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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2화 (12/145)

12화.

츠스스스.

리마는 잠시 노엘의 방에 들렀다.

“리사는 잘 꺼내 줬어?”

“응. 지금 씻고 있어.”

“청혼할 거라고 얘기했어?”

“물론.”

“근데 노엘은 왜 연애부터 하지 않는 거야? 인간들은 연애 기간이 필요한 거 같던데.”

리마는 막 서재에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읽고 온 참이었다.

청혼을 할 거라는 노엘의 말에 급히 연애 진도에 관한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노엘은 풍성한 속눈썹을 깜박여 짙은 그늘을 만들며 씩 웃었다.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는 사이. 고작 그런 거로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런저런 걸로 얽혀서 헤어지는 과정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좋은 법이지.”

혼란스러워하던 리마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더듬이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곧… 그 녀석이 나타날 테니까, 그 전에 리사와 꼭 결혼식까지 올릴 거야.”

“그 녀석…?”

노엘은 차분히 무릎 위의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응, 이번엔 빼앗기지 않을 거거든. 절대로.”

리마의 30개 다리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동경 어린 시선으로 노엘을 우러러보았다.

“노엘은 대단해. 나도 언젠가 그런 상대를 만나게 될까?”

“그럼, 물론이지.”

“노엘은 리사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얼마만큼 좋아해야 그럴 수 있는 거야?”

노엘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리마는 정말 순진하구나. 난 리사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

“응? 좋아하지 않아?”

“나한테 좋아한다는 건 좀 가벼운 느낌이거든. 대신 엄청나게 사랑해.”

평소의 노엘 같지 않게 뺨이 상기된 모습이었다.

역시 그것이 옳다는 듯, 리마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가운데 다리를 기도하듯 마주 잡았다.

***

오래간만에 따듯한 물로 씻고 나오니 기분이 누그러진 듯 편안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냐…… 가 아니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씻네.’

노엘과 함께 온 이곳은 그의 방이었다.

각방을 쓰고 싶어 부탁했지만, 그러려면 다른 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들어와 보고 깨달았다. 이 별장에서 가장 깨끗하고 정상적인 장소는 이곳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을.

방이 넓지는 않았지만, 아늑하고 있을 건 다 있었다.

저택 안의 또 다른 집 같은 느낌.

“피곤하지? 이리 와 좀 누워.”

노엘이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 손짓했다. 어딘가 신나 보이는 얼굴로.

“……나는 바닥에 누워서 잘게. 주인의 침대에서 내가 잘 수는 없지.”

그러니까 같이 잘 수는 없지!

관 속에서 잤던 때가 새삼 떠올랐다.

‘그건 그렇고 셔츠 단추가 하나씩 밀려 있네. 옷 챙겨 입는 건 허술한 건가… 안 어울려서 귀여운 것 같기도……. 아, 뭐래!’

“그 주인이 무척 원하고 있으니 와 줘.”

여기서 그렇게 간절한 표정을 지으면, 장르가 바뀔 것 같은데…….

“그, 그래?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바닥은… 위험할 거야…….”

“뭐?! 바닥이? 어째서…?”

여기서도 귀신이 나오나?

“네가 벌레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가끔 뭔가 지나가거든. 예를 들면 그리마라거나…….”

“아익!”

나는 발사된 총알처럼 다급히 침대로 뛰어올랐다.

노엘의 미묘하게 웃는 입꼬리가 신경 쓰였지만, 당장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었다.

벌레로부터 내 목숨을 지켜야 했다.

“리사는 정말 벌레를 무서워하는구나.”

“응…. 거의 공포증 같은 거야.”

“딱하네. 아주 불편하겠어.”

“뭐, 어쩌겠어. 내가 이런 걸.”

벌레와 친해지고 싶지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 리마도 엄청 무서워? 리마는 어때……?”

“리마는…… 괘, 괜찮아. 나한테 친절하기도 하고.”

꿀꺽.

어쩐지 입이 마르는 것 같아 침을 삼켰는데, 소리가 하도 커서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겠다.

거짓말이 맞긴 하지만.

“그래? 아닌 것 같은데… 전에 보니까 막 죽으려고 하던데.”

역시 그는 눈치도 무척 빠르다. 뭐든 귀신같이 알아챈다.

설마 진짜 귀신인가?

노엘, 너는 귀신이냔 말이다!

“……내가 괜찮다고 하면,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넘어가 줘.”

피곤이 슬슬 몰려왔고, 곤두선 신경을 좀 쉬게 하고 싶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어. 내겐 무엇보다도 네가 가장 중요하니까, 제대로 알아 두고 싶은걸.”

가장 중요한 사람한테 철퇴를 휘두르려 했어?!

대체 무슨 심산인지.

“……노엘, 로맨스랑 스릴러 중에 하나만 골라 봐.”

“그런 거 몰라. 다 필요 없고, 너.”

“아, 몰라! 나 잘래.”

급작스럽게 얼굴이 화끈해진 나는 휙 돌아누워 버렸다.

그러자 등 뒤에서 노엘이 부드러운 손길로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어서 들려온 그의 따듯한 음성이 자장가처럼 속삭였다.

“네가 괜찮지 않으면, 솔직히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괜찮게 만들어 줄 거 아니야.”

‘말은 정말 달콤하게도 잘하는구나….’

나는 잠이 든 척, 눈을 감고 긴장을 풀었다.

“리사, 내 말 듣고 있어? 자?”

그가 사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꼭 감은 눈두덩 밖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가 내 얼굴을 확인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아까처럼 밝아졌다.

“잠들었구나…. 피곤했나 봐. 잘 자.”

내가 잠들어 버려 무척이나 아쉬운 목소리였다. 좀 더 얘기하고 싶었나 보다.

“일단은 네가 괜찮다고 하니… 리마는 가만히 내버려 둘게.”

맙소사!

나는 떨리려는 손가락 끝에 힘을 꽉 모았다.

‘내 말 한마디에 리마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정신이 다 혼미해지고 흐려졌다.

그는 언제나 내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그와 내가 잘 지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헉?’

노엘의 팔이 내 허리로 파고들어 감싸 안았다.

내 등에 얼굴을 묻은 그의 숨결이 덥고 간지럽다.

“내 곁에서 떠나지 마. 영원히…… 나랑 있어. 평생 잘할게.”

그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흥, 또 홀리는 소리 한다. 잘할 거면 그 철퇴부터 좀 어떻게 해 보든가! 그나저나… 나 진짜 프러포즈받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한 증상이 하나둘 나타났다.

화끈해졌던 얼굴은 터질 것 같았고, 가슴이 펌프질하듯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그런 건지 설레서 그런 건지, 파악해 보려고 애썼지만.

잠이 들 때까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둘 다였다.

무서운데 설렜다.

‘프러포즈는 무슨…….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봐.’

나를 휘감는 노엘의 은은한 체취가 꽤 중독적이었는지, 마취라도 당한 듯 곧 평온해졌다.

평온해지다니.

이러다 정들겠다.

***

잠에서 깨어나니 어젯밤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노엘은 아직 자고 있었고, 창문의 틈새를 보니 파란 새벽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의 품을 벗어났다.

그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다 보니, 식은땀이 다 났다. 시간도 꽤 지체된 것 같은데.

이제 붉은 보석을 찾아 꼬마 노엘을 만나러 가야 했다.

노엘이 깨어 있을 때는 감시가 심할 테니, 자고 있을 때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꼬마 노엘의 방이 같은 층에 있어 멀지 않았다.

방을 나온 나는 복도를 가득 메운 한기에 상체를 잔뜩 움츠렸다.

‘같은 저택인데 완전 다른 세상이야.’

두리번거리니 특별히 지나가는 무언가는 없어 보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사히 도착해 붉은 보석을 손에 넣었더니, 꼬마 노엘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런데 굉장히 침울한 표정이었다.

“꼬맹이 노엘, 무슨 일 있어?”

[왔어? 응……. 그리마가….]

“그리마가…?”

오자마자 왜 하필 그리마 이야기로 시작하는 건지.

[그리마가 잡혀갔어.]

“그리마라면…… 고문실에서 기어 다니던 그거?”

[응. 그게 거슬렸는지… 그놈이 잡아가 버렸어. 근데 그걸 실험실로 넘길 거라고 그랬어.]

“실험실?”

보통 벌레를 잡으면 그대로 버리지 않나? 놓아주든가.

그리마를 잡아 실험실까지 보낸다니. 수상할 정도로 정성스럽네.

[응. 실험실……. 리사, 부탁 좀 해도 될까?]

“무, 무엇이든 말해 봐!”

드디어 퀘스트 같은 퀘스트라도 하게 되는 걸까?

정말로 내키진 않지만 해내야겠지.

[실험실에 잡혀간 그리마를 구해 줘. 내 친구 같은 녀석을 모른 척할 수는 없어.]

“어…? 그, 그래. 근데 이미 죽지 않았을까?”

[아직 안 죽었을 거야. 그곳은…… 융합 실험을 하는 곳이거든. 그리마는 그 실험의 재료로 쓰일 거랬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여기 와서 그리마와 자꾸 엮이게 되니 우울했다.

“알았어. 내가 꼭 구해 올게.”

내가 울상 지으며 말하자, 그가 내게 다가왔다.

꼬마 노엘의 키는 딱 내 허리까지 왔다.

[고마워. 나를 도와주는 건 너뿐이구나.]

그는 내 두 손을 부여잡으며 미소 지었다. 슬픔과 희망이 동시에 섞인 미소라니.

그리고 곧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분명 이것은 환영인데 그의 작은 손이 만져지고 있었다.

차갑고 여린 손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음은 물론, 내 손끝에서부터 소름이 피어올랐다.

[4층으로 가 줘. 그 층은 전부 실험실이니, 함부로 그리마가 있는 곳 말고 들어가지는 말고.]

“응……. 4층이란 말이지.”

나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계단 오른쪽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그리마 융합 실험실이야.]

그 말을 끝으로 환영은 안개가 걷히듯 사라졌다.

만질 수 있는 환영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그게 가능해?

“어휴, 소름…….”

여전히 뭔진 모르지만 일단 움직여야겠다. 4층의 융합 실험실로.

‘근데 그리마를 구하면, 그걸 어떻게 가져와야 하지? 하…….’

그리마가 나를 구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시간이 애매하긴 했다. 새벽이 끝나고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노엘이 일찍 일어나는 성향이라면, 벌써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괜찮을까……?’

이대로 실험실에서 그리마를 구해 다시 꼬마 노엘의 방으로 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족히 필요할 것 같은데, 노엘이 내가 도망간 것으로 간주할까 봐 걱정이었다.

물론 쪽지를 적어 두고 오긴 했지만, 그대로 믿어 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4층까지 내려왔다.

이왕 이렇게 온 것, 다시 돌아가기엔 아쉬우니.

‘에라, 모르겠다.’

덜컹.

융합 실험실의 금속 재질 문이 무겁게 열렸다.

역시 들어가자마자, 구석에서 붉은 보석이 반짝였다.

환영이 펼쳐졌고, 실험실의 연구원으로 보이는 자가 두 명이 나타났다. 하얀 실험복을 입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되었다.

그들은 낯선 기계들을 다루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번 실험은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군. 매번 실패하는 것도 슬슬 지겨워 죽겠어.-

-그러게. 이젠 지루할 정도라고. 차라리 다른 실험실로 가고 싶다니까.-

나는 좀 더 그 근처로 가 주위를 살폈다. 어차피 저들은 나를 볼 수 없다.

실험실의 가운데에 아주 커다란 돔이 있었는데, 얼핏 보면 모양이 꼭 이글루같이 생겼다.

그 돔의 주위를 빙 둘러 수많은 기계가 연결되어 있었다.

조작하는 버튼과 레버도 아주 다양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빠르게 버튼을 누르고 다녔다.

-자, 그럼 어디 다시 시작해 보자고!-

준비가 다 되었는지 그들이 돔의 문을 닫으려는 찰나, 나는 재빨리 달려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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