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귀찮게 됐어. 역시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는데.”
크리튼이 루베르의 손을 놓으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빠르게 크리튼을 향해 다가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래도 녀석 혼자의 힘으로는 꿈에서 탈출하는 게 힘든 모양이야.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깨어났을 텐데.”
크리튼이 루베르를 빤히 바라봤다.
루베르는 아직도 힘들다는 듯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루베르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이마를 적신 식은땀을 닦았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기에 이러는 걸까.
‘그게 뭐가 되었든 루베르를 당장 꿈에서 깨어나게 해야 해.’
이렇게 괴로워하는 루베르를 그냥 두고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크리튼을 향해서 몸을 돌렸다.
“지난번처럼 크리튼이 직접 루베르의 꿈속으로 들어갈 건가요?”
“안타깝지만,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요?”
“지금 사람의 형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벅차거든. 그것도 간신히 이러고 있는 거라고.”
고개를 내젓던 크리튼이 이윽고 생각에 잠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크리튼이 잠깐 고민하다가 나를 보고서 입을 열었다.
“너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네?”
크리튼이 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손을 붙잡았다.
“역시. 아직 마력이 있는 걸 보면 가능성이 있어.”
“무슨 말이에요?”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질문하기가 무섭게 크리튼이 대꾸했다.
“마력을 보유한 루베르의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와 비슷한 양의 마력이 필요하지. 지금 너에게 그 가능성이 보인다는 얘기야.”
“저한테 마력이 있다고요?”
“정확하게 말하면 네 마력은 아니지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크리튼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어떻게 할래?”
크리튼이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어서 대답하라는 듯이.
‘생각할 것도 없지.’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또다시 그 끔찍한 악몽 속에서 혼자 있는 거라면 더욱이.
나는 루베르를 그 악몽 속에 혼자 남아 있도록 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니까.
“제가 갈게요.”
내가 망설이지도 않고서 대답하자 크리튼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루베르의 곁으로 데려갔다.
“녀석의 손을 잡아. 지금부터 네 몸에 깃든 마력을 사용해서 녀석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거니까.”
나는 루베르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나를 따스하게 감쌌다.
두렵지 않았다. 다만, 루베르를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길 바랄 뿐.
“자, 그럼 이제 시작한다.”
크리튼의 말을 시작으로 내 의식이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의식은 뚝, 하고 끊어졌다.
* *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처음 루베르를 보았던 대공 성의 내부가 아니었다.
“여긴 황궁이잖아.”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어둠이 내려앉은 황궁은 어쩐지 으스스했다.
“루베르?”
황궁의 옆으로 난 숲을 향해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신음이 들려왔다.
“거기 누구세요?”
소리가 들린 건 황궁의 입구 쪽이었다. 나는 조금씩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큭.”
남자의 신음은 아까보다 더욱 크게 들렸다.
성벽을 끼고 성문 쪽으로 다가간 순간, 나는 신음의 주인공을 알아보고 빠르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전하?”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카룬이었다.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는 바닥을 적시고 흙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여기서 왜 황태자가 나오는 거야!’
당황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카룬을 향해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정신 좀 차려보세요!”
하지만, 정신을 잃은 카룬은 눈을 뜰 힘조차 없어 보였다.
“전하!”
털썩.
이윽고 카룬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더니 그의 몸이 허물어졌다.
닫힌 카룬의 눈은 아까만 해도 있던 옅은 떨림조차도 사라진 후였다.
아까만 해도 따뜻하던 카룬의 몸이 실시간으로 식어가는 게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이게 대체 무슨…….”
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마치 나에게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듯이.
“루베르?”
대답은 들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저 안에 루베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조금 더 주변을 살펴볼지, 아니면 이대로 안으로 들어갈지를 망설이던 찰나.
띠링!
성의 내부에서 루베르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안으로 이동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