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짙은 먹구름이 내려앉는 듯한 중압감에 나는 갑자기 두려워지고 말았다.
노엘과 꽤 오래 함께하다 보니 혼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두드러진 느낌이었고, 묘하게 꺼림칙했다.
‘오늘 퀘스트는 여기까지 해야겠어. 얼른 돌아가야지.’
기묘한 이 느낌이 왜 갑자기 날 사로잡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덥석!
“헉!”
방을 나가려던 찰나 침대 밑에서 무언가가 내 발목을 확 쥐어 잡아당겼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누군가의 검은 손이었는데 팔뚝이 무척 굵었다.
“이, 이거 뭐야! 이거 뭔데!”
나는 잡힌 발목을 빼내려 했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힘이었다.
심지어 나를 침대 밑으로 끌고 가려는 듯 계속해서 당기고 있었다.
“이거 놔. 제발!”
힘겨루기 하던 나는 손에 도끼를 쥐고 있다는 걸 기억해냈고,
“하아압!”
기합과 함께 냅다 그 손목에 도끼날을 내려쳤다.
그런데 너무 무서운 나머지 조준을 잘못해서 결국 비껴가고 말았다.
작은 상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끼날에 베여 생긴 상처치곤 너무 멀쩡했다. 피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퍼석퍼석한 이상한 느낌이 마치 견고한 통나무 같았다.
‘그래. 이건 역시 사람 손이 아닌가 본데. 그럼 나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하고 온 힘을 모아 다시 한번 도끼를 내려쳤다.
그러자 댕강 썰렸고 침대 밑으로 끌고 가려던 힘은 즉시 풀렸다.
그러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당장 그곳을 빠져나왔다.
헐레벌떡 뛰쳐나오느라 땅에 박힌 도끼를 뽑지 못한 게 흠이었지만, 우선은 살았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침대 밑이 제일 싫어. 절대 싫어! 최악이야.’
그 밑으로 끌려 들어갔을 상상을 하니 아주 끔찍했다.
놀라고 서러워서 눈물이 찔끔 나려는데 복도로 나와서 보니, 검은 손이 아직도 내 발목을 휘감고 있었다. 잘린 채로.
“아악!”
나는 오두방정을 떨며 손을 떨쳐내려 바닥에 원을 그리며 마구 뛰어다녔다.
하지만 여전히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조금 진정한 뒤에야 차분히 손으로 떼어내길 시도했다.
처음엔 그 손이 움직일까 봐 툭툭 쳐 보기만 했지만, 미동도 없었다.
그래서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 보기로 했다.
문제는 떼어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며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결국 떼어내지 못했다.
“하……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기진맥진한 나는 복도 바닥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러다 금세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베키가 조용히 서 있었다.
“와악!”
나는 깜짝 놀라선 베키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여전히 앞머리를 전부 내리고 있었다. 여지없는 처녀 귀신의 모습.
“뭐야, 베키. 왔으면 말을 좀 해 주지 그랬어. 놀랐잖아. 진짜!”
반가우면서도 마지막 일이 떠올라 그녀가 좀 무서웠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우연히 네가 드러누워 있었을 뿐이야.”
“아…. 그래. 그랬구나.”
“좀 비키지.”
나는 그녀가 지나가게 한쪽으로 비켜 주었다.
“예, 예. 지나가시지요.”
베키는 고고하게 나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얌전히 있다가 급히 베키의 하얀 옷자락을 강하게 붙들었다.
“저기 베키! 잠깐만!”
“…….”
그녀가 돌아보았지만, 머리가 앞인지 뒤인지 구별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발목의 이것 좀 떼 주면 안 될까…? 헤헤.”
어쩐지 뒤통수가 근질근질해져선 손가락으로 박박 긁어댔다.
“……알아서 해결해.”
보지도 않고 차갑게 돌아서는 그녀였지만, 포기할 나는 더더욱 아니었다.
“살려 줘. 베키. 다리에 소름 돋아 죽을 거 같단 말이야. 제발 이 느낌 좀 느끼지 않게 해 줘.”
“……살려 달라니. 상대를 잘못 고른 거 같은데. 노엘한테 해 달라고 하면 되지 않니?”
“절대 안 돼! 몰래 나온 거란 말이야.”
“……귀찮아.”
뭐야. 결국 그냥 도와주기 싫었던 거네. 그런 거네.
오기가 생긴 나는 베키를 졸졸 따라갔다.
“좀 도와줘. 나도 전에 널 풀어 줬잖아.”
“…….”
베키는 이후부턴 대답도 하지 않고 제 갈 길만 갔다.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 끈덕지게 계속 따라다녔다.
베키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1층까지 내려온 뒤였다.
베키는 점점 깊은 곳으로 발을 내딛고 있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창문 틈새에 빛이 없어. 밤이 된 건가. 벌써?’
큰일이었다.
빨리 이 발목의 검은 손을 떨쳐내고 돌아가야 했다.
나는 양팔을 쭉 벌린 채 베키의 앞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베키! 제발 나 좀 도와줘!”
“……아직도 나를 따라오고 있었어?”
뭐야, 진짜 몰랐던 건 아니겠지?
내가 그렇게 도와 달라고 몇 번을 사정사정했는데, 전혀 몰랐다는 얼굴이다.
“나 얼른 돌아가야 해. 안 그러면 노엘한테 죽을지도 몰라.”
그와의 숨바꼭질은 절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네 사정이니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너무해. 베키…. 나는 네가 정말 마음에 들었었는데!”
“네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잖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무릎 꿇고 사정이라도 해야 하나. 정말 이 녀석이 나를 돕게 할 방법은 없는 건가.
그냥 이대로 돌아가서 노엘한테 솔직히 털어놓는 게 좋을까?
‘하지만 방을 나가지 않겠다고 그렇게 약속까지 했는걸.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렇다고 시간을 돌린다 한들 붉은 보석을 찾으러 나가는 건 똑같았을 것이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와장창 꼬여 버렸지만, 죽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다 방법이 있을 테니 차분히 생각해 보려던 중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잠깐. 이… 소리는?’
등 뒤에서 거대한 가위가 입을 열었다 닫으며 힘차게 달려오는 듯했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소리만으로 어디쯤 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서걱 서걱 서걱.
“베키! 우리 얼른 피해야 해.”
나는 급히 베키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베키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내가 아무리 힘을 쓴다 한들 베키를 움직이게 하긴 힘들었다.
“너나 도망가든가. 나는 저것에 쉽게 당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베키도 정원사 귀신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럼 왜 가만히 있는 건데! 물리치기라도 하려는 거야?”
“저런 멍청한 거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뭐야…….
급해 죽겠는데 무얼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죽든지 싸우든지 네 맘대로 해!”
마음이 급해진 나는 베키의 팔을 홱 놓아 버렸다.
서걱 서걱 서걱.
그사이 정원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우리를 알아챈다면 달리기 싸움에선 져 버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나는 즉시 가까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에 잠금장치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러고는 방문을 닫아 버리려 했는데…….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베키의 뒷모습을 보니 마치 모든 걸 포기한 이의 모습 같았다.
저러고 있다간 가위에 썰릴 게 분명해 보였다.
“아, 진짜!”
보다 못한 나는 다시 달려가 베키의 팔을 끌어안고 잡아당겼다.
한참 못 미치는 힘으로 베키와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정원사의 가위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걱 서걱.
그 커다란 가위가 막상 마주쳐 오자 베키가 몸을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내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몸을 맡긴 듯 움직여 주어 겨우 베키를 끌고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달칵!
서걱서걱서걱서걱. 끼익 끼익. 끼이이이익.
방문을 잠그자마자 가위가 문을 뚫을 듯이 긁어댔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이좋게 잘린 영혼이 되어 정원사의 주머니로 들어갈 뻔했다.
일단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원사는 포기할 생각이 없나 보다.
계속해서 문에 가위질을 해대고 있었다.
어쩌면 이 나무 문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키, 네 능력이라면 저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거야?”
“머리카락 잘릴 일 있어? 저 가위의 크기를 보라고. 몸통도 잘릴 크기인데 장난해?”
뭐야, 아깐 저게 멍청하다며 자신만만하게 얘기해 놓고.
진짜 나랑 안 맞네.
한때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내가 뭔가에 씌었었나 보다.
드르륵 드르륵.
이럴 시간에도 문은 계속 거대한 가위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진짜 어떡하지…….’
고민하는데 베키가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뭐 하는 거야? 무슨 좋은 수라도 있어?”
나와 베키는 T자 모양인 방의 양 모서리 쪽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작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꽤 멀었다.
이윽고 베키가 차분히 말했다.
“저 괴물이 선택하게 하자.”
“그건 또 무슨 소린데?”
“이렇게 서 있으면 양쪽에 있는 우리 중 한 사람을 먼저 죽이려 달려들지 않겠어? 그럼 우리 중 선택받지 않은 사람은 그 틈을 노려 이 방을 나가면 돼.”
…….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방은 길었지만 좁아서 한 방향으로 오면 피할 길이 없었다.
문은 점점 가로로 두 동강이 날 것처럼 금이 갔고, 쪼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정원사의 가위가 문 정중앙을 가르며 방 안쪽까지 가윗날을 들이밀자, 충격을 견디지 못한 문짝이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허리를 굽힌 정원사는 휑한 눈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가며 응시했다.
‘…….’
고민 중인 거겠지. 어느 쪽으로 먼저 향할지.
이 순간에도 나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선 그저 공포에 발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가지. 잘라. 내 주머니…….”
정원사는 허리와 목을 뿌드득 꺾으며 가위질을 다시 시작했는데.
어쩐지 나를 빤히 보는 걸 보니 직감이 선고하는 듯했다.
내가 녀석에게 선택받았다고.
‘다 끝났어. 끝난 거야…….’
처음 든 생각이 그랬다. 이제 모두 끝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