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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3화 (13/145)

13화.

돔 안에 산 사람이 미라처럼 돌돌 묶여 있었다.

‘뭐야. 저건……?’

갈색 머리의 그는 리마에게 붙어 있던 얼굴과 똑같았다.

돔의 천장 중앙엔 유리 상자가 연결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그리마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경악해선 떡 벌어진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니까 저 둘을 융합하는 실험이란 말인가?

-이봐! 잘 견디고 나면 깨어났을 때 아주 멋진 몸이 돼 있을 거라고!-

-적당히 해. 나라면 끔찍해서 깨어나기 싫을 거야.-

-견디지 못해서 생긴 시체가 넘쳐 나는걸. 이러다간 해고될지도 몰라.-

융합 기계를 가동하기 바로 직전까지도 그들은 조롱하는 말을 내뱉었다.

‘미쳤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꼬마 노엘의 말대로 그리마를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환영들은 내가 만질 수 없었다. 만지려 시도하는 족족 내 몸을 통과했다.

이게 정상이긴 했지만.

결국 퀘스트는 내가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전에 여기서 벌어진 일들을 경험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가?

‘그렇겠지. 역시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거겠지. 그런데 이거 퀘스트 맞지? 맞겠지…?’

의문의 목소리는 어디로 간 건지 말이 없다.

그건 그렇고…. 현재에는 리마가 살아 있으니, 이번 융합 실험은 성공한 걸까?

-마력석은 어디 있지? 레버가 비활성 상태야.-

-아, 여기. 내가 갖고 있었어.-

그들의 말을 들어 보니,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실험은 마력석이란 걸 재료로 쓰는 모양인데. 연구원에 손에 들린 마력석은 방금 막 캔 듯 거칠고 검은 광물이었다.

마력석엔 어떤 힘이 응축된 듯했고, 실험에서 필수 재료로 여겨지는 것으로 보였다.

연구원이 마력석을 특정 위치에 갖다 끼우니, 가장 큰 레버에 푸른빛이 들어오며 활성화되었다.

‘마법 같은 힘이 저 마력석이란 돌에 담기기라도 한 건가.’

이윽고 실험실의 직원 하나가 활성화된 가장 큰 레버를 당겼다.

돔의 작은 창문 밖으로 붉은빛이 번쩍거렸다. 그러기를 몇십 번 반복했던 것 같다.

-자… 그럼, 어디 이번 실험의 성과를 확인해 볼까?-

잠시 후, 돔의 창문 속을 들여다본 직원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때, 성공했을 거 같아? 맞춰 봐.-

그는 동료에게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궁금하게 만들었다.

-뭐야. 빨리 말해. 하나도 재미없거든?-

-후, 이번에도 실패야. 결합은 됐는데… 역시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렸어.-

-뭐, 예상은 했어. 애초에 이게 말이 되냐고.-

-저거 징그러워서 어떻게 치우냐.-

-어차피 우리가 할 일도 아닌데 뭐. 시체 처리반이 알아서 하겠지. 식사나 하러 가자고.-

둘은 하얀 실험복을 허물 벗듯 벗어 놓고 나갔다.

나는 돔 안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하지만 창문 속을 보기가 무척 꺼려졌다.

‘죽었다고…? 실패했는데 리마는 지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확실히 알려면 확인해야 할 텐데.

만약 어떻게 죽었는지 상상이라도 되었더라면, 돔 안을 살펴보는 일은 절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윽…! 읍…….”

결국 그 속의 실체를 알아 버린 나는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했다.

그리마는 사람처럼 커졌고, 갈색 머리 남자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여기까진 지금의 리마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 상태로 썩은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우웁…….”

끈적하고 투명한 액체와 붉은 액체가 뒤섞여 사방을 뒤덮고 있는 돔 안의 풍경이 자꾸만 떠올랐고.

속이 몹시 메스꺼웠다. 금방이라도 내장이 쏠려 나올 것 같다.

‘저 갈색 머리 남자도 론 제국의 포로인 거겠지….’

간신히 속을 부여잡은 나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일어났다.

난생처음 보는 충격적인 장면에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슬픔도 분노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충격의 눈물.

눈물을 닦고 머리를 식히자 환영이 사라졌다. 내게 충분히 다 보여 주었다는 듯이.

‘신종 고문인가……. 이런 건 영화 속에서나 봤는데.’

아무리 환영이라지만, 현실감은 넘치고도 남았다.

그저 꼬마 노엘이 원하는 걸 들어주며 과거의 일을 관전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잔인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이제 겨우 첫발을 뗀 것 같은데, 앞으로 이거보다 더한 게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목숨만 붙어 있어도 기적이겠다.

내키지 않았지만, 꼬마 노엘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려 되돌아가야 했다.

***

“리사…?”

깨어난 노엘은 고개를 천천히 기울이며 목 운동을 했다.

침대에 함께 있던 리사가 어디로 간 걸까.

당장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여기저기 살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덜 깬 눈을 비비면서도 두 다리로 날렵하게 걸었다.

“그새 약속을 어기다니…. 그것도 하룻밤 만에.”

그러던 중, 탁자 위에 놓인 노란 종이를 발견했다.

<안녕. 노엘, 잘 잤어?

이걸 보고 있다면 깨어났겠구나.

잠시 밖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려고 해. 밖이라고 해 봐야 한 지붕 아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지만 아침엔 얼굴 보기 힘들지 몰라.

그렇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갈게. 기다려 줄 수 있지?

도망간 게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해.

그럼, 이따 보자.

-리사.>

“…….”

쪽지를 다 읽었음에도, 노엘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도망간 건 아니다? 돌아올 거라고……?”

그는 리사의 쪽지를 손안에 넣고 동그랗게 구겼다.

‘리사, 난 기다리기만 하는 건… 이제 싫어.’

그러고는 잠시 과거의 일을 회상하더니, 파고드는 두통에 괴로워했다.

“큭…….”

“노엘! 괜찮아?”

언제 들어왔는지 리마가 휘청거려 넘어질 뻔한 그를 지탱했다.

“리마…. 리사가… 리사가…….”

“리사가 널 또 괴롭게 했어?”

“…….”

‘더는 네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은데….’

리마는 혼잣말을 속으로 되뇌며, 노엘의 등을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다리로 쓰다듬었다.

이내 두통이 진정되었는지 노엘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난 이제 괜찮아. 어서 리사를 찾으러 가야겠어.”

“좀 더 쉬는 게 어때? 리사 누나는 내가 잡아 올게.”

리마는 그저 노엘이 걱정되어 건넨 말이었지만 돌아온 답은 차가웠다.

“리마, 요즘 네 태도가 자꾸 내가 정해 준 선을 넘으려 하는 것 같아.”

고개를 비스듬히 비틀며 올려다보는 노엘의 눈빛이 독화살을 쏘는 듯했다.

리마는 적당히 고개를 숙여 그를 위한 표정의 가면을 썼다.

무조건 복종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의 가면.

“미안해. 네가 걱정되어 그랬나 봐.”

“나를 걱정한다니… 웃기지 마. 나는 내가 걱정해.”

‘하지만 넌 언제나 나를 걱정해 줬잖아? 세상에 하나쯤은… 너를 걱정하는 내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리마는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노엘이 말은 저렇게 해도, 속이 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또 주제넘었지. 미안해.”

“리사는 잡아도 내가 잡아. 감히 네가 손댈 생각은 하지도 마.”

“……알았어. 그러니 화 풀면 안 될까?”

“될 수 있으면 넌 리사 근처엔 가지도 말고.”

“……응, 명심할게.”

리마는 왜냐고 질문하는 대신 혼잣말을 속으로 꿍얼거렸다.

‘누나가 내가 싫대? 내 모습이 징그럽고 끔찍하대? 그래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마음속으로 혼자 악수했다며, 자신의 악수를 받아 주지 않던 리사가 떠오르고 말았다. 자신을 보고 경악하며 치켜뜬 그 두 눈동자를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선한 미소를 머금던 리마의 얼굴이 점점 잿빛으로 타들어 갔다.

‘네 곁을 지킨 건, 누나보다도 내가 오래됐는데……. 그래도 나는 노엘과 누나가 모두 좋은걸.’

리마의 더듬이가 악마의 뿔처럼 곧게 휘며 솟아올랐다.

‘그런데 노엘, 지금 느껴지는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어. 이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속이 막 뜨겁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만 같아.’

노엘은 방을 나서며 다시 한번 리마를 쏘아붙였다.

“리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게 네가 할 일이야.”

그런 노엘에게 리마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알았어.”

그리고 노엘이 나가고 나서야 리마는 혼잣말을 조용히 툭 내뱉었다.

“싫어.”

***

꼬마 노엘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환영으로 보았던 걸 말해 주었다.

그가 충격받을까 봐, 돌리고 돌려서 대충 설명했지만.

그는 융합 실험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마를 구하기는 늦었다는 걸 알고 있기는 했어….]

이미 충분히 슬퍼했는지, 조금은 담담해진 모습이었다.

“알고 있는데… 왜 날 보낸 거야?”

아까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질 않았다. 진정 꿈에서까지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어. 날 원망해도 좋아. 나 때문에 몰라도 될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아니야. 네 잘못도 아닌걸. 그럼 난 이제 무얼 하면 돼?”

이왕이면 다음 사건은 이것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이 일은 잊히겠지. 하지만 이거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긴 할까?

아니, 이런 생각은 좋지 않다. 이제 겨우 초반이니까.

[곧 전시회가 시작될 거야. 오늘도 그 자리에… 나와 함께 있어 줄 거지?]

무척이나 간절한 얼굴. 불안한지 어깨에서 옅은 미동이 일었다.

어린아이가 이렇게 사정하는 건 보기 드물 것 같다.

“당연하지. 곧 따라갈게.”

다시 전시실로 가면 되겠다. 그나마 익숙해진 장소라 그런지 조금은 편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잠시 노엘에게 들러야겠지.

너무 늦으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사실 지금도 굉장히 불안했다.

그가 분노해서 철퇴를 들고 쫓아오는 건 아닐지.

‘어흑…….’

어쩐지 추워진 나는 상체를 감싸 안고 부르르 떨었다.

‘사방이 괴물들이야.’

잘생기지 않아도 되니까, 제발 제대로 된 사람 한 명만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제대로 된 사람이란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말이 잘 통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족했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공포 게임인데 로판이 배경이면,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하지 않겠어?’

꼬마 노엘의 환영이 사라지고, 방을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복도 끝에서 여유로운 발걸음과 함께 나긋하고도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게임 속에서, 처음 눈떴을 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성이었다.

“리사, 이번엔 또 어디 숨었어?”

틀림없는 노엘의 목소리.

‘분명 쪽지까지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왔는데!’

그걸 그가 못 봤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또 찾으러 왔다는 건…?

역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내가 지금까지 한 거짓말들이 있으니 무리도 아니긴 했다.

누군가에게 신뢰를 준다는 건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니니까.

‘하…….’

나는 방문을 최대한 조용히 걸어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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