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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25화 (25/145)

25화.

“괴물인가? 노엘! 어떡하지?”

리마는 문을 열 수 없으니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베키는 이 근처에 올 리가 없었다.

역시 다른 무언가일 확률이 높았다.

노엘도 갑자기 무슨 일인지 적잖게 고민하는 듯했는데, 먼저 일어나더니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쉿……. 이리 와. 리사.”

나는 노엘의 손을 잡고 그를 따라 신속히 이동했다.

그렇게 피아노 근처의 두꺼운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정확히는 커튼 뒤에 있는 조그맣게 움푹 팬 공간이었다.

나와 노엘은 공간이 좁아 꽉 끼어서 딱 붙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끼익.

곧 열린 문으로 들어온 건.

“우궈어어억!”

어디선가 들었던 폭주하는 음성이었다.

‘그 거인 괴물…! 아니, 전시실 근처에 있던 녀석이 어떻게 여기 온 거지?’

나는 노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싶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분명 나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눈썹을 찌푸린 그는 어쩐지 황당해하는 얼굴이었다.

딱 지금 찰진 욕을 하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얼굴.

‘그나저나… 저 거인 녀석이 이 커튼을 들춰 볼 가능성은 없는 거겠지?’

하필 둘이 같이 있어서 들키기라도 하면 정말 끝장이었다.

둘 다 끌려가서 유리관에 갇혀 버리면 아무도 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

“우그우그. 우거어어어어!”

띵. 똥. 띵. 똥.

거인 괴물은 혼자 피아노 건반도 몇 개 눌러 보고 그릇도 깨 먹는 등 또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지난번도 그렇고 정말 산만하고 요란한 괴물이었다.

어지르고 다니는 게 특기인 걸까?

금방 나갈 기세로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더워지려는 거 같은데…….’

다행인지 우리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아 긴장이 좀 풀리려는 순간이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노엘을 의식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작은 공간에 껴선 그와 아주 껴안고 있었다.

그와 포옹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외부 압력에 의해 밀착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새삼 그의 섬세한 근육 하나하나가 피부로 와 닿아 느껴졌다.

그의 향기롭고 짙은 체취는 이미 내 폐를 점령한 지 오래였다.

‘다른 의미로 죽을 거 같아.’

나는 다시 노엘의 얼굴을 보려 고개를 들었고.

순간 그도 나를 보고 있었는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맞닿은 상체에서 서로의 심장 두근거림이 열기와 함께 느껴지는 듯했다.

먼저 눈을 피하면 뭔가 이상할 거 같아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속눈썹이 미묘하게 떨려 왔는데 결코 그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노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의 철벽같은 속눈썹도 결국은 내게 떨림을 들키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내 목덜미로 매끄럽게 손을 넣었다.

‘어…? 잠깐……. 지금 이 자세는…….’

그가 조금만 더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다면 겹칠 것이었다.

설마.

당장 그래도 이상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거기다 우리는 이제 사귀는 사이였으니.

‘그래도 너,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오늘이 첫날이자 첫 데이트였다.

하긴 당장 청혼부터 하겠다고 한 날도 있었지. 그거에 비하면 이건 좀 나은 걸지도.

‘아니, 그래도 이런 곳에서……. 밖에 괴물이 날뛰고 있는 상황인데?’

이 별장 안에서 데이트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벌써 숨을 쉴 수 없었고 괴물보다 노엘이 훨씬 더 신경 쓰였다.

그가 마법이라도 부린 듯한 이 그윽한 분위기에 그대로 감금되고 말았다.

이윽고 그가 움직여 왔다.

그 매혹적인 작은 움직임을 계속 보고 있기에는 심장에 무리가 왔다.

이대로 가다간 견디지 못하고 눈알마저 폭발할지도 몰라 눈을 살며시 닫아 버렸다.

그 뒤로 느껴진 것은 아주 부드럽고도 녹을 것 같은 감촉.

모든 정신이 마비될 것 같은. 아니, 이미 마비가 진행되어 저 멀리 어딘가에 나를 놓아 버린. 그런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어떻게 되어 버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알프레드?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

복도의 천장에 붙어 있던 리마는 걸음을 재촉하는 알프레드를 보고 말을 건넸다.

리마가 있는 걸 알아채지 못했던 알프레드는 그제야 멈춰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리마? 너야말로 언제까지 도망 다니려고 그래? 그날 이후로 넌 노엘한테 죽은 목숨이라고.”

“어쩔 수 없었어. 내가 누나를 공격한 벌로 모든 다리를 한 달 동안이나 압수하겠다고 했단 말이야.”

“그러게 왜 그런 짓을 벌여선 노엘을 화나게 했어.”

껄껄.

알프레드는 말과는 달리 얼굴은 고소하다는 표정이었다.

“신경 꺼. 너야말로 어딜 그렇게 급히 가냐니까?”

“도망 다니는 놈이 궁금한 것도 많아. 난 지금 노엘의 첫 데이트를 도와주고 오는 길이라고.”

리마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노엘의 첫 데이트를 도와줬다고……? 그거 노엘이 시켜서 한 거야?”

“당연히 아니지. 이번 일은 내가 주도적으로 했어. 아마 노엘도 감동했을 거야.”

“…….”

가만히 있던 리마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폭소했다.

“아, 진짜! 알프레드! 너도 곧 노엘한테서 도망칠 준비나 해라. 푸하핫.”

알프레드는 그런 리마를 한껏 노려보고는 콧방귀를 뀌며 으르릉거렸다.

“흥. 등치 값도 못 하는 녀석이!”

“그나저나… 첫 데이트라면 노엘과 누나가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는 말이야?”

“그래. 정확히는 오늘 새벽부터랬어.”

“우오……! 그렇단 말이지?”

리마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퍼졌다. 갈망하던 희망의 빛을 드디어 찾기라도 한 눈빛이었다.

알프레드는 저 녀석이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며 넓적한 등을 긁적였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인 괴물은 언제 나갔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리사, 싫으면 뿌리쳐야지. 왜 다 받아 주고 있는 거야.”

방금 막 입술을 뗀 노엘이 다소 끈적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받아 준 게 아니라 좋으니까 같이 했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막힌 듯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노엘이 계속해서 돌진하니 정신없이 떠밀려 오긴 했는데. 지금이라도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노엘의 말대로라면, 과거의 리사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내가 갑자기 그가 좋아졌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좋아졌다고 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되면 당장 결혼하자고 나오겠지. 그럼 그건 결혼 엔딩인 거고.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데 뿌리치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난처해졌다. 그럼 난 뭐라고 해야 한담!

“말해 봐. 왜 받아 준 거야. 설마 내가 좋아졌어?”

“어? 아니! 그건 아니야. 네가 좋아진 건 아니야.”

노엘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나 역시 떨리는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내가 좋아진 게 아니면 뭔데? 싫은데도 바보같이 가만히 있었다는 건가?”

나는 그 말에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싫지 않았어. 나도 좋아서 한 거야.”

그런데 말하자마자 곧장 후회했다. 자존심을 다 내려놓았어야 했다. 차라리 바보가 되는 게 나았다.

“뭐라고? 그러니까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내 입술은 좋다는 거야?”

노엘은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긴 탄성을 터뜨렸다. 자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는 듯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나 역시 말문이 막혀 그저 먼 산을 바라보듯 시야를 흐렸다.

점점 자연스레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그가 날 어찌 생각할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여기 들어와서 제일 집에 가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리사.”

황당해하던 노엘은 간신히 차분해져선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으, 응?”

“리사….”

“왜, 왜…!”

그가 내 어깨를 양손으로 고정하듯 감쌌다.

“진짜 미치겠다….”

“…….”

그거 알아? 나도 미치겠어.

이내 빠른 속도로 평정을 되찾은 노엘이 어쩐지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불길했으면 그의 주위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네 입으로 그 일 자체는 좋았다고 했으니. 그럼 앞으로도 열심히 해 볼게.”

“어……. 응……? 열심히 해 보겠다고?”

“입술은 좋다며.”

나는 달려 나가려는 눈알이 빠지지 않도록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어…. 그, 그랬지만. 그런데 사귀는 것 자체가 내 벌이라면서. 그럼 내가 좋은 건 이제 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야?”

“네 말대로 애초에 내가 벌이랍시고 벌인 일이었지만…. 말도 안 되는 건 맞는 거 같아. 나는 너한테 절대 못되게 굴 수 없어. 네가 싫다는 짓도 할 수 없을 거고.”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러니 벌은 인제 그만하자.”

저기요. 그 벌이란 거… 이제 겨우 하루도 안 된 거 같은데요. 지금 우리 관계가 하루 단위로 막 바뀌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루 단위가 뭐야. 몇 분 몇 초?

이제는 이게 잘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도 혼란스러워했더니 이젠 생각에도 한계가 온 모양이다.

“그럼 그만하자는 건 그만 사귀자는 뜻이야?”

“아까 내 말 못 들었어?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잖아.”

“……?”

“벌을 주려던 생각이 바뀌었어. 이제부턴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들어 보려고 해. 일단 지금의 넌 적어도 나와의 입맞춤은 좋다고 했으니까.”

“…….”

이상한 오해를 사고 말았지만, 되팔기는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거기다 상황마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뭔가 크게 격변한 것 같은 느낌. 지구가 반으로 쪼개지기라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너 정말 나쁘다.”

“네? 아니, 응?”

“원래 여자들은 사랑하지 않아도 입맞춤이 가능한 거야?”

“모, 모르지. 사람마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불가능한 쪽이었다. 내게 그런 입맞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넌 그럴 수 있는 쪽인 거란 말이지. 그래, 그래서 어디까지 가능한 건데?”

순간 심장이 입으로 불쑥 튀어나올 뻔했다.

급격히 더워져선 이만 나가고 싶어졌다.

거인 괴물도 없는 것 같으니 몸을 깨알같이 비틀었다.

“어디까지라니. 그, 그건 나도 모르겠고! 이제 좀 나가자. 응?”

내 어깨를 고정하던 노엘의 손이 다시 한번 나를 붙잡아 가두었다.

이대로는 갈 수 없다는 표정. 갈망하는 그 얼굴을 떨쳐 놓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어딜 가려고. 비록 입술만이지만 네가 좋다는데. 내게 분발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어?”

“뭐, 뭣? 흐읍!”

부드럽게 기울어지는 그의 얼굴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른 감각들이 살아나 더욱 휘몰아쳤고 모든 정신을 다 헤집어 놓았다.

머릿속은 온통 그의 숨결로 가득 차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머리 굴려 봤자 그의 무게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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