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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43화 (43/145)

43화.

발이 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계속 떨어지지 않길 바랐다.

“어서.”

노엘이 부드럽게 재촉했고, 나는 그의 선량한 미소를 이기지 못하고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섰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오늘따라 묵직하다.

거기다 나만 느껴지는 싸한 공기가 코를 뚫고 들어오는데, 마셔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아 베개를 끌어안았다.

여차하면 베개가 방패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하면서.

“나한테 뭐 할 얘기 없어?”

정적을 뚫고 먼저 입을 연 건 노엘이었다.

보통 저렇게 대화를 시작하면 연인 사이에 다툼이 오갈 확률이 높던데.

그런데 심각한 표정으로 꺼내야 할 말을 부드러운 미소로 하고 있다.

저 표정은 정말로 할 이야기가 없냐는 말 그대로의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내가 먼저 말을 해 주길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긴 한데.

일단 그럴듯한 핑계를 찾지 못한 게 문제였다.

베키가 자물쇠를 파괴해 주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내가 부수고 나왔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더 큰 문제는 내가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었다.

자물쇠가 터져도 나만 가만히 있었으면, 노엘이 뭐라 하진 않을 텐데.

꽉 안은 베개가 점점 축축해지는 것 같다.

노엘은 내 옆으로 다가와 이불을 전부 물리치고 밀착해 앉았다. 그러고는 새털처럼 가벼운 손놀림으로 내 옆머리를 쓰다듬었다.

“베키가 왜 이 방의 자물쇠를 훼손했을까?”

……!

베키… 너란 녀석. 이 의리 있는 녀석 같으니.

자기가 자물쇠를 파괴했다고, 노엘한테 말한 모양이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변호했다.

“내 생각엔… 베키는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날 구하려고 들어오려 했는데, 자물쇠 때문에 문을 열 수 없었던 거지.”

“……그래? 왜 네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까. 여기가 가장 안전한데….”

“이, 이 안에서 작은 벌레를 발견했거든! 그래서 난 비명을 질렀고… 그런데 지나가던 베키가 그걸 들은 거야.”

어쩌면 나는 여기서 거짓말의 장인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거짓말이라 생각해 혼자 감탄하고 있었다.

노엘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아하니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아니, 내 착각이었다.

“이상하네. 이 방엔 벌레 한 마리도 기어들어 오지 못할 텐데.”

“……응?”

“지금껏 한 번도 그런 걸 본 적도 없고 말이야.”

“……뭐야. 저번엔 그리마가 다닌다고 했었잖아.”

“그건 농담이었지. 네가 바닥에서 잔다고 하니까.”

그렇게 내 입술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굳은 입술과 함께 몸이 얼어붙었다.

반면 노엘은 자기 차례라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내 어깨를 감쌌고.

내 어깨를 부여잡은 손은 나를 부드럽게 밀어 쓰러뜨렸다.

별다른 저항 없이 누운 나는 내 위로 올라온 그의 얼굴에서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어떡할까…….”

“무, 무얼?”

노엘이 내 양손을 잡아 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렇게… 손을 꽉 묶어 버리면… 아무 데도 못 가겠지?”

“……?”

“하지만 이러면 네가 불편할 거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할 거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선 미친 듯이 쿵쿵거리는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게다가 손목이 끊어질지도 몰라. 네 손목은 여리고 가늘잖아. 그러니 이 방법은 안 되겠다.”

그게 그렇게 친절한 미소로 말할 내용이냐고 묻고 싶었다.

꿀꺽.

그래. 이 녀석은 다정한 녀석이다.

잊지 말자. 이 녀석은 내게 해를 가하지 않을 거야. 적어도 과거 리사의 형태를 한 내겐.

그야말로 노엘 한정 무적 갑옷을 입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노엘…. 연인 사이에 구속이라니……. 이런 건 옳지 않아.”

“그럼… 당장 결혼할까?”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도대체 널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해야 내 말대로 있어 줄 거야.”

나라고 좋아서 나가는 게 아니었다. 여기가 제일 깨끗하고 안전하고, 살 만했다.

하지만 붉은 보석을 찾아 빨리 이 무서운 게임을 끝내고 싶었다.

노엘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반대여도 너무 반대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렇다고 달아나 봤자 공포의 숨바꼭질만 또 시작되겠지.’

그야말로 사면초가이다. 별장 감금도 모자라 방 안에서까지 감금이라니.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노엘. 난 이 안에서만 있고 싶지 않아. 답답해서 숨이 막힐 거 같아…. 내 안전을 걱정하는 거라면… 베키도 있고, 리마도 있으니… 동행을 해서라도 내게 외출할 시간을 주면 안 될까?”

일단 차분히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지켜본 노엘은 그래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으니까.

“간혹 네가 있는 날이면, 네가 나와 함께 다녀 주어도 괜찮고!”

붉은 보석은 어차피 나한테만 보이니 누구와 함께 다녀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이제 선택권이 노엘에게로 넘어갔고, 나는 숨죽여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바로 대답하는 것 대신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 짧은 입맞춤이 긍정의 의미라 생각한 나는 드디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는데.

“안 돼. 절대 여기서 한 걸음도 못 나가.”

그 미소는 금세 썩어 들어가 억울하게 찌그러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건지.

“왜? 어째서!”

살짝 흥분해서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가 여전히 머리 위의 손목을 잡고 있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토드가 널 만나려 해.”

“뭐…?”

아니, 갑자기 토드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건지.

그가 살아 있을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노엘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싫어. 밖에서 돌아다니다 네가 토드랑 만나게 될까 봐.”

“내가 토드를 만나면… 안 돼? 토드는 네 친구이기도 하잖아.”

물론 그들이 원수처럼 되어 버린 속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이후에 환영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는 일이었지만.

“친구 아니야.”

그 이후에도, 앞으로도 이 둘의 관계는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어쩐지 온몸의 기운이 쭉 빠졌다.

“어차피 난 네 곁에 있는걸. 어째서 토드를 그렇게 경계하는 거야.”

“겉으로는 내 연인이지만… 넌 토드를 사랑하잖아.”

지금 그가 알고 있는 표면적인 사실은 최근 내가 본 환영들의 관계와 다름없었다.

이런 상태로는 노엘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감금 생활이 지속될 것이었다.

그의 신뢰를 얻으려면, 역시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야 할 텐데.

머릿속이 뒤죽박죽 어지럽고 복잡했다.

‘다… 단순하게 가자. 단순하게.’

그래. 이리저리 복잡하게 구는 건 원래의 내 성격상으로도 맞지 않았다.

단순하고 정확한 것이 최고다.

다만 작전을 수정해 변경해야 했다. 그러기로 결심했다.

“노엘, 나는…… 달라졌어. 그때와 지금의 나는 아주아주 달라.”

“…….”

“지금의 나는 사실 널 좋아하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좋아졌다고.”

일단은 이렇게 시간을 벌어 볼 셈이었다.

그가 나를 믿는다면…, 나도 당분간은 붉은 보석을 마구마구 찾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 믿었다. 이러지 않으면, 영원히 감금되게 생겼으니까.

“정말… 이야? 정말이라고?”

그는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낯빛을 띠었다.

“응. 나 지금 너한테 고백하는 거야.”

“…….”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듯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신뢰를 얻긴 부족할 것이었다. 환영 리사도 그와 연인 관계까진 갔었으니까,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만 한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붙여 그에게 단단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청혼할 준비 해.”

“리사……. 진심…… 이야? 지금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무슨 의미인 건지…… 잘 알고 하는 거 맞지?”

“내가 애도 아니고. 그걸 모르겠어?”

“…….”

속으로 눈물을 삼킨 나는 그를 향해 최대한 예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식으로 고백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를 속이는 일이 탐탁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탈출 전까지 내가 살려면, 그를 속일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나는 그가 청혼을 준비할 시간에 붉은 보석 퀘스트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나갈 생각이었고.

그러려면…… 더욱 규모가 큰 숙제를 내줘야겠지.

“노엘, 나는 청혼이 아주 화려하고 성대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나… 어쩌면 이런 거엔 좀 까다로운 여자일지도 몰라.”

사실은 완전히 정반대지만, 당분간은 사치스럽고 까탈스러운 여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그래야 시간도 많이 벌 수 있겠지.

“리사. 널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원한다면 내 심장이라도 떼어 줄 수 있거든.”

그랬지. 이 녀석은……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녀석이다. 틀림없이.

“그런데 그 정도 요구도 못 들어주겠어?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아주 성대히 준비해 볼게.”

그가 다시 한번 내 입술을 달콤하게 물들였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모양인지 눈이 계속 반짝인다.

“노엘… 그럼, 이제 토드는 신경 쓰지 않는 거지?”

“…….”

어쩐지 불안하다. 반짝이던 눈빛이 갑자기 꺼져 버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날 가두려 한다면? 그럼 안 되는데.

지금은 내가 그에게 확신을 강하게 심어 주어야 하는 때다.

한 번 심호흡한 나는 양손을 빼내어 내 위에 엎드려 있는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주어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노엘, 봐. 지금 내 눈엔 너만 보여. 네가 날 믿어 주지 않으면… 나는 대체 어떡해야 해? 이런데도 계속 불안해할 거야? 나 지금 결혼을 결심한 거라고.”

그는 여전히 입을 떼지 못했다.

내 작전과는 별개로, 불안하게 떨리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과거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

그가 이렇게 된 것이 무리도 아니었다.

과거의 시간이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아직도 다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끌어와 내게 깊숙이 맞추었다.

그렇게 생명이라도 불어넣는 듯 반복하기를 여러 번 했을까, 그의 안색이 점차 환해지며 생기가 돌았다.

“리사, 널 믿어. 믿을게.”

되… 된 건가?!

둘 다 얼굴이 짙은 분홍빛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다소 거칠어진 호흡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그럼, 이제 나도 방 밖을 나가도 되는 거지?”

“…….”

제발……, 제발요……!

“노엘…?”

노엘은 입술을 꾹 다물곤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그것만은 정말 싫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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