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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111)화 (111/120)

111화

“포피.”

“응?”

내 부름에 루베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포피가 고개를 돌렸다.

우지끈!

앞에 있는 바위는 위에서 떨어지는 바위를 간신히 받아내면서 앞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여기서 모두 압사당할 판이었다.

“부탁이 있어.”

“무슨 부탁?”

포피가 귀를 팔락거리면서 나를 향해 총총 걸어왔다.

나는 눈대중으로 빠르게 포피의 크기를 살폈다. 역시 이 정도면 가능하겠어.

“아스텔라?”

“포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건 오로지 너만 가능한 일이야. 네 손에 우리의 목숨이 달렸어.”

“뭐?”

나는 포피를 들어 올려 바로 앞에 보이는 구멍을 보여줬다.

“저기 나 있는 작은 구멍 보이지?”

“그런데?”

“너 정도면 저 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지금 나 혼자 저 어두운 곳에 들어가라고?”

포피가 기겁하면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수는 없었다.

나는 포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서 말을 이었다.

“지금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건 너와 나뿐이야. 그런데 같은 곳에 있으면 그건 쓸모없는 것과 같다고.”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능력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거리가 멀어져야 해. 그리고 지금 그 거리를 벌릴 수 있는 건 너뿐이야.”

“하지만 너무 어둡고 무서운걸. 같이 가줘.”

“포피.”

나는 아직도 낑낑대는 포피를 구멍 앞에 내려놓았다.

“네가 할 일은 루베르를 지키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어? 약속했다면서.”

“……응.”

“너는 할 수 있어. 대공 부인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네게 그런 사명을 맡긴 거야.”

어떻게든 포피를 어르고 달래던 바로 그때, 다시 한 번 땅이 크게 진동했다.

“윽! 이제 한계입니다!”

뒤에 있던 란의 외침을 들은 포피의 귀가 위로 바짝 올라갔다.

곧이어 포피가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똑바로 나를 바라봤다.

“알겠어, 아스텔라.”

“부탁할게. 포피.”

고개를 끄덕인 포피는 조심스럽게 구멍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피의 몸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세 사람은 포피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대기했다.

* * *

살릴 수 있는 건 나뿐이야.

포피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낑!”

중간중간 떨어진 돌멩이로 인해 포피의 발바닥이 더러워졌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포피는 흔들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조그마한 틈새라도 보이면 몸을 밀어 넣었다.

―루베르를 꼭 구해줘.

자신은 스텔라가 마지막으로 했던 그 부탁을 지키기 위해 존재했다.

아스텔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루베르를 가장 소중하게 생저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포피, 자신이었으니까.

“루! 조금만 더 견뎌!”

포피는 꾸역꾸역 몸을 넣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더 안으로 들어갔을까. 틈새로 비치는 빛을 발견한 포피는 빠르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여기가 출구인 거야?”

간신히 얼굴을 들이밀고 밖으로 몸을 빼자 그곳은 정말 숲이었다. 그 말은 즉…….

“성공이야!”

포피가 팔짝팔짝 뛰면서 뒤를 돌아봤다. 이제 안에 있을 애들에게 그걸 알려줄 차례였다.

“얘들아! 여기야!”

“…….”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포피는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외쳤다.

“포피가 나왔어! 이제 능력을 사용하면 돼!”

포피가 어떤 움직임도 없는 내부를 보고 있던 그때였다.

쿵!

“악!”

포피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동굴의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안 돼!”

포피의 귀가 일순간 크게 움직였다. 안에 있을 친구들이 위험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내 목소리가 들릴 수 있을까.

포피가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던 찰나.

“수고했어, 포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포피가 눈을 반짝이며 뒤로 돌아봤다.

“아스텔라!”

포피는 울먹거리면서 아스텔라의 다리에 찰싹 붙었다. 아스텔라는 그런 포피를 안아 들었다.

“용감한 너라면 반드시 우리를 도와줄 거라고 믿었어.”

포피는 한참이나 아스텔라의 옷에 얼굴을 비비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내가 밖에 나온 건 어떻게 알았어? 내 목소리가 들린 거야?”

“아니, 안이 워낙 시끄러워서 그건 안 들리더라.”

“그럼 어떻게 나온 건데?”

포피의 말을 들은 아스텔라가 씩 미소를 지으면서 허공을 툭 건드렸다.

“잊었어? 우리는 서로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걸. 한참을 열심히 움직이던 애가 한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으니 이제야 나왔나 싶었지. 뭐, 약간 도박 수를 던진 거긴 한데.”

아스텔라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란과 바닥에 아직 누워 있는 루베르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더 나빠질 건 없을 것 같아서.”

“우와. 너 정말 탐정이 맞긴 하구나.”

“그건 또 무슨 막말이야?”

아스텔라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포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평소였으면 화가 났을 법한 장난이었지만, 포피는 이번만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이 모든 이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도했기 때문이다.

* * *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데엔 성공했다.

띠링!

그 증거로 아까만 해도 똑딱거리며 흐르던 시계가 사라졌으니까.

문제는 다음이었다.

‘어떻게 대공 성으로 다시 돌아가지?’

방법이 없었다. 숲은 아직 기사들이 감시하고 있을 위험이 있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위험할 게 뻔했다.

‘생각해야 해.’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돌아갈 방법을.

내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였다.

“많이 곤란해 보이는데.”

“엥?”

갑자기 눈앞을 어두운 연기가 휩싸더니 익숙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튼?”

“이번에는 기억해주는 건가. 다행이네.”

“당신이 어떻게…….”

분명 꿈속에서 자신의 남은 절반을 사용해서 더는 이 모습으로는 나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리튼을 바라보자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죽은 사람이 되살아온 듯한 표정이야.”

“농담은 그만하시고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모두 네 힘 덕분이지, 아가씨.”

“네?”

나를 바라보는 크리튼의 표정에 일순간 흥미가 샘솟았다.

잠시만, 그런데 무슨 힘?

“제게는 아무런 힘도 없는데요.”

“겸손할 필요 없어. 네가 가지고 있던 마력을 내게 건네줬잖아?”

“그런 적…….”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바로 아까 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건 분명 란이 루베르를 부축하다가 검을 떨어뜨린 그때였다.

―검은 제가 들고 갈 테니 란은 루베르를 좀 부탁해요!

그랬던 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나는 곧바로 크리튼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 봐. 떠올랐지?”

“하지만, 그걸로 대체 어떻게…….”

“마력이 오죽 셌어야 말이지. 하여튼, 그 여자도 참 대단한 여자라니까.”

크리튼이 중얼거리다가 이윽고 루베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얘는 내가 볼 때마다 이런 꼴을 보여주네. 야, 어서 일어나. 돌아가야 할 거 아냐.”

“뭐 하는 거예요!”

발로 루베르의 다리를 툭툭 치는 걸 본 나는 기함해 소리쳤다.

하지만, 크리튼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쓰러진 사람한테 지금 무슨 짓이에요!”

“그러면 쓰러지지 말았어야지. 쪽팔리게 이게 뭐냐. 나를 다스리는 놈이 맨날 기절해서 바닥에 자빠져 있는 꼴을 보는 내 입장도 생각해달라고.”

크리튼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발을 거둬들였다.

나는 욱하고 올라온 감정을 간신히 추스르면서 크리튼을 바라봤다.

지금 한가하게 여기서 싸우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대공 성으로 돌아갈 방법을…….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크리튼의 목소리에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대꾸했다.

“대공 성으로 돌아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걸 왜 생각해?”

“네?”

크리튼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윽고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전설의 마검인 내가 있는데.”

“그 말은…….”

“대공 성으로 가는 거? 그 정도는 내게 우습단 얘기지.”

크리튼은 씩 미소를 지으면서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파란빛이 우리 주변을 둘러쌌다.

“그럼 가볼까.”

그 말을 끝으로 눈앞에 펼쳐진 숲이 흐려지더니 곧이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손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집사였다.

이윽고 집사의 시선이 뒤에 있던 란과 루베르를 향했다.

“저하!”

기절한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이봐,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루베르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옆에 서 있던 크리튼이 집사를 향해 말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나를 못 알아보는 녀석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나야 나, 크리튼.”

“크리튼이라면 주인님의 검인데, 그게 무슨…….”

“집사님, 그게 말이죠.”

나는 여태까지 있던 일들을 모두 집사에게 설명했다.

집사의 안색이 이윽고 하얗게 질리더니 그가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요. 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라면 믿는 수밖에 없겠지요.”

집사가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던 찰나, 뒤에 있던 크리튼이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었다.

“잡담은 나중에 하자고. 일단 루베르의 상태가 영 좋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한 크리튼은 곧바로 루베르를 둘러멘 기사의 뒤를 따라 루베르의 침실로 향했다.

* * *

“곤란하게 됐어.”

한참 동안 루베르를 살피던 크리튼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약에 취해 또 악몽 속에 있는 것 같은데.”

“네?”

“이거 봐.”

크리튼이 루베르의 팔을 붙잡음과 동시에 그의 팔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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