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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10화 (10/145)

10화.

관이 잘 있는지 확인한 후, 노엘이 갇혔던 유리장 앞으로 다가가 주위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유리장 밑 구석에 아까 본 붉은 보석이 놓여 있었다.

‘분명 이전엔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건가?’

아까처럼 보석을 손으로 들어 올리니 순식간에 주변이 다시 환영으로 물들었다.

활기를 띤, 아주 화려한 장소였다.

온통 금빛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에 걸맞게 눈부신 옷차림을 한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꼬마 노엘의 바람대로 유리장 앞자리를 지켰다.

[고마워. 정말 와 주었구나.]

유리장 속의 꼬마 노엘은 내게 활짝 미소를 지었다.

‘벌써 힘들어 보여……. 완전 고문이잖아. 이거.’

“괜찮아?”

[네가 함께해 줘서 견딜 만해졌어.]

그의 시선은 계속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잠시라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물론 나 또한 홀린 듯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린애지만 눈빛이 심상치 않네. 노엘은 어릴 때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어.’

주위로 몰려든 귀족들의 음성이 시끄러워졌다.

주로 여성들이 많았지만, 남성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저는 이번이 두 번째랍니다.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아 다시 관람하러 왔지요.-

-겨우 두 번째요? 저는 이곳에 아예 며칠 묵기로 했답니다. 매일같이 와서 봐도 질리지 않아요.-

-아아, 한 번만 만져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상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다른 옷을 입은 모습도 보고 싶군요.-

-저는 반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어요.-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보고 저런 말들을 내뱉다니.

누가 보면 인형인 줄 알겠다.

이런 정신 나간 시선들 속에서 홀로 어떻게 견딘 걸까.

‘노엘… 내가 너였으면, 공포에 질려 내보내 달라고 울부짖고 난리였을 거야. 그다음은 제정신을 잃었을 거고…….’

이 잔인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유리장 안이라도 모든 소리는 다 들릴 텐데 말이다.

“웃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저들은 네게 흠집 하나 낼 수 없다면서.”

[내가 웃지 않으면… 같이 잡혀 온 론 제국의 포로들이 고통당할 거랬어.]

정말 악질이었다. 아무리 황태자라지만, 어린애를 협박하다니 범죄 종합 세트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나 무서웠던 노엘이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자기 나라의 포로들을 위해 희생했던 거였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기 살기도 바쁠 텐데.

‘원래 황태자는 어려도 어른스러워야 하는 거야?’

이 와중에도 자기 사람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가 나를 향해 계속 웃고 있으니, 그를 분석의 대상처럼 바라보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사, 이렇게 매일 내 곁에 있어 주면 좋겠어.]

음, 그러니까 이것도 ‘그가 원하는 일’에 해당하는 거겠지?

붉은 보석을 계속 이어 가야 한다고 했던 말을 잘 기억해 놓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된다면, 매일 네 곁에 있을게.”

[그 말…… 정말이지?]

“응. 정말이야.”

[그럼 확실하게 약속해 줘. 매일 내 곁에 있겠다고. 아니… 영원히.]

훈훈하게 잘 나가나 싶다 했더니, 그의 단어 선택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영원히…? 왜 여기서 위화감이 드는 거지? 익숙한 이 느낌은… 마치 지금의 노엘 같은 느낌인데.’

같은 사람이긴 했다.

뭐, 이 녀석이 그렇게 커 버렸으니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려나?

영원이란 단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싸한 바람이 등골을 휘젓고 새어 나간 기분이었다.

[마음이 금방 바뀌었어? 왜 대답이 없어?]

혼란스럽지만, 이 붉은 보석 퀘스트를 깨려면 이야기가 이어져야 할 게 아닌가.

그러니… 여기서 싫다고 하고 도망쳤다가는 또 이도 저도 아니게 돼 버릴 수도 있다.

에라. 일단은 가 보자. 그래.

“약속할게! 마음 안 바뀌었어.”

[휴, 다행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네가 싫다고 도망갈까 봐 걱정했어.]

“괜한 걱정 끼쳐서 미안해.”

[아니야.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네가 도망가면 내가 찾으러 가면 되지 뭐.]

“응…?”

[농담이야. 리사는 표정이 참 다양해서 좋다.]

다시 한번 뇌를 타고 전류가 역류하는 듯했다.

어쩜 말하는 투가 노엘이랑 저렇게 똑같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아주 똑같다.

지금 여기서 진짜 노엘까지 나타나면, 노엘이 둘인 건가.

와……. 그럼 감당 못 할지도.

그런 상상은 하지도 말아야지. 어휴.

[이제 곧 끝나는 시간이야. 리사. 다리 아프지 않아? 좀 쉬면서 있어도 되는데…….]

“으응. 괜찮아.”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다. 현재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다리가 조금 뻐근하긴 한 거로 보아 한 시간은 되었을까 싶었다.

사실 하도 긴장해서 그런지 온몸의 근육이 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지 오래였다.

[오늘은 잘 웃고 있었으니 고문실로 가지 않아도 되겠어.]

꼬마 노엘은 피곤하고 힘들어 보였지만, 잘 견뎠다고 생각했는지 제법 뿌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다음엔 어디서 만날까?”

[바로 아래층에 내 방이 있어. 다음엔 내 방으로 찾아와 줄래?]

“갈게!”

[믿어. 기다리고 있을게.]

그렇게 다시 환영이 사라지고, 주위는 원래대로 검게 돌아왔다. 스산한 기운과 함께.

‘후. 꼬마 노엘이나 지금의 노엘이나, 하는 말 한마디마다 긴장된단 말이야…….’

나는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다 문 바로 앞에서 걸음을 즉시 멈추었다.

귀에 익은 소리였다.

터벅. 터벅. 터벅.

저 거인은 주로 7층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다.

발소리가 꽤 가까워 지금은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거인이 멀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어째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제발…… 좀 가라고!’

아무래도 저놈이 이 전시실로 들어올 것 같다고 직감이 아우성쳤다.

나는 당장 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드러누웠다.

또 혼자 우주 속을 부유하기라도 하는 듯한 폐쇄적인 공포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렇게 버틸 수밖에 없는 건 저 거인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금방 나가겠지. 조금만 참으면 돼. 저 거인이 다시 나갈 때까지만…!’

엄마 배 속의 태아처럼 웅크리고 벌벌 떠는 중이었다.

전시실로 들어온 거인이 안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가 싶더니 점점 걸음을 빨리했다.

터벅터벅!

거인의 쿵쿵대는 발소리가 점점 생생하게 귀를 때렸다.

“우어어어어!”

거인의 포효 소리와 함께 찬 바람이 내 뺨을 후려쳤다.

관 뚜껑이 날아가 버렸고, 질끈 감은 눈을 떴을 땐 거인의 손에 멱살이 잡힌 뒤였다.

“흐큭!”

목이 너무 졸려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내 발이 둥둥 떠 있다는 건 거인이 날 들어 올려 어딘가로 옮기고 있다는 건데.

혹시 나도 유리장에 가두어 버리려는 건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고 말았다.

철컥!

유리장에 처박혀진 나는 그대로 갇혀 버렸다.

“우워우워!”

내 앞에서 원시 생물처럼 울부짖던 거인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저, 저런……. 뭐야!”

나… 갇혔어?

쿵쿵!

나는 유리 벽을 힘차게 두드렸다.

혹시 깨뜨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자세히 보니 강화 유리처럼 아주 튼튼한 재질이었다.

문을 발로 힘껏 밀어 보기도 했으나… 열릴 리가 없었다.

내 몸집이 유리장보다 커서 강제로 다리와 허리가 굽어졌다.

관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답답하고 무서웠다.

“어, 엄마…….”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숨이 갑갑하게 차오르는 것이 꼭 물속에 잠긴 것 같았다.

호흡이 가빠져 고개를 겨우 들어 보니 유리장 위에 작게 뚫린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숨구멍이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산소는 몹시 부족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이 밀폐 공간에서, 갑자기 꼬마 노엘이 떠올랐다.

처절하게도 그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버거운데…….’

눈앞에서 자신을 물건 대하듯 품평하는 말까지 모두 견뎌내야 했지. 그저 웃으면서.

나는 1초라도 더는 이 안에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이 유리장이 바닥에 고정돼 있지 않다면 쓰러뜨려서라도 깨뜨려 볼 생각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움직여라, 좀!’

틀렸다. 바닥과 붙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 몸부림에도 이렇게 멀쩡히 서 있을 리가 없었다.

‘싫어…….’

더욱 몰려드는 공포감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거인 괴물이 어떻게 관을 열어 볼 생각을 한 거지?’

분명 노엘과 하룻밤을 무사히 보냈던 곳인데, 그땐 관 근처에는 오지도 않았었는데.

이번엔 도대체 왜?

***

노엘의 방이었다.

“노엘. 지나가던 길에 그녀를 봤어.”

노엘의 앞엔 근육이 산만 한 거인이 다소곳하게 서 있었다.

“그녀라면… 리사를 말하는 건가?”

“응. 저번처럼 관에 숨어 있더라고. 이번엔 혼자였지만.”

“그렇지 않아도 리사가 내게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던 참이었어. 어디 갔나 했더니 거기 숨어 있었던 건가.”

“그래서 내가 전시실 유리장에 안전하게 넣어 두었어. 지금은 밤이잖아. 나 잘했어?”

거인은 자기 가슴을 쿵 치며 콧방귀를 뀌었다. 칭찬해 주길 바라는 듯했다.

반면, 노엘은 놀라서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뭐라고! 그 유리장에……?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 건 아니겠지?”

“물론이지. 흠집 하나 내지 않았어. 그러니 무섭지도 않았을 거야. 내가 얼마나 친절했는지, 네가 직접 봤어야 했어.”

그는 계속해서 칭찬과 인정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가슴을 쓸어내린 노엘은 마지못해 그의 무릎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키가 너무 커서 머리를 쓰다듬을 수는 없었다.

“후,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래, 잘했어. 알프레드. 그런데.”

“우워어어어어어! 우워워!”

거인 알프레드는 기뻐선 우렁차게 포효하며 달려 나갔다.

할 말이 더 있었던 노엘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 저 덜떨어진 녀석……. 역시 없애 버릴 걸 그랬나.”

알프레드 덕분에 리사와 관 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때도 하마터면 그녀가 다칠 뻔했던 걸 잊고 있을 리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리마는 두 번째 다리로 더듬이를 튕겼다.

“……나는 알프레드가 잘한 것 같은데? 그 연약한 몸으로 나쁜 것들한테 공격당하면 어쩌려고. 어서 리사한테 가 봐!”

“하…… 그래야지. 많이 무서울 거야. 걱정돼 미치겠네.”

리사 걱정에 심각한 얼굴이 된 노엘은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얼마나 걱정되었는지 허둥지둥 바지를 입다 세 번이나 떨어뜨려 다시 주웠다.

“이제야 너를 애타게 찾고 있을걸? 거기서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했어.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리사는 스스로 내게 오지 않았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너무 내 멋대로 굴었나 봐. 마음만 급박해져선….”

“그럼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하면 되지 않겠어?”

“그러려고 해. 내가 너무 성급했어. 역시 청혼부터 먼저 해야 했어.”

“처, 청혼?! 그게 더 성급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함께하고 싶은 여자가 생기면 당연히 청혼부터 해야지.”

순간, 리마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래? 청혼부터 하는 게 맞는 순서인 거야……? 요즘 인간 종족들은 진도가 빠르네. 하긴… 시간으로 치면, 진도는 우리 종족이 더 빠를 수도.’

얼굴이 붉어진 리마는 어쩐지 부끄러워져 더듬이를 격렬하게 쓰다듬다가 세 번째 다리가 떨어져 버렸다.

“이크!”

그러는 사이, 노엘은 흰 셔츠의 단추가 한 칸씩 밀린 줄도 모른 채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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