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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119)화 (119/120)

119화

“정말 이렇게 가는 거예요?”

“더는 이곳에 머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란이 대수롭지 않게 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대공 성에서 지내며 황제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기까지 했던 란은 모든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내가 없는 공화국의 상황이 걱정도 되고.”

그렇게까지 얘기하면 더 있다가 가라고 하기도 뭐하잖아.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을 더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스텔라, 당신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까?”

“네?”

예상치도 못한 말에 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건이 많을 것 같아서요.”

“아, 저도 곧 돌아가야죠.”

그러고 보니 이곳에 살기로 해놓고 나는 이 몸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괜히 마음이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떨구고 있던 그때, 갑자기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란?”

“그렇게 아쉬우면 다음 기회에 직접 공화국으로 놀러 오십시오.”

아무래도 내가 란과의 이별 때문에 속상해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란을 끌어안았다.

“조심히 돌아가요.”

“당신도 모쪼록 잘 지내십시오.”

란의 뒤에 있던 사신들이 하나둘 짐을 들었다. 이제는 정말로 작별의 시간이었다.

* * *

란이 가고 나니 안 그래도 넓디넓은 성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이렇게 처져 있을 수는 없지.’

무엇보다 해야 할 일도 생기지 않았나. 이곳에 익숙해지려면 우선 아스텔라에 대해 아는 게 우선이었다.

내가 빠르게 방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대공 성의 대문으로 다가간 그때였다.

“아, 정말입니다! 저번에 의뢰를 들으러 찾아온 적 있잖아요. 제 얼굴, 기억 안 나세요?”

“약속을 잡지 않으시면 대공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지금 그 약속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요? 탐정님이 안전하신지가 가장 중요하지!”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대공 성 입구 쪽이 시끌벅적했다.

‘이상하네?’

루베르는 잠시 황궁에 볼일이 있다고 아침부터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끄러울 일이 뭐가 있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입구 쪽으로 가니 기사들의 손에 붙잡힌 남자 한 명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타, 탐정님! 무사하셨던 거군요!”

“저요?”

내가 나를 가리키며 묻기가 무섭게 남자가 울먹대기 시작했다.

“모른 척하지 말고 저 좀 도와주세요…….”

“저를 아세요?”

“지금은 이런 장난을 칠 때가 아니라니까요!”

당황한 마음에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자 기사들이 곧장 손을 놓았다.

“이렇게 위험한 일인 줄 알았다면 조수인 저도 함께 갔을 거예요.”

“조수요? 당신이?”

“아까부터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저예요, 저! 반이라고요. 탐정 사무소로 돌아오질 않으셔서 걱정했는데, 황제를 잡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얼마나 기겁한 줄 아세요?”

반이 울먹거리면서 계속 투덜거림을 이어갔다.

“언제나 위험한 일이면 저를 쏙 빼고 다니시고. 그러다가 큰일이라도 나셨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

“다른 곳은 어디 다치지 않으셨죠?”

거짓말을 하는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음부터는 얘기라도 좀 해주시라고요. 대공 성의 의뢰를 받아들인다는 편지만 놔두고 가시면 저는 어떻게 하라고…….”

“가요.”

“네?”

“탐정 사무소요.”

아스텔라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지만, 이 몸에 들어온 이상 더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지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 * *

탐정 사무소가 있다던 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나선 기사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수도 한가운데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드디어 탐정님과 다시 사무소에 와보네요.”

2층으로 올라간 반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잡다한 서류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높이였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벽에는 가득 사진이 붙어 있고, 책상에는 편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오니 어떠세요? 감회가 새롭죠?”

반이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면서 되물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산더미예요. 이제는 저랑 함께 다녀야 해요, 네?”

나는 바로 앞에 놓인 서류를 확인했다.

거기엔 어린아이가 자신의 언니를 찾는다는 의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린스가 우는 걸 보고 탐정님이 곧바로 맡으신 사건이잖아요. 기억나세요?”

“아, 네. 뭐.”

“자신을 도와준다고 말한 사람은 처음이라면서 우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나는 천천히 사건들을 손으로 훑었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사람들, 무고한 사건의 피해자들. 이 장소에는 정말 많은 사람의 얘기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건의 피해자가 아직도 어떤 해결도 없이 그 시간에 멈춰 있다니.

사람들의 의뢰를 확인하면 할수록 심장이 크게 진동했다. 마치 이 사건을 당장이라도 해결하러 뛰어나가야 할 듯이.

―당신이 나를 구해준 겁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 루베르가 내게 해줬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엔 아직 수많은 루베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아스텔라.”

루베르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당신의 조수가 대공 성에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잘 만난 겁니까?”

“아, 네. 오랜만에 만나니 새롭더라고요.”

정말 새로운 경험이긴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애써 미소 지었다.

―어서 돌아오세요. 아직 이렇게나 많은 사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반의 목소리와 아까 봤던 린스의 의뢰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은 이게 뭘 의미하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스텔라,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루베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챈 루베르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 돌아갈까 해요.”

“네?”

반의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의뢰를 읽으면서?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건들을 보는데 루베르가 떠오를 때부터?

“탐정 사무소로요.”

“…….”

루베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루베르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오늘 당신이 일하던 탐정 사무소에 다녀왔다죠. 그 이유에서입니까?”

루베르가 천천히 내 손을 붙잡고서 엄지로 내 손등을 매만졌다.

“당신을 붙잡고 싶습니다.”

“네?”

“가지 말라고. 그냥 이곳에 머물러달라고.”

단 한 번도 나에게 이런 얘기를 꺼낸 적이 없던 루베르였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내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도르르 굴리고 있자, 루베르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감히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잡아둘 수 있겠습니까. 그곳에도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죠.”

루베르가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았다. 그것도 무척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갈 채비를 마치는 대로 말해주세요.”

“루베르?”

“마차를 준비시켜놓도록…….”

“잠깐만요!”

나는 루베르의 손을 붙잡아 당겼다. 그러자 루베르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설마 제가 루베르와 완전히 헤어진다고 생각한 건 아니죠?”

“……그 뜻이 아니었습니까?”

“아니에요!”

이 남자가 뭐라는 거야, 대체. 내 고백을 어디로 흘려들은 건데.

나는 루베르의 뺨을 붙잡아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쪽.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루베르가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바라봤다.

“아스텔라?”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루베르를 아직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루베르가 크게 숨을 들이켜며 나를 바라봤다.

이 남자를 어쩌면 좋아. 나는 루베르의 머리칼을 매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그곳엔 악몽 속의 당신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제가 생각나서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말입니까?”

“네.”

그 말을 들은 루베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윽고 루베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안았다. 나도 그런 루베르를 마주 안았다.

“그러니 그걸 위해 잠시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알겠습니다.”

루베르가 내 뺨을 어루만지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일할 때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저를 버리지만 마십시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럴 생각도 없으니까.”

내가 이곳에 남기로 한 이유가 뭐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루베르의 이마에 내 이마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루베르가 작게 고개를 흔들며 미소 지었다.

“그런데 오늘까지는 참아주지 않겠습니까?”

“네?”

루베르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내 손에 입을 맞췄다.

“저도 도움이 필요해서요.”

이윽고 루베르의 얼굴이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곧이어 느껴지는 촉촉하고도 따스한 루베르의 입술에 미소를 지으면서.

* * *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탐정님도요.”

수도 밖으로 나가는 건 꽤 도전적인 일이었다. 뭐, 그래도 사건을 해결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사무실로 가시려고요?”

반이 방향을 트는 날 보면서 기겁했다.

“일하러 가는 거 정말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 퇴근해요.”

“정말 퇴근해도 괜찮은 거죠?”

반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아니, 퇴근하라고 해도 난리네.

“어서 가요!”

“알겠습니다! 탐정님도 꼭 들어가서 쉬세요!”

반이 이때다 싶어 빠르게 자리를 떴다. 바람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나는 골목 어귀에서 꺾어 돌아오는 마차를 불러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에 문을 열고 내리던 순간, 갑자기 내 앞으로 손이 하나 불쑥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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