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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5화 (15/145)

15화.

리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가 숨어 있는 문을 지나 복도로 향했다.

노엘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뒤따랐다.

그녀의 고운 백금발이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걸음마다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였다.

무서운지 상체를 꼭 껴안았는데,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갔다.

‘아주 귀여워 죽겠어……. 하, 어쩜 저렇게 귀여운 거지?’

그녀를 보는 그의 입꼬리가 히죽거리며 한껏 올라갔다.

당장이라도 저 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든든한 기사 노릇이라도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무서움을 덜어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분명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또 도망가 버릴 게 눈에 선했으니까.

‘이곳은… 전시실인데. 나와 하룻밤을 보낸 관이 그리웠나?’

그는 날렵하면서도 얌전히 리사를 따라 들어갔다.

그러곤 구석에 있는 사람 형태의 금속 조형물 뒤로 몸을 숨겼다.

이제 그녀가 무얼 하는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

전시실에 도착한 나는 심장을 쓸어내렸다.

복도에서 또 괴이한 것들이 나타날까 봐 뒤도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 왔는데.

나를 따라다니는 싸한 기운에 미친 듯이 몸서리칠 것 같았다.

다행히 복도는 한산했다.

좀 더 찬찬히 신중을 기해 다녀야 했는데, 마음만 바빠져선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고 마구 움직이고 말았다.

‘찾았다!’

유리장 근처에서 붉은 보석을 찾아 손에 움켜쥐었다. 식은땀 때문인지 매끄러운 보석이 미끈거렸다.

곧장 환영이 펼쳐졌고, 유리장에 전시된 꼬마 노엘이 나타났다.

어쩐지 아까 보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기운 없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쉬는 시간인가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귀족들이 삼삼오오 짝지어서 관람하던 중이었다.

분명 웃고 있어야 할 그가 초점 잃은 눈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자 유리장 주변의 귀족 환영들이 웅성거렸다.

-오늘은 왜 저렇게 죽을상인 거죠? 고작 저런 모습을 보려고 이 먼 걸음을 한 게 아닌데.-

-저 침울한 표정에 저까지 우울해지겠어요. 전시품 관리자를 좀 만나 보고 싶군요.-

그들은 꼬마 노엘의 슬픈 모습을 보고도 걱정하지 않았다.

-다들 예술을 모르시네요. 자세히 보세요. 저 슬픈 얼굴이 묘하게 본능을 자극하지 않나요?-

애초에 그를 걱정할 인간들이었다면 이런 전시회에 오지도 않았겠지만….

나는 꼬마 노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노엘…! 괜찮아? 무슨 일 있어?”

그러자 그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초점 없는 눈이었지만, 간신히 입술을 떼는 모양이었다.

[역시 너무 슬퍼……. 나와 함께했던 그리마가 죽은 게. 나도 그렇게 죽는 걸까?]

고문실에서 그가 견딜 수 있었던 건, 그 그리마에 자신의 희망을 투영했기 때문이었을까.

“친구를 잃은 거지? 그럼 슬퍼하는 게 당연해.”

그에게 진심으로 공감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거야? 그렇구나. 너는… 날 이해해 주는구나.]

하는 말이 참 어른스러운 느낌이었다. 한창 떼도 쓰고, 투정도 부릴 나이일 텐데.

“슬퍼할 만큼 슬퍼하고 나면, 다시 기운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마음껏 슬퍼해도 돼.”

슬픈데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꼬마가 담담하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으니, 차라리 이 모습이 훨씬 더 나았다.

[응…. 너무… 너무 슬퍼. 이제 내 곁엔 아무도 없어.]

지금 내 상황이 되어 보니 저 말이 빠르게 와닿았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는 말.

단 하나라도 나와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이렇게 죽을 듯이 무섭지는 않았을 텐데.

몇 번이고 처절하게 했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에게 완벽히 공감할 수 있었다.

“네 곁엔 지금 내가 있잖아!”

그가 환영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단 하나의 지지자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이젠 유령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나와 함께할 거야? ……영원히?]

“여… 영원히?”

문제는 이렇게 훈훈하게 잘 나가다 한 번씩 위화감이 들게 만든다는 것인데.

[약속해 줄래?]

그가 너무 아련한 얼굴로 말하니 긴장이 후루룩 풀리고 말았다.

“무, 물론이야. 약속해.”

무언가에 홀린 듯 말하고 나니 몹시 후회되었다. 하지만 약속한다고 다 그렇게 되라는 법은 없지. 아마?

드디어 그가 환히 미소를 짓는 순간이었다.

귀족들의 성화에 못 이긴 전시품 관리자가 나타났다.

거대한 체구의 그는 분명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낯이 익었다.

-이봐요. 알프레드, 오늘 전시품 상태가 대체 왜 이런 거죠?-

알프레드로 불리는 그는 거인 괴물과 많이 닮은 느낌이었다.

나를 유리장에 가두었던 그 몹쓸 괴물!

-다음에 올 땐 좀 더 최상의 상태를 보여 주시길.-

못마땅해했던 귀족들은 그를 잘 아는 분위기였는데, 알프레드는 귀족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했다.

아주 고자세였으므로 말대꾸도 하지 않았다.

몸집이 크고 험악하게 생겨 보기만 해도 위협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그가 가까이 오니 귀족들은 도망치듯 각자 흩어져 버렸다.

알프레드는 당장 유리장의 꼬마 노엘을 꺼내 멱살을 잡고 끌고 갔다.

환영 속 알프레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미지에 걸맞게 퉁퉁한 목소리였다.

-너는 오늘부터 실험실의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될 거야. 그곳에서 네 처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도록 해.-

-…….-

꼬마 노엘은 그저 축 늘어져선 시체처럼 끌려갈 뿐이었다.

-그러게, 말을 잘 들었으면 좋았잖아. 거기에 네 진짜 친구들이 있다지? 그 애들이 어떻게 되는지 잘 지켜보라고.-

알프레드가 꼬마 노엘을 끌고 가는 것을 끝으로 환영은 사라져 버렸다.

다시 적막이 흘렀고, 나는 우두커니 서서 생각의 회로를 돌렸다.

‘뭐야. 진짜 친구들이 있었어? 나한텐 곁에 아무도 없다더니!’

물론, 현재 노엘의 주위엔 리마 말고는 아무도 없긴 했다.

그럼 역시 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걸까?

꼬마 노엘은 내게 다음 일이 일어날 장소를 알려 주지 않았다. 실험용 아이들의 방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러고 보니 지도가 있었지.’

꾸깃꾸깃한 지도를 활짝 펼쳐 보았다.

자세한 표시는 없었지만, 실험실뿐이라던 4층 제일 큰 방이 눈에 띄었다.

‘일단 여길 먼저 가 볼까?’

또 실험실 근처를 가자니 무척 꺼려졌다.

게다가 실험용 아이들이라니. 무슨 실험용 쥐도 아니고.

어쩐지 두피가 소름이라도 돋은 것처럼 간지러웠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인지, 예측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제발 저번과 같은 실험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여기선 살아도 산 게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슬슬 전시실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츠스스스. 츠스스.

조금은 익숙해진 소리와 함께 거대한 몸체가 스멀스멀 기어들어 왔다.

“리, 리마?”

리마는 전시실의 출입문을 꽉 틀어막고 멈추어 섰다.

“리사 누나! 여기 있었구나?”

“어? 나를 찾고 있었어?”

실험 실패로 처참히 죽었던 리마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전보다는 리마가 조금 불쌍한 느낌이 드는데.

그러다 보니 안쓰러워서 뭔가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신기하기도 하고 말이다.

“응, 엄청나게 찾아다녔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그, 그냥.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는 중이지, 뭐.”

퀘스트하러 다닌다고 말해 봤자 알아들을 리 없겠지.

“아, 그래…?”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모르겠다.

“왜, 무슨 일인데? 말해 봐.”

“나도 그냥…! 그냥 찾아다녔지.”

“그냥? 그, 그래…?”

어쩐지 대화가 겉에서 맴도는 것 같은데.

갑자기 말도 끊기고, 분위기가 싸하다.

본능적으로 위협이 감지되자 당황스러움이 먼저 밀려들었다.

직감이란 사이렌이 규칙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절대 두렵지 않은 척해야 한다고.

하지만 솔직한 내 성대는 이미 떨려 오고 있었다.

“비… 비켜 줄래? 나 이만 나가고 싶은데.”

리마는 입꼬리를 위로 찢어 올리며 억지스럽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 웃는 모양이 전혀 아니었다.

츠스스스스스.

그의 더듬이가 하늘로 날아오를 듯 바짝 섰다.

“그래? 그럼 이리로 지나가.”

완전히 비켜 주길 바랐지만, 그는 자기 옆구리를 살짝 비틀며 작은 공간을 내주었다.

내가 기어가야 나갈 수 있는 정도의 공간밖에 되지 않았다.

역시 저 녀석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쳐 좀 더 거리를 확보했다.

하. 내 심장….

“리마야, 누나잖아. 갑자기 누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머릿속이 점차 하얘지고 있었다.

“응? 내가 뭘?”

그러니까 그 인위적인 동그란 눈이랑 찢어진 입술이 너무 무섭단 말이다!

게임 캐릭터에게서나 보던 사백안을 인생 처음으로 접하는 중이었다.

“누나는 지금 너랑 장난칠 기분 아니야.”

“나도 누나랑 장난치는 거 아닌데.”

“그럼 제발 좀 제대로 비켜 줘.”

“알았어. 아주 제대로…… 비켜 줄게!”

츠스스츠스스츠스스스!

그 말을 끝으로 리마가 내 쪽으로 불쑥 튀어나오며 돌진했다.

“아아아아악!”

놀라서 기겁한 나는 비명을 지르며 전시실 안쪽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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