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아침이 밝자마자 황궁 입구 쪽으로 들어선 마차 한 대가 매끄럽게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기사들이 마치 자로 재기라도 한 듯이 움직여 그 앞을 막았다.
“멈추시오. 지금 황궁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소.”
마차를 몰고 온 마부는 당황조차도 하지 않고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듣고 있소? 여기는 지금…….”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면서요. 전부 들었어요.”
마차에 있던 커튼이 열리고 검은 머리칼을 한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제게는 허용되는 일이라서요.”
“뭐라고요?”
기사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자 아스텔라가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손에는 어제 받았던 그 방문증이 들려 있었다.
“여기. 이걸 보여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기사는 곧바로 뒤를 돌아 자신의 상사를 바라봤다.
그의 상사는 그대로 이곳으로 다가와 아스텔라가 방문증이라고 주장하는 패를 살폈다.
“이건!”
자세히 보니 정말로 구석에 황제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 말은 즉…….
“들여보내라!”
여자의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사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두 기사는 당황스러움으로 흘러내린 이마의 땀을 훑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아스텔라는 유유히 황궁 안으로 들어섰다.
* * *
나는 안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란의 말대로 점심시간대를 노려서 오니 정말 교대가 일어나고 있는지 주변에 사람이 평소보다 적었다.
아스텔라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빠르게 왼쪽의 복도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들어가서 할 일은 바로 제 신하들을 찾는 일입니다.
란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황제가 아무리 나가라고 한들 준비가 되지 않은 사신들을 그냥 내쫓는 건 외교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아직 일부라면 성에 남아 있겠지요. 그들을 이용하십시오.
란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협조를 해왔다.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었다.
―내 부하들에게 이 편지를 전해주면 분명 도움을 줄 겁니다.
란이 내게 건네줬던 반지를 매만진 나는 그 무게에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란이 이렇게 행동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 느껴졌으니까.
그녀도 자신의 나라에 위험이 가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선택을 한 거겠지.
나는 그런 란의 다짐을 수포가 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분명 사신들은 이 근처에서 묵는다고 했는데.’
나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스럽게도 사신을 홀대하고 있을 거란 란의 추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정말 사신들이 묵는다는 이 복도에는 그 흔한 경비조차도 서 있질 않았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황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이 잘 풀릴 거란 확신을 하고 있단 소리였다.
대체 어떻게?
플로라를 재배하는 것과 플로리스로 만드는 걸 성공했다고 한들, 공화국의 란이 이의를 제기하면 별수도 없을 텐데.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대고 있던 그때였다.
“누구십니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남자 세 명이 서 있었다.
확실했다. 나는 곧바로 남자들을 향해 손가락의 반지를 보여줬다.
“그, 그건!”
남자들의 안색이 빠르게 바뀌었다. 대체 왜 네가 그걸 가지고 있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란이 보내서 온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분이 직접 보냈단 말씀입니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교대 시간이 끝나고 사람이 돌아오는 걸지도 몰랐다.
초조해진 내가 사신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자를 올려다보자 그가 헛기침하며 옆에 있던 문을 열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고맙습니다.”
우리는 재빨리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남자가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
“다른 자의 감시는?”
“없었습니다.”
“정말로 운이 좋으신 분이군요.”
“과연 그럴까요?”
“네?”
나는 씩,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살폈다.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걸 최대한 들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데!
황궁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온 건 물론이거니와, 들어온다고 알린 시간보다 조금 앞서서 들어왔다.
그것도 최대한 평범한 마차에 외관마저도 숨긴 채로.
마차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멈췄으니 본 사람들도 극히 드물겠지.
내 통행과 관련해서는 아직 모르는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소문이 퍼지기 전인 아침 시간대에 들어오지 않았나.
뒤를 살펴주던 기사들에게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 걸 보면 무사히 침입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어찌 되었든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뱉으면서 앞에 놓인 의자를 뺐다.
“어서 앉으세요. 드려야 할 말이 많아요.”
“그분이 당신께 무얼 부탁한 겁니까?”
나는 말없이 책상 위에 란이 건네주었던 편지를 꺼냈다.
사신들은 우르르 자리에 몰려 앉아 편지의 내용물을 읽어 내려갔다.
황제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암시장에서 밀수되고 있는 플로리스에 대해 조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