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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99)화 (99/120)

99화

란이 정신을 차린 건 아스텔라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윽.”

얕은 신음과 함께 란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란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살폈다.

“젠장.”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더불어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말해주는 건 확실했다.

폭포 아래로 도주할 생각은 있었지만, 방심한 틈에 이런 공격을 받을 줄이야.

란은 자신의 어깨에 아직도 박혀 있던 화살을 단번에 뽑아냈다.

“큭.”

아무래도 화살에 장난질을 쳐뒀는지 정신이 혼미했다.

이대로라면 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란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란!

어떻게든 저보다 약한 힘으로 자신을 여기까지 올려준 아스텔라가 떠오른 탓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스텔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샅샅이 수색해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위쪽에서 들려오는 기사들의 목소리에 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와 대비되게 몸은 돌덩이로 가득 차 있기라도 하듯이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움직여야만 했다.

이대로 이곳에 남아 있다간 황제의 부하들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

아스텔라가 무사한지를 파악하지 못한 게 마음에 무척 걸렸지만, 지금은 물러설 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란은 낮게 욕을 내뱉으면서 나뭇가지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

이윽고 란은 천천히 몸을 기울여 육지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붙잡을 게 없었다면 진작 폭포 아래로 떨어졌을 거란 생각에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 생각을 하던 란의 눈동자가 이윽고 크게 뜨였다.

“설마…….”

란의 시선이 폭포 쪽을 향했다. 어쩌면 아스텔라가 저쪽으로 빠진 건 아닐까.

란은 그 생각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우선 이곳을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란은 있는 힘을 다해 결국 육지 쪽에 있는 바위를 붙잡았다.

“하.”

간신히 숨을 몰아쉬던 란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어쩌면 몸에 스며든 그 마취제의 성분이 아직도 효과를 발휘하는지도 몰랐다.

들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위험하리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걸 거라면 자신의 목숨만 걸었어야 했는데.

‘아스텔라.’

란은 정신을 잃기 직전에 가까스로 육지로 몸을 뉘었다.

이제 숲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겨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란은 움직여지지 않는 자신의 몸 때문에 욕을 내뱉었다. 이젠 한계였다.

“단장님,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뭐라고?”

기사들의 말을 끝으로 란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아무튼 자신이 최대한 피하고자 했던 최악의 상황을 마주한 게 분명했다.

* * *

“루, 오늘도 늦게 잘 거야?”

포피가 아직도 이것저것을 만지고 있는 루베르를 향해 물었다.

“응, 그럴 것 같은데?”

“거짓말하지 마. 아예 잠도 안 자면서.”

포피가 끙,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팩 돌렸다.

아무래도 자신과 함께 잠을 자주지 않는 루베르에게 투정을 부리는 듯했다.

루베르는 작은 자신의 친구의 귀여운 행동에 살짝 미소를 짓고서는 계속해서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플로라의 연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내용을 살펴볼 때 크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루베르는 이곳에 그저 서명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일을 끝낸다고 해서 루베르는 잠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든 황제의 뒤를 캐내야 하는데.’

루베르의 머릿속은 지금 그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루베르의 마음속에 계속 걸렸던 건 다름 아닌 이전에 봤던 광경이었다.

분명 황제는 그때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루베르는 황제가 이유도 없이 황궁을 떠나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숲속이라면 더욱.

루베르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이전에 봤던 숲에서 비밀리에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건 아직 루베르의 심증에 불과했다.

이걸 확실하게 하려면 루베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숲으로 들어가 조사하는 것이었다.

“후.”

루베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지금 그의 상황을 둘러볼 때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눈이 너무나 많은 이상 섣불리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여서는 안 됐다.

루베르는 오늘 연구소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카룬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는 조금 초췌하기만 했을 뿐, 건강상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카룬의 뒤에는 사람이 하나 붙어 있었다.

―전하의 상태가 나빠질 때를 대비해 언제든 이곳에 머물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루베르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카룬은 어려서부터 몸 하나는 건강한 바보였다. 자신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 기사의 목적은 불 보듯 뻔했다.

보나 마나 카룬이 수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지 감시하기 위함이겠지.

그렇다면 루베르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도 더욱 커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루베르는 저 멀리 세워둔 크리튼을 보았다.

마력을 사용하는 건 역시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 진짜로 중요한 순간에 나서기 위해서는 지금은 조금 사려야 할 때였다.

그게 루베르가 지금 몸을 사리는 이유였다.

똑똑.

루베르의 시선이 곧이어 노크가 들린 문 쪽으로 향했다.

“대공 저하, 잠시 안에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일이지?”

루베르가 눈을 번뜩이면서 천천히 문으로 걸어갔다.

평소에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자신 주변에 기사를 두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문을 두드린 적은 처음이었다.

“숲속에서 침입자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일행이 이곳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있어 조사 중입니다.”

“뭐?”

갑자기 숲에서 침입자라니.

당황한 것도 잠시, 루베르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사람 하나 드나들지 않던 그 어둡고 난잡한 숲에 목적을 가지고 들어갔을 인물이라면…….

루베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쩌면 그건 아스텔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루베르는 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 서 있던 병사들이 곧 들어올 자세를 취했다.

루베르는 그 앞을 틀어막고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 침입자는 대체 누구지?”

“정신을 잃어 심문하지는 못했습니다.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행이라면 한 명이 아니라는 소린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을 것을 예감했는지 기사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쫓고 있던 여인은 두 명이었습니다만, 한 명은 포획했고 다른 한 명은 도주 중입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아서 이곳도 조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

“잠시 방 안을 둘러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건 루베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 이 안에 그 여인을 감추어두고 있다고 의심받고 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몰래 침입했을 가능성을…….”

“내가 그것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루베르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기사들은 침을 삼키면서 뒤로 조금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저하. 그래도 잠시면 됩니다.”

결국 루베르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면서 기사들을 안으로 들였다.

한참을 수색하던 기사들은 곧이어 문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루베르는 천천히 그 앞을 가로막고서 말을 이었다.

“그대들의 예감이 틀린 듯하군.”

“그런 의미로 들렸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기사가 사과하더니 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일행 중 하나가 갑자기 모습을 감춘 걸로 보아 마법사일 가능성도 있어 이곳도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연구소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니까요.”

“그 여인이 이곳에서 발견될 일은 절대 없겠지.”

루베르가 싸늘하게 일갈하면서 기사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관찰했다.

곧이어 문을 닫으려던 루베르를 향해 기사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용의자를 잡기 위해 오늘 밤 이 근처에 마력 억제기가 설치될 예정입니다.”

“뭐라고? 누구 마음대로 그런 일을 함부로 진행하는 거지?”

“오늘 밤에는 실험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폐하께서도 승인하신 일입니다.”

루베르가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제멋대로 굴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 들 줄은 몰랐다.

루베르는 진심으로 황제의 명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특별한 예정이 없으시다면 부디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말이 협조였지, 이건 반협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루베르는 조소를 내뱉으면서 기사들을 천천히 살폈다.

“이미 협조는 충분히 했을 텐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니 앞으로 또 협조를 부탁드리더라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히 소드 마스터인 자신의 앞에서 안전을 도모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루베르는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문을 닫았다. 더는 저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루.”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던 포피가 루베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나도 자세히 모르겠어.”

차라리 그걸 알 수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무엇보다 여인이 두 명 이곳에 들어왔다는 말이 계속해서 걸렸다.

이런 숲속에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들어올 여인 두 명이라면 자신이 아는 한 아스텔라와 란밖에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아스텔라는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루베르가 불안한 마음으로 숨을 들이켰다. 아무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던 바로 그때였다.

“루, 걱정되는 거지?”

포피가 루베르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를 올려다봤다.

“아스텔라가 그 일과 연관되어 있을까 걱정되는 거지?”

“……그래.”

루베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포피도 귀를 축 늘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하긴, 걘 그런 일엔 꼭 끼어 있더라고. 걔가 있는 위치를 안다면 마음이라도 좀 편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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