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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37화 (37/145)

37화.

베키가 상심해서 그렇다는 꼬마 리사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제 소중한 친구를 잃어서 그랬구나.

그런 친구의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어서, 그녀도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죽어야 그녀를 되찾을 수 있다니, 더 자세히 들어 봐야겠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까지 베키가 내게 한 짓이 설명된다.

하지만.

“그러면 나는? 네 말대로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너는 죽게 되겠지. 내가 아는 한 그래.”

“뭐? 그런 법이 어딨어!”

내 볼을 타고 떨어지는 뜨거운 것이 베키의 눈물일 수도, 내 눈물일 수도 있겠다.

혼란스럽지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베키, 지금은 네게 친구를 돌려줄 수 없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 역시 정말 살고 싶어.”

살아서 돌아가고 싶어. 돌아갈 거야.

입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야 더욱 간절해진 느낌이 들었다.

질긴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고, 베키의 눈물도 계속해서 내 뺨에 내려앉았다.

“정말… 정말 미안해…….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원한 게 아니야.”

이 의문을 해결하려면 나는 계속해서 붉은 보석을 찾아가야 하겠지.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땐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을까?

“젠장……. 젠장!”

베키는 들어 올렸던 긴 손톱을 내리꽂아 내 얼굴 바로 옆 바닥을 할퀴었다.

내 목을 쥐고 있던 다른 손은 이미 놓은 지 오래였다.

나는 계속 감정이 북받쳐 흐느꼈고, 베키도 옆에 앉아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그러고 있는데 오른쪽 손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내 손을 잡은 매끈한 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신이 붉은 인간형 몸체가 떡하니 옆에 누워 있었다.

새빨간 얼굴에 머리카락이라곤 한 가닥도 없었고, 이목구비의 위치에 전부 눈만 달려 있었다.

그렇게 튀어나올 것같이 돌출된 눈알 다섯 개가 똑같이 움직여 나를 응시했다.

……눈물이 절로 뚝 그쳐졌다.

나는 침착하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고, 베키의 치맛자락을 슬쩍 당겼다.

눈물을 말린 베키가 내 쪽을 돌아보더니 멈칫했다.

“베… 베키…….”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그저 베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간 혼절할 것 같았다.

괴물의 형태도 그렇지만 분위기가 무언가… 상당한 위화감이 드는 것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베키가 또 나를 두고 혼자 가 버릴까 봐 두렵기도 했다.

“…….”

베키도 내 옆에 드러누운 흉물스러운 것에 할 말을 잃은 모양이었다.

오래 가지 않아 베키의 긴 머리카락이 일제히 위로 솟구쳤다.

높게 솟구친 머리카락은 곧 한꺼번에 쏟아지듯 나를 넘어갔고, 내 손에 닿아 있던 오싹한 감촉도 튕겨 나가듯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마자 나는 곧바로 굴러 일어나 베키가 밀쳐낸 괴물의 위치를 파악했다.

내동댕이쳐진 붉은 괴물은 천천히 두 발로 일어섰다.

그헉. 그헝. 그웨에에엑…….

턱 밑이 입처럼 뚫려 있는지, 검은 액체를 폭포수처럼 쏟아내었다.

한껏 쏟아낸 끝엔 나와 베키를 쳐다보았는데, 다섯 개의 눈알들이 여러 방향으로 각자 움직였다.

“내 뒤로 와.”

베키가 속삭이며 나를 자신의 등 뒤로 서게 했다.

그러니 내 마음이 뭉클해진 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내가 베키를 의지하는 날이 올 줄이야…….’

아직도 얼떨떨하긴 하지만, 내 앞에 서 있는 그녀의 작은 등이 이렇게 든든할 줄은 몰랐다.

“내가 질 거 같으면 먼저 도망쳐.”

베키는 저 괴물과 싸우려는 듯 오른팔을 앞으로 뻗어 손톱의 날을 세웠다.

“아니, 기껏 거미한테서 구해 줬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러니까 반드시 이겨!”

정말 어떻게 돼 버리는 게 아닐까 두렵고 또 두려웠지만, 그녀를 혼자 두고 내빼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급히 주위를 살펴 무기가 될 만한 걸 탐색했다.

하지만 이 계단 주위의 복도는 다른 의미로 너무나 깨끗했다.

다시 한번 무기 소지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깨닫고 있던 찰나.

붉은 괴물이 뼈를 휘며 몸을 공처럼 웅크렸다.

으드드드득.

……?!

나와 베키는 괴물의 기괴한 유연성에 바짝 긴장했다.

도대체 무슨 공격을 해 오려고 저러는 걸까.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한 순간이었다.

동그랗게 몸을 말던 괴물이 이윽고 터져 버리듯 튕겨 올랐다.

“끼야악!”

갑자기 그러니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 엄청난 점프력은 한 방에 우리 앞으로 덮쳐 왔고, 다리가 굳은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철퍼덕!

츠스스스. 츠스스스.

이미 괴물한테 덮쳐지고도 남았을 때였다.

리마의 소리가 들리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리마!”

눈을 떠 보니 베키가 나를 보호하듯 안고 있었다. 그녀도 괴물의 행동에 몹시 놀란 모양인지 가녀린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너머엔 리마의 몸집이 가득 채우고 있었고, 붉은 괴물의 몸통에 다리를 네 개나 찔러 넣은 직후였다.

붉은 괴물은 리마의 다리에 꼼짝 못 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 뚫린 몸통에선 검은 액체가 또 줄줄 흘러나왔다.

“누나, 누나가 왜 여기 있어? 큰일 날 뻔했다고! 웩! 이건 뭐야…….”

리마는 액체를 흘리는 붉은 괴물이 너무 징그럽다며 얼굴을 구겼다.

그도 처음 접하는 괴물인 모양이다.

“흑, 리마!”

나는 리마를 향해 반가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곤 베키를 끌어안아 놀랐을 그녀의 등을 위아래로 쓸었다.

그녀도 흉측하게 생긴 거에는 이렇게나 약한가 보다.

싸우겠다고 당당히 앞에 설 땐 언제고… 날 껴안아 버리다니.

지난번 일도 그렇고 은근히 허세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리마가 안 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쨌든 중요한 건 베키가 혼자 도망가지 않고 나를 감싸 주었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진전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중이었는데.

‘나… 조금은 기대해도 되는 건가.’

어쩌면 베키에게 내 상황을 이해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리사.”

잠시 평온함을 누리려 했는데, 노엘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목덜미가 다 서늘해졌다.

“노엘……?”

노엘도 요란한 소리를 듣고 온 것 같은데.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을 완전 딱 걸리고 말았다.

‘미치겠다…….’

노엘은 오자마자 내 몸을 발가벗겨 분해라도 시킬 듯 꼼꼼히 훑었다.

베키도 그제야 내게서 조금 거리를 두었고, 진정된 듯 더는 떨지 않았다.

“으앗.”

노엘이 내 턱을 소중히 감싸 자길 바라보도록 들어 올렸다.

“우리 이야기는 이따 내 방에서 단둘이 있을 때 하자.”

예상 밖의 따듯하고 포근한 미소였다.

그런데도 소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나 혼자 찔려서 그런 거겠지?

“4층의 문이 작게 뚫렸었어. 거기서 이 괴물이 나왔고, 따라와 봤더니 누나를 공격하고 있었어.”

리마는 노엘에게 빠르게 상황을 전달했다. 마치 상사에게 보고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는데.

노엘은 리마 다리 밑의 붉은 괴물을 매섭게 내려다보았다.

이미 그 시선만으로도 수천 번은 해치웠을 것이었다.

“데릭은 어딨지? 데릭이 보이지 않는데.”

“지금 데릭이 혼자 그 문을 막고 있어. 다른 놈들이 들어오진 않은 걸 보니… 아직 잘 막고 있나 봐.”

“좋아. 그럼 리마, 넌 이제 다시 그리로 가서 데릭과 문을 복구시키도록 해. 할 수 있지?”

“응! 문 아래쪽만 부서진 거라… 어떻게든 막을 수는 있을 거 같아. 근데 이건 어떡할까……?”

리마는 다리에 꽂힌 괴물을 내려다보며 여전히 징그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바퀴벌레 알을 브런치로 먹는 녀석치고는 비위가 생각보다 약한가 보다.

붉은 괴물은 꾸르륵꾸르륵 꿈틀거리더니 다시 한번 검은 액체를 주룩주룩 뿜어냈다.

“으아악. 뭐 하는 거야! 뿜지 마! 뿜지 마아아!”

기겁한 리마는 안색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머리. 머리를 찔러.”

노엘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기울였다. 급소를 찾은 듯했다.

눈썹 끝이 주르륵 흘러내린 리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네 번째 다리로 괴물의 머리를 빠르게 찍었다.

그러자 괴물의 다섯 눈알이 밖으로 툭툭 떨어져 나왔고, 전신이 점차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괴물이 죽으면 저렇게 되는 건가…….’

생각보다도 훨씬 깔끔한 죽음이었다. 저 정도면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입을 틀어막고 있던 나는 이번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천천히 심호흡하며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

노엘과 방으로 돌아왔다.

리마는 데릭을 도우러 갔고, 베키도 함께 돕겠다며 따라나섰다.

베키는 헤어지며 내 귀에 작게 속삭였는데 또 보자는 말이었다. 그땐 못다 한 얘기를 할 수 있겠지.

그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까 나를 감싼 그녀의 행동만 본다면 희망적이었다.

정말 다행이라 생각해 작게 미소 짓는데, 깜박 잊었던 게 있었다.

“리사는 왜 이렇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까?”

“으, 응?”

부드러운 노엘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살포시 날아들었다.

“생각해 봤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단 말이야.”

“그, 그게…… 그러니까…….”

그의 살짝 풀어진 눈두덩이가 더욱 날렵한 눈매를 완성해 보였다.

“대체 무얼 하려고 자꾸만 나가는 거야? 리사,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봐.”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붉은 괴물이 뿜어낸 검은 액체보다도 진할 것 같은 농밀한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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