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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83)화 (83/120)

83화

마차는 빠르게 움직였다.

루베르는 가슴속 깊숙한 곳부터 올라오는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잘 다녀오세요.

그렇게 얘기하면서 손을 흔들어주던 아스텔라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을 숨기면서 포피의 손을 흔들어대던 사랑스러움은 잊으려고 해야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마차를 돌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그녀가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게 된 걸까.

아스텔라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일상에 거짓말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의 잠자리가 괜찮았는지가 궁금했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는 그녀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는지가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남을 생각하는 게 얼마 만인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얼마나 더 달려갔을까. 빠르게 달리던 마차가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군.”

루베르는 마차에서 내려 황궁을 올려다봤다.

이 안에 대체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 자신은 이제부터 그걸 알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여기에 들어온 것이니까.

루베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공 저하.”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던 황제의 보좌관이 루베르를 맞이했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도착할 때를 노려 다른 길로 새지도 못하게 감시하겠다는 뜻일까.

루베르는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을 간신히 참아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 들어오면서부터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알현실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가시지요.”

말투는 정중했지만, 따라오지 않는다면 분명 난리가 나겠지.

이곳은 적진과도 같았다. 루베르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증거를 잡는 게 가장 중요했다.

루베르의 적안이 무섭게 번뜩였다. 작은 모순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 * *

“들어왔군.”

알현실로 들어가자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루베르를 맞이했다.

루베르는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차렸다.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우리 사이에 이런 인사치레는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너는 언제나 그러는구나.”

“그래도 어떻게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께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릴 땐 그렇게 잘 따르더니 이제는 애교가 없어졌어.”

황제가 낮게 혀를 차면서 대꾸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언뜻 보기엔 무척이나 다정해 보였다.

하지만, 루베르는 대화 속에 담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황제는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벽을 치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루베르, 네가 여기 와서 기쁘군.”

“저도 이렇게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몸은 괜찮은 건가?”

황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꾸며낸 채로 되물었다.

자신이 보낸 향로로 죽을 뻔한 사람 앞에서 참으로 뻔뻔한 태도였다.

하지만, 굳이 여기서 그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루베르는 고개를 숙이면서 대꾸했다.

“이제는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다시 일할 정도로 나아졌으니 이리 돌아온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래. 너는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 말이지.”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자에 몸을 깊숙하게 기댔다.

“그럼 내가 뭘 부탁하려고 하는지도 알고 있겠지.”

“플로라의 연구를 계속해서 하라는 말씀 아니십니까.”

황제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곧이어 황제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역시 그대는 말하지 않아도 척하고 알아듣는다니까. 이렇게 똑 부러진 사람이 없어서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황제는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천천히 다시 입을 뗐다.

“그래, 플로라의 효능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아 다시 연구에 매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위험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방법도 고려해봐.”

“위험성이라면 중독과 관련된 부분입니까?”

루베르의 시선이 황제의 얼굴로 향했다. 황제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던 대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이제는 자리를 뜰 시간이었다.

루베르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뗐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조사에 진척이 있다면 바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래, 언제나 수고가 많아.”

루베르는 그대로 망설이지도 않고서 알현실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그런 루베르의 뒷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곧이어 황제가 손을 들어 올리자 뒤에 서 있던 보좌관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대공이 허튼짓은 하지 않는지 잘 감시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연구소에 있는 자들에게 일러두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미간의 주름은 풀릴 줄을 몰랐다.

황제는 사실 화재 사건이 있을 그때부터 루베르에 대한 의심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의 알리바이는 모두 확인되었습니다. 귀족들이 황궁에 있는 의원의 진료를 받은 덕분에 수월했습니다.

그렇게 대꾸한 의원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기사들의 증언을 합쳐본 결과 놀라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대공 저하께서는 자신의 사람이 안에 있을 거라면서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분명 말렸음에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바쁘게 들어가셨죠.

사람을 대피시키고 있던 기사는 루베르가 성안으로 들어갔음을 증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의원을 도와 사람을 치료하고 있던 다른 사용인의 증언도 이어졌으니까.

―황태자 전하의 말에도 대공 저하께서는 쓰러진 일행과 함께 바로 자리를 뜨셨습니다. 어쩐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화가 나신 듯이 보였지요.

일행이 정신을 잃고 치료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그냥 자신의 영토로 돌아갔다.

그럴 필요가 뭐가 있었을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 여자의 존재를 들키지 않아야 하거나, 거기서 있었던 일을 숨겨야 하거나.

무엇이 되었든 루베르는 더는 황궁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걸 알고 나니 황제는 루베르가 그렇게 의심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대피 당시에 그 자리에 있지 않고 성안으로 굳이 들어가서 행방이 묘연했던 사람.

그리고 자신에게 원한이 있을 만큼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

루베르는 그 두 가지에 모두 부합했다. 물론 그건 루베르가 자신이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였지만.

“폐하.”

이미 루베르는 만나보았다. 루베르의 입에서 더는 그때의 일을 들을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황제가 취할 방법은 하나였다.

“대공과 함께 있었다는 탐정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겠어.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스텔라라는 사설탐정입니다. 꽤 유명한 모양입니다.”

“그 여자에 관해서 조사해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고개를 숙인 후에 알현실 밖으로 나섰다.

황제는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인물인 아스텔라가 등장한 탓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 여자는 루베르의 옆을 맴도는 것도 모자라 화재 사건 당시 성안에 있기까지 했다.

대체 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더는 아스텔라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꽤 능력이 좋은 탐정이라면 모든 진실을 파헤칠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무슨 수라도 써야겠군.”

일단 아스텔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사설탐정으로 그곳에 들어간 거라면 아마 돈을 받을 목적이 가장 크지 않을까.

황제에게 있어서 가장 많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돈이었다.

그 말은 즉, 아스텔라의 목적이 돈이라면 자신이 구워삶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거기 누구 있나!”

“네!”

아까 나갔던 보좌관이 알현실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황제는 씩, 웃은 후에 말을 이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에 대한 조사를 이어감과 동시에 하나 더 할 일이 있어.”

“네, 폐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황제는 이윽고 서랍 안에 있는 두루마리를 꺼내 빠르게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황제는 곧 인장을 찍은 후에 그것을 말아 보좌관에게 전달했다.

“이걸 아스텔라라는 탐정에게 전하게.”

황제는 직접 아스텔라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 * *

루베르가 떠나고 이틀이 지났다. 루베르로부터 아직은 연락이 없었다.

―아직 황궁 내부에 사신들이 남아 있으니 그들을 이용해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꽤 어려운 일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는 거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왜 그래?”

옆에 있던 포피가 귀를 팔락거리면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내가 이렇게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무력해서.”

그렇게 오만 능력을 다 가지고 있는데 정작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니.

그냥 기다리는 건 성미에도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범인이 이제 누구인지도 확실하고 증거까지도 있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건 좀 아니잖아!

루베르는 목숨을 걸고 황궁에 들어가기까지 했는데!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나는 고민을 시작했다.

플로라와 관련된 약물을 내가 더 조사할 방법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건 연구실에서 일하는 루베르가 가장 잘 알고 있을 정보이니까.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지?’

한참 동안 머리를 싸매고 있던 바로 그때, 하나의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황태자.”

그래, 생각해보면 황태자와 연락할 방법을 알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그때 그 비밀 장소에 다른 무언가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황태자가 자주 다니던 상단에 다시 들를 필요가 있었다.

그곳에 혹시 황태자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내가 가장 바라고 있는 건 그것이었다.

‘이렇게 있어봐야 변하는 건 없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렇게 있을 시간에 한시라도 움직이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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