘못 본 건가? 아닌데.’

찻잔에 담긴 불그스름한 홍차에 내 당황한 얼굴이 비쳐 일렁였다.

정말이지 기이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리사.”

이윽고 노엘이 나를 부르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어 그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으, 응?”

그는 아예 리마와 자리를 바꾸더니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그러니 달콤한 생크림의 향기가 내게 확 들이닥쳤다.

“나도.”

“응……?”

진정하고 겨우 고개를 드니, 노엘이 생크림으로 범벅된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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