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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103)화 (103/120)

103화

“이게 무슨 소리야?”

낑낑.

포피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루베르 쪽으로 돌아누웠다. 이윽고 아스텔라를 보는 포피의 귀가 천장으로 향했다.

“아스텔라는 왜 저러는 거야? 괜찮은 건 맞는 거지?”

“하…….”

그 말에 대꾸라도 하는 것처럼 아스텔라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병사들에게 쫓기고 란과 떨어진 상황에서 아스텔라가 마음을 놓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게 지금에 와서 터지기라도 한 걸까.

루베르는 빠르게 아스텔라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혹시나 열이 나지는 않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아스텔라의 이마에서는 미열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마에 흥건한 식은땀을 닦아주던 루베르는 아스텔라의 손을 붙잡았다.

잡은 손 너머로 느껴지는 애처로운 떨림에 루베르의 가슴이 미어졌다.

이런 상황을 혼자 느끼게 내버려둔 자신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스텔라.”

“하아…….”

가쁘게 숨을 고르던 아스텔라의 눈이 불현듯 번쩍 뜨였다.

그러자 아스텔라의 어두운 밤하늘을 담은 듯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루베르.”

헐떡거리는 숨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애처로웠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루베르가 아스텔라의 손을 붙잡고 있던 그때였다.

아스텔라가 루베르의 볼에 손을 얹고서 한참이나 그를 쳐다봤다.

마치 눈앞에 있는 루베르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참이나 바라보던 아스텔라가 가쁜 숨을 뱉었다.

“괜찮습니다.”

루베르가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꾸하자 아스텔라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이윽고 아스텔라의 호흡이 조금 진정되어가기 시작했다.

루베르는 맞잡은 손으로 느껴지는 떨림에 다시금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쉬이,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 무사히 있습니다.”

“정말이죠?”

아스텔라가 다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네, 제가 여기 있을 테니 안심하세요. 당신도 저도 모두 안전합니다. 그러니 더 자도 괜찮아요.”

루베르의 대답을 들은 아스텔라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어디 가면 안 돼요. 여기 있어요.”

“알겠습니다.”

루베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스텔라의 볼에 손을 얹었다.

손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 루베르는 그것에 안도하면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여기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루베르의 붉은 눈동자에는 오로지 아스텔라만 담겨 있었다.

마치 절대로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 * *

“침입자는 붙잡았나?”

“아직 뒤를 쫓고 있습니다.”

황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걸 보고 있던 시종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겁도 없이 황궁에 들어선 침입자다. 반드시 잡아야 할 거야. 기사들에게도 그렇게 알려두도록.”

“알겠습니다.”

시종은 그렇게 말하고서 빠르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황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시종이 나가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내 예감이 맞았던 모양이구나.”

황제가 의자의 손잡이를 매만지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이유도 없이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숲으로 진입할 이유는 없었다.

그 말은 즉, 숲의 비밀을 깨달은 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지만.

황제는 자신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카룬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자도 금방 잡아들일 거다. 그러니 아는 게 있으면 내게 미리 말하는 게 어떠냐.”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카룬이 고개를 내저으면서 황제의 말에 조소를 뱉었다.

“이렇게 저를 대놓고 의심하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황제가 고개를 돌려 카룬의 옆에 붙여둔 기사를 바라봤다.

기사는 황제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알아채고서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특별히 의심이 가는 행동은 한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황제는 의자 깊숙이 몸을 집어넣었다.

알고는 있었다. 의심이 든 그 순간부터 카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고 있었으니까.

카룬의 말대로 그가 움직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터였다.

그럼 숲으로 들어온 자는 대체 어떻게 그걸 알고서 여기까지 들어온 건지.

황제는 모든 게 못마땅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카룬은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쥐었다.

숲에 들어온 침입자가 여성이라는 소리를 듣고부터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혹여나 아스텔라가 이 일과 관련된 건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건 자신 때문인지도 몰랐다.

정말로 그녀가 붙잡히기라도 한 건 아닐까.

카룬이 초조한 마음에 시선을 바닥으로 둔 그 순간이었다.

“하하!”

갑자기 앞에 있던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카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황제에게로 향했다. 황제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네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

황제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카룬을 쳐다봤다.

“모든 건 내가 손을 봤던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침입자가 너무 일찍 잡혔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냐.”

황제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말이지.”

“설마…….”

카룬의 눈동자에 당황이 서렸다.

“숲에 기사들을 충원한 게 꽤 도움이 됐지.”

카룬은 마음 깊숙이 탄식하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러고 보니 황궁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의 수가 늘어난 것도 같았다.

빌어먹을. 근신 처분을 받아 방에 갇혀 지냈을 때 이런 일이 행해질 줄이야.

사실 알고 보면 정보를 알게 된 것도 황제의 속셈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걸 그대로 전달하다니.

정말로 아스텔라를 위험에 빠뜨린 건 자신일지도 몰랐다.

정신 차리자.

카룬은 고개를 들면서 몇 번이고 그 말을 되뇌었다.

지금은 후회할 시간도 아까웠다. 어떻게든 이걸 수습하는 게 우선이었다.

더욱이 황제가 파놓은 함정은 이게 전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어떻게든 두 사람에게 알려야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바깥에 있는 사람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

카룬은 암담한 현실에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에 걸리면 정말 아스텔라가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렇다면 자신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루베르. 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 카룬의 눈동자에 결의가 비쳤다.

그런 카룬을 바라보고 있던 황제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란은 미간을 좁혔다.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그자는 황궁 내에 있는 곳이 아닌 동굴 안에 있는 곳으로 이동시킬 거야.

기절해 있는 동안 그런 얘기를 얼핏 들은 것도 같았지만,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란은 고개를 들어 올려 위를 바라봤다.

종유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어둑한 내부는 횃불 몇 개가 밝히고 있었다.

―들어가.

자신을 그곳에 던져 놓은 기사는 그대로 사라졌다.

란은 그대로 다시 정신을 잃었다. 몸에 도는 약 성분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란은 자신이 있는 곳이 동굴 안이라는 걸 알아챘다.

란이 창살 쪽으로 바짝 붙었다. 어떻게든 바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저건?”

바깥을 바라보고 있던 란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다름 아닌 하얀 꽃이 무성하게 피어난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꽃의 정체를 알아본 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이미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란이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일어났나 보군.”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에 란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당신은…….”

“그 머리 색, 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인데.”

황제가 씩, 미소를 지으면서 란의 눈높이에 맞추어 허리를 숙였다.

“어디서 정보를 듣고 온 녀석인가 싶었는데 공화국에서 보낸 자였던 건가.”

고개를 갸웃대던 황제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뒤로 물러났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황제는 란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모르는 듯했다.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낼 줄이야. 녀석들도 멍청하기 그지없군. 하긴, 암시장에서 기웃대는 꼬락서니만 봐도 그렇지만.”

“뭐라고?”

황제의 말에 란이 몸을 일으키다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는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던 그때, 황제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아마 보좌관인 모양이었다.

보좌관은 황제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이윽고 황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더니 그가 다시 한 번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뒤, 황제가 웃음을 멈춘 채로 란을 바라봤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보좌관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서 물었다.

“지금 당장 처리할까요?”

“아니, 됐다. 어차피 이곳을 무너뜨리면서 죽게 될 테니.”

황제는 대충 손을 휘적거리면서 대꾸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를 물어보기도 전에 동굴 안쪽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대의 호기심이 결국 그대를 죽게 만든 거네.”

곧이어 황제의 뒤로 기사 몇 명이 지나갔다. 그들의 손에는 상자가 들려 있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익숙한 꽃을 보고 란은 이 상황이 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빠르게 파악했다.

아스텔라의 말에 따르면 생산지를 옮긴다고 했으니까.

익숙한 화약 냄새와 바쁘게 플로라를 운반하고 있는 기사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나중에 죽이면 그만이라고 하는 여유까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곳에서 있던 일을 모두 묻어버릴 생각인가.”

“그건 자네가 죽을 때쯤이면 확신할 수 있겠지.”

황제는 그 말만을 마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미련 없이 돌아섰다.

란은 그녀의 앞에 놓인 창살을 내려쳤다. 하지만, 창살은 미동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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