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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게임속 대공을 구출하겠습니다 (80)화 (80/120)

80화

“하…….”

“왜 그렇게 한숨을 푹 쉬어?”

뒤에 있던 포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되물었다.

고개를 돌려 포피를 쳐다보자 포피가 고개를 갸웃댔다.

쓸데없이 귀엽기는. 나는 포피의 머리를 한번 쓸어주고서 테라스로 향했다.

이런 기분으로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달 한번 참 밝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하늘에는 구름 한 점조차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달은 또 얼마나 크고 밝은지. 이 정도면 마당에 달을 가져다 놓은 수준이 아닐까.

내가 한숨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숙인 바로 그때였다.

“어?”

저 멀리 보이는 익숙한 은발에 나도 모르게 소리가 먼저 나왔다.

분명 아까 헤어졌던 루베르가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루베르가 가장 답답하겠네.’

오랜만에 얘기한 친구는 근신 처분을 당해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황궁은 들어갈 수조차 없고.

누구보다 플로라에 얽힌 제국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은 건 가장 큰 피해를 받은 루베르일 텐데.

그렇게 생각이 드니 더욱 마음이 쓰였다.

“아스텔라? 어디 가?”

“잠시 산책 좀 하고 올게.”

“포피도 데려가라, 응?”

포피가 낑, 하는 소리를 내면서 팔을 쭉 뻗었다.

하지만, 지금은 포피의 어리광을 받아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다음에 같이 가자, 응?”

“됐어! 다 바보 멍청이들이야!”

“아, 맞다!”

나는 빠르게 옷장으로 향했다. 포피는 내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게 어디 있더라.

그렇게 얼마나 옷장 안에 있던 옷들을 뒤져댔을까.

땡그랑!

바닥으로 떨어지는 포피의 목걸이를 주워 든 나는 빠르게 포피를 향해 다가갔다.

“응? 너, 어떻게 그걸……!”

포피의 꼬리가 위아래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아마 이 목걸이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건 분명 카룬이 부쉈던 내 목걸이잖아! 이걸 어떻게 구했어?”

“이거 얻느라고 고생 좀 했다고.”

“응? 뭐야? 포피를 위해서 그런 고생까지 해준 거야?”

아까 데려가지 않는다는 말에 짜증을 낼 땐 언제고 포피는 너무나 신나하면서 방방 뛰었다.

“어서! 어서 포피의 목에 그걸 걸어줘!”

“알겠어, 잠시만 기다려봐.”

휑했던 포피의 목에 드디어 하늘색 목걸이가 걸렸다.

포피는 작은 손으로 한참이나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어루만지더니 이내 귀를 팔락거렸다.

“고마워! 포피, 너무 기뻐!”

이렇게 기뻐할 줄 알았다면 진즉 줄 걸 그랬네.

괜히 미안한 마음에 포피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자 이번에는 포피가 왕,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내 손에 머리를 비볐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살아 있는 강아지 같다니까.

나도 모르게 입가가 느슨해지면서 올라가던 바로 그때, 포피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산책하러 간다더니 안 가?”

“아, 맞다.”

이놈의 머리는 하나를 생각하면 하나를 잊어버리네.

나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루베르가 벌써 방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금방 다녀올게.”

“응, 잘 다녀와!”

나오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포피를 보자니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걸까?

조금은 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 * *

날이 저문 탓이었을까. 밖은 생각보다도 꽤 쌀쌀했다.

나는 팔을 어루만지면서 아까 루베르를 보았던 정원 쪽으로 들어섰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엔 아직 루베르가 돌아가지 않고 서 있었다.

“루베르!”

내가 루베르를 부름과 동시에 그가 빠르게 내 쪽을 돌아봤다. 이윽고 그의 적안이 예쁘게 호선을 그렸다.

“아스텔라, 산책하러 나온 겁니까?”

“네, 루베르도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옷이 많이 얇아 보이는데요.”

천천히 다가온 루베르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이 자신이 두르고 있던 망토를 걸쳐줬다.

“번번이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올게요.”

“아닙니다. 저는 마력을 운용해서 몸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루베르가 천천히 내 손을 붙잡았다.

손 너머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우리 둘은 천천히 정원 안을 걷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황제가 범인이었다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루베르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아버지께 그런 일을 혼자 겪게 했다는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루베르…….”

딱히 내가 루베르를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건 루베르의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루베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랬기에 더욱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거겠지.

나는 루베르의 손을 꽉 붙잡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루베르의 잘못이 아니에요. 알고 있잖아요?”

“향로에 그런 장치가 되어 있었다는 걸 미처 알아내지 못한 제 잘못도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똑같은 방법으로 죽을 뻔했다니.”

루베르가 조소를 내뱉었다.

“이보다 더 멍청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루베르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라면 스스로를 갉아먹을 게 뻔했다.

나는 루베르의 팔을 붙잡고 그 자리에 세우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로 루베르의 탓이 아니에요. 모든 건 그런 짓을 계획한 황제 때문이라고요. 그러니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네?”

제발 내 마음이 전달되었길 바라며 그의 두 손을 붙잡자 루베르 역시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고맙습니다. 아스텔라.”

“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지만 생각해봐요.”

“그거에 관해서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런 말도 없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

내 얼굴에 궁금하다는 표시가 드러나기라도 한 걸까.

루베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내 볼을 작게 한번 건드리고서 말을 이어갔다.

“황궁에 들어갈 방법은 이제 딱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제가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네?”

루베르가 잠깐 나를 응시하다가 곧이어 고개를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아버지의 업무를 이어받아 플로라의 연구와 아멜 공화국과의 외교를 담당하고 있었죠. 공화국의 사신이 들어와 있는 지금, 그들을 맞이하는 건 온전히 나의 업무입니다.”

“…….”

“일을 위해 언제든 돌아오라고 한 말이 있으니 일하겠다는 나를 내쫓지는 못하겠지요. 거기로 들어가 정보를 캐낼 수 있는 만큼 캐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자, 잠시만요!”

루베르의 말이 합당하기는 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않았지만…….

“혼자서 거길 들어가겠다고요?”

“플로라의 연구와 아멜 공화국과의 외교는 기밀 중에서도 가장 중한 기밀에 해당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루베르가 숨을 골랐다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어쩌면 그 안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습니다. 이전 연구를 진행할 때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으니까요.”

“말도 안 돼요!”

그러면 카룬이랑 똑같이 감금되는 거잖아!

그렇게 위험한 곳에 루베르를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 방법은 너무 위험해요. 혹시나 다른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이것 외에는 황궁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루베르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황궁 지하에서 일어난 화재는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화재이지요. 그 때문에 황궁에서도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

“이런 와중에 다른 외부인을 들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하.”

숨이 턱 막혔다. 루베르도 내가 위험한 일을 한다고 했을 때마다 이런 기분으로 나를 보냈을까.

루베르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더욱이 내가 부정할 수 있는 말도.

하지만, 나는 루베르가 되도록 황궁과 엮이지 않길 바랐다.

“루베르.”

“네.”

마주한 적안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루베르가 내게 이 말을 꺼내기 위해, 이런 다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가 느껴졌다. 더는 방법이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너무나 무력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조심해야 해요. 무슨 일이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알겠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그럴 생각이니까.”

루베르가 생긋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 순간, 강한 바람이 우리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루베르가 걸쳐줬던 망토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주워 들면서 탁탁 털었다.

“이만 들어갈까요. 바람이 차군요.”

“네, 그래요.”

루베르는 내가 건네준 망토를 기어코 내 어깨에 걸쳐주면서 손을 붙잡았다.

앞서 걸어가는 루베르의 손은 말할 것도 없이 따스했다.

혹여나 일이 잘못되어서 그를 못 보는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저려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그걸 깨닫기에는 이 밤이 너무나도 짧았다.

* * *

“탐정님!”

“으음…….”

“탐정님!”

다급하게 나를 잡아 흔드는 손길에 무거운 눈을 간신히 떴다.

“루시……?”

“정신이 드세요? 큰일이 났어요.”

“왜, 무슨 일이길래 그래?”

루시는 평소에 내가 자고 있으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법이 없던 아이었다.

그런 애가 이렇게까지 난리를 부리면서 들어올 정도라면 분명 무슨 일이 나긴 한 모양인데.

“대공 성에 사람이 왔어요.”

“뭐? 어떤 사람?”

“아니, 내 정신 좀 봐.”

루시가 한참이나 횡설수설하더니 이윽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황궁에서 사람이 찾아왔어요. 그것도 황제의 명을 받들라면서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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