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돌아온다더니 숨어 버린 거야?”
그는 복도를 거닐며 모든 방을 탐색했다.
벌컥!
근처의 방문들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또 시작인가…….’
그와 또다시 숨바꼭질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차라리 여깄다고 순순히 나가는 게 좋을까?
그러면 그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는 건가?
“리사, 이번만큼은 저번보다 잘 숨어 보는 게 어떨까? 내가 좀 더 찾기 힘든 곳에 숨어 보는 거야.”
식은땀이 쪼르르 이마를 타고 내려왔다.
잘 숨어 보라고 하니 정말로 잘 숨어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내가 너를 찾으면 말이야, 지난번처럼 그냥 물 흐르듯 지나가진 않을 거거든.”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자발적으로 노엘 앞에 나가기는 글러도 한참은 글렀다.
“그러니까 나보다도 훨씬 더 간절하게 숨어야 할 거야.”
철컥, 철컥!
영혼이 빠져나간 듯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있던 중이었다.
내가 있는 방의 문고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흔들렸다.
문밖에서 그가 기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여기 있었구나?”
그저 문을 잠그고 숨죽이고 있어 봤자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금방 들킬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그보다도 더 빨리 노엘이 찾아왔다.
철컥, 철컥.
밖에서 노엘이 재차 문고리를 흔들어댔다.
“리사, 문 좀 열어 봐.”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상황에 맞지 않게 차분함이 깃든 목소리.
분명, 이번에야말로 철퇴가 날아오는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나도 퀘스트를 하기 점점 버거워질 것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이참에 다시 갈라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미안, 역시 문은 열어 줄 수 없겠어.’
나는 급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숨을 곳을 찾으려 해도 고작 이런 평범한 방 안에서 찾아 봤자였다.
있어야 할 모든 가구가 놓여 있었지만, 내 몸 하나 들어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니, 하나 있긴 했다.
‘또 옷장에 들어가긴 싫은데…….’
그때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옷장 공포증은 이제 충분히 겪었다.
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쓱 닦았다.
심장 소리가 뇌에서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갑자기 찰랑거리는 쇠의 마찰 소리가 문밖을 가득 메웠다.
분명한 열쇠 꾸러미의 소리였다.
‘뭐야…! 열쇠가 있었어?’
그가 이 방의 열쇠를 찾는 모양이었다.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네가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 같으니 어쩔 수 없겠어.”
계속해서 찰랑거리는 쇳소리가 내 명줄을 끊어 놓을 듯 진동했다.
나는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어떡하지? 어떡해……!’
[리사.]
갑자기 누군가 아래에서 내 손을 잡았다. 작지만 아주 차가운 손이었다.
놀랍게도 꼬마 노엘의 환영이었다.
붉은 보석을 만진 것도 아니라서 지금은 나타날 리가 없을 텐데….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
“네가… 지금 어떻게 나타난 거야?”
[이리 와.]
나는 꼬마 노엘이 이끄는 곳으로 순순히 걸음을 옮겼다.
다름 아닌 옷장이었다.
“후… 나도 여기 숨을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라고.”
밖의 노엘이 들을까 봐 최대한 작게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이나 이 녀석이나 결국은 같은 사람인데?
내 생각이라도 읽은 건지 꼬마 노엘은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옷장은 평범한 옷장이 아니야.]
“평범한 옷장이 아니라고?”
말을 하다 보니 내 몸은 이미 옷장 속으로 이끌려 들어와 있었다.
[뒤를 봐. 또 다른 통로가 있을 거야. 그곳으로 도망가면 돼.]
아니, 그런 게 있었다니!
“근데 왜 나를 도와주는 거야?”
어떻게 나타난 건지도 궁금했지만,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그가 옷장의 문을 살며시 닫아 주며 말했다.
[앞으로도 나는 무슨 일이든 널 도울 거야.]
잘생긴 꼬마가 인성도 바른데, 말까지 달콤하게 잘한다.
지금의 노엘은 왜 저렇게 살벌하게 변한 걸까? 이대로 잘 컸으면 좋았을 텐데.
“고마워…….”
꼬마 노엘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옷장의 문은 완전히 닫힌 후였다.
이윽고 방 밖의 커다란 노엘이 열쇠 구멍에 열쇠를 찔러 넣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맞는 열쇠를 찾은 모양인데.
나는 재빨리 옷장 벽을 살펴보았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벽을 짚어 살피다 보니 미세한 틈이 있었다.
얇은 나무판자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열렸다.
‘좋았어!’
통로를 따라 쭉쭉 기어 나갔다. 통로의 크기는 엎드려야 겨우 지나갈 정도였지만 지금 그런 걸 아쉬워할 때는 아니었다.
그저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
한동안은 힘차게 전진했다.
‘그런데 이 통로는 대체 어디서 끝나는 거지?’
한참을 온 것 같은데,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앞도 컴컴한 것이, 어둠 속을 끊임없이 기어가는 꼴이었다.
노엘을 피해서 기쁜 마음도 잠시, 슬슬 무서워지려 하고 있었다.
‘설마… 이대로 이 통로에 갇히는 건 아니겠지.’
정말로 그럴 것같이 생겼다.
그렇지만 멈추어 설 수는 없었다. 끝이 있을 것이라 믿어야만 했다.
여기서 더 의심하면,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잃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꼬마 노엘의 도움을 의심하고 싶지도 않았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이 별장 안에서, 단 하나만이라도 믿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으니까.
‘사람이고 귀신이고를 가릴 처지가 아니구나.’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나를 도와주는 이는 천사로 인식될 수밖에.
‘대체 출구는 언제 나오는 거야…….’
제발 내가 미치기 전에 나갈 수 있기를 바라건만.
긴장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점차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바닥을 짚은 팔다리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잘하고 있어. 여기서 멈추면 안 돼…….’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 이젠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꼬마 노엘이 아는 비밀 통로라면, 지금의 노엘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가 이 통로를 따라 나를 쫓아올 확률이 100%였다.
그 통로와 문 외에는 달리 나갈 구멍이 없는 방일 테니 말이다.
쾅!
예측한 순간, 멀리 떨어진 뒤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금속 소재의 통로인 만큼 진동이 멀리까지도 크게 울렸다.
‘헉! 역시, 노엘이 따라오고 있어.’
여기서 무섭다고 멈추어 울면 공포물에 나오는 희생양이 되고 말겠지.
절대 그럴 순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였다.
‘앞에 있는 건 나잖아. 노엘보다 빨리 빠져나가면 돼!’
나는 무릎을 꼿꼿이 세우고 더욱 속력을 올렸다.
‘헉… 헉….’
가빠진 숨을 겨우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노엘이 얼마만큼 뒤따라왔는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들 힘도 없어 더는 앞을 보지 않으며 기어가고 있을 때였다.
조금씩 덜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빛이라기엔 어둡고, 어둡다고 하기엔 조금 밝았으니.
어쨌든 출구가 가까운 모양이다.
‘진짜였어…! 꼬마 녀석이 정말로 날 도운 거였어.’
드디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보다도 꼬마 노엘이 거짓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더 기뻤다.
통로의 끝은 철창 같은 걸로 막혀 있었다.
밖을 내다보니 화강암 같은 질감의 벽으로 이루어진 방이었고, 스산한 기운이 역력했다.
무언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도 들고…….
기분 탓인가?
하긴, 이 기분은 여기 와서 매번 겪고 있는 만성 질환 같은 존재였지.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나 봐. 이젠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가 나랑 같이 있는 거 같아.’
철창을 붙잡고 밀어 보니 가볍게 빠졌다.
나사 구멍이 여섯 개나 있었지만, 다행히 박혀 있던 나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휴. 다행이다…. 여기서 막혔으면 진짜 울었을지도.’
나는 서둘러 열려 있는 문으로 나가 복도로 진입했다.
꼬마 노엘이 기다리고 있는 전시실로 곧장 갈 생각이었다.
가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소름이 돋아 상체가 자꾸만 오그라들었다.
***
‘별장 문들의 잠금장치를 모조리 없애 버릴 걸 그랬어.’
간신히 열쇠를 찾아 문을 연 노엘. 그는 불평하면서도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녀가 안에 있음을 이미 확신했으니 말이다.
끼익.
방 안이 아주 고요했다.
그녀가 보이진 않았지만, 옅은 온기와 그녀의 체취가 그를 자극했다.
‘또 숨은 건가.’
역시 옷장 말고는 그녀가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어릴 때 썼던 방이었으니,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옷장의 문을 확 열어젖힌 그는 힘도 들이지 않고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걸 보니, 리사가 이곳을 통해 빠져나간 게 확실해 보인다.
‘여길 어떻게 알고 빠져나간 거지……?’
우연히 찾았다고 하기엔 문을 열기가 수월하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 곧장 달려가면 내가 먼저 도착하겠군.”
노엘은 비밀 통로를 다시 잘 닫아 놓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굳이 비밀 통로로 쫓아갈 필요는 없었다.
비밀 통로와 이어진 곳으로 가는 훨씬 더 빠른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까만 돌벽으로 둘러싸인 방.
‘역시 아직 도착하지 않았구나…. 리사, 빨리 와. 벌써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비밀 통로의 출구를 막고 있는 철창에 나사못이 박혀 있었다.
노엘은 나사를 돌려 하나씩 손수 제거했다.
손으로 충분히 제거할 수 있는 나사였지만, 저 안에서는 손가락이 닿지 않을 것이었다.
나사를 다 풀어내고 나니 검은 비밀 통로 속에서 슬슬 인기척이 들었다.
‘거의 다 왔구나? 조금만 더 힘내.’
쿵쿵.
점점 리사의 소리가 가까워져 오자 그는 바로 근처의 문 뒤로 몸을 숨겼다.
사실 숨을 계획은 없었지만, 갑자기 그녀의 행동을 관찰하고 싶어졌다.
‘요즘 네가 무얼 하고 다니는지 도통 알 수 없어서 말이야.’
최근 노엘은 그녀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숨기고자 한다는 걸 알아챘다.
이윽고 리사가 철창을 빼내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