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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의 집착남이 나를 쫓는다-7화 (7/145)

7화.

“저기 무슨 상자가 있어.”

복도를 거닐던 중, 지나친 하나의 방에 직사각형의 커다란 상자가 놓인 것이 보였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자.

“상자 안에 다리가 들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노엘이 먼저 거침없이 다가갔다. 나는 먼발치에서 떨어져 그저 구경만 했다.

내 경험상 공포물에서 무언가를 열어 보는 것은 무척 위험한 행위였다.

하지만 노엘이 대신 열어 준다면…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리마랑 사이좋게 지내는 녀석이니까.

그 정도면 어떤 귀신이 나와도 잘 지낼 것 같았다. 귀신도 외모를 보나? 모르겠다.

노엘은 망설임 없이 상자를 열었다.

끼익.

낡은 상자가 삐거덕거리며 열리자 정말 그곳엔 다리가 하나 들어 있었다.

노엘은 그리마의 기다란 다리 하나를 들고는 내게 씩 웃어 보였다.

‘만졌어! 저걸 만지다니!’

“이것 봐. 정말 있었어. 하나 찾았네.”

워낙 길어서 무기로 사용해도 될 정도다.

그는 내게 다리를 내밀며 구경하라는 듯 보여 주었다.

“나… 나는 그거 못 만지겠어. 싫어.”

내가 적극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자, 그는 바로 알았다는 듯 거두었다.

“그럼 다리는 내가 들고 다닐게. 못 만질 정도로 그렇게나 싫어? 그러면…… 그냥 없애 버릴까?”

……잘못 들었나?

잠깐이지만 기분 탓인지, 찾은 다리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졌다.

“어, 없애다니! 그럼 다리를 찾아 주는 의미가 없잖아.”

“그럼… 리마를 없애 버릴까?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줄게.”

……응?

잠깐 어디 안전한 곳에 가서 혼자 울고 싶어졌다.

리마의 다리를 찾아 줄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었나?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없애 버린다는 말을 할 수 있지?

“그, 그러지 마. 지금 너, 너무 이상해. 노엘.”

“내가…… 이상해?”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원망하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이 또다시 철퇴를 향했다.

내가 정말 게임에 빙의라도 한 거라면, 철퇴 엔딩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급히 말을 바꾸었다.

“아니! 너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 내가! 내가 이상한 거야.”

“나는 널 위해서 그렇게 생각한 거였어. 네가 너무 싫어하니까.”

철퇴를 문지르는 손가락이 그것을 곧 뽑아 들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선… 이 세상에 너와 나 단둘만 남았으면 좋겠어.”

나를 단숨에 얼어붙게 한 저 눈동자가, 진심이라 말하고 있었다.

꿀꺽.

침 한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겨우 내려갔다.

이 두렵고 싸한 분위기를 더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당장 1층으로 뛰어 내려갈 마음을 먹었고, 그를 지나쳐 파바박 달아났다.

그는 여전히 바로 따라오지는 않고 그저 여유롭게 중얼거렸다.

“리사, 같이 가.”

그의 쓸쓸하지만 섬뜩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내려가자마자 열쇠 구멍에 꽂아 넣을 열쇠를 목에서 풀어 손에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진이다.’

부디, 이게 내 마지막 도망이기를.

***

노엘은 달아나 멀어지는 리사를 찬찬한 발걸음으로 뒤따랐다.

그는 내내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뒤통수를 손으로 쓸었다.

‘올 게 왔군…….’

당장 앞에 벌어질 일이 몹시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아까 리사에게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던 건데… 뭐, 내가 이상해도 어쩔 수 없지. 이 세상에 너와 나 단둘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는 건 사실이잖아?’

행복한 상상이라도 한 건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그였다.

***

1층으로 내려온 나는 가장 큰 문을 향해 돌진했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흥분해서는 드디어 열쇠 구멍으로 열쇠를 찔러 넣었다.

‘크으! 좋았어. 이제 나갈 수 있어!’

그리고 알아 버렸다.

열쇠가 구멍에 비해 훨씬 작다는 것을. 그러니까, 이 문의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뭐야. 미…, 미친…!”

아… 내 목덜미…….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여러 번 넣었다 뺐다 반복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드디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기뻤던 마음이 순식간에 나락 끝으로 떨어졌다.

어쩐지 너무 순조롭다 싶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실망감이 몰려들었다. 무엇에 대한 실망감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게 거짓말을 한 노엘에 대한 실망감인지, 그걸 믿고 그를 꺼내 준 나에 대한 실망감인지.

허탈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노엘이 언제 왔는지 뒤에서 입을 열었다.

“그건 그 문의 열쇠가 아니야.”

“나를 속였구나. 나한텐 거짓말하지 말라고 해 놓고선.”

“속인 건 미안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날 꺼내 주지 않을 것 같았어.”

가슴속 깊이 차가운 물결이 내려앉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에게 열쇠가 없었다면, 나는 유리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였어도 그렇게 했을 테니, 그를 아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 실망감에 대한 원망의 대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각오했던 일이지 않은가.

감정적으로 대처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의문의 목소리가 더 문제였다.

[문을 열면 나갈 수 있다고 했지, 그 열쇠가 이 문의 열쇠라고는 하지 않았어.]

내가 속으로 원망하자 기다렸다는 듯 자기변호를 하고 있었다.

슬프게도 또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 다 내 잘못이야. 좀 더 자세히 물었어야 했는데.’

빠르게 결론을 내린 나는 앞으로의 일을 다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노엘. 이제부터 나 따라오지 마.”

“나한테 화났어? 그래서 그래?”

이 녀석 옆에 있다간 계속 휘말리기만 할 뿐. 이곳을 나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니. 화 안 났어. 그냥 더 이상 내 옆에 있지 말아 줘. 방해돼.”

그도 솔직히 말해야 알아들을 것 같아, 곧이곧대로 말했는데.

그의 눈 밑에 심상치 않은 그늘이 드리웠다.

그러니까 괜히 말했나 싶어질 정도였다.

“이번 일로 나한테 화가 많이 났구나. 리사… 정말 잘못했어. 만회할 기회를 줘.”

“아, 아니……. 그러니까….”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선 안 된다.

‘홀리면 안 돼!’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좋아. 네가 만회할 기회를 줄게.”

“정말…? 기뻐. 내가 어떻게 하면 돼?”

그의 깊은 눈매가 언제 슬펐냐는 듯 활짝 휘었다.

“이 문의 열쇠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으면 해. 솔직하게.”

하지만 내 말에 노엘의 휘었던 눈이 금세 또 서늘하게 돌변했다.

역시, 그는 내가 이곳을 나가는 걸 원치 않는 게 틀림없었다.

“리사. 왜 자꾸 나가려고만 하는 거야? 네겐 아무래도 내가 보이지 않나 봐…….”

“보이긴 보이는데….”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려온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어쨌든 다시 한번 확인했으니 되었다. 그는 절대 나를 도와주지 않으리라는 것.

그에겐 더는 헛된 희망을 품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방해꾼은 필요 없으니…….

“노엘. 아까도 말했지만, 더는 나를 따라오지 마. 마주치는 일도 이젠 가능하면 없었으면 해.”

“…….”

“어쩔 수 없이 마주치더라도, 알은척하지 말자. 각자 갈 길 가자고.”

누가 보면 이별하는 연인인 줄 알겠다.

말을 마친 나는 천천히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그의 가죽 구두에서 절대 시선을 떼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가 또 나를 따라오겠다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내가 계단을 밟고 올라갈 때까지, 그는 다행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눈으로만 나를 좇을 뿐.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 그게 마지막으로 본 그였다.

나는 그대로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끼익.

2층으로 올라간 나는 제일 작아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가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침대가 있다면 침대 밑이 걸렸을 거고, 옷장이 있다면 뭐가 나올까 봐 무서웠을 것이다.

‘휴…. 드디어 혼자 있을 수 있게 된 건가.’

아무것도 없으니 감옥 같긴 했지만. 모서리의 거미줄만 아니면, 오래간만에 나름 아늑했다.

나는 문 옆에 쪼그려 앉아 잠시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일단 게임 설정을 후루룩 넘겨 버렸던 과거의 나를 먼저 원망했다.

아직도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지 않은가.

받아들일 때도 되었지만 사실 그건 너무도 힘든 일이다. 워낙 비현실적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가만히만 있을 수도 없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해 봐야지. 알고 있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이용해 볼 수밖에.’

분명히 이 별장 어딘가에 1층 출입문의 열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게임을 하듯 단서를 찾으러 다녀야 하나?’

그전에 정상적인 게임이라면, 시작부터 내게 언질을 좀 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쨌든… 무식하더라도 이 별장 곳곳을 뒤지고 다니는 수밖에.’

지금으로선 그렇게라도 해야 뭔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 지금 있는 2층부터 천천히 살펴보자.’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츠스스스.

……?

‘여기서 리마 소리가 왜…….’

생각해 보니 리마는 아직 2층 오른쪽 복도에서 다리를 찾고 있을 것이었다.

‘근데 여긴 왼쪽 복도인데…? 그냥 한 층 더 올라갈 걸 그랬나.’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문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안인가? 밖인가?

분명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다가 문득 아차 싶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살폈다.

“히익!”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듯했다.

츠스스. 츠스스.

내 머리 꼭대기 바로 위에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 리마가 붙어 있었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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