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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90)화 (90/120)

90화

황제가 더욱 가까이 카룬을 향해 다가갔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

내가 몸을 더욱 앞으로 내밂과 동시에 내 밑에 깔리듯 앉아 있던 루베르가 작게 신음했다.

“아스텔라.”

“미안해요, 루베르. 잠시만요.”

그러던 와중, 옆을 지지하고 있던 팔이 쑥 아래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탕!

팔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가면서 옷장의 뒷면을 내려쳤다.

옷걸이가 달그락달그락 흔들리고 바깥의 대화는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젠장. 그야말로 망했다고 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황제도 그걸 눈치챘는지 다소 날카로운 음성으로 되물었다.

“아무래도 고양이가 있는 모양입니다.”

“고양이?”

어떻게 하지. 숨소리조차 낼 수가 없어 무릎으로 서 있던 그때였다.

루베르가 내 손을 붙잡아 당기며 품에 나를 끌어안았다.

“쉿.”

루베르가 자신의 입가에 검지를 올린 채 그렇게 속삭였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베르는 내 허리에 한 손을 감으면서 더욱 몸을 밀착시켰다.

곧이어 루베르가 슬그머니 상체를 일으키더니 작은 틈 사이로 밖을 쳐다봤다.

“젠장.”

낮게 욕을 읊조림과 동시에 발소리 하나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옷장 쪽에서 들린 소리 같은데.”

“그 옷장은 낡아서 자주 소리가 납니다. 지나가던 고양이가 지붕에서 뛰기라도 한 모양이지요.”

“그렇다면 확인해봐도 되지 않나?”

“마음대로 하십시오.”

카룬이 되도록 의연하게 받아쳤지만, 안에 있는 우리는 죽을 맛이었다.

이 상태로 문을 열면 우리가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그러게, 왜 욕심을 부려서는!’

나는 나 자신을 쥐어박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억누르며 더욱 숨을 참았다.

“포피, 숨 막혀!”

품에 끌어안고 있던 포피가 울먹이며 중얼댔다.

마음은 나도 같았으나 지금은 그걸 신경 쓰고 있을 틈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야옹!”

어디선가 들려온 고양이 소리와 함께 황제의 걸음이 뚝 멎었다.

“이게 그 고양이인가 보군.”

“네?”

“오늘 여자 탐정을 불러들였는데 물건을 잃어버렸다더군. 인형이라 했던가. 참 이상한 여자야. 그 인형을 물고 도망친 고양이를 찾아다니던데.”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루베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윽.”

작은 신음과 함께 루베르가 몸을 움츠렸다.

“안타깝게도 그 고양이가 물고 도망친 인형은 사라진 모양이군.”

“야옹?”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황제가 옷장 근처에서 멀어졌다.

우리 두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어찌 되었든 상황을 무마한 듯했다.

“너는 그저 시키는 일에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면 무사히 내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어.”

“…….”

“여태까지 해왔던 일을 모두 수포로 돌리고 싶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황제가 흠, 하고 작게 숨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수긍한 카룬을 믿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탐정에게 이곳의 조사를 맡겼으니 대공과 무슨 꼼수를 부릴지도 모르는 일이지. 두 사람을 감시해서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내게 보고해.”

“……알겠습니다.”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네게도 더는 책임을 묻지 않으마.”

아들과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치고는 상당히 무서운 대화였다.

“너도 내가 너를 내치길 바라진 않겠지.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구나, 아들아.”

“네, 아버지.”

“믿고 있으마.”

그대로 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쿵.

이윽고 육중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침묵이 일었다. 아마 황제가 나간 듯했다.

“하…….”

다행이다.

하마터면 그대로 이곳에서 들킬 뻔했잖아.

“아스텔라.”

“네?”

고개를 든 그 순간, 내 바로 앞에 얼굴이 하나 보였다.

루베르의 적안이 흔들리는 게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아.”

나는 화들짝 놀라 루베르에게서 멀어졌다.

쿵!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위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스텔라, 괜찮습니까?”

루베르가 빠르게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내 몸이 뒤로 넘어갔다.

“어, 어!”

“아스텔라!”

루베르가 다시 한 번 내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자신의 쪽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털썩.

나는 뒤로 넘어가고 루베르는 내 허리를 감싼 채 그대로 내 위로 쓰러졌다.

화려한 은발이 내 상체로 쏟아지면서 마주한 루베르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미,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일어난 탓인데요.”

끼익.

그 순간, 어두웠던 옷장 안으로 환한 빛이 들어왔다.

“꽤 바빠 보이는군요.”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라…….”

카룬이 다시 문을 닫으려고 시늉하자 루베르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괜찮습니까, 아스텔라?”

루베르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나는 루베르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잡은 루베르의 손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어색함만 오가는 공기 속에서 나는 퍼뜩 상단에서 들었던 내용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게 뭐죠?”

두 사람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암시장과 관련한 조사에 대해서요. 아무래도 플로라에 마력을 부여해 만든 플로리스를 이미 거래하기 시작한 거 같아요.”

“결국 거래가 시작되었군요. 폐하의 얘기를 듣고 예상하긴 했습니다만…….”

카룬이 마른세수를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도 그걸 암시장에 푼 건 다름 아닌 폐하시겠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어서도 알 수 있었다. 황제는 분명하게 이 일과 연루되어 있다는 걸.

“내가 조사한 것과도 일치합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베르가 고개를 들었다.

“연구로 사용되고 있던 플로라의 양이 줄고, 수입하는 양도 줄었습니다. 황제는 지금 공화국과의 무역을 끊을 생각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더욱 그들에게 강압적으로 나온 건가.”

카룬이 중얼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사신의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 모두 황궁에서 나가라는 말을 전했다지. 아무래도 이제는 정말 외교적인 부분을 생각지 않는 걸지도 몰라.”

“그 덕분에 우리는 든든한 뒷배를 얻었지.”

공화국의 수장. 란이 이 밀수 사실을 안다면 황제는 끊임없이 추락할 터였다.

“이제 증거만 있으면 돼. 황제가 빼도 박도 못할 증거.”

루베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아니, 그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잖아.”

“뭐?”

카룬이 고개를 내저으며 루베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돼. 어서 이곳에서 탈출하라고.”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우리가 황궁에서 보낸 마차에서 텔레포트를 써서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루베르가 재빨리 시계를 응시했다.

“젠장. 조금 있으면 중심가에 도착할 시간이야.”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마차는 황궁에서 내어준 것이었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면…….

“황제의 의심이 곧바로 우리를 향할 수도 있어요.”

“어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의문만이 가득한 그때, 갑자기 루베르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좀 험한 방법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루베르, 여기서 마력을 사용했다간……!”

“걱정하지 마.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루베르는 그대로 나를 이끌어 옷장 쪽으로 향했다. 설마?

“일단 추가적인 이야기는 이곳에서 나오고 나서 얘기하지. 연구실로 들어올 거지?”

“그래, 연구소로 돌아가면 그때 말하자고.”

루베르와 카룬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루베르가 옷장으로 나를 밀어 넣더니 곧이어 자신도 안으로 들어왔다.

“루베르?”

“지금은 이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만 참으십시오.”

루베르가 뭐라고 작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잠시 뒤, 눈앞에 푸른 하늘이 나타나고 나는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악!”

나는 깜짝 놀라 옆에 있던 루베르를 껴안았다.

“아스텔라,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요!”

“허공에 발을 대어보세요. 바닥을 밟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허공을 향해 슬그머니 발을 들여놨다.

“어?”

“황궁 내부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게 도박이다 보니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마법이 성공했군요.”

루베르가 한숨을 내쉬면서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아래를 보지 마십시오. 상당한 높이일 테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하라는 건데!

내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루베르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루베르가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한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 마차 안으로 돌아갈 테니까.”

“네?”

루베르가 가리킨 곳에는 정말로 아까 탔던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위치를 대충 설정했는데 맞아떨어져서 다행입니다. 이제 가볼까요?”

루베르가 허공에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풍경이 바뀌었다.

곧이어 우리는 아까 타 있던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으앙!”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포피가 여기 있다는 점일까.

“아스텔라! 나 너무 무서웠어!”

무서움에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포피가 드디어 말문이 트였는지 투덜대기 시작했다.

끽.

그 순간, 마차가 정지했다.

“대공 성에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을 끝으로 나는 포피를 가방에 넣으려다 멈췄다.

아니, 잠깐만.

“루베르.”

“네?”

“포피를 잠시 들어주시겠어요?”

루베르가 의문스러운 얼굴을 한 채 포피를 들어 올렸다.

“저하?”

“잠시만 기다리게.”

밖에서 재촉하는 마부를 자제시킨 루베르가 고개를 갸웃대면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지 설명하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설명창!’

가장 밑에 열려 있는 설명창을 누르자 여태껏 가지고 있던 능력들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중에 내가 봐야 할 창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빠르게 최근 표시가 뜨는 「텔레포트」의 설명을 클릭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대로야.’

적혀 있는 설명에 쾌재를 부를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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