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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105)화 (105/120)

105화

루베르는 아스텔라가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에야 빠르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황제가 어떤 말도 없이 이곳에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루베르는 빠르게 알현실로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였다.

쾅쾅.

아까보다도 세찬 노크 소리에 루베르가 멈칫했다.

문 너머로 느껴지는 많은 이들의 인기척 때문이었다.

“뭐지?”

“나네, 루베르. 들어가도 괜찮겠나.”

루베르의 적안이 일순간 크게 뜨였다. 소리의 주인은 분명 황제였다.

루베르는 생각에 잠겼다. 대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자신을 찾아올 만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조금 이르게 도착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네.”

황제는 빠르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루베르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의 방문을 거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끽.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문이 열렸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황제가 루베르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내가 조금 빠르게 오긴 했다만, 그건 좀 아량 넓은 그대가 넘어가주길 바라지.”

황제는 조금의 미안하다는 태도조차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뒤를 따라오려는 시종을 확인한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대들은 밖에서 대기하라. 대공과 단둘이서 얘기를 나눌 것이니.”

“알겠습니다.”

황제의 기분을 알아차린 사용인들은 일제히 방에서 물러났다.

이윽고 황제가 침대와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가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그런 건 괜찮아. 나는 그대와 대화하기 위해 온 것이니.”

황제가 눈짓으로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어서 앉으라는 뜻이었다.

루베르는 결국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간을 알려주셨다면 응접실에 준비를 마쳤을 텐데, 이런 곳에서 대접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니네, 내가 이렇게 온 거니까 그대는 신경 쓰지 말게. 그리고 거기는 듣는 눈이 많으니까.”

황제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대와 나누고픈 얘기가 무척 중요한 이야기인지라 기대가 되어 이렇게 빨리 찾아온 내 잘못이지.”

황제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혹시 이곳에서 지내며 불편한 점은 없나?”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가.”

잠깐 숨을 고르던 황제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럼 서론은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황제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나는 제국 내에서 플로라를 직접 생산할 생각이야, 대공. 일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지.”

아무런 말도 없이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황제는 루베르가 자신이 할 말을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다음 말을 이었다.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네. 저번엔 직접 생산하는 것에 꽤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었나.”

“실제로 그렇게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하겠지만, 기후와 환경이 다른데 그걸 어떻게…….”

“본론만 얘기하자고.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서 내가 그대에게 이런 얘기를 꺼냈을 거 같나?”

루베르의 입이 딱 다물렸다. 황제는 씩, 미소를 지었다.

“연구비의 일정 부분이 다른 곳에 사용되고 있다는 걸 그대가 모르지는 않았겠지. 그게 무슨 뜻인지도 알 테고.”

“그 일부를 이용해 따로 실험하고 계셨던 겁니까?”

“이미 모두 진행하고 결과까지 내어놓은 상태야. 그대가 내 손을 잡기만 한다면 그 모든 걸 함께 누릴 수 있단 뜻이기도 하지.”

황제가 루베르의 앞에 문서를 한 장 내밀었다.

“여태껏 해왔던 모든 실험 결과가 여기 있네. 이걸 어떻게 융통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는 그대의 손에 달렸어.”

“…….”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데, 어떤가. 그대는 나와 함께할 생각이 있나?”

황제의 미간이 좁아졌다.

선택의 여지를 준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루베르는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거절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생명을 앗아가겠지. 입막음하기 위해서.

“알겠습니다. 저도 협력하도록 하지요.”

“잘 생각했네, 대공.”

황제가 미소를 지으면서 활짝 웃었다. 아마 모든 게 제 뜻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거겠지.

하지만, 루베르는 황제가 두려워 절대로 이 선택을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위험 속에 들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루베르.

아스텔라가 더 위험한 곳까지 손을 뻗기 전에.

“플로라의 생산에 관해서 아직 의문인 부분이 많아. 그대의 협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야.”

“제가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돕도록 하지요.”

“그래.”

원하던 말을 들은 황제는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탓이었다. 물론 루베르의 모든 걸 믿지는 않았다.

아직 그에게는 의심이 가는 점이 몇 군데 있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점차 알아가면서 따로 조사해보면 될 일이었다.

“그럼 나중에 내 집무실에서 더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지.”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루베르도 맞은편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아니군. 어쩌면 산책이 나을 수도 있겠어. 그대도 직접 보는 게 좋겠지.”

직접 보는 것.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황제가 직접 길러낸 플로라의 상태를 보여주겠다는 뜻이었으니.

루베르가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아니던가.

“그럼 영광입니다.”

루베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황제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때 보도록 하지.”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밖으로 나섰다.

뒤돌아 걸어 나가는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루베르는 미처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 * *

“성으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황제의 머릿속은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고 했는데.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지?”

“순조롭게 폭파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제는 황궁에서 가장 가까운 동굴 하나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화국의 끄나풀이 붙잡힌 걸 보면 거기서 온 사신들이 냄새를 맡은 게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긴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일을 진행하려다가 실수하기도 했으니.

예를 들자면 마력을 둘렀음에도 새어 나가는 소음이나 진동을 막지 못했던 것이라든가.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귀찮게 됐어.”

황제는 루베르의 침대 위에 올려져 있던 인형을 보고 나서부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인형을 들고 이곳에 들어온 게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인형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인형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그 인형의 외관이었다.

노란색의 강아지 인형, 그때 탐정이 잃어버렸다던 인형과 아주 똑같았다.

그때 분명 잃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왜 그 인형이 그곳에 있는지.

그게 가장 궁금했지만, 황제는 그걸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묻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열을 뽐내는 마력 확인 원석 덕분이었지만.

혹시나 루베르의 마검에 반응하는 것일까 싶어서 여러 군데를 몰래 살펴봤지만, 그건 확실히 인형에서 반응하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황제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특수한 마력을 뽐내고 있던 인형과 그걸 들고 다니던 아스텔라라는 탐정. 그리고 며칠 뒤에 들어온 밤의 침입자.

그 와중에 행방불명이 되고 만 침입자 한 명.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황제는 웬만하면 틀리지 않는 자신의 감을 맹신했다. 이건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걸 위해서 황제는 루베르를 떠볼 생각이었다.

“반.”

“네.”

뒤에 서 있던 황제의 보좌관 반이 황제의 옆으로 다가왔다.

“대공에게 전달해라. 오늘 밤, 산책을 함께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는 과연 자신의 아군일까, 아니면 적일까.

판가름이 나는 건 바로 오늘이 될 터였다.

* * *

사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빠르게 사신을 응접실로 데려갔다.

“무슨 일이에요?”

“란님은 어디 계십니까?”

차마 대답할 수 없는 말에 고개만 숙이고 있자, 사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아무래도 숲에서 기사들에게 납치당한 것 같아요.”

“젠장!”

사신이 낮게 욕을 읊조리면서 땅을 발로 찼다.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나도 분하기 그지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감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되도록 침착하게 물었다.

“전해야 할 말은 어떤 건가요?”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식은땀을 흘리던 사신이 고개를 들면서 입을 뗐다.

“전달할 말은 하는 게 맞겠지요. 황궁의 숲으로 들어간 사신 중 하나가 연구소 뒤 숲을 둘러싼 마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마 외부로 유출되는 소리를 막기 위함이겠지요.”

“그럼 이때까지 그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차단이 아닌 억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억제할 수준을 넘어서는 굉음이나 진동은 느껴진 듯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가끔 느낀다는 말을 한 건가.

“그리고 생산지를 옮긴다는 말은 사실인 듯합니다. 지금 그 위치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폭발음이 들리는 곳을 중점으로 말이죠.”

“설마 폭발음이 들리고 진동이 울렸다는 게…….”

“그 근처의 땅을 모두 무너뜨려 연구했던 흔적을 모두 지우려는 게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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