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대리석 바닥이라 얌전히 걸으면 소리가 안 날 수도 있긴 할 것 같다.
‘어휴. 제발……. 아 제발…. 진짜 이러지 말자.’
오한이 드는 것처럼 온몸이 찌릿했다.
숨어 있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아, 차라리 다시 뛰쳐나갈까 고민했다.
아까 도망치며 얼핏 보았을 때 방도 무수히 많은 것 같았고… 대궐처럼 넓었으니 말이다.
어디 들어가 문이라도 잠그고 있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민 끝에 나는 커튼 밖으로 나갈 각오를 했다.
슬그머니 커튼 밖으로 얼굴을 내밀려는 순간이었다.
“읍!”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잡아 끌어안았다. 동시에 내 입을 막아 버려 나오려던 비명이 쏙 들어가 버렸다.
“고작 이런 데 숨어 있을 거였으면… 차라리 내 곁에 딱 붙어 있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아까 넘어졌을 때 맡았던 향이 났다. 무슨 향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아무튼 좋은 향이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내 뒤에 있는 건 노엘이었다.
뒤에서 껴안기가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왜 이렇게 떨고 있어. 진짜 안 되겠다. 너, 날 가슴 아프게 만들어서 죽일 셈이야?”
“우으으으읍!”
그가 속삭일 때마다, 내 귀에 간지러운 입김이 불어와 닿았다.
“쉿. 10시야. 리사… 조용하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잘리고 말 거야. 잠시 나랑 이렇게 숨어 있자.”
‘잘린다고?’
심장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 쿵쿵 시끄럽게 박동했다.
그래도 등 뒤가 따스하니, 혼자 숨어 있는 것보단 조금 나았다. 문제는 이 녀석을 피해 숨어 있던 것이라는 사실이지만.
일단 거짓말은 아닌 듯하니, 나도 잠시 잠자코 있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대체 뭐길래 노엘도 숨는 거지?’
서걱 서걱 서걱.
무언가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날카로운 쇳덩이가 스치는 소리를 내면서.
‘이 소리는 또 뭐야……. 하…… 집에 가고 싶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안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온몸이 덜덜 떨려 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러자 나를 감싼 단단한 팔이 더욱 꽉 조여 왔다.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그러는 네가 제일 무섭다고! 믿어도 되는 거 맞아?’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이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직진하지 않고, 벽난로 근처로 오는 듯했다.
서걱 서걱 서걱.
‘지, 지나가겠지?’
가위 소리 같았다. 작은 가위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되는, 추측건대 엄청나게 큰 가위 같았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이 커튼과 함께 노엘과 나를 잘라 버릴 것 같은 기세로 돌진하고 있었다.
서걱 서걱.
‘지금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야? 그럼 안 될 것 같은 건, 나만 드는 생각인 건가?’
라는 급박하고도 불길한 직감이 든 순간, 노엘이 빠르게 나를 안아 들어 커튼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끝이 뾰족한 거대한 가위가 커튼을 한 방에 잘라 버렸다.
나는 노엘의 목을 꽉 안아 생명줄처럼 붙들었다.
“이런, 들켰군.”
“어… 엄뫄아아악! 끄아아악!”
다소 우렁찬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니, 제 몸만 한 가위를 든 정체불명의 존재가 이쪽으로 고개를 홱 꺾었다.
얼핏 보인 얼굴은 영혼이 빨린 듯 쪼그라든 얼굴이었다.
그리고 눈이 없었다. 앞을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알이 없었다. 대신 검은 구멍 두 개가 얼굴 반 이상을 자치하며 뻥 뚫려 있었다.
그 모습과 지금 처한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눈앞에 움직이고 있는 저 해괴한 생명체가 현실인지 허구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다.
저 들고 있는 가위에 내가 정말 잘릴지, 아니면 꿈에서 깨는 계기가 될지 종잡을 수 없어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목숨을 담보로 무턱대고 실험해 볼 수도 없고, 실험해 볼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임이든 현실이든 일단 끔찍하게 죽기 싫으니까.
그것은 뼈를 마찰하며, 계속해서 고개를 좌우로 꺾어댔다.
이내, 다시 시동을 걸듯 가위질을 시작했다.
뿌드득뿌드득.
“썩어. 가지. 가지 잘라. 가지 잘라, 내 주머니로.”
그것은 알 수 없는 말을 주문처럼 외고 있었다.
‘가지가지 한다. 진짜.’
나를 안아 든 채, 노엘은 빠르게 뛰어 계단 위로 올라갔다.
나는 노엘이 가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그것이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서걱 서걱 서걱.
역시나 가위를 든 그것이 따라붙었다.
저 입 크게 벌린 가위를 바라만 봐도 내가 반 토막 날 것 같았다.
‘와후. 어우…….’
못 볼 것을 본 듯 다시 앞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서거걱. 서거걱.
계단은 좀 힘든가 보다. 그것의 가위질이 느려졌다.
그에 비해, 노엘은 계속해서 가볍고 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랐다. 몇 층을 올라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르다 보니 가위 소리가 어느새 사라졌다.
“큰일 날 뻔했어. 후.”
온몸이 긴장으로 바짝 힘이 들어가니, 내가 뛴 것도 아닌데 땀이 다 났다.
노엘도 한바탕 땀을 흘렸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는 여전히 뽀송했다.
꽤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게다가 나까지 들고 있어서 배는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이런 체력으로 나를 쫓아온다고 생각하니……. 진짜 망했다. 망했어.
“밤엔 1층에 있으면 안 돼. 아까 그 정원사가 1층의 모든 곳을 뒤지고 다니면서 무슨 영혼이든 잘라 버리거든.”
“영혼이 잘리면 어떻게 되는데?”
“조각이 난 채로 영원히 살아 있게 돼. 그 녀석 주머니 속에서.”
그러고 보니 정원사의 주머니가 아주 빵빵하게 부풀어 있던 것도 같다.
주머니 속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의식이 있는 채로 살아야 한다니…….
‘너무 끔찍해서 생각만 해도 죽을 것 같아.’
“정원사는 밤부터 다음 날 이른 아침까지 뛰어다녀. 그러니까 그 시간 동안은 1층에 가지 않는 게 좋아.”
“아니. 근데 왜 정원사가 실내에서 저러고 있는 거야? 밖으로 내보낼 수 없어?”
“썩은 나뭇가지가 이 안에 많다는데 어쩌겠어. 아마 우리도 썩은 나뭇가지로 보고 있을걸?”
노엘은 태연히 나를 안아 든 채, 어떤 방으로 들어왔다.
방문을 꽉 닫은 후 문고리를 돌려 잠근 그는 나를 킹사이즈의 넓은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풀썩 내려앉음과 동시에 먼지가 풀풀 휘날렸다.
“그 외에도 밤에는 웬만하면 복도에 나가지 마. 이렇게 빈방에서 숨어 밤을 보내는 게 좋아.”
“1층이 아니라도?”
“응.”
“다른 층도 밤이면 뭐가 돌아다녀?”
“응. 낮에는 잠을 자다가, 밤에 나오고 싶어 하는 것들이 많거든.”
“그렇구나……. 많구나…….”
슬프구나.
정원사에 대한 충격의 여운이 좀 사라지려나 싶었는데, 순간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다시 충격을 받았다.
정신 차려 보니 방문도 단단히 잠긴 방에 둘이 있었다.
나는 아차 싶어 급히 그의 얼굴을 살폈다. 더불어 손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또 철퇴를 매만지는지… 아닌지.
그가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곤 내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뭐… 뭐지?’
일단 철퇴를 만지는 게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노엘은 미묘하게 눈이 풀려선, 씩 웃었다.
“아깐 나한테 왜 그런 거야?”
“응? 무얼…?”
“다짜고짜 나한테 입 맞췄잖아. 그게 찾아낸 것에 대한 보상이었어?”
“아…….”
아……? 그건 누가 봐도 사고였지 않나.
‘지금 나 놀리는 건가?’
“대체 왜 그런 거야. 응?”
몹시 궁금한 모양이다. 대답을 갈구하는 저 표정이 참으로 쓸데없이 퇴폐적이고 애절했다.
“그… 그러니까. 그건…….”
“그건…?”
[하고 싶어서 했다고 말해.]
갑자기 머릿속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엘이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나한테만 들린 모양인데.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무시하려 했다.
[하고 싶어서 했다고 말하라고.]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보다.
‘뭐야, 나더러 지금 그런 말을 하라고? 그보다도 넌 대체 누구야?’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살고 싶으면 5초 이내로 대답해. 그렇지 않으면 노엘이 철퇴를 뽑을 거야.]
나는 그 말에 괜히 마음이 다급해졌고, 이 목소리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아는가 싶어 일단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나 지금 얼굴 왜 빨개지는 건데. 왜 활활 타오르는 거냐고.
부끄러움은 전부 내 몫이었다.
“왜 그랬겠어. 하…, 하고 싶으니까 그랬겠지?”
엄마. 나 뭐라는 거니. 결국 시키는 대로 말해 버렸다.
“하고… 싶었다고? 나랑……?”
“으응…….”
그의 뺨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졌다.
뭐지. 부끄러워하는 건가?
의외로 순진하다거나……. 착하다거나……. 정상적인 사람이라거나…….
아니, 정상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기엔 이미 좀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누그러진 분위기였다.
잘하면 노엘한테 살해당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적어도 이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말이다.
“왜 나랑 하고 싶었는데?”
어쩐지 질문이 굉장히 집요했다.
마음 같아선… 그걸 몰라서 묻냐고 하고 싶었지만.
[좋아서 그랬다고 말해.]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또다시 의문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세상에. 그건 완전 고백이잖아.’
[이번에도 5초 안에 대답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노엘이 철퇴를 뽑아 네 머리통에 명중시킬 거야. 그럼 해골이 쪼개지겠지. 그냥 박힐 수도 있고.]
순간 뇌가 마비된 듯 공포에 질려 버렸다.
협박인지 구원의 손길인지 모를 목소리에, 나는 5초가 넘어 버릴까 봐 빨리 말했다.
“노엘. 네가 좋으니까 그랬지.”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의 반응은 급격히 커진 동공만큼이나 뜨거웠다.
[다시 한번 그에게 확신을 주도록 해. 5초 이내로.]
제기랄.
나는 눈 딱 감고 로봇처럼 입을 벌렸다.
“응. 널 좋아해.”
나는 로봇이다. 나는 로봇이야.
살려 줘.
그가 더욱 가까이 와 내 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한동안 눈꺼풀도 깜박거리지 않고, 강렬하게 눈을 맞추었다.
“네게 그런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그의 눈빛에 빨려 들어갈 듯하다 겨우 헤어 나온 순간, 내 시선이 허리춤에 머문 그의 손을 향했다.
철퇴를 문지르다가 스윽 뽑고 있는, 그의 탐스럽게 각진 손을.
***
“네게 그런 말을 듣는 날이 올 줄이야…….”
노엘은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를 진정시키려, 더욱 집중해서 깊은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벌벌 떨 거면서 거짓말은 왜 하는 건지.
‘이대로 네 달콤한 거짓말에 파묻혀 버리고 싶어.
천국에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뭐, 어디든 상관없긴 해.
용암 속이라도 널 쫓아 뛰어들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