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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93)화 (93/120)

93화

복도로 다시 나온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정보를 더 얻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복도 한가운데 서서 한숨을 내뱉고 있던 그때였다.

“저기…….”

나와는 반대편 복도에서 나온 하녀 한 명이 나를 보며 눈치를 살폈다.

왜 그러지?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나?

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나와 하녀, 단둘뿐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일전에 황제 폐하의 명으로 오셨던 탐정님이 맞으시지요?”

“네, 그런데요.”

내 대답을 들은 하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곧이어 하녀가 내 손을 덥석 붙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말 죄송해요. 제 불찰로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셨잖아요. 미처 사과도 드리지 못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포피가 들었다면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소리를 내질렀겠지만, 무사히 돌아왔으니 된 거 아니겠어.

내가 괜찮다고 말을 하려고 입을 뗀 그때였다.

“제가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요? 무엇이든 여쭤보세요. 뭐든 제가 알고 있는 일이라면 대답할게요!”

하녀의 눈이 눈물로 글썽거렸다.

하긴 손님의 물건을 잃어버린 일로 얼마나 꾸중을 들었겠어.

측은한 마음에 그녀에게 고개를 내저으려다 나는 생각을 바꾸어 먹었다.

‘잠깐만.’

황궁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만큼 그걸 잘 파악할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무엇보다 나는 방금 사신들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얻고 오는 길이었다.

나는 하녀의 손을 슬그머니 붙잡아 내리며 물었다.

“혹시 밤에 이상한 일은 없었나요?”

“밤이라면…….”

하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혹시 탐정님도 그 일을 알고 계신 건가요?”

“……네, 그래서 이렇게 탐문을 나온 겁니다.”

이럴 땐 모름지기 아는 척을 하는 게 최고였다.

그러자 하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라고 대꾸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사흘에 한 번씩 무슨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긴 해요. 하지만, 날씨가 추워져서 온도 조절 장치를 돌리는 소리라고 들었어요. 숲속에서 나는 걸 보면 그게 맞는 것 같긴 하지만…….”

하녀가 끝말을 흐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들으면 꺼려지는 말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괜찮아요. 다른 점은 혹시 이상한 게 없었나요?”

“그게…… 그 기계 상태를 보겠다고 보러 나갔던 인부가 몇 있었는데, 이후 돌아오질 않았어요.”

“뭐라고요?”

그건 또 처음 듣는 얘기였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 하녀가 얘기했던 정보가 푸른 창에 기록되었다.

“그 뒤로는 뒤쪽 숲은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통행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예전부터 여기서 일했던 아이 말로는 온도 조절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보다도 조금 묵직한 느낌이 난다고 했어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지만요.”

숲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확실했다.

“정보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이걸로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지요. 분실물은 꼭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게요.”

하녀가 다시 어쩔 줄을 모르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거 이미 찾았는데.

내가 오해를 풀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연 찰나였다.

“이게 누군가.”

“폐, 폐하!”

앞에 서 있던 하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나저나 지금 폐하라고 했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정말로 황제가 떡하니 서 있었다.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수고가 많군.”

황제가 앞에 서 있는 하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 조금 진전은 있나?”

“노력하는 중입니다.”

“하녀와 무슨 얘기를 나누는 것 같던데.”

황제의 눈동자가 매섭게 돌변했다. 무슨 얘기라도 하진 않았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대로라면 하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저으면서 대꾸했다.

“아뇨, 그냥 제 분실물에 관해서 다른 얘기는 없었는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그대의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어. 뭣하면 새로 하나 사줄 수 있는데.”

“아닙니다. 그건 다른 것들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라서요.”

“말로 듣기로는 인형이라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소중한가?”

당연하지. 생사의 길을 함께 헤쳐 나온 동룐데.

“네, 그렇습니다.”

“그럼 어서 찾으라고 얘기해둬야겠어. 내가 의뢰한 사건도 어떻게 잘 해결되었으면 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든든하군. 내가 더 도울 건 없나?”

황제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당장 필요한 게 뭐라도 지원해줄 듯한 분위기에 나는 천천히 눈치를 살폈다.

“편하게 얘기하게. 그게 무엇이든 들어줄 의향이 있으니.”

“그러면…….”

황궁 내부의 비밀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사람이면서 내가 평범하게 만날 수 없는 사람.

나는 카룬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황제를 향해 대꾸했다.

“카룬 전하를 잠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카룬을?”

황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전하께서는 직접 소화 작업과 내부에 있던 자들의 대피를 도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께 다른 상황은 없었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그래, 그럴 만하군. 알겠네.”

황제가 뒤로 손을 휘두르자 그의 보좌관이 황제의 옆으로 다가왔다.

무어라 숙덕거린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보좌관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향해 몸을 틀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폐하.”

“별일도 아닌데. 그럼 수고하도록 하게.”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급하게 어딜 가기라도 하는 듯이 사라져 갔다.

대체 어디를 급하게 가는 거지?

당장 물어보고 싶긴 했지만, 황궁의 지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 * *

“들어가시지요.”

보좌관은 익숙한 문 앞에 멈춰 섰다.

며칠 전에 와봤던 터에 내부가 어떤지는 훤히 알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아 쉬고 계십니다. 너무 오랜 시간을 끌지 마시길.”

“알겠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얼굴색이 좋을 리가.

나는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보좌관이 곧이어 문을 두드렸다.

똑똑.

“전하, 아스텔라라는 탐정이 전하를 찾아왔습니다.”

“들라 해.”

그 말을 끝으로 육중한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안에는 카룬이 차를 마시고 있었는지 찻잔을 들고 서 있었다.

이윽고 카룬이 나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이거, 우리 황궁을 도와주었던 영웅이 이렇게 행차하다니.”

“제국의 작은 태양,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어서 앉게. 같이 차라도 들자고.”

카룬은 내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행동했다. 정말 날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어떤 게 궁금해서 나를 찾았지?”

알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대꾸할 뻔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차를 들이켰다. 카룬은 내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날 현장에서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글쎄. 별다른 점은 없었어. 대공이 그대를 구하겠다고 안으로 들어간 것만 빼면 말이지.”

카룬의 눈가가 장난스럽게 접혔다. 아니, 근데 이 사람이?

“그나저나 안에만 있으니 참 답답하군.”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별거 아닌 감기지. 이 감기만 아니었어도 오늘 산책이라도 했을 텐데.”

“산책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물론이지.”

이윽고 카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구나.

나는 뒤를 살폈다. 거기엔 아직 보좌관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혹시나 우리가 이상한 얘기를 하지는 않을지 감시하고 있는 듯했다.

‘이래서는 무슨 얘기를 나눌 수도 없잖아.’

고민하고 있던 그때, 카룬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대와 만난 장소가 그렇게 탐탁지 않은 곳이라 아쉬웠는데 그래도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이야.”

“네?”

“불타는 황궁 안이 그렇게 좋은 장소는 아니지 않나.”

거짓말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은 내가 정보를 캐기 위해 갔던 상단이었으니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좋은 차라도 대접했을 텐데.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거든. 상가 건물 근처에 있는 이삭이란 카페를 알고 있나?”

“아니요, 처음 듣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그곳의 차를 대접하도록 하지. 꽤 괜찮은 곳이야.”

그 말을 뱉은 카룬이 주변 눈치를 보다가 찻잔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찻잔이 깨짐과 동시에 시종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카룬이 빠르게 속삭였다.

“그 상가로 가십시오. 저번에 들어갔던 뒷문으로 가면 분명 문을 열어줄 겁니다.”

상가. 카룬이 얘기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분명했다.

아마 우리가 얘기를 나눴던 그 상가로 돌아가보라는 뜻이겠지.

“그렇군요. 다음에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오게. 환영할 테니.”

카룬이 어깨를 으쓱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날 배웅했다.

“시간이 된다면 꼭 뵙지요.”

“그러지.”

나는 카룬과 미소를 주고받은 후에 방에서 빠져나왔다. 다음으로 내가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카룬이 내게 손을 잡자고 제안했었던 그 상단. 거기였다.

* * *

연구실 안에 있던 루베르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듣고서 연구소 입구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찾아올 줄이야.’

아직 카룬의 근신은 풀리지 않아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듯했다.

그를 감시하기 위해서 한 번은 이곳에 들를 줄 알았지만, 그건 카룬과 자신이 함께 있을 때일 거라 생각했다.

‘이상하군.’

그래, 내일이면 근신이 풀린다고 들었는데 황제가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루베르가 걸음을 바삐 움직여 계단을 내려갔다.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데 내가 너무 갑자기 찾아온 건가.”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루베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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