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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87)화 (87/120)

87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확실했다. 황제는 자신의 비밀 서고에 내가 드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더 깊은 의심을 샀다간 큰일이 일어날 거야.’

그건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핑계를 가져왔다.

“저는 그때 연기를 마시고 기절해 있던 터에 복도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흠, 그래?”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한 황제가 제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길을 걸으면서 바닥이 열려 있었을지도 모르네. 그건 기억에 없나?”

다음으로 들어온 질문은 그래도 대답하기가 쉬웠다.

“제가 그곳을 지날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가.”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내가 그곳에서 탈출한 건 화재가 일어난 후였다.

타일은 그 후에 열렸으니 지금 내가 그걸 봤다고 얘기하는 건 모순되는 말이었다.

내가 확신에 찬 말투로 의견을 굽히지 않자 황제도 더는 캐물을 생각이 없는지 몸을 의자로 기댔다.

“황궁을 도와준 손님에게 너무 많은 걸 꼬치꼬치 캐물었군.”

“아닙니다. 사건이 어서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은 저도 같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 증언하겠습니다.”

“불쾌했을 수도 있는데 이리 친절하게 대답해주니 마음이 편해졌어. 고맙네.”

황제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꾸했다.

마음이 편해지긴 개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대는 루베르와 함께 대공 성에서 생활하고 있다지?”

“네, 그렇습니다.”

“특이한 일이군.”

황제가 의자의 손잡이를 매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알기론 루베르가 여인을 곁에 두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루베르와 나를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심산인 게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단호히 대답했다.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사건을 맡은 게 저였을 뿐이고, 제 성별이 여자였을 뿐이지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좀 강하게 나가도 되겠지.

“제가 좀 능력이 있는 탐정이라서요.”

“하하! 재미있군!”

황제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카룬과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뽐내는 푸른 눈동자에는 왠지 모를 차가움이 담겨 있었다.

“그나저나 대단한 용기군. 루베르의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꽤 엄청난 소문이 돌지 않았나. 그걸 이겨내고서 그 녀석을 구해낼 줄이야.”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가 꽂히는 사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라 말입니다.”

“그래?”

황제가 씩,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루베르가 자네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군.”

“그렇게 보인다니 참 기쁘네요.”

“둘이서 무슨 사이인 건 아닌 듯하여 다행이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내가 고개를 치켜들고서 그를 바라보자 황제의 볼우물이 조금 더 짙어졌다.

“대공의 자리는 무척이나 무거운 자리지. 절대 가벼워질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진.”

그러니까 그 자리에 나는 안 어울린다는 소리잖아.

대놓고 나를 까기 시작한 황제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이대로 당하고 있기는 싫었다. 나는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힘들지 않은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가장 무거운 자리는 바로 황제 폐하의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뭐?”

하하.

황제가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내가 이런 식으로 반격해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웅성웅성.

뒤에 있던 보좌관들이 자기들끼리 뭔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아마 황제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내 뒷담화라도 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어차피 황제에게 잘 보일 마음도 없었고.

내가 자리를 뜨기 위해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하려던 그때였다.

“그 능력으로 내 사건도 해결해줄 수 있겠나?”

“네?”

황제가 표정을 굳히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하에 있던 서고에서 침입자의 흔적이 발견되었네. 마침 그때 주변에 있었던 자는 그대이기도 하고, 상황은 나보다 잘 알고 있을 게 아닌가.”

황제는 잠시 숨을 참았다가 다시 말을 뱉었다.

“그러니 내 사건도 꼭 해결해줬으면 하는데.”

이렇게 사건을 나에게 맡긴다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평민인 내가 황제의 청을 거절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 일을 맡겨주신다면 조사해보겠습니다.”

“그래, 덕분에 일이 수월해지겠어. 뭔가를 찾아내면 언제든 내게 오게.”

“그런데, 폐하.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게 뭐지?”

황제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면서 물었다.

나는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정리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때 당시 황궁 안에 있던 인물들의 탐문은 꼭 필요한 사항입니다.”

“물론 그렇지. 그대의 뜻대로 하게. 언제든지 황궁에 들어와서 조사를 이어가도 좋아.”

황제가 억지로 쥐여준 이 기회는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황제에게 나를 감시할 눈을 더 붙여주도록 함과 동시에 황궁 내부를 탐색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더불어 황궁 안에 있을 루베르와 카룬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조금은 더 쉬워질 터.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황제를 향해 말했다.

“그럼 조사는 오늘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해. 가장 먼저 할 조사는 어떤 거지?”

“일단 저와 함께 있던 대공 저하께 말을 여쭈어보고자 합니다.”

황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어째서 루베르의 얘기가 나온 건지 설명하라는 태도였다.

“제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동안 그곳에 잠시라도 들어와 있었던 대공 저하의 얘기를 시작으로 하나씩 짚어갈 예정입니다.”

“과연 그렇군.”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 연구소에 있는 루베르를 불러들이게. 여기 있는 탐정에게 최대한 협조하고, 방문증도 하나 만들어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아까 봤던 익숙한 얼굴의 보좌관이 고개를 숙인 후에 밖으로 나섰다.

며칠 지나진 않았지만, 황궁 안에서 루베르를 볼 수 있단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무사하겠지?’

그에게 다른 일이 없었길 바랄 뿐이었다.

“대공에게 서신을 넣었으니 곧 올 겁니다. 잠시 손님방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알현실 밖으로 나온 보좌관이 나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방이라고 하면 바로 알현실 옆에 있던 그곳이겠지.

마침 포피의 상태가 걱정되던 참이었다.

“네, 그리고 옆방에 짐을 맡겨뒀는데 그것도 좀 찾고 싶은데요.”

“안 그래도 하녀가 짐을 맡아두고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말하면 될 듯합니다.”

내가 신경 쓸 건은 아니니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옆방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마음이 불안했다.

* * *

포피는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아니, 인형이 숨을 쉰다는 발상이 웃기지만.

실제로 포피는 가만히 있는데도 무언가가 자기를 옥죄는 이 불편한 느낌을 계속해서 받고 있었다.

불만인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스텔라, 포피를 그냥 두고 가다니.’

짐을 맡겨준다는 말에 어쩜 이렇게 귀여운 자신이 들어 있는 가방을 홀랑 넘겨줄 수가 있단 말인가.

포피의 꼬리가 불만을 표시하고 있던 그때였다.

찍.

가방의 입구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포피가 다시 얼음처럼 굳었다.

곧이어 입구 너머로 들어온 햇살과 함께 하녀 한 명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때, 수상한 건 없어?”

“응, 없는 것 같아. 그냥 평범한 인형 하나가 들어 있을 뿐인데.”

“뭐? 누가 황궁에 들어오면서 인형을 가져와?”

곧이어 다른 하녀가 가방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딱 봐도 이상하잖아. 인형의 목걸이 좀 봐. 이렇게 값비싼 목걸이를 인형에 채워두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게 그걸 물어도 나는 잘 모르지.”

포피가 이도 저도 못 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던 그때였다.

“야옹!”

어디선가 들린 소름 끼치는 소리에 포피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고양이 한 마리가 마치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맹수처럼 눈을 번뜩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스텔라.’

포피는 진심으로 저 집채만 한 덩치를 가진 고양이가 두려웠다.

마치 지금이라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 것 같은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야옹!

갑자기 방 안으로 들이닥친 고양이가 빠르게 두 명의 하녀 사이를 헤집고 들어왔다.

“악!”

“이놈의 도둑고양이가!”

깜짝 놀란 두 하녀는 차마 고양이를 떼어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을 노려 고양이는 빠르게 포피가 차고 있던 목걸이를 물었다.

‘어딜!’

이건 몇 년이 지나 아스텔라가 찾아준 귀한 자신의 목걸이였다.

그런 걸 이런 도둑고양이 따위에게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포피가 반동을 이용해 작은 솜 주먹으로 고양이의 눈을 후려쳤다.

“캭!”

고양이가 더욱 거세게 목걸이를 쥐고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포피는 진심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파르르 떨었다.

‘아스텔라, 살려줘!’

하지만, 자신의 기도가 들리지 않았는지 아스텔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더 고양이에게 시달리고 있었을까.

“야옹!”

고양이가 포피의 목걸이를 입으로 문 채로 그대로 포피를 들어 올렸다.

포피는 마치 낚싯대에 걸린 생선처럼 위로 딸려 올라갔다.

하찮은 솜 인형이 더는 고양이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어머, 저 고양이 녀석이! 거기 안 서!?”

뒤에 서 있던 하녀들이 목이 터질 정도로 소리쳤지만, 고양이는 그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창밖으로 나섰다.

“야옹.”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하녀들을 약 올린 고양이는 포피를 들어 올린 그대로 나무를 타고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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