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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28화 (28/145)

28화.

불안하다 싶었는데, 역시 꼬마 노엘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금방이라도 토드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저 어린 몸집에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아주 대단했다.

-토드가 잠시 날 위로해 주느라 그런 거야. 노엘,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 줘.-

-리사, 이건 전하께서 내게 물으신 거잖아. 그러니 마음 편히 있어.-

토드는 불안해하는 리사의 손을 다시 한번 꼬옥 잡아 주었다.

그러고는 꼬마 노엘을 노려보는데 꼬마 노엘 역시 그 모습에 다시 한번 눈썹을 움찔했다.

-노엘 전하, 고백할 게 있습니다만. 저는 리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친구로도 그렇지만, 이성으로는 더욱 그렇습니다.-

와, 대단해.

간이 엄청나게 큰가 보다.

저 노엘한테 저런 식으로 얘기하는 녀석이라니!

토드는 역시 꼬마 리사를 좋아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꼬마 노엘은 어디 더 말해 보라는 듯 차분히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었다.

그도 토드가 꼬마 리사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다.

-전하와 리사를 이어 주는 연결 고리는 이제 여기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긴 론 제국도 아니고 저흰 이제 왕족도 귀족도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리사가 저를 선택해 준다면, 저는 전하와 적이 되더라도… 리사와 특별한 관계가 될 생각입니다.-

-……그래서.-

토드는 리사의 손을 꽉 잡은 채 그녀의 떨리는 눈을 마주 보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토드의 눈빛이 그녀를 사로잡았음을, 나는 확신했다.

-리사, 널 좋아해. 하지만 네 마음을 제일로 존중해. 그러니 네 솔직한 마음을 말해 줘.-

-나…, 나는…….-

꼬마 리사는 토드와 꼬마 노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미안…. 노엘, 나는 역시 토드가 좋아.-

그 말 한마디에 꼬마 노엘은 몹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저 절망스러운 눈빛만 봐도 땅이 꺼져 내리고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리사…. 네가 어떻게 나한테…….-

-정말 미안해…. 미안해……. 노엘.-

-예전엔 내가 좋다고 했었잖아. 마음이 변한 거야?-

꼬마 노엘의 약한 모습에 꼬마 리사는 결심을 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사실… 널 친구 이상으로 좋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우린 정혼으로 맺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억지로라도 널 좋아해 보려고 노력은 했었어. 하지만…… 역시 나는 토드를 좋아해.-

-…….-

저 노엘이 이렇게 거절당하다니.

그렇다고 토드가 노엘보다 뒤처진다는 건 아니었지만, 내 취향이 그녀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매정하게 말하는 것 같아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이게 진실이라곤 하지만, 어린 녀석들에게 여러모로 상처였을 것이다.

-너도 알아야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겠지 싶어서…… 솔직히 말하는 거야. 노엘…. 정말 미안해. 인제 그만 나를… 놔줘.-

할 말을 마친 꼬마 리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눈을 감았다.

꼬마 노엘의 괴로워하는 표정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거겠지.

-노엘 전하, 이제 리사의 뜻을 아셨으니 그만 리사를 놓아주세요.-

친구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참담할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노엘은 친구도 잃고 정혼자도 잃은 셈인데.

그렇다고 저들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것을 두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은 모두가 다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전부 다…….-

꼬마 노엘의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섬뜩한 기운을 잔뜩 머금었다.

이내 분을 못 참은 듯 떨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고.

나는 그 아이를 따라 나갔다.

“꼬, 꼬맹이 노엘! 어디 가!”

어딘가로 빠르게 향하던 그가 내 부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당장이라도 다 없애 버릴 것 같은 험악한 얼굴이었는데.

그런 아이가 어느새 맑은 눈물을 콸콸 쏟고 있었다.

“노엘……?”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던 거 같아. 저 애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잘 느껴지는 거잖아.]

‘세상에. 알고 있었다니. 그런 상태로 꽤 오래 함께 지내 온 것 같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를 위로하려 등을 토닥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팔을 뻗었지만, 투명한 유령처럼 통과할 뿐이었다.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게… 그게 잘 안 되는걸… 어떡하면 좋지? 너는 알고 있어?]

“언젠가… 너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나라든가. 또는 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든가.

[그런 사람이 정말 나타날까……?]

“응. 네게 꼭 나타날 거야. 그러니까 잘 이겨내고 보내 줄 줄도 알아야지. 훨씬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고마워. 날 위로해 주는 건 여전히 너밖에 없네.]

꼬마 노엘의 눈물이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그만큼 녀석도 진정이 좀 되었는지 다시 차분한 낯빛을 띠게 되었는데, 어쩐지 좋은 쪽이라기보단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금세 잔인하게 굴 것 같은 비릿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다.

“노, 노엘……?”

[네 말대로 언젠가 나를 좋아해 줄 녀석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저 녀석 하나뿐이야. 내가 원하는 건 리사뿐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잃을 수 있겠어.]

아아…… 틀린 건가.

[토드만 없어지면 돼. 그럼 전부 해결될 거야. 리사도… 그렇게 되면 나한테 돌아올 수밖에 없겠지?]

일그러진 미소로 슬픈 신음을 내뱉는 그였다.

***

1층의 왼쪽 복도 끝에서 남자 셋이 모였다.

뒤늦게 알프레드가 허겁지겁 달려와 합류한 참이었다.

헤엑. 헥!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는데 그를 본 노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알프레드, 어젠 대체 왜 그런 거지?”

노엘은 심문이라도 하려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그의 의도와는 달리 알프레드는 무척 뿌듯한 얼굴이었다.

“어때, 좋은 시간 보냈어? 내 실력이 끝내줬지? 하하. 나중에 그걸 다 치우느라 고생했지만 말이야. 피아노 조율도 다시 해야겠고.”

알프레드는 초승달 눈이 되어선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뒤통수를 긁적이는 모양새가 꼭 영웅담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선…….”

리마는 알프레드와 달리 노엘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노, 노엘! 알프레드는 내가 잘 주의시킬게!”

긴장한 더듬이가 바짝 서서 흔들거렸다.

“주의는 무슨! 칭찬을 줘. 빨리 칭찬해 달라. 노엘. 우워!”

우렁찬 포효에 리마의 다리들이 놀라서 들썩였다.

저 눈치 없는 자식, 하는 눈빛으로 리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알프레드가 노엘에게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않은가.

바보스럽긴 하지만, 남을 도와주는 걸 기쁘게 여기는 녀석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그래서 그런 걸 텐데, 노엘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갑자기 노엘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하여간…. 못 말리는 녀석.”

“노엘……?”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귀가 새빨개져선 알프레드를 죽일 생각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듯했다.

“그래, 네 덕분일지도 모르지. 리사와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될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그런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나 황홀했으면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건지.

리마와 알프레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렸다.

“그럼… 드디어 칭찬해 주는 건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알프레드는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았고, 리마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따라 세 번째 다리들을 모았다.

이런 귀여운 녀석들 같으니라고.

노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알프레드의 무릎을 툭툭 무심하게 쓰다듬었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우워어어! 우궈어어어!”

알프레드는 근육질의 가슴을 퍽퍽 치며 기뻐했다.

부러운 듯 바라보던 리마는 일단 알프레드가 연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다음부턴 미리 나와 얘기하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칭찬은 없을 거야.”

“우워! 우워! 우우어어!”

“이봐. 알프레드,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노엘한테 칭찬받았뜨와아아! 으와!”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노엘은 금방 이마를 짚고 후회했다.

“이런, 칭찬하기 전에 먼저 당부했어야 했어…….”

노엘에게서 다시 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나오려 하자 리마가 나섰다.

“알아들었을 거야. 노엘, 나중에 내가 한 번 더 얘기할게!”

“그래. 부탁한다. 리마.”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알프레드를 뒤로하고, 노엘과 리마는 다시 복도의 문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두꺼운 쇠사슬에 자물쇠까지 채운 문이었다.

단단한 재질의 나무로 된 문이었지만, 점점 미세하게 균열이 가고 있었다.

문의 반대편에서 꾸준히 힘을 가하는 모양이다.

“균열이 하나 더 늘었군.”

“그러네. 전에도 1층 문이 제일 심각했었지?”

“잘 버텨 주었음 좋겠는데…….”

***

꼬마 노엘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꼬마 리사의 개인실로 들어왔다.

아직 환영의 기운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가 보니 토드는 다시 꼬마 리사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미안해. 리사…. 결국 말해 버리고 말았어.-

-아니야. 어차피…… 언젠가 노엘도 알게 될 일이었는걸.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네가 행복하길 바랐어. 적어도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그런데 그게 나라니 정말 너무 행복해.-

-……하지만 토드. 슬퍼하는 노엘을 두고 우리만 좋을 수는 없잖아. 적어도 당분간은 이전처럼 지내자.-

그 말에 토드는 이해하면서도 무척 실망한 눈빛이었다.

-리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해?-

-토드…….-

-다음 실험 대상이 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아직 다음 실험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끔찍한 소린 하지 말아 줘. 제발…….-

불안해진 꼬마 리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토드는 그제야 다급히 그녀를 감싸 안았다.

-미안해, 널 불안하게 만들고 말았네. 정말 미안……. 내가 마음이 너무 급했나 봐.-

그 말을 끝으로 환영은 전부 어둠에 삼켜지듯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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