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109)화 (109/120)

109화

루베르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지는 걸 확인한 황제는 치솟아 오르는 입꼬리를 간신히 눌렀다.

장치를 설치하느라 꽤 애를 먹은 보람이 있긴 하네.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허공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두운 구석에 놓여 있던 향로에서 빠져나오던 연기가 천천히 사라졌다.

“아직 움직일 기운이 남아 있다니, 그대도 대단하긴 하군.”

황제가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꿈틀대는 루베르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일반인이 견딜 수 있는 양의 세 배는 되는 양이었는데도 루베르는 정신력으로 이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런 남자가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건지.”

황제는 미간을 좁히면서 다시 한 번 아쉬움을 표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신의 편이 되어 능력을 발휘했다면 이런 개죽음도 당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황제는 그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당신이 대체 어떻게…….”

“마력의 사용이 엄격히 중단된 공간에서 그렇게 마력을 사용한 티를 냈으니 모를 수가 있나. 무엇보다 루크의 아들이라면 나와 손을 잡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뭐라고?”

“그게 사실이 되어 마음이 아프지만.”

황제는 쓰러져 있는 루베르의 망토를 떼어내고서 그의 허리춤에 달린 크리튼을 응시했다.

“그 무기는 날 호위하기 위함이 아니라 반격하기 위함임은 이미 알고 있었지.”

“…….”

“그나저나 참 탐이 나는 무기야. 가만히만 있어도 마력을 발산하는 마검이라니.”

황제의 눈동자에 탐욕이 깃들었다. 이윽고 황제가 크리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치익!

갑자기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윽고 황제의 손을 밀어냈다.

크리튼은 황제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을 받아들여줄 생각이 아예 없는 듯했다.

“윽!”

황제가 손을 붙잡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루베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감히 내 앞에서 웃음을 터뜨려?”

“윽!”

황제의 분노는 곧바로 루베르를 향했다. 황제는 루베르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루베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이제는 몸을 꼼짝할 기운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젠장.’

너무 황제를 얕본 것일까. 루베르는 자신의 안일함을 탓하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고 시도했다.

“소용없는 짓이야. 그대는 결국 정신을 잃고 또 그때를 반복하게 될 테지.”

그때라니.

그 말을 들은 루베르의 머릿속에 일전에 경험했던 악몽이 떠올랐다.

혼자가 되어 성에 혼자 버려지는 기분. 그 쓸쓸함과 두려운 감정을 또 느낄 수도 있다니.

“젠장.”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루베르의 눈은 점점 더 감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베르의 두 눈이 감겼다.

황제는 옆에 서 있던 보좌관과 호위기사를 향해 외쳤다.

“저 녀석을 당장 동굴 감옥으로 끌고 가라.”

“알겠습니다.”

그러면서도 황제의 시선은 크리튼을 향해 있었다.

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추출해 사용한다면 꽤 많은 마력을 운용할 수 있겠지.

“녀석의 몸에 붙은 검을 떼어내.”

그 말을 들은 호위기사가 다시 한 번 크리튼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으악!”

이번에는 기사의 손에서 검붉은 불이 타올랐다.

손을 잡고 흔들던 기사는 간신히 불이 꺼지는 걸 확인하고서 식은땀을 흘렸다.

“폐하, 아무래도 이 검을 빼앗는 건 불가능할 듯합니다.”

이대로는 정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검을 만질 듯한 기분에 보좌관이 말을 이었다.

황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짧게 혀를 차고서 대꾸했다.

“알겠다. 그럼 그냥 옮겨.”

그 말을 들은 보좌관과 호위기사가 루베르를 들어 올려 밖으로 향했다.

황제는 뒤에 있는 수많은 플로라와 구석에서 열심히 가동되고 있는 기계를 바라보며 걸음을 뗐다.

어찌 되었든 상황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란이 무거운 눈꺼풀을 위로 올렸다.

이윽고 란의 눈동자에 곧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그의 정체를 확인한 란의 눈동자가 일순간 커졌다.

확실했다. 정신을 잃은 남자는 다름 아닌 루베르였다.

“안으로 비켜서라.”

칼을 들고 철창을 치는 기사로 인해 란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잠시 뒤, 철창이 열리고 루베르를 부축하고 있던 두 사람이 거의 던지다시피 그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쾅!

문은 소리를 내며 닫혔다.

대체 이 남자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밖의 상황은?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란이 쓰러져 있는 루베르를 향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던 바로 그때였다.

“상황이 꽤 재미있게 되었어. 그렇지 않나?”

듣기만 해도 오장육부가 다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

란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황제가 서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외로울까 싶어 길동무를 마련해준 사람에게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황제는 조금도 웃기지 않는 농담거리를 던져대면서 혼자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란이 웃지도 않고 가만히 바라만 보자, 황제도 곧 입매를 굳히며 물었다.

“그래서 정말 내게 당신의 배후가 누구인지 말할 생각이 없나?”

“배후 따위는 없다. 이건 내가 스스로 한 행동이니까.”

“마지막 기회마저 차버리다니, 정말 안일한 사람이군.”

황제는 쯧쯧 혀를 차고서 몸을 바로 세웠다.

“그대는 그 무거운 입과 의리를 지키고자 한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죽게 된 거야.”

황제는 그 말만을 남긴 채 미련도 남지 않은 사람처럼 돌아섰다.

그러고는 바로 자신의 앞에서 물건을 옮기고 있던 기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물건은 모두 옮겼나.”

“네, 전부 안으로 옮겨두었습니다.”

기사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서 대꾸했다.

옮기고 있는 게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뒤에는 어떻게 될 건지 란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단 한 송이의 플로라도 남아서는 안 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황제는 그 말만을 남긴 채 동굴을 빠져나갔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란은 빠르게 루베르의 앞에 앉아 그의 상태를 살폈다.

“하.”

이마엔 식은땀이 가득하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걸 보니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아 보였다.

그 순간, 란의 예민한 코로 익숙한 향이 흘러 들어왔다.

“이건……!”

란이 순식간에 몸을 아래로 낮추고 루베르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윽고 그의 코와 입에서 나오는 향의 냄새를 맡은 란의 얼굴이 무차별적으로 일그러졌다.

“또 향을 이용해서 사람을 이렇게 만든 건가.”

한 번이지만, 깊게 중독이 되었던 경험이 있는 루베르라면 더욱 빠르게 스며들었겠지.

란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루베르의 어깨를 살짝 쳤다.

“윽.”

하지만, 루베르는 얕은 신음만 흘릴 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약의 부작용이 또다시 이 남자를 괴롭히고 있는 게 뻔했다.

“단순히 잠만 자는 거라면 다행이지만…….”

란이 루베르의 주변으로 손을 들어 올리고 눈을 감았다.

이윽고 란의 손에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크리튼에서 검은빛이 반짝였다.

“큭.”

란은 어느새 베어버린 손가락의 피를 대충 닦아내고서 루베르를 내려다봤다.

단순히 플로리스에 중독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체내에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플로리스의 부작용도 더욱 거세졌을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 해야 이 남자를 깨울 수 있는지. 란은 어서 그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 * *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하루 내내 단 하나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다.

똑딱, 똑딱.

머리 위로 흐르는 타이머는 어서 란을 구하러 가라고 성화였다.

‘믿어야 해.’

적어도 루베르가 상황을 대충 알아내고 돌아올 그때까지만이라도.

그 생각만 하며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 하지만, 루베르로부터 연락은 올 생각이 없었다.

머리 위에 있던 타이머의 색깔이 붉게 변했다.

이윽고 타이머의 앞에 다른 글씨 하나가 떠올랐다.

긴급 미션: 조력자 란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3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서두르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