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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40화 (40/145)

40화.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이런 느낌이 들면 항상 그냥 넘어간 적이 없던 것 같은데.

나는 떠나기 전, 노엘의 방 안을 휘- 둘러보았다.

아무 이상 없었다. 평소 그대로인데.

“후….”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침대 밑까지 확인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오늘따라 좀 예민해진 건가 싶어 문손잡이를 쥐었는데.

철컥.

……?

문고리는 잘만 돌아가는데, 문이 당겨지지 않았다.

“뭐, 뭐지….”

철커덕. 철커덕.

연속해서 잡아당겨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아무리 시도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문에 귀를 대어 보니, 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밖에서 묵직한 것이 같이 흔들렸다.

‘이 소리는…?’

자물쇠였다.

문밖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세, 세상에…….’

그럼 그렇지. 그 직감이 틀릴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노엘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왜 오늘은 나가지 말란 말을 안 했던 건지.

‘어차피 못 나갈 테니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였어.’

어제의 약속을 깬 대가가 이거였구나.

자물쇠는 대체 언제 설치해 둔 건지. 정말이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러니까, 나… 지금 감금된 거지?’

감금이라니, 감금이라니! 노엘이 날 감금했다고?!

턱이 지진 난 것처럼 쩍 갈라졌다.

그렇게 달콤하게 행동할 땐 언제고.

이렇게 날 가두면 이따 돌아와서 무슨 낯으로 마주할 생각인 건지….

내가 화낼 거란 생각은 해 보지 않은 건가?

하긴 어차피 규칙은 나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화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와. 이게 뭐야.’

붉은 보석 퀘스트를 진행할 생각에 한창 마음이 들떠 있었는데 말이다.

울컥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속상해서 눈물까지 나오려 했는데, 그건 너무 바보 같아 꾹 눌러 참았다.

툭!

대신 죄 없는 문에 발길질했다. 그러다 발가락 끝이 잘못 닿았는지 찌릿한 고통이 전해졌다.

“으익!”

겨우 신음을 삼키며 주저앉아 발을 감싸 안고 있을 때였다.

“리사? 거기 혼자 있어?”

문밖에서 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키? 베키! 노엘이 날 가뒀어. 이게 말이 돼? 밖에 자물쇠 걸려 있는 거 보여?”

엄마한테 이르는 아이가 된 기분이다.

“잠깐 기다려 봐.”

“응? 기다려 보라니…?”

왜? 뭘 어떡하려고.

베키가 어디로 가 버린 건지 조용해졌다가, 쇠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오니 벽에 기댄 채 놓인 사람 머리만 한 돌망치가 보였다.

자물쇠가 걸려 있던 부분이 아주 박살이 나 쇳가루가 사방에 튀어 있었다.

“베… 베키, 강하네. 구해 줘서 고마워.”

“…구해 주긴, 노엘이 널 지키려고 가둔 걸 내가 파괴해 버린 거지.”

그것도 그렇긴 하네….

베키의 말을 들으니 속상했던 게 조금은 가라앉는다.

어쨌거나 의도는 좋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매번 약속을 어기기도 했고…. 약속을 어기긴 할지언정 들키진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약속하지 않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이렇게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베키… 근데 노엘이 이렇게 해 놓은 걸 알면… 너 괜찮은 거야?”

나는 난장판이 된 문 주위를 내려다보며 걱정했다.

베키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까딱했다.

“미쳤어? 당연히 내가 했다고 하면 안 되지.”

“아니! 그, 그럼?! 누가 했다고 해?”

“나는 모르지. 내 할 일은 끝났으니 이제부턴 네가 알아서 해.”

허…….

“베키… 매몰차네….”

노엘 몰래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얼른 가자고.”

“어, 어딜?”

“붉은 보석 찾으러.”

“응? 거길 같이 가겠다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네가 붉은 보석으로 무얼 보는 건지.”

그래, 베키는 목적이 다 있었구나.

그래서 날 구해 준 거였나. 감동이 금방 식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름 퀘스트 동료를 얻은 기분이라 좀 설레긴 했다.

이곳에서 내가 무얼 하고 다니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베키뿐이기도 했으니까.

“알았어. 그런데 그 환영이 타인에게도 보이는지는 나도 잘 몰라.”

“가 보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나와 베키는 4층으로 내려갔다.

삐걱삐걱.

혼자 내려갈 땐 좀 덜했는데, 베키와 함께 계단을 밟으니 나무 소리가 좀 더 선명히 났다.

아무 말 없이 가자니 이 시간이 아쉬워질 것 같아 그녀와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입을 떼려고 했는데, 베키가 나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네가 리사가 아닌 걸 알면, 노엘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도 마침 그렇게는 생각하고 있었어.”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말했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 리사에 대한 노엘의 사랑은 광기를 품은 집착에 가깝거든.”

그래서였을까?

베키가 마지막까지도 노엘에게 고백하지 않았던 이유가.

나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었다. 일단 이 공포 게임에 집착남이란 키워드 정도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거기에 이젠 감금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베키, 지금도 노엘을 좋아해?”

내 질문에 베키는 특별히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도 알고 있냐며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랄까.

“좋아하긴 해. 하지만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아니야.”

“그를 오래 좋아했다고 들었어.”

“그랬었지.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 그런데 이제야 알았어.”

그녀는 한 번 뜸을 들였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러니까 괜히 더 궁금해져서 그녀를 재촉했다.

“무얼?”

“난 그를 진정으로 좋아한 게 아니었어. 리사를 좋아하는 그의 모습에 설렜었고, 좋아하게 된 거라 착각한 거였지.”

“너… 집착하는 남자가 취향이었구나.”

“…….”

나는 이해한다는 듯 으쓱거리며 베키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베키의 번뜩이는 흰자를 보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나, 나도 그런 게 취향이긴 해. 하하.”

리마처럼 등짝이라도 맞을까 봐 등 뒤가 다 서늘했다.

“도움을 구할 일이 있으면… 내게 언제든 말해. 도와줄 테니까.”

베키의 갑작스러운 따스한 말에 가슴이 급격히 뭉클해졌다.

이 별장에서 내 탈출을 돕겠다는 이가 생길 줄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를 내놓으라며 죽일 듯이 달려들었던 그녀였는데 말이다.

결국 그녀가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던, 의문의 목소리가 했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베키, 나 적응이 안 돼. 네가 갑자기 이렇게 잘해 주니까…. 게다가 네 마음이 또 바뀔까 봐 두렵기도 하고.”

“너는 이렇게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재주가 있어. 노엘 앞에선 더욱 주의하도록 해.”

“…….”

“너를 도와주겠다는 내 마음이 바뀔 일은 없어. 그러니 안심해.”

“고마워.”

“네가 그랬지. 내 친구가… 네게 나를 부탁했다고.”

“응…. 그건 정말 사실이야.”

어느덧 실험실 아이들의 숙소에 다다랐다.

“그 녀석이 나를 아무한테나 부탁할 리 없어. 그러니 이제부턴 네가 내 친구가 되도록 해.”

“진짜 친구를 하자는 거야? 아니면 노엘을 속이기 위한 위장 친구가 되자는 거야?”

어느 쪽이든 나로선 잘된 일이긴 했다.

“둘 다 하지 뭐.”

나와 마주친 베키의 눈빛이 쑥스러운 듯 진지하게 떨렸다.

그 떨림에서 느껴진 이 평온한 감각은 마음껏 믿어도 될 것 같았다.

***

아이들의 숙소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던 중, 붉은 보석이 눈에 감겨 들어왔다.

리사의 개인실 맞은편엔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 근처 창가 옆 흔들의자 위에서 빨갛게 빛나는 중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달려가 팔을 뻗어 보석을 가리켰다.

“베키! 이거야. 이거! 이거 보여?”

베키는 내가 가리키는 쪽을 훑더니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전혀. 아무것도. 의자 위에 붉은 보석이 있다는 거야?”

“응…. 네겐 안 보이나 보네.”

“……그럼 이번엔 환영을 보여 봐.”

실망한 표정의 베키가 입술을 내밀며 말했고, 나는 곧장 보석을 손에 쥐었다.

그러자 주변 환경이 햇살이라도 받는 듯 밝아졌다.

그리고 흔들의자에는 지금처럼 커진 노엘이 앉아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처음 보는 사람인 듯 무척 낯설었다.

“이익!”

“왜 그래? 뭔데! 환영이 나타났어?”

역시 베키에게는 환영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응. 역시 나한테만 보이나 봐.”

“……어쩔 수 없군. 그럼 난 이 근처에서 망이나 보고 있을게. 끝나면 나와.”

“정말? 그래 주면 고맙지! 끝나면 바로 나갈게.”

베키는 허탈해하면서도 금방 시원하게 미련을 버렸는지 망설임 없이 나갔다.

나는 감격해선 한동안 베키가 걸어 나간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베키가 망까지 봐 준다니.’

내 예상대로 정말 좋은 녀석이었다.

[언제 오려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많이 늦었네.]

나는 그제야 내가 환영을 불러냈단 사실을 자각했다.

“아! 안, 안녕! 노엘….”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노엘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생김새는 역시 지금과 거의 똑같았고 목소리도 같았다. 키도 지금처럼 잘 커진 걸 보니 노엘이 맞긴 했는데.

환영으로 보는 노엘은 어딘가 색다른 느낌이다.

과거의 모습이라 그런 건가… 싶기도 한데.

환영 노엘은 석류알 같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눈웃음쳤다.

[아무튼 늦게라도 와서 다행이야. 네가 내 어린 모습만 좋아할까 봐 걱정했어.]

“그렇게 말하니 뭔가 내가 많이 불순해 보이는데…?”

그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서로 사이가 살벌하게 틀어지고, 몇 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을 텐데….

그 뒤로 무슨 상황이 된 건지 아직 잘 몰라서 궁금했다.

[네 얼굴을 보면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것 같아. 맞아! 나 오늘 기분이 엄청 좋아.]

상큼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어쩐지 내겐 불안감을 던져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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