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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44화 (44/145)

44화.

“알았어…….”

“저, 정말?! 알았다고 방금 말한 거 맞지? 말 바꾸면 안 된다?”

“응, 알았다니까.”

노엘은 리사의 가슴에 귀를 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쿵쿵. 쿵쿵쿵. 쿵.

그녀의 심장이 다소 크고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평범한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면 가슴이 이렇게 뛰진 않겠지.

‘정말로 나를 좋아하게 된 거야……?’

리사에게 믿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거절에 아주 익숙해진 상태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그저 말로만 하는 건 믿지 않게 되었는데.

쿵쿵. 쿵. 쿵쿵.

‘이런 소리라면 믿어도 될까…….’

아직도 그녀의 호흡이 불규칙하고, 심장의 소리가 크게 울린다.

‘확실히 나를 의식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듣기 좋은 소리였다. 가장 듣고 싶었던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그와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이 불안감의 이유를 결국 알아내진 못했지만, 일단은 그녀를 믿어 보기로 했다.

“노엘…? 설마 지금 잠든 건 아니겠지?”

노엘은 그녀의 심장 울림을 들으며 말했다.

“리사, 앞으로는 방에서 나가 돌아다녀도 좋아.”

이 말은 죽어도 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모든 혈관이 막혀 버릴 것같이 싫었다.

제발 그 허락만은 구하지 말아 달라고. 엎드려 빌고 또 빌며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저돌적으로 다가오다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녀는 결혼까지 결심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니 이 행복함을 선사해 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이렇게라도 보답한다면… 이 원인 모를 불안함도 사라지지 않을까.

“노엘… 잘 생각했어. 역시 네가 최고야. 숨통이 이제야 트이는 것 같아.”

저 최고란 단어는 언제나 그를 구름 위로 데려다 놓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만큼은 오직 그녀의 웃는 얼굴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중독성 있는 물질과 같았다.

“그런데 리사. 잊지 마. 절대 혼자는 안 된다는 걸.”

“응! 알았어. 절대로!”

“반드시 우리 중 하나와 함께해야 해. 그리고 저녁이 되기 전엔 꼭 돌아와.”

통금 시간이 생겼다.

“물론이야. 네가 말한 것… 다 지킬게.”

“미안해…. 내 멋대로 널 가두려 해서.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해야…….”

“알아. 내가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그러는 거잖아. 사실 나도… 혼자 다닐 땐 아주 무서웠어.”

그녀가 저렇게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면 정말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물론 위험하다는 거… 그것도 핑계 일부이긴 했다. 확실히 밖은 위험하긴 하니까.

그런데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리사, 어쩌면 네게 있어선… 내가 제일 위험할지도 몰라.’

그냥 나는…… 네가 내가 없는 곳을 다니는 게 싫은 거야.

내가 없는 곳에서, 다른 누군가와 네가 시간을 공유하는 게 싫어.

네가 나만 보고 나랑만 함께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무조건 가두어 두고 싶어.

‘그렇지만 이렇게 구질구질한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네게 들키고 싶지 않아….’

이 흉측한 어둠이 들키는 순간, 그녀가 자신을 떠나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숨겨야겠지? 그렇지?

대답 좀 해 봐, 리사.

***

“노엘……?”

뭐야. 결국 잠들었잖아.

그것도 내 품에 얼굴을 가득 파묻고 말이다.

‘하여간….’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노엘을 침대로 끌어당겨 제대로 눕혔다.

먹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무겁다니!

너무 무거워서 거칠게 잡아당겼는데도 그는 잠에서 깨질 않았다.

‘많이 피곤했나 봐.’

이불을 목까지 푹 덮어 주고 나니 얼굴만 빼꼼 나온 게 퍽 귀여워 보인다.

아무튼 오늘도 살아남았구나.

이제는 붉은 보석을 찾으러 가기도 수월해진 셈이었으니 앞으로가 기대되었다.

나는 당장 침대에서 내려와 홀로 기지개를 쭉 켰다.

너무 시원한 나머지 기쁨의 괴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 고생했다. 고생했어. 이제 퀘스트만 쭉쭉 해 나가면 되겠어!’

노엘이 성대한 청혼을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관건이었지만.

마침 딱 그걸 물어보려던 찰나에 저렇게 잠이 들고 만 것이었으니…….

‘그건 내일 물어보지 뭐.’

자려고 침대로 들어와서도 가슴 뛰는 것이 멈추질 않았다.

내일 찾으러 갈 붉은 보석이 기대된다고 이렇게까지 두근댈 리는 없었다.

과거 환영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심장이 조여 온다면 모를까.

그럼… 왜 이렇게 뛰는 거지?

맞다.

‘나 좀 전에 고백했었지. 당당하게 청혼을 준비하라고 하다니….’

이렇게 또 혼자 후폭풍을 맞고야 말았다.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렸다.

그리고 엎드려선 마른세수를 했다. 오히려 아까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인제 와서 화르르 화한 기운이 몰려왔다.

발가락을 접었다 폈다 몇십 번을 반복하니 쥐가 날 것 같았다.

‘미친 선택이었지만…… 결과가 좋으니 괜찮은 거겠지……?’

원래라면 그에게 절대 고백해선 안 되었다. 내가 과거의 리사가 아니라고 의심할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가 붉은 보석은커녕 영원히 이곳에 발목 잡히게 생겼는걸.

다행인 건 그가 믿어 주는 눈치였다는 것이다.

‘그래…. 잘한 거야. 노엘도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고…….’

괜히 그에게 못 할 짓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미안해. 노엘… 내가 과거의 리사가 아니라서…….’

모든 건 언젠가 꼭 밝혀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반드시 내가 탈출하기 직전이거나 이후여야만 한다.

그러니까… 노엘, 그때까지만 좀 속아 줘.

***

베키는 익숙한 곳에서 눈을 뜨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그리고 잠시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 그래…, 그랬었지.

베키를 타란티나에게 다시 데려다 놓은 건 노엘이었다.

자물쇠를 훼손해 리사를 데리고 나갔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무리도 아니라 여기긴 했다.

노엘이 뭔가 조처를 할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다시 거미줄에 가두어질 줄이야.

“해치지 않아요. 잘생겼어요.”

베키는 저 상냥한 척하는 거미의 주둥이를 당장이라도 막아 버리고 싶었다.

그사이에 다른 장난감이라도 생긴 건지,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미줄 덩어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덕분에 베키의 몸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근데 잘생겼다니…?’

설마 거미줄이 잘생겼다고 할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저 안의 내용물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볼록 튀어나온 머리통은 거미의 몸통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제게 말 좀 해 봐요. 잘생긴 은발의 왕자님.”

베키는 순간 ‘은발’이라는 단어에 눈이 크게 떠졌다.

자신이 아는 한 은발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으니 말이다.

꽤 희귀한 머리카락 색이기도 했고, 왕자님이라 할 정도의 외모라면 더욱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일지 몰랐다.

어쩌면 토드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귀를 더욱 쫑긋 기울였다.

“제게 말 좀 해 보세요. 잘생긴 은발의 왕자님.”

“…….”

돌림 노래라도 부르듯 반복하던 타란티나는 슬슬 짜증 수치가 오르고 있었다.

토드가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참았던 분노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말 좀 해 보라고 했잖아! 아. 화가 나요. 화가! 화가 난다고!”

영 다른 인격체가 되어선 목소리도 무섭게 달라졌다.

그런데도 토드는 그저 기절한 척 눈을 감고 있었다.

지쳐 버린 타란티나는 그를 내동댕이치려다, 그가 다칠까 봐 그냥 거미줄에 걸어 놓았다.

마침 베키 바로 옆에 그가 걸렸고, 타란티나는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거대한 엉덩이를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토드…?”

베키는 조용히 그를 불러 보았다. 거미줄 덩이 위로 볼록 나온 머리가 토드와 흡사해 보였다.

“이 목소리는……. 설마 베키…?”

토드는 베키의 목소리를 듣고는 목을 빼내어 고개를 최대한 쳐들었다.

둘은 눈이 딱 마주쳤고, 토드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목소리는 베키의 목소리인데……. 웬 하얀 귀신이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머리를 앞으로 다 내렸다면 무서워서 겁에 질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긴 머리는 귀엽게 뒤로 묶여 있었으니…….

“베키… 그러니까… 네가 베키란 말이지… 음…… 맞는 것도 같고…….”

토드는 천천히 베키를 뜯어보며, 어릴 적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실험 후엔 다신 볼 수 없으리라 여겼던 얼굴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함께 비슷한 나이를 먹은 모습으로 말이다.

“토드는… 겁도 없는 것이 지금도 여전하네요.”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짓는 베키를 향해, 토드는 그제야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베키! 역시 베키가 맞네. 진짜 반갑다. 너도 여전하네. 지금도 존댓말 쓰고 말이야….”

“그건 변하지 않을 거라 했잖아요.”

“하하. 아무튼… 정말…… 정말….”

그때 그 어린 날의 감정이 떠올라서였을까.

토드의 눈동자 속에 감격의 눈물이 가득 담겼다.

애써 꾹 눌러 참은 덕에 밖으로 흘러 버리진 않았지만,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보이고 그러세요.”

“……나 안 울었어.”

“머리 한 대 치면 후두두 떨어질 거 같은데 아쉽네요…. 이 거미줄에 팔이 묶여 버려서…….”

“……진짜 너무한다. 베키.”

베키는 이전과 달라진 것 하나 없는 토드의 모습에 안도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변하지 않았다고. 간절히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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