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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35화 (35/145)

35화.

거미 소녀는 내 뒤쪽 라인의 수납장 쪽에 와 있었다.

꼼꼼히 차례대로 수납장을 살펴볼 성격은 못 되나 보다.

“지겹네요. 하지만 해치지 않아요. 이리 나와 봐요…….”

‘아무리 봐도 나가면 해칠 거 같은데…. 베키도 그렇게 꽁꽁 감아 놓고선!’

나는 양손으로 코와 입을 단단히 막았다.

숨소리가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치지 않는다고 했잖아! 이리 나오지 못해?”

금세 또 과격해진 거미 소녀는 수납장 위에 진열돼 있던 접시들을 와르르 쓰러뜨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접시들이 바닥에 떨어져 깨져 버렸고, 거미 소녀가 한 번 더 뛰어오르더니 내가 있는 수납장 문 앞으로 착지했다.

토도 톡. 토도 톡.

‘수납장도 많은데, 왜 여기 와서 그러는 거야…….’

내 머리 위의 접시들도 모조리 와장창 깨져 버렸다.

거미 소녀가 하필 내가 숨은 수납장에 발길질을 해댔다.

더욱 긴장한 나는 바짝 엎드려선 바르르 떨리는 몸을 꽉 억눌렀다.

이어서 그녀는 내 바로 옆 수납장에 거미줄을 쏘기 시작했는데, 다시 수납장을 열어 살피려는 모양이었다.

쉬시시식. 쉬식.

벌컥 열어젖힌 수납장에 아무도 없자 이번엔 내가 있는 수납장 앞으로 왔다.

‘아, 안 돼! 여긴 안 된다고!’

나는 양 볼을 감싸며 절규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문을 열고 튀어 나갈 수도 없었다.

저 거미 소녀가 바로 앞에 있는걸!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머릿속이 하얘지려는 찰나 어디선가 제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쥐새끼가 내 주방을 갉아 먹는 거지?”

나를 구해 줄 것 같은 저 든든한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내 주방’이라고 하는 걸 보니 이 주방의 주방장이라도 되는 느낌인데.

사람인가? 싶어 반가울 뻔했지만, 곧 아니라는 걸 알고 김이 팍 새 버렸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충분했다. 징그러운 무언가가 스멀스멀 땅을 기고 있었다.

합쳐져 있던 것이 퍼져서 기었다가, 다시 목표물을 향해 합쳐지는 듯했다.

‘뭘까……. 대체 또 뭔데…?’

근처에 있던 거미 소녀는 황급히 다리를 놀려 멀리 피하는 모양이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무척 소심해졌는데.

“내 먹이가 이리로 들어온 줄 알았어요. 다른 데나 더 찾아봐야겠네요.”

그러고는 토도독 소리를 내며 황급히 도망가 버리는 것이었다.

저렇게 겁에 질린 걸 보니, 주방장은 거미 소녀보다도 무서운 녀석인가 본데…….

거미 소녀가 가 버리자, 바닥을 쓸며 기어 다니던 무언가도 다시 하나로 합쳐진 것 같았다.

특유의 질척질척한 소리도 사라진 뒤였다.

‘분명 주방 앞쪽에 분리된 공간이 있긴 했었지.’

주방장은 그 안쪽으로 들어간 것일 테고, 내가 거미 소녀처럼 큰 소리만 내지 않으면 나오진 않을 것이라 여겼다.

혹 들키더라도 주방을 재빨리 벗어나면 굳이 쫓아가지는 않는 모양이니…….

문제는 주방이 더럽게 크다는 것뿐이었다.

‘최대한 조심해서 살살 다녀야겠어….’

꿀꺽.

결심의 침을 삼킨 나는 조심조심 수납장의 문을 열고 나왔다.

주위를 다시 찬찬히 둘러보니 구석에 쌓인 오크 통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저건 물이 아니라 포도주일 확률이 높긴 했다. 통의 겉면에는 포도가 크게 그려져 있었으니까.

‘그래도 액체인 건 물이나 포도주나 비슷할 테니까!’

조금 전까지 흘리던 식은땀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날아가 버렸다.

나는 수납장 밑으로 몸을 낮춰 신속히 기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온몸을 드러내 방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크 통에 다다른 나는 뚜껑을 열었고, 진한 보라색의 액체가 가득 담겨 있는 걸 확인했다.

‘휴… 찾았다. 찾았어. 드디어……!’

한시름 덜고선 이 소중한 액체를 담을 용기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역시 오크 통을 굴려서 갈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하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쪽에서부터 용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도 기어 다녔더니 무릎이 쓰라려 이번에는 오리걸음으로 다녔다.

그렇게 살금살금 다니던 중, 내 치맛자락을 밟아 버렸고.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지고 말았다.

‘헉!’

바닥에 철퍼덕하는 소리와 함께.

***

“네가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아.”

토드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노엘을 응시했다.

“웃기지 마. 난 이전의 내가 아니야. 그때의 나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어.”

“아니, 너는 여전히 너야. 그때도 지금처럼 그런 눈빛이었지.”

“그 입. 닥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토드는 깨물던 입술을 놓아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옛날로 되돌아갈 순 없는 거야? 다시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건가?”

노엘은 그런 그를 기가 막힌다는 듯 노려보았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토드를 밟고 있던 노엘은 주머니에서 얇은 끈을 꺼내 들었다.

그 끈으로 토드의 힘 빠진 양손을 뒤로 모아 돌돌 묶어 버렸다.

비록 얇고 약해 보이는 끈이었으나 제법 질긴 힘을 가지고 있었다.

토드의 양손을 묶은 후에는 그의 양다리도 나란히 매듭지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 이걸 어디에다 던져 놓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네가 선택할래? 아니면 내가 선택할까.”

턱을 괴고 쪼그려 앉아 묻는 모양새가 친절했다.

토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도 없이 입을 열었다.

“난 그냥 여기 놔두고 가. 리사가 위험할지도 몰라. 그러니 어서 그녀에게 가 봐.”

노엘의 숙인 이마 아래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너보다도 내가 훨씬 더 그녀를 걱정해. 그런 주제넘은 명령, 나한테 하지 마.”

“…….”

“아! 이제부턴……. 네 걱정을 좀 하는 게 어떨까?”

노엘은 기대된다며 미소를 흘렸다.

그대로 토드는 멱살을 잡힌 채 노엘에게 질질 끌려갔다.

***

나는 급히 쓰러진 상체를 일으켰고, 내 소리에 주방장이 나올까 봐 긴장했다.

그리고 역시나 아까의 그 스멀스멀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그래서 곧장 옆에 있는 수납장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또 어떤 쥐새끼가 내 주방을 넘나드는 거지?”

바닥을 기는 여러 개의 무언가가 주위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잘못 들었나……. 쯧.”

생각보다 빨리 주방장이 돌아갔고, 나도 수납장에서 나가려는 찰나.

바로 앞 바닥에 일렬로 놓인 병들을 발견했다.

항아리 모양의 유리병들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제법 내 품에 포옥 안아 들 수 있는 크기였다.

주둥이도 커서 한 번에 와인을 쏟아붓기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거야!’

나는 병을 품에 안고 오크 통으로 사뿐사뿐 신속히 이동했다.

그렇게 병의 반의반 정도를 채웠고, 들어 보니 너무 무거워서 조금 덜어냈다.

‘음… 이 정도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 이 주방을 얼른 빠져나가야겠다.

결국 주방장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도움을 받은 것으로 만족했다.

하마터면 거미 소녀한테 잡힐 뻔했으니까 말이다.

주방을 빠져나온 나는 곧장 베키가 있는 곳으로 향했고, 가는 내내 거미 소녀가 어디에 있을지 몰라 가슴을 졸였다.

‘다시 베키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으려나?’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거미 같아 걱정이었다.

방에 도착한 나는 열린 문 틈으로 고개만 쏙 내밀었다.

그러자 베키가 나를 발견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없어. 아까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어.”

오, 좋아.

나는 신나선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고, 베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베키의 몸은 눈덩이처럼 거미줄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고, 머리만 빼꼼 나와 있는 상태였다.

베키는 포도주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머리카락 때문에 한쪽 눈만 보였지만, 그것만 보더라도 어떤 표정을 짓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뾰족한 수라도 찾은 줄 알았더니…, 날 알코올에 절여 버릴 셈인가.”

“……혹시라도 이게 성공한다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나는 항아리의 주둥이를 베키의 몸에 조준한 뒤 콸콸 골고루 쏟아부었다.

“아니, 이런 미, 미친! 지금 뭐 하는 거야!”

베키는 경악했지만, 조용히 절도 있게 소리 질렀다.

“있어 봐. 좀! 이게 거미줄을 없애 줄 수도 있다고.”

나는 호기로운 얼굴로 계속해서 거미줄을 포도주로 물들였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포도주에 닿은 거미줄이 스르르 끊어져 내렸다.

마치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라져선 그 형체까지 증발해 버렸다.

가볍게 떨어져 내린 베키는 자유를 되찾은 자기 몸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네가…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뭔가 되게 무시하는 어감인데.

베키의 그 한마디에 묘하게 자존심 상했지만,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빨리 여기서 나가자. 거미 소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몰라.”

나는 베키의 손을 잡아끌고 함께 복도를 내달렸다.

“……그래.”

처음에는 끌려 나오듯 나온 그녀가 지금은 나보다도 조금 더 앞서 달리고 있었다.

***

샛길 같은 통로를 통해 주방장의 휴게실로 들어온 노엘.

그는 눈앞의 거대한 괴물에게 멱살 잡힌 토드를 거칠게 내보였다.

“오랜만이야, 주방장. 신선한 음식 재료를 구해 왔어. 필요하면 사용할래?”

짙은 회색의 주방장은 다리들을 꿀렁거리며 다 낡아 빠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토드에겐 영 관심이 없는 듯 혀를 찼다.

“오늘따라 방해꾼들이 많군. 필요 없으니 가져가.”

“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아쉽다. 그렇지?”

노엘은 주방장의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진 토드를 향해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토드를 다시 질질 끌고 가던 중, 주방의 맞은편 공간에 있는 거미 소녀를 발견했다.

토도도독. 토도도독.

동그란 테이블이 일정하게 놓인 주방 못지않은 크기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열렬히 찾는 듯 테이블을 다 뒤집어 놓고 있었다.

“……거기 두 분은 먹인가요?”

거미 소녀는 발을 들인 노엘의 기척을 감지하고는 튀어 오르려는 모양인지 다리를 살짝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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