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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36화 (36/145)

36화.

털북숭이 여덟 다리가 대리석 바닥을 튕겨 오르며 돌진했다.

거미 소녀는 바람을 휘몰아치며 노엘의 앞으로 내려앉았다.

그의 앞에 선 그녀는 화들짝 놀라 높이 들어 올린 더듬이 다리를 거두었다.

“이런! 노엘이었네요. 큰일 날 뻔했어요.”

그녀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곤 맨 앞에 있는 더듬이 다리로 눈을 비비적거렸다.

시력이 좋지 않아 가까이 있어야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보는 그녀였다.

눈 하나 깜박하지 않던 노엘은 여전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타란티나, 무얼 그리 찾고 있는 거지?”

타란티나로 불리는 거미 소녀는 그제야 놓쳐 버린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였어요. 노엘이 전에 말했던 그녀가 내 방에 들어왔었어요. 그래서 해치지 않겠다고 했는데…….”

타란티나는 노엘의 손에 잡혀 있는 은발의 미남에게 시선을 흘깃거렸다.

그쪽으로 새롭게 흥미가 생겼는지 입맛까지 다시고 있었다.

“리사인가 보구나. 어디로 갔나 했는데… 하필 네 방을 찾아갈 줄이야.”

노엘은 단번에 그녀임을 확신했다.

타란티나가 그녀를 찾고 있었다고 하니, 리사는 붙잡히지 않고 도망간 모양이었다.

어쩌면 리사가 붙잡아 두었던 베키를 보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 바람에 노엘은 영 탐탁지 않은 듯 미간을 좁혔다.

“베키는 잘 잡아 두고 있는 거겠지?”

“그럼요. 제가 잘 묶어 놨는걸요. 제 방에서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절대 해치지 않았어요.”

“그래, 가는 길에 잠시 네 방이나 좀 들르지. 베키를 봐야겠어.”

“저… 그런데 지금 찾고 있던 건 그럼 어떡하지요?”

“그만 찾아. 네가 이러고 있을 때 이미 다른 곳으로 가 버렸을 거야.”

노엘은 타란티나의 뒤쪽 공간을 쓱 훑으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동그란 테이블들이 가지런히 뒤집혀 있는 걸 보니 헛수고도 이런 헛수고가 없었다.

거기다 이미 반은 넘게 뒤집혀 있었으니.

노엘은 타란티나가 저렇게 삽질할 동안 리사가 얌전히 기다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베키를 보았다면 분명, 그녀를 구하려 할 것이었다.

“네, 그럼 제 방으로 안내할게요.”

노엘은 묶여 있는 토드를 타란티나에게 짐짝처럼 내던졌다.

“이거 좀 등에 실어 줄래?”

“물론이에요. 가볍네요.”

타란티나는 더듬이 다리로 토드를 공주님 안아 올리듯 들었다.

굳이 등에 두지 않은 이유는 그를 조금이라도 더 흘겨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토드는 그저 말없이 그녀의 기묘한 모습을 훑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타란티나의 방.

바닥은 검붉은 액체로 뒤덮여 있었고 거대했던 거미줄은 가운데가 녹아내려 끊어져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내… 내 거미줄이랑… 베키가 사라졌어요!”

당황한 타란티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바닥의 유리 항아리를 본 노엘은 어쩐지 리사가 떠올랐다.

그녀가 베키를 구했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베키는 리사를 공격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그녀가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타란티나에게 베키를 좀 잡아 두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는데.

그걸 리사가 또 구해낼 줄이야.

“하…. 하하…….”

그녀의 행동은 언제나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렇게나 겁이 많으면서도 자꾸만 밖으로 나가 움직이고야 만다.

‘그 녀석한테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런데도 구한 거라고….’

베키도 구해내는 그녀라면, 언젠가 저 자신도 구해 주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그녀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다.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안 되겠네. 진짜 안 되겠어. 정말 이대로는…….”

타란티나와 토드는 웃었다가 오싹해졌다 하는 노엘을 보며, 영문을 몰라 미간만 좁힐 뿐이었다.

이내 노엘이 소매의 풀린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타란티나, 베키는 되었으니 이번엔 그 녀석이나 좀 데리고 있어 줘.”

“그, 그렇다면! 제가 먹어도 되나요?”

노엘은 그것도 괜찮겠다는 듯 광기 어린 얼굴로 답했다.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이 방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못 나오게만 해 준다면.”

기뻐하는 노엘의 얼굴에 타란티나도 안심해선 절로 신이 났다.

“네, 정말 감사해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셔요.”

타란티나는 토드의 하얗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더듬이 다리로 쓰다듬었다.

그녀의 인형이라도 된 것 같은 토드는 노엘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노엘, 네가 이런다고 리사가 널 좋아하게 될 일은 없어. 우린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노엘은 방을 나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코웃음 쳤다. 토드의 도발에도 이젠 신경 쓰지 않는 듯 동요하지 않았다.

“너야말로 이제 정신 좀 차려. 뭐, 타란티나가 잘해 주겠지만.”

노엘이 나가고, 타란티나는 다시 거미줄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잠시 그녀의 등에 매달려진 토드는 폐 속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간지러운 한숨 소리에 타란티나는 얼굴을 수줍게 붉혔다.

“토드는 잘생겼어요. 정말이지 외모는 제 취향이에요.”

“…….”

“예뻐해 줄게요. 해치지 않아요.”

“…….”

***

얼마나 달렸을까, 극도의 긴장감에 숨도 쉬지 않고 달렸다.

나와 베키는 어느새 4층까지 올라와 계단 근처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허억. 헉헉.

나는 베키를 무사히 구해냈다는 성취감에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 내가 해내다니… 미쳤다. 진짜…!”

그 지옥 같은 곳을 무사히 빠져나오다니.

하, 진짜…….

기뻐선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다리가 공포를 잊지 못해 후들거렸다.

베키는 아직 마주 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리사가 나를 부탁했다는 게 무슨 말이야?”

나는 그녀가 그것부터 궁금해할 줄 알고 있었다.

“이 별장에 붉은 보석이 있어. 그것과 접촉하면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 수가 있었고…. 그렇게 네 친구를 만났어.”

“붉은 보석? 말도 안 돼……. 리사가 그런 걸로 너에게 말을 걸었다고?”

“물론. 지금까진 겨우 너희의 어릴 적 모습만 보았을 뿐이지만.”

“그럴 수가…….”

머리카락에 가려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어떤 감정일지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널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나는 그대로 행한 것뿐이야.”

“고작 과거 망령이 하는 부탁에 네 목숨을 걸었다고?”

“네가 날 구하려다 저 거미한테 걸려 끌려가고, 내가 정원사한테 죽을 뻔했던 그날. 그녀가 날 구해 줬거든.”

“……그날은….”

“네가 정말 날 버리고 간 줄 알았어. 진짜로 살려 준 건 아니지만 조금은 고마웠던 것 같아.”

베키도 그날의 일을 떠올린 듯 말을 머뭇거렸다.

“이제 내 할 일은 끝났으니 여기서 헤어지자고. 기껏 살려 놨으니 몸조심해.”

나는 멋있는 척 그녀의 손을 먼저 놓았다.

힘없이 풀리는 베키의 하얀 손과 함께 뒤돌아서려는 찰나였다.

내 팔을 잡는 차가운 손의 감촉이 가녀리고 부드러웠다.

“다른 말은? 다른 말은 없었어…?”

“응, 그저 널 부탁한다고밖에는….”

더 이상 길게 할 말은 없어 나도 아쉬웠다.

“나도 리사를 다시 만나고 싶어. 나도 보게 해 줘!”

베키가 이렇게 나를 간절히 잡는 일은 앞으로도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내 팔을 붙든 그녀의 손이 점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미안, 그건 나도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게다가 네겐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아마 그럴 것이었다.

그 목소리의 울림도 내 머릿속에서만 들려왔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베키는 내게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이제는 아예 내 멱살을 잡을 것처럼 다가왔으니, 나는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곧장 내 목에 그녀의 손이 뻗쳐 들어왔다.

“역시 널 죽여야겠어. 너만 죽이면…!”

“베, 베키…! 우리 지금 살아남은 지 얼마 안 됐거든? 진정해!”

콜록.

나는 베키의 손을 떨쳐내려 양손에 힘을 주었지만, 목이 조여 올수록 힘이 빠져나갔다.

“하윽…….”

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당황한 나는 다리를 버둥거렸다.

그 어마어마한 힘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말이지 이 녀석은 아무리 구해 주고 친절하게 대해 줘도 답이 없나 보다.

돌아오는 건 내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뿐이었으니.

“베… 베키. 너 진짜… 못됐다…. 콜록.”

순간 베키가 나를 집어 던졌고, 나는 벽에 등을 부딪쳐 쓰러졌다.

“아악!”

머리 위에 별이 떠다닌다는 게 이런 기분인 걸까.

높고 까만 천장의 샹들리에가 또렷하게 보일 즈음이었다.

베키가 달려들어 본격적으로 내 목을 짓눌렀다. 이어서 긴 손톱을 높이 쳐들고 나를 위협했다.

나는 저 뾰족한 손톱이 어디를 찌를지 궁금해졌다. 눈을 찌르려나? 아니면 목을 그으려나?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쉽사리 내 목숨을 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일단 몸에 힘을 쫙 푼 다음 방심한 틈을 노려 확 일어나 버릴 참이었다.

예상대로 내 몸이 축 늘어지자 그녀도 이전보단 옅은 힘으로 내 목을 쥐었다.

이때다!

싶은 찰나 얼굴 옆으로 흰 머리카락이 길게 흘러 내려왔다.

도망칠 곳을 찾던 눈동자를 위로 모으니, 베키의 얼굴 전면이 한눈에 들어왔고.

커다란 물방울이 내 얼굴에 툭 묵직하게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그녀의 몸이 떨리고 어깨가 들썩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그녀의 간절한 눈과 일직선으로 마주쳤을 땐, 나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를… 내 하나뿐인 친구를 돌려줘. 너만 죽으면… 아니, 네가 죽어야 그녈 되찾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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