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카룬은 이 모든 걸 예상했던 걸까.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 여기서 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나는 상단 주인에게 다른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하고서 성으로 돌아갔다.
“이제 오셨습니까.”
성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집사가 고개를 숙이며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무겁다고나 할까.
‘내 착각인가?’
나는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집사와 저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던 란을 향해 말했다.
“네, 제가 조금 늦었죠? 식사는 다들 하셨어요?”
“식사보다도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네?”
란의 입가가 굳은 일자를 유지했다. 역시 착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란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와 자신이 들고 있던 쪽지를 내밀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더 안 좋아진 모양입니다. 황제가 공화국의 사신들에게 모두 궁에서 나가달라는 퇴거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쪽지에는 란이 말한 그대로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궁 내부에서 불이 나 그걸 수습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거기에 범인을 찾기 위한 수사를 해야 한다니, 자신들이 불을 질러놓고 참 우스운 일이지요.”
란이 이를 아득, 갈면서 쪽지를 단번에 구겼다.
지금 그녀의 기분이 어떨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을 대신 도맡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 갑작스러운 퇴거라니.
“어떻게 할 방법은 없나요?”
“여기는 제국의 영토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뻗대고 있으면 상황은 더 안 좋아지겠죠.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아.”
나는 그제야 란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챘다.
내 눈빛을 읽은 란도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이대로라면 황궁 안에 있는 대공을 보호할 조치조차도 할 수가 없습니다.”
황제가 루베르를 건들지 못한 이유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건 아마 사신들이었을 터였다.
다른 나라의 사람이 이곳에 와 있는 동안 문제가 생긴다면 비난은 그에게로 향할 테니까.
하지만, 이제 그걸 지켜보고 있을 사신마저 사라진다면…….
‘루베르가 언제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알 방법이 없어.’
그걸 깨닫고 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든 다른 수를 떠올려야 했다.
내가 머리를 싸매고서 고민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였다.
“탐정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일 듯합니다.”
“네?”
평소엔 나를 보며 인상 한번을 찌푸린 적이 없던 집사가 천천히 다가와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황궁에서 탐정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기 찍혀 있는 인장은 분명 황제의 것입니다.”
나는 얼떨떨하게 편지를 받아 들었다. 황제가 나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대체 왜?
그 찰나의 순간 내가 해왔던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면 역시 황궁에서 비밀 서고에 들어갔던 일이었지만.
나는 천천히 편지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옆에 서 있던 란도 내 옆으로 다가와 내용을 함께 확인했다.
곧이어 내용을 확인한 우리는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대공을 도와준 것과 더불어 황궁의 화재 진화에 도움을 준 그대를 직접 만나고 싶네. 모쪼록 내일 오전 중에 황궁에 찾아올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